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18화 (118/265)

유피테르의 데뷔전(3)

* * *

‘다 네가 자초한 거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알피는 모든 일이 시작된 그 날을 떠올렸다.

그는 용병 마법사였다. 돈만 받으면 무슨 일도 완벽하게 처리해주는 해결사이기도 했다. 리투아 제국과 아르메 제국의 사이의 도시 랭커스터는 이런 일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타고난 마법과 소질을 살려서 믿을만한 수완가로 업계에 이름을 알려가는 중이었다.

그런 자신을 누군가 찾아왔다.

작은 체구였지만,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그놈은 엄청난 마나를 선보였다.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하고, 눈 깜짝할 새에 제압당해버렸다.

“당신 누구야? 이런 짓을 하고도…!”

그의 석화 마법은 뛰어난 범용성을 가지고 있었다. 리투아가 자랑하는 혈계 마법 급에 준했다. 마법 자체를 석화시켜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었다. 또, 여러 명을 상대할 때 더욱 빛을 발했다.

믿었던 석화 마법은 그놈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마법을 쓰면 쓸수록 실력 차만 알게 될 뿐이었다. 그놈은 들어본 적도 없는 독특한 마법을 사용했다. 마나 배열을 강제로 흐트러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바레스. 오이네 출신. 돈을 모으는 이유는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 이 정도면 되었나?”

그는 자신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듣기 싫은 쇳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머리카락이 조여져 아팠고, 맞은 곳이 부어올랐다.

어떻게 숨겨왔던 이름과 출신을 알았는지는 관심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모두 내일 해를 보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 정도로 내가 포기할 거 같냐! 이래 봐도 내가 랭커스터에서 알아주는 날라리 마법사….”

해결사 일을 하면서 한두 번 죽을 뻔한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걸 넘어서야만 일류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일류 해결사의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였다.

“아직, 덜 맞았나 보군.”

그날 처음 느꼈다.

제로 서클 마법으로도 퍼스트 서클을 부술 수 있다는 사실을. 마나탄과 방어막만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그 자식은 그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것 같기도 했다.

“흠, 이제 보기 좋은 태도가 되었군. 이제부터 대답은 네로만 한다. 알았나.”

계속해서 두들겨 맞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제 반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었는데도,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머리에 안개가 낀 듯 뿌옇고, 점점 상처가 벌어져 아팠다.

“네 형이 죽었다.”

“뭐…!”

보고 싶은 형의 이야기가 나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리투아 제국의 어느 가문에서 형을 양자로 데려갔다고만 들었다. 나와 같은 마법을 사용하지만, 형의 재능은 남달랐다. 단순 노역에만 이용되던 석화 마법의 가능성을 알려준 게 바로 형이었다.

“대답은 네라고만 했을 텐데. 그 이외의 단어가 한 번 더 나오면 넌 죽는다.”

그는 다시 한번 나를 구타했다. 마나로 강화한 손은 어떤 몽둥이보다 아팠다. 몬스터의 공격이 갓난아기의 주먹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한 방 한 방이 뼈를 부수는 것 같아, 움직일 수 없었다.

반항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 뿐.

“알았나?”

“네.”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놓았다.

철푸덕.

그 바람에 바닥에 미끄러졌지만,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부족했던 호흡을 빠르게 몰아쉬었다. 숨을 쉴 자유가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날 확실하게 깨달았다.

“마족이 나타나서 네 형을 죽었다. 복수하고 싶나?.”

형이 죽었다니.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식의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형은 누구보다 정의로웠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강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나, 수재 정도는 되었다. 퍼스트 서클의 벽을 허무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된 은혜가 아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제로 서클을 유지했다.

“네.”

흐려졌던 눈동자의 초점이 돌아왔다. 복수의 업화가 활활 타올랐다.

마족, 그놈들은 항상 소중한 것을 빼앗아갔다.

형을 제외한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그놈들이 죽였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오이네가 멸망한 것도 그놈들 때문이었다.

증오스러운 마족들도 누군가를 잃는 고통을 똑같이 당해봐야만 했다.

“하지만 네 형이 죽게 된 진범은 따로 있다. 내 말만 잘 따르면 넌 원하는 복수를 하게 되겠지. 나와 계약하겠나.”

“네. 부탁드립니다.”

알피. 아니 알바레스는 그날 악마와 계약했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감정을 버렸다. 복수에 매진하기 위해, 맡고 있던 모든 일들을 취소했다. 해결사가 손을 떼버리니 의뢰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착수금의 몇 배를 돌려주니, 모두 눈을 돌렸다.

돈?

그런 건 더는 가치 있는 게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태도에 남들이 수군거렸다. 옛날 같았으면 말이 나오지 않게 흠씬 팼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태도가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형의 복수를 성공적으로 끝낼 거라고 다짐했다.

* * *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화살

예상외의 공격으로 주도권을 뺏긴 유피테르.

그러나 그에게 빈틈이란 없었다. 얼음의 마나를 흩뿌리며 수백 개의 화살을 만들어 냈다. 푸른 화살은 순식간에 파르테논의 세 교수에게 향했다.

유피테르의 마법에 자비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수를 한 번에 만들어 내다니?”

“아버지처럼 괴물이 되기라도 한 건가. 대체 저 가문은…!”

베티와 감미뉴 교수는 유피테르가 펼친 마법을 보며 경악했다.

한 사람이 수백 개의 마법을 제어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는 조디악이나 고대의 마법사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태프 등의 도구가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아티팩트가 개발 중이었다. 괴물 같은 은발 교수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던 것도 성과 중 하나였다.

베티와 감미뉴는 손에 끼고 있던 반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우우웅ㅡ.

반지는 그들의 마나를 흡수해 원래의 모습으로 변했다. 카테리나가 주로 사용하는 아티팩트 ‘카드세우스’와 유사한 구조였다.

“내가 방어벽을 펼치겠다. 자네는 그사이에 저 멍청이를 구해.”

“알겠어요.”

감미뉴 식 소리 마법 ― 소리의 장벽

감미뉴는 베티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벽을 펼쳤다. 스태프를 통해 펼친 마법은 두 배 이상 단단했다. 마도 공학이야말로 그들의 숨겨진 무기였다.

베티는 움직이지 않는 알피에게 뛰어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같은 팀이었다. 구하는 게 당연했다. 그녀는 마법으로 알피를 튕겨, 가까스로 소리의 벽 안에 들어왔다.

펑. 펑. 펑. 펑.

푸른 화살이 소리의 벽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유피테르의 마나가 거의 무한에 가까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도 공학의 산물이었나. 하지만, 두 번은 안 통해.’

유피테르는 당연히 파르테논의 교수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특히, 자신에게 도발을 한 알피는 곱게 돌려보내지 않을 거였다.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는 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알피는 그에 대해서 조사까지 해온 듯했다.

그렇다면, 더 들을 말 따윈 없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유피테르를 카르멘에 겹쳐보았다. 물론, 스스로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알피 교수 대체. 왜 움직이지 않았던 거에요?”

방어벽 안에서 베티가 알피에게 소리쳤다. 온갖 폼은 다 재던 알피는 결정적인 순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네 미쳤나? 전투 중에 정신을 파는 마법사가 어디 있나!”

간신히 벽을 유지하고 있던 감미뉴 교수의 목소리는 상당히 컸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최면을 걸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도 움직이고 싶어 미치겠다고. 당신들 저 자식의 마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

알피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추억 때문이 아니었다. 유피테르의 마나에 담긴 ‘정지’의 영향이었다. 감각이 느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걸 사용하지 않으면 정말로 위험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알피 당신은 뭘 알고 있는 건가요?”

“뭔가 방법이 있다면, 빨리 써봐. 여기서 시간을 더 끌리면 꼴사납게 패배할 거라고!”

귀족주의도 중요했지만, 이 경기의 승패는 더욱 중요했다. 애초에 알피와 파르테논의 협력은 계약 때문이었다. 서로가 이득을 보는 게 있으니 계약을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두 교수들은 상대에 대하 제대로 공부를 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은발 자식의 마법이 감속시킨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대체, 어떻게 교수가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해결사보다 지식이 없는 교수라니 웃음만 나왔다.

“알고 있다고. 잠시만 버텨봐. 그럼 상황을 뒤집어 줄 테니까.”

알피는 휘청거리면서도 자켓 속을 뒤졌다. 유피테르의 공격을 맞았지만, 제발 그게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날 만났던 악마가 건네준 최후의 보루.

지금이야말로 그걸 사용할 때였다.

“아직 멀었나! 더는 못 버틴다고!”

감미뉴는 패배의 종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이미, 경기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 은발의 교수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알피는 시간을 벌어달라고 말했지만, 그건 무리한 부탁이었다. 이미 감미뉴의 마나는 제로를 향하고 있었다. 스태프가 증폭해주는 마나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0을 1로 만들 수는 없었다.

쨍그랑ㅡ.

결국 유피테르가 이겼다.

푸른 화살은 소리의 벽을 깨트려버렸다. 유피테르의 얼음 화살은 무방비해진 세 교수들에게로 날아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알바레스식 석화 마법 ― 에우리알레

알피가 지금까지의 가명이 아닌 진명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유피테르의 마법이 순식간에 굳어 땅으로 떨어졌다.

“에우리알레…?”

“자네에겐 다 방법이 있었군. 이런 마법이 있다면 처음부터 쓰지 그랬나!”

베티와 감미뉴는 위기에서 벗어나자 알피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상황을 뒤집은 알피의 상태는 심각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알피. 알바레스가 대체 뭐죠? 괜찮나….”

베티는 끝내 말을 마치지 못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알피가 뒷목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해결사로 하루 이틀을 지내던 게 아니었기에, 기술은 완벽했다.

“자네, 대체 무슨 짓을!”

감미뉴는 베티 교수를 공격한 알피를 힐난했다. 아군에게 공격당해 쓰러지다니, 그건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감미뉴 역시 베티의 뒤를 따랐다. 마나를 다 쓴 늙은 마법사가 알피의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 푹 쉬어.”

이게 그의 본심이었다.

악마와 함께 준비했던 복수는 곧 결착이 날 것이었다. 은발의 교수를 죽여야만 형을 볼 면목이 섰다. 동생으로 태어나 받기만 했던 걸, 갚을 시간이었다. 이 둘은 그의 복수와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쪽 구석으로 피신시키는 게 맞았다.

그게 해결사의 마음가짐이었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아르망을 기억하나.”

알피는 잠재운 동료 둘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은 후,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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