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17화 (117/265)
  • 유피테르의 데뷔전(2)

    * * *

    경기가 시작한 지 고작 10분밖에 지나지 않았을 즈음.

    [어, 엄청납니다. 델포이 아카데미.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와 벌써 5배 차이가 납니다. 이게 바로 체급의 차이인가요!]

    중계석은 난리가 났다.

    아직까지 결정적인 전투 한번 없었음에도 두 아카데미의 차이는 극심했다.

    델포이 아카데미가 수집한 깃발의 개수는 현재 50개, 그에 비해 파르테논 아카데미는 10개밖에 되지 않았다. 단순 숫자의 차이지, 황금 깃발까지 더한다면 이미 승부가 거의 난 상태였다.

    표현한 것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차이였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혹한의 날씨 안에서 깃발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보라로 인해 시야는 가려지는 건 별것도 아니었다. 잠시라도 보호막을 꺼트리면 순식간에 동상에 걸렸다.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감각이 마비되는 경험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델포이 아카데미가 보여주는 약진에 관중들은 환호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걸었던 돈이 불어날 게 분명했다.

    [역시, 델포이 아카데미 믿고 있었다고!]

    [오늘 저녁은 닭튀김이다! 역시, 안전 자산이 최고라니까.]

    [역배를 건 친구들 이제 정신이 들어?]

    물론, 델포이 아카데미를 응원하는 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파르테논 이 사기꾼들아! 이번에는 다르다며!]

    [아이고 내 돈…. 다 잃었소….]

    [여름이니까 지금 바다는 따듯하지 않을까.]

    두 번째 경기 전 배당을 보고 돈을 건 관객들은 희비가 완벽히 갈렸다. 크리스탈 너머로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가 델포이 아카데미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파르테논을 밀었던 자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저쪽에도 하나 더 있군.”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유피테르는 살을 에는 추위에도 끄떡없었다. 제국 복쪽에서 살았기에 이미 추위에는 익숙했다. 그는 새로 개발한 케팔로스를 앞세워 깃발을 모았다. 환상 결계의 곳곳이 등불이 켜진 듯 보였으니 쉬웠다.

    마치, 땅에 떨어트린 동전을 다시 줍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번쩍ㅡ.

    “쳇, 역시 빗나갔나.”

    방금까지 유피테르가 있던 곳은 돌이 되어 있었다. 하얀 도화지에 처음으로 잿빛의 색이 칠해졌다. 파르테논 아카데미답지 않은 무식한 공격법이었다.

    “알피라고 했었나? 재미있는 마법을 쓰네.”

    의문의 습격자는 기습은 수포로 돌아갔다. 유피테르는 마법이 닿기도 전에 눈치를 채고 피했다. 케팔로스가 기동하고 있는 이상 기습 따위는 불가능했다.

    “친한 척 부르지 마쇼.”

    “그래, 난 너를 모르지. 너도 나를 모르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많은 감정이 그 순간에 오갔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알피 식 석화 마법 ― 돌무덤

    알피는 마법을 쓰기 위해 마나를 뿜어냈다. 역시, 교수는 아카데미생과는 달랐다. 밀도 높은 마나가 대기 중에 퍼지자 눈보라가 멎었다. 알피의 마나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하다는 증거였다.

    알피의 마법에 맞자 청록색의 소나무들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자잘한 것들이 모두 다 돌이 되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마치, 무덤을 만들려는 듯했다.

    쾅ㅡ. 쾅ㅡ. 쾅ㅡ.

    단단히 굳은 암석들이 유피테르에게 꽂혔다.

    그 한 방, 한 방이 무투가의 스트레이트처럼 묵직했다. 오크 같은 하급 몬스터들은 절대로 버티지 못할 수준이었다.

    “파르테논에 있기에는 실력이 아까운걸?”

    유피테르는 피하는 와중에도 빈정댔다.

    시동어 없이 메르카르트를 발동했기에 여유가 넘쳤다. 역시, 헤라클레스 가문의 비전은 뛰어난 성능이었다. 지금의 그는 시에라 제국이 자랑하는 순동보다 더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자신을 적대하는 자에게 상냥할 필요는 없었다.

    깃발을 뺏기 위한 기습이라기엔 의도가 너무 명확했다. 알피의 마법은 정확히 급소만을 노리고 찔러 왔다. 게이트 앞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언가 계약을 한 것 같았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마법사는 없었다.

    “잘도 피하는군. 그 모습이 참 쥐새끼 같구나.”

    알피는 마나가 무한하기라도 한 지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마나의 출력을 올렸다. 점점 더 많은 물체들이 석화되고, 유피테르를 쫓았다.

    “역시, 그 아비에 그 자식이군.”

    “뭐라고?”

    계속 헛방을 치던 알피의 도발이 처음으로 직격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은 잠자던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안 그래도 유피테르의 외모는 카르멘과 비슷했다. 젊었을 때의 카르멘을 빼다 박았다고 제국에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나비, 얼음창, 영구동토

    유피테르에게 더블 캐스팅은 가뿐했다. 아니, 그걸로도 부족했다. 알피를 완전히 침묵시키기 위해서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펼쳐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침묵시켜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사방에서 만들어진 얼음 나비가 알피를 에워쌌다. 얼음창은 위에서 쏟아지는 암석들을 꽁꽁 얼렸다. 석화된 땅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빙결되었다.

    [지, 지, 지, 지금 보셨습니까? 델포이이 아카데미의 유피테르 교수가 트리플 캐스팅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계하던 진행자도, 관객들도, 다른 아카데미의 마법사들은 침묵에 빠졌다. 심지어, 응원하던 델포이의 일원들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카테리나, 클리오나, 오흐트

    유피테르의 원래 실력을 알고 있던 그들만이 이 와중에도 침착했다.

    [트, 트, 트…. 휴우. 죄송합니다. 트리플 캐스팅은 현재로서는 조디악의 일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거 기절초풍하겠네요.]

    와아아아아아.

    조용했던 스타디움이 드디어 소리를 되찾았다. 관객들의 환호와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트리플 캐스팅의 등장에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트리플 캐스팅은 현재 인류의 한계치였다. 조디악도 트리플 캐스팅을 유피테르처럼 자유롭게 펼치지는 못했다. 그저 할 수 있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유피테르, 유피테르, 유피테르….]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유피테르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지 않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울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왜 나를 죽이려고 했지? 그건 규정 위반일 텐데.”

    순식간에 전세를 뒤엎은 유피테르가 물었다.

    그는 적이 많았다.

    ‘그녀’를 미워하는 자들은 유피테르 역시 좋게 보지 않았다. 달의 몰락에 연관된 귀족 가문들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들은 피치 못할 사정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족에게서 나머지 귀족들을 구해준 구원자임에도 그는 손가락질당했다.

    처음에는 알피가 리투아 제국의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방계 귀족 출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혈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도저히 귀족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언행과 행동을 보였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에서 묘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마법이었다.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대륙에서 같은 이미지의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흔히, 같은 아이디어를 동시에 3명이 떠올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상상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규정?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내 목적은 단 하나. 네놈을 여기서 묻어버리는 거다. 그럼 만족하겠지. 어때, 목을 넘길 생각이 들었나?”

    알피는 속으로 온갖 욕을 쏟아냈다.

    트리플 캐스팅을 두 눈으로 보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은발의 교수가 강하다는 소문은 몇 번이나 들었었다. 파르테논의 노인네들이 늘 말해줬다. 마주치면 피하라고, 정면 승부는 답이 없다고.

    하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믿어버리면 복수를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내 목을 줄 사람은 따로 있어서 말이지. 그건 안 되겠는데?”

    “정말, 개같이 능글맞은 성격이군. 당장이라도 내 앞에서 꺼져줬으면 좋겠군.”

    퉤ㅡ.

    얼음 나비를 파훼하지 못한 알피는 유피테르에게 침을 뱉었다. 침은 유피테르에게 가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졌다. 하고 싶은 행동을 하자,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했다.

    유피테르의 얼굴을 보면서 말을 듣자 속이 용암처럼 불타올랐다. 대체 뭘 잘한 게 있다고 저렇게 뻗대는 걸까.

    형도 구하지 못한 주제에.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유가 뭐지?”

    유피테르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당해온 폭력 때문에 그는 사람에게 환멸을 느꼈다.

    교류전 경기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머릿속에 분명히 자리 잡았다. 죽이는 게 안 된다면, 반만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유? 이유를 물었나?”

    유피테르의 질문에 알피가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대공자가 형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것쯤은 예상했다. 카르멘 아르테미스의 자식이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엄청난 속도로 마법들이 날아왔다.

    케팔로스는 이번에도 마법이 발동하기 전에 경고했다. 덕분에, 유피테르는 무리 없이 방어막을 펼쳤다. 시동어 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건 인간의 수준에 맞춘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그녀’와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유피테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법들은 그를 노린 게 아니었다. 날아온 두 개의 마법은 모두 알피를 향했다.

    ‘내 감지를 속였다? 재미있군.’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은 케팔로스를 속였다. 방금 막 새롭게 만든 마법이라 완벽하지는 않았다.

    “구하러 왔어요. 알피 교수.”

    “이런 곳에서 꾸물거릴 시간 따윈 없다고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알피에게 마법을 날린 건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교수들이었다. 처음 세운 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구하러 온 것이었다.

    마도 공학의 선두 주자답게 그들은 다양한 아티팩트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는 마법사의 감각을 속이는 것과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들도 있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순수 실력으로 델포이 아카데미에게 대항한다는 것 미친 짓이었다. 세 살 먹은 아기와 세컨드 서클의 마도사가 붙는 것만큼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고 필요한 아티팩트들을 미리 준비했다. 부정행위에 걸리지 않게 준비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 과정에서 아카데미생과 갈등이 빚어졌지만, 상관없었다.

    델포이를 이겨서 파르테논의 정신을 증명하는 게 더 중요했다.

    “고맙다고 하지는 않겠어.”

    얼음 나비에게서 벗어난 알피는 빠르게 몸 상태를 확인했다. 빌어먹을 대공자는 마족처럼 강했다. 단 몇 분 만에 전신의 감각이 둔해졌다. 마나 또한 많이 소진해 몇 번 사용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복수는커녕 형을 만나러 가게 될 뻔했다.

    “그런 걸 노린 게 아니었습니다. 계약대로 하시죠.”

    “품위가 없군, 역시. 너를 파르테논에 들인 건 실수였다.”

    “알고 있다고. 유피테르는 내가 쓰러트린다. 너희는 깃발이나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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