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15화 (115/265)
  • 아카데미 교류전(5)

    * * *

    다섯 아카데미가 참여한 교류전 개막식이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주신 레아에 대한 예배가 이뤄졌다.

    크레이타가 ‘성국’이기에 당연한 절차였다. 레아교도인 사람도, 레아교도가 아닌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개막식장을 메운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칠리아 성가대의 찬송가에 맞춰서 예배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확성 마법이 든 마이크를 든 한 남성 신관이 개막식을 진행했다. 그의 수려한 미모에 관객들은 눈을 떼지를 못했다. 하얀색 피부와 신관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무대에 불이 켜지며 성가대가 위용을 드러냈다. 성가대 뒤로는 악기를 든 오케스트라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가대와 오케스트라 모두 교황청 직속으로 유명한 이들이었다. 대륙에 순회공연을 다닐 정도였다.

    잠시 후, 신관복을 곱게 차려입은 지휘자가 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몸을 돌려 교수들과 선수, 관계자 그리고 관객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게 성국의 매너였다. 대신,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인사를 끝낸 그는 뒤를 돌아서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착.

    그가 지휘대를 들어 올린 게 신호였다.

    띠리링ㅡ.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바순, 하프 등 다양한 악기들이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었다. 적당히 무거운 느낌의 소리는 안정감을 주었다.

    아아아아ㅡ.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음악 위에 성가대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시칠리아 성가대의 음색은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마치, 주신 레아가 강림한 것처럼 성스러웠다.

    개막식장에 있던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진행했다.

    모두가 레아를 믿는 것은 아니기에, 예배는 10분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성국도 그 정도는 타협했다. 강제로 포교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었다. 신은 인간이 자유롭기를 원했다.

    다음 순서가 개막식의 메인이었다.

    [다음으로 각 아카데미의 각오를 들어보겠습니다. 그 후, 트래시 토크가 진행되겠습니다.]

    관중들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인 트래쉬 토크가 이어졌다. 각 아카데미에서 교수와 아카데미생이 한 명씩 나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가장 가운데가 신성 기관이었고 그 옆에 델포이 아카데미가 위치했다. 둘의 양옆으로 나머지 아카데미가 나란히 앉았다. 미리 리허설을 해봤기에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먼저 신성 기관의 각오를 들어보겠습니다.]

    “부학장 오스티안입니다. 적당히 아프지 않게 상대해주세요. 빛이 있기를.”

    “특별히 신성 기관에서 일하게 된 프레이야 다르크입니다. 제가 있는 이상 당연히 목표는 우승입니다. 빛이 있기를.”

    신성 기관에서는 유피테르에게 익숙한 두 사람이 나왔다. 잿빛 머리의 신관인 오스티안과 오를레앙의 인정을 받은 프레이야였다.

    “저, 저건 성녀님 아니셔?”

    “성녀님이 어째서 신성 기관에…?”

    “바보야, 성녀님은 원래 신성 기관 소속이시다가 검에 선택을 받은 거라구!”

    프레이야가 신성 기관 측 대표로 나타나자 개막식장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게, 성녀는 이곳에 참여할 레벨이 아니었다. 유망주들과 그녀의 사이에는 제로 서클과 퍼스트 서클 정도의 간극이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대회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유피테르는 어제 본인의 입으로 들었기에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성국에 있었을 때, 프레이야는 갓 성녀가 된 신관이었을 뿐이었다. 신성 기관의 유소년부를 졸업하긴 했다. 그래서 신성 기관 출신이라고 당당히 소개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교황청을 들먹인 걸 볼 때, 교황이 성국의 명예를 위해 부탁한 게 틀림없었다. 프레이야는 의외로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교황에게 약했다.

    [자, 잘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파르테논 아카데미입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 교수 대표 감미뉴다. 귀족의 위엄이란 건 제군들에게 알려주겠다.”

    “리마입니다. 마법 공학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비교적 이론에 치중한 파르테논 아카데미도 의욕이 넘쳤다. 힘을 인정받아야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교류전에서 계속 하위권을 맴돌았기에 그들의 각오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다른 아카데미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번 대회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다.

    [세 번째는 시에라의 천검 학원입니다.]

    “잊혀진 역사처럼 검사가 마법사를 이기는 장면을 보여주도록 하지. 다들 반하지나 말라고.”

    “아카데미생 대표 아리아 캐롤입니다.”

    천검 학원의 대표 역시 간단하게 각오를 말했다. 교수는 검사라고 보기에 활발했지만, 아카데미생 대표는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외로운 검사 그 자체였다.

    ‘아리아 캐롤…?’

    묵묵히, 개막식을 구경하던 유피테르는 천검 학원의 발표에서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직접 해설하기도 했던 전투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했다. 검을 쓰는 마법사가 새롭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다.

    유피테르뿐만이 아니었다. 개막식을 구경하고 있던 델포이측 모두가 술렁거렸다.

    당연했다.

    선발전까지 나왔던 동료가 천검 학원의 대표로 나와 있었으니. 모두가 배신감에 쓰라린 가슴을 붙잡았다.

    [상인 연합회 카토 연합국의 바자르. 발언해주십시오]

    “뭐, 오늘도 한 번 신나게 벌어봅시다.”

    “여러분 돈도 무료로 복사가 된다는 걸 이번 교류전에서 알게 해드리겠습니다. 돈 거실 때는 역시 바자르를 통해서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입니다. 작년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델포이 아카데미입니다.]

    처음이었다. 개막식을 진행하는 신관이 이를 갈며 아카데미의 이름을 부른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라이벌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교수 대표 로즈입니다. 델포이의 수준에 맞는 멋진 경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카테리나 아르테미스입니다. 이번에도 자신 있습니다. 마음껏 덤비십시오.”

    와아아아아ㅡ

    재작년 대회부터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었던 카테리나. 그녀의 팬들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성녀를 제외하면 교류전 최고 인기인의 등장에 분위기가 급격히 뜨거워졌다.

    [자, 모든 아카데미의 각오를 잘 들었습니다. 이제 트래쉬 토크를 진행하겠습니다. 자유롭게 상대를 지정하시면 됩니다. 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세요.”

    신관의 이야기가 끝나자 곧바로 카테리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천검 학원의 아리아 캐롤. 하나만 묻자. 처음부터 계획한 거야?”

    카테리나가 묻고 싶은 상대는 당연히 아리아였다. 성녀가 신성 기관에 들어온 것은 본인에게 미리 들어서 다른 이들처럼 놀라지 않았다. 지금은 아리아의 마음이 더 알고 싶었다.

    “하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네요. 선배. 아니, 카테리나 아르테미스.”

    단, 며칠 사이인데도 아리아 캐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는 수수한 검사가 아닌 자신감 넘치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아리아는 옆에 준비되어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어디에 있던 저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이겨보겠습니다. 델포이 학생회장 씨.”

    “그래? 위에서 기다릴게. 차근차근 올라와 봐.”

    관객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속사정을 아는 건 두 아카데미의 관련자들뿐이었다.

    “카테리나! 폭군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이번에도 너만 믿는다.”

    “천검 학원의 아리아라고 했지? 자신 있는 모습 마음에 든다. 난 너에게 걸었다!”

    관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점점 더 달아오르는 열기에 화답했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면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카테리나 아르테미스! 날 기억하나?”

    다음으로 손을 들고서 마이크를 잡은 건 파르테논 아카데미였다.

    “타인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할 때는 자신의 신분부터 밝히는 게 제국의 법도 아니었을까?”

    “작년에 당신에게 아깝게 졌던 리마 페르난두다! 감히, 내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리마라고 이름을 밝힌 파르테논의 아카데미생 대표는 ‘아깝게’에 포인트를 주었다. 카테리나가 뭘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는 이미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파르테논 아카데미는 델포이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신분의 차이를 인정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귀족들만이 마법을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마? 그런 이름은 기억에 없는걸. 대신 하나만 불어볼게.”

    “뭐든지 말해봐라. 널 꺾어버리고 내 이름을 새겨줄 테니까.”

    “왜 제이스란이 파르테논의 대표가 아닌 거지?”

    “뭐…?”

    카테리나는 일격으로 리마를 침몰시켰다. 예상외의 질문에 리마는 어안이 벙벙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폭군이 맞네. 리마라는 아카데미생 완전히 기 싸움에서 밀렸어.’

    델포이 관계자석에 앉아있던 유피테르는 작게 웃었다. 카테리나와 리마의 대화가 흥미진진했다. 자신의 앞에서 카테리나는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그런 여동생의 새로운 모습이 놀라웠다.

    “스스로 못났다고 이야기하지만, 제이스란 역시 아르테미스야. 너 따위에게 밀릴 아이가 아닌데?”

    “지, 지, 지금 나 따위라고 했나?”

    “리마라고 했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네 말과는 다르게 형편없는 거 아닐까?”

    “이, 이, 이, 이게 감히…!”

    계속해서 이어지는 도발에 리마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말주변도 실력도 카테리나가 한 수, 아니 두 수는 위에 있었다.

    “아, 그래 네 이름 감히라고 바꾸는 게 어떨까. 그게 좋을 것 같아.”

    털썩ㅡ.

    리마는 솟구쳐오르는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실신했다. 리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교수가 그를 잡아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빨리 신관을!”

    교수는 실신한 리마의 턱을 받치고 혀를 뺐다. 신성 기관의 대처도 빨랐다. 대기하던 치유사들이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큰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리마의 안정을 위해 파르테논 아카데미는 양해를 구하고 개막식장을 빠져나갔다. 이건 진짜 전쟁이 아니었기에, 아무도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관객들 역시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저래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건가. 완전히 빌어먹을 그 자식을 보는 것 같군.’

    카테리나는 입담으로만 두 명을 보내버렸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자신의 아버지 카르멘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애초에, 카르멘의 조기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저것보다 더 심할 수도 있었다.

    [자, 혹시 더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 있습니까?]

    신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트래쉬 토크를 이어갔다. 그는 진행에 있어서 진정한 프로였다.

    지금껏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프레이야가 손을 들었다. 신관이 오케이 사인을 주자,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선전포고했다.

    “카테리나, 결승전까지 올라와. 내가 있는 이상. 네 우승도 이제 끝이야.”

    “프레이야 언니. 숨겨둔 한 수는 모두에게나 있답니다.”

    “대단한 자신감인데? 오를레앙 앞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기대할게.”

    서로 웃으며 덕담을 나누는 것뿐인데도 소름이 끼쳤다. 아리아나, 리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 싸움이었다. 이 자리에서 딱히 할 말이 없었던 바자르의 대표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이제 더는 할 말이없으신 것 같으니. 마지막 순서인 공연을 보고서 첫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관은 트래쉬 토크의 끝을 알렸다. 분위기를 띄울 만한 이야기는 모두 나와서 이미 충분했다. 이어질 공연도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기에, 이쯤에서 토크를 멈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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