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16화 (116/265)

유피테르의 데뷔전(1)

* * *

개막식은 예상대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리마가 기절하는 사고가 있었으나 대체로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신관의 진행 능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녀의 참전으로 분위기가 눈에 띄게 불타올랐다.

성녀의 이름은 비단 크레이타뿐만 아니라 세아니아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압도적인 라이벌의 등장은 경기의 배당에 큰 변동성을 선물했기에 모두 환영했다. 델포이 아카데미의 독주는 마블링에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이번 교류전은 어떤 방식이래?”

“글쎄…?”

“내가 듣기로는 환상 공간에서 싸운다는데? 신성 기관이 단단히 준비했다고 하더라고.”

“서로 항복할 때까지 제한 없이 붙는 대결이 아니구나. 신선하네.”

교류전은 늘 다른 방법으로 펼쳐졌다.

교수 5명과 아카데미생 10명이라는 조건 만이 유일하게 바뀌지 않았다. 순위를 매길 다양한 경기를 준비하는 건 개최국의 몫이었다.

이건 개최국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특권이었다.

첫 번째 경기라고 해서 곧바로 치러지지 않았다. 경기는 개막식과는 다른 장소에서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선수들과 관객들이 이동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했다. 이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움직인다면 사고가 날 게 분명했다.

일정표에 정해진 시간이 되자 교류전 첫 번째 경기가 바로 시작했다.

첫날이니만큼 전부 교수들의 대회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아카데미생의 긴장을 풀어주고, 서로 친해질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첫 경기는 신성 기관과 천검 학원의 교수들이 맞붙었다.

“이게… 정말로 신관이라고? 이런 마법은 신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말도 안 돼. 아무리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차이는 인정할 수 없어! 우리는 단순한 검사가 아니라 검호들이다.”

“이게 크루세이더를 배출하는 곳의 힘인가….”

천검 학원의 교수들, 속칭 검호(劍虎)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시대의 검사가 마법사들보다 떨어진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오러는 아직 정립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마나에 비한다면 사용되었던 시간이 극히 짧았다. 장점도 있었으나, 명백한 단점도 많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최강의 검호가 출전하지 않았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낭만 검객이 없더라도 증명해내야만 했다.

검의 길을 선택한 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빛이 있기를.”

신성 기관의 교수들 중 한 명이 손을 모으며 기도했다. 검호들과 다르게 그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그들이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저, 한 끼 식사를 끝내고 나온 것 같았다.

[신성 기관이 기념할만한 첫 번째 경기에서 승리합니다! 중계를 하는 제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강합니다.]

제대로 된 발버둥 하나 없이 패배한 천검 학원.

그래도 그들을 욕하는 관객들은 없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배당이나 승률 같은 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검호들이 다음 경기에 제대로 나설 수 있을 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자, 이제 여러분이 기다리셨던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됩니다!]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일 뿐이었다. 진행자는 큰 감정 변화 없이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이어갔다.

[두 번째 경기는 유피테르 더비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델포이 아카데미 특별 교수로 채용되었다는데요. 실력이 궁금해지네요.]

새로운 경기가 준비되는 시간 동안, 관객석은 기대에 차 있었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자는 극히 소수였다. 실종과 귀환은 물론 극적인 마족 퇴치 등 믿기지 않는 소문으로 가득했다. 달의 몰락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대륙 곳곳을 강타했었다.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는 스타디움의 델포이 측 대기실.

“유피 자신 있어? 저쪽은 널 죽이려고 하던데?”

유피테르의 어깨를 툭 치며 에메리아가 물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그녀는 한껏 꾸미고 다녔지만, 지금은 달랐다. 완벽하게 전투에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 등 뒤의 자켓에는 델포이의 문양 크게 그려져 있었다.

“큰 걱정 하지 마. 어차피 우리가 있다.”

사이가 역시 유피테르를 걱정했다.

유피테르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강하다는 건 저번에 봤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낼지는 미지수였다.

무언가를 짊어진 자와 자신만을 싸우는 자의 차이는 극명했다.

“뭐, 괜찮습니다. 오히려 첫 경기 상대가 파르테논이라 편하네요. 선배님들을 믿고 분위기를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할게요.”

유피테르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에는 갚아줄 것이 많았다. 자꾸 자신에게 태클을 걸었으니까. 자신과 파르테논은 큰 관계아 없었다. 어린 시절 입학하려고 한 게 다였다.

“앞선 경기 봤지? 룰은 간단해. 환상 공간에서의 3대 3 대전 형식이야. 필드에 있는 깃발을 많이 뺏는 자가 승리해. 주변 환경이 어떨지는 모르겠네.”

교류전에 꽤 많이 참여해봤던 에메리아가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교류전이 익숙했다. 벌써, 3번째 참여니 그럴 만도 했다. 리투아 제국에서 알아주는 명가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붙임성 좋은 성격은 선수단에 큰 도움이 되었다.

“깃발은 하나 당 1점 그리고 중간중간 황금색 깃발이 있는데 이건 20점 짜리야.”

첫날 벌어지는 교수들의 경기는 모두 깃발 뺏기였다. 에메리아가 설명한 것처럼 경기의 룰은 간단했다.

경기에 참여한 교수들은 모두 한 개의 화살통을 지급 받았다. 경기가 끝났을 때, 화살통에 든 깃발의 총합이 높은 쪽이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직접 상대방을 죽이는 것만이 예외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실력 겨루기의 일환이었다.

[자, 먼저 파르테논 아카데미가 출전합니다! 왼쪽부터 알피, 베티, 감미뉴 교수입니다!]

진행자는 파르테논 아카데미를 먼저 불렀다. 곧바로 델포이 아카데미 역시 호명했다.

[다음으로, 왕좌의 주인인 델포이 아카데미입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에메리아, 사이가, 유피테르 교수입니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되자, 관객석은 환호성을 질렀다. 신성 기관이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으니, 델포이 역시 무언가 하기를 바랐다. 기왕 돈을 내고 들어왔으니, 멋진 경기를 보고 싶은 건 당연한 소망이었다.

에메리아, 사이가 그리고 유피테르가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그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던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교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이, 유피테르 교수. 오랜만이야?”

“전 처음 봅니다만?”

알피 교수가 유피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파르테논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않게 껄렁껄렁했다. 일단, 다른 이들처럼 파르테논의 제복을 입고 있긴 했다. 그러나 오버핏이라고도 봐줄 수 없는 옷차림은 물론, 피어스들까지 눈에 띄었다.

귀족주의가 만연한 파르테논 출신이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아… 이 양반 말을 잘 못 알아들으시네. 척하면 척, 탁하면 탁 몰라?”

“제가 꼭 그걸 알아야만 합니까?”

유피테르는 이유도 모른 채 당하지 않았다. 참지 않고 본성을 드러냈다. 마왕 마저 압도했던 살기가 압축되어 알피에게 쏘아졌다.

“으, 으읍.”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인 살기에 알피는 비틀거렸다. 한 때, 현장직에서 굴러다녔던 그였지만. 이렇게 지독한 살기는 처음이었다. 던전 수호자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품위 없게 행동하시지 말라고 이야기 드렸을 텐데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꺼.”

“자네, 아무리 특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파르테논의 여성 교수였던 베티는 점잖게 알피에게 경고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감미뉴는 파르테논에 먹칠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반응은 달랐지만, 두 교수 모두 알피의 몸 상태를 우려하긴 했다. 경기를 압두고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이번에야말로 델포이는 파르테논의 아성을 넘어야만 했다.

“알아서 한다고. 이 새키들아. 나한테서 신경 끄라고!”

알피는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귀족들은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사정이 있어 파르테논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저… 은발 자식 감히 내게 이런 짓을 해? 가만두지 않겠어. 난 네가 무슨 짓을 했든 믿지 않는다.’

게다가 유피테르에게 순간적으로 겁먹은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저렇게 여리여리한 샌님한테 쫄았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무엇을 숨기랴, 그는 현장에서도 알아주는 날아다니는 알피였다. 그 누가 목표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법사였다.

[자, 양측 모두 게이트 앞에 섰습니다. 어떤 경기가 펼쳐질지 두근두근하네요.]

교류전은 선발전이나 여태 다른 대회와 달랐다.

선수들은 신성 기관이 직접 준비한 게이트를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환상 결계가 펼쳐진 신비한 공간에서 전투가 펼쳐졌다. 덕분에 콜로세움에서 경기할 때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되었다.

관중들은 곳곳에 준비된 중계용 크리스탈을 통해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게이트에 탑승하기 전.

델포이 아카데미와 파르테논 아카데미 모두 간단한 체크를 받았다. 부정 행위가 가능한 물건들은 게이트 속으로 반입할 수 없었다. 순수한 실력으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면 대회의 권위가 의심되기 때문이었다.

촤르르륵ㅡ.

심사를 맡은 신관들은 세심하게 몸수색을 시작했다. 딱히 문제 되는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테스트에 걸리면 선수 본인도 명성에 금이 갔고, 아카데미도 손가락질받았다.

“OK입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상한 물건은 없습니다.”

검사를 맡았던 신관들은 심판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양 측 모두 게이트로 입장하십시오.”

심판은 고개를 끄덕였고, 경기를 시작하라고 말했다.

[자, 이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6명의 교수들이 모두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졌다. 포탈은 강력한 마나를 내뿜으며 그들을 이동시켰다.

엄청난 수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피테르 더비가 시작되었다.

* * *

“이런 식이군.”

준비된 환상 결계에 도착한 유피테르는 눈을 떴다. 게이트를 타고 이동했을 때와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조금 더 어지러웠을 뿐.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그를 반겼다. 세상이 모두 흰색으로 칠해진 것만 같았다. 마치, 그가 자란 제국 북부를 연상시키는 추위였다. 괜히 익숙한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경기장 상황은 무작위이라는 에메리아의 말이 사실이었다. 방금 전 경기에서는 보는 것만으로 더워지는 화산지형이었다.

“어떤 원리인지 대충 알겠군. 역시 성국인가. 이런 아티팩트가 있다니.”

유피테르는 처음 경험하는 환상 결계 시스템을 빠르게 분석했다. 예상외로 마법식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상이 신선했다. 이건 쓸 만해 보였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케팔로스(Kephalos)

그는 환상 결계의 원리를 이용해 새로운 마법을 뚝딱 만들어냈다. 새로 만든 마법은 단순한 마나 감지보다 더 탁월했다.

케팔로스는 유피테르의 푸른 마나를 잔뜩 품었다. 배를 가득 채운 마법은 환상 결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피테르에게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하나, 둘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아군의 생사였다. 에메리아와 사이가 교수는 문제없어 보였다. 활발히 움직이며 깃발을 찾으러 다녔다.

셋.

케팔로스는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아군뿐만 아니라 적의 위치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 세 교수의 동선이 훤히 보였다.

“그럼, 이제 깃발을 뺏으러 가볼까?”

유피테르는 다른 이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깃발을 향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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