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교류전(4)
* * *
‘카테리나에 대한 대비책인가? 그러기엔 너무 밸런스가 안 맞잖아.’
유피테르는 아연실색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프레이야가 새로운 정보를 가져올 거라고 기대하긴 했다. 예를 들어, 티폰교로 의심되는 인물이나 지금까지의 수사 정보와 같은 걸 전해주리라 고대했다.
칼리스토들이 초인(超人)이라고 해도 사건의 당사자만큼 잘 알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진짜 힘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레이야가 신성 기관 소속이라고? 그럴 리 없어.’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유피테르는 카테리나를 쳐다보았다. 여동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가족이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한눈에 알았다. 저건 전혀 감도 안 잡힌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야 유피테르는 깨달았다.
저건,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원하던 내용은 아니었으나, 이것도 놀라울 만큼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였다.
성녀를 신성 기관에 소속시키는 건 선으로 줄넘기를 하는 이야기였다.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라는 일개 아카데미생을 상대하기 위해 성녀를 하급 기관으로 내린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조디악의 일원인 카르멘 아르테미스를 강제로 황실 근위대에 가둔 것과 같았다. 본인이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격렬히 반대할 수 있는 그런 문제였다. 리투아 제국이 필요한 건 전쟁의 억지력을 지닌 마법사였으니까.
즉, 말하는 것만큼 쉽게 추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성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공식적으로 창조신 레아뿐이었다. 성검 오를레앙을 휘두르는 성녀는 무력 그 이상의 존재였다. 크레이타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은 모두 성녀를 좋아했다.
무료 치유 봉사도 자주 다니는 프레이야를 싫어할 리 없었다.
“너 나한테는 신성 기관 유소년 부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성녀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서 편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맞아. 유소년 부 출신이었지. 이쪽에 배속된 지 얼마 안 되었어. 여기 제복 너무 이쁘더라. 마음에 들어.”
“대단하신 성녀가 고작 교육 기관에 근무하는 건 너무 재능 낭비 아닐까?”
“교황청이 좀 답답해서 말이지.”
유피테르는 어이가 없었다. 마블링이 세아니아 대륙에서 인정해주는 권위 있는 대회이긴 했다. 그러나 이는 대회 규정에 어긋날지도 모르는 편법이었다. 교류전은 유망주들을 완성형 마법사로 키우려는 대회였다.
저런 식의 참여가 가능해지는 건 절대로 반대였다.
세계의 발전을 위해선 유망주들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프레이야 같은 강자들이 출전한다면 유망주들의 마음을 꺾기에 충분했다. 성녀는 칼리스토의 시험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세 개의 맹약은 어떻게 하고?”
유피테르가 프레이야에게 물었다.
“템플 기사단 쪽 할아버지들이 시끄럽긴 한데. 그래도 뭐라 못하는 거. 알지?”
세 개의 맹약.
성국의 힘은 정확하게 3등분 되어 나뉘어 있었다. 레아가 3일 만에 세상을 창조한 걸 본떠서 정해진 법률이었다. 초대 교황 클레토는 레아교를 기반으로 성국을 만들면서 이 부분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교황. 템플 기사단 그리고 성녀.
이 세 기관은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선출되었고 서로 간섭할 수도 없었다.
교황은 추기경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다. 5명의 추기경들은 교황 사후에 무기한 투표를 진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투표를 통해 차기 교황을 배출했다.
템플 기사단의 경우에는 무력이 중요했다. 대륙 곳곳에서 실적을 쌓은 신관들을 선발했다. 물론, 창조신 레아를 믿는 독실한 신관이어야만 했다. 템플 기사는 신의 뜻을 받드는 성기사(크루세이더)였으니까.
성녀의 경우가 제일 되기 힘들었다. 성검 오를레앙을 뽑아야만 성녀가 될 수 있었다. 레아가 현현했다고 전해지는 아리앗 산 꼭대기에서 성검이 기다렸다. 성녀가 되고 싶은 자들은 높은 산을 올라 도전해야만 했다.
때문에 성녀는 늘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또, 레아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검에게 버려지기도 했다. 성검이 신이 직접 만든 에고 소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녀는 신의 뜻을 이루는 자라고 불렸다.
“그럼 정말로 옷을 자랑하러 온 거야?”
“그렇다니까! 내 말을 제대로 들으라구. 너무 이쁘지 여기 봐봐. 이 금색 정말 영롱하지 않아?”
프레이야는 새롭게 받은 제복에 푹 빠져 있었다. 유피테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대의 성녀는 에키드나만큼이나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이야기나 나누자고 생각했다.
“레이야. 티폰교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그거 특급 기밀인데 어디서 들었어? 너희 지금 막 도착했다는 소리 듣고 뛰어온 건데. 벌써 그런 정보를 얻었단 말이야?”
티폰교의 이야기에 프레이야가 반응했다. 창문 쪽에서 옷 자랑을 하고 있던 그녀는 진지해진 표정으로 의자를 찾았다. 때마침, 숙소 한 편에 의자가 보였다.
“유피테르?”
의자에 앉은 프레이야는 차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유피테르를 향한 무언의 시위였다.
“물이 없어.”
“젠장! 네 차를 마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왜 안 가져온 거야. 그냥 주기 싫은 거지? 합숙 때에도 가능한 게 왜 지금은 안 돼?”
유피테르의 말은 사실이었다.
차를 타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숙소는 방 안에 요리할 공간 따위 없었다. 주최 측은 침대와 테이블 의자 2개로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밥은 모두가 함께 식당에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침대가 좋은 매트릭스를 사용한 퀸사이즈라는 것에도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이거 혹시 텃세야? 음식은 모두 식당에 가서 만들고 먹어야 하던데?”
“그러고 보니… 그 자식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일단 한 번 패고 오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닐까?”
차를 얻어 마시지 못하게 되지 프레이야가 폭주했다. 유피테르의 차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창조신 레아 역시 ‘천국의 눈물’이라는 차를 좋아한다고 경전에 적혀 있었다. 그녀가 느끼기에 유피테르의 차는 레아께 진상해도 될 정도였다.
감히 ‘천국의 눈물’과 비교할 수 있는 깊은 풍미가 있었다.
“워워. 진정해 레이야. 누군지 모르겠지만, 신성 기관의 높은 분들이 지금은 네 상관이라고.”
유피테르는 프레이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이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관계자에게 따지러 갈 것만 같았다.
“흐으으응….”
프레이야는 유피테르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 헤실헤실 웃었다. 옆에서 카테리나가 부러운 듯 쳐다보았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티폰교에 관련된 정보를 얻는 게 더 중요했다.
프레이야는 자상하고 인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러나 가끔 이런 식으로 힘으로 해결하려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쪽이 본 모습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원래 인간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순수한 감성을 지니고 있기에 성녀로 행동할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성녀의 막중한 임무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한 자들도 많았다. 신의 뜻은 인간의 몸으로 행하기에 모순적이었다.
“그래서 티폰교가 뭘 했길래 난리야?”
프레이야의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유피테르가 물었다.
“요 근래 꽤 거대한 테러를 벌였어. 이상한 시체를 조종하는 마법 같은 걸 쓰던데.”
“시체를 조종해? 스켈레톤 같은 느낌이었어?”
“아니, 좀비들이 갑자기 나타났어. 좀비에도 그렇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
언데드의 양대산맥인 스켈레톤 계열과 좀비 계열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두 계열 모두 다양한 종류의 언데드를 자랑했다. 그들로만 일개 소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에 진화의 형태는 뚜렷하게 달랐다.
스켈레톤의 경우에는 근접과 원거리 공격으로 나뉘어서 진화했다. 기사, 검사, 마법사, 궁수 이 4개의 직업을 기반으로 확실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되었다.
좀비의 경우에는 딱히 알려진 사실이 없었다. 시체에 근육이 있다는 것 정도만이 확실했다. 마음 먹고 연구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진화체들이 나타나, 곤란했다.
“좀비라….”
유피테르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언데드 마법은 현재의 마법사들에게는 자물쇠가 걸린 상자였다.
연구는 지속되고 있으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죽음 속성의 퍼스트 서클을 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고대와 비교하면 마나의 혜택은 늘어났으나, 깊이가 없었다.
찬란했던 과거를 마도 세계를 재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언데드와 마왕은 연결이 잘 안 되는데 왜 하필 티폰교라고 이름을 붙인 거지?”
다음으로 유피테르가 물은 건 이름이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건 생각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바다 건너 먼 섬에서는 언령(言靈)이라는 표현이 존재했다. 그들은 말에 무궁한 힘이 잠들어 있다고 믿었다. 창조신 레아 역시 몇 마디 말로 세상을 창조한 거로 보아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다.
티폰과 교라는 단어는 둘 다 함부로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륙의 마법사들은 마왕의 이름은 쉽사리 언급하지 않았다. 이름만 이야기해도 과거 공포의 군주가 저질렀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고대부터 살아온 최초의 마족은 흉흉한 악명을 떨치기에 충분했다.
교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륙에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종교는 창조신을 믿는 ‘레아교’뿐이었다. 이외 다른 교단은 성국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교의 창설은 이단 심문관들을 몰라야만 할 수 있는 간 큰 행동이었다.
이단 심문관은 창조신 레아에게 맞서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글쎄, 자신을 티폰교의 교주라고 칭하는 자가 수정구슬을 만들었거든.”
“뭐, 전도 영상이라도 만들려고 했던 건가.”
“거기까지는 모르겠어. 일단 이단 심문관들이 쫒고 있기는 한데. 행방이 오묘해.”
자신을 교주라고 칭하는 자가 나타나자 성국은 골치가 아팠다.
곧 개최될 교류전에는 각 아카데미의 정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문객이 올 예정이었다. 이들에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신성 기관은 물론, 성국의 명예까지 실추될 거라는 게 눈에 선했다.
“네가 나서지는 않는 건가?”
“지금은 신성 기관 소속이니까. 게다가 내가 나서면 일이 커지잖아?”
프레이야의 말대로였다.
이단 심문관이 대놓고 조사를 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광기서린 이단 심문관을 평신도들은 두려워했다. 이단 심문관조차 나서지 못하는데, 더 유명한 성녀가 나선다면 불안만 커져 도움 될 게 없었다.
“오라버니.”
이야기가 심화되는 도중 가만히 있던 카테리나가 유피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니 리나?”
“시간이 꽤 지났어요. 늦게 가면 부학장님이 혼낸다구요.”
유피테르가 쳐다보자 그녀는 손으로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적당한 크기의 시계가 걸려 있었다. 제프리스가 이야기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개막식이 오후에 있더라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아카데미들은 개막식을 보러온 관중들에 화답해야만 했다. 최대한 인상 깊은 기억을 새겨줘야 다음 입학식 때 웃을 수 있었다. 뛰어난 유망주들이 델포이의 문을 두드리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
“아 맞다 나도 해달라는 게 있었는데, 까먹었었네. 나중에 또 봐. 유피. 카리나.”
신성 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최국이자 성녀의 일도 있으니 준비해야 할 게 더 많았다. 프레이야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한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는 모두가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