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12화 (112/265)
  • 아카데미 교류전(2)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아카데미 교류전. 통칭 마블링이 개막했다.

    교류전은 각국에 존재하는 유명한 교육 기관들의 각투장이었다. 미래의 유망주들이 전력으로 부딪치는 환상적인 이벤트에 모든 마법사들의 시선이 쏠렸다.

    화려하고 볼거리도 많은데 합법적으로 큰 돈까지 오가니 자연스럽게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퍼스트 서클을 달성한 마법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교류전을 구경 왔다.

    물론, 선수로 참여하는 아카데미생들의 표정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가끔가다, 선발전을 즐기는 간 큰 대표 선수들도 있었으나 극히 소수였다. 소속 아카데미의 명예가 걸렸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지면 1년 동안 다른 아카데미에 놀림당하여만 했다.

    또, 마블링에서의 성적에 따라 차기 신입생들의 수준이 갈렸다. 델포이가 세아니아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역대 마블링에서 가장 많이 우승을 기록한 아카데미가 바로 델포이였다.

    아르메 제국의 델포이 아카데미, 리투아의 파르테논 아카데미, 크레이타의 신성 기관, 시에라의 천검 학원, 카토 상인 연합국의 바자르.

    교류전에는 이렇게 다섯 개의 아카데미가 참여했다.

    “자,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이번 마블링이 열리는 성국으로 가기 전, 부학장 제프리스가 모두를 멈춰 세웠다.

    5명의 교수와 10명의 아카데미생. 그리고 그들이 컨디션을 유지하게 도와줄 50명의 스태프들이 제프리스를 쳐다보았다.

    교류전에 참여하기 전, 학장이 분위기를 올리기 위한 연설을 한다는 관습을 다들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제군들이 믿고 따랐던 피티아 학장이 아니어서 불안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학장님께서는 그런 일로 델포이의 이름을 더럽히는 걸 용서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이번에도 목표는 간단합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제프리스 부학장. 그 역시도 지금만은 델포이의 일원이었다. 델포이 아카데미의 문양을 자수 넣은 15명의 마법사를 보자, 제프리스의 가슴이 뛰었다.

    이 자리였다.

    한 번쯤 이 자리에 서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역대 델포이의 학장들은 모두 이 자리에서 명연설을 남겼었다. 바로 작년에도 피티아가 한 말은 교류전 내내 화제가 되었다.

    “승리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승리를 이용할 줄 아는 마법사는 더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이 만들 아름다운 밤을 기대합니다.”

    잊혀진 세대의 학자 ‘폴리비우스’의 말을 적절히 인용한 피티아. 그녀의 말은 잔잔한 울림이 되어 교류전 내내 델포이의 정신이 되었다. 이 말을 기억한 작년의 선발대는 압도적인 결과를 거머쥐었다.

    잠시 뜸을 들인 제프리스가 굳게 소리쳤다

    “결코 다시 우승!”

    어떤 말을 해도 피티아와 비교될 게 분명했다. 자신에게는 가슴을 울리는 언변이 없었다. 필요한 건 메시지였다. 자신이 느끼는 이 뭉클함이 기다리는 아카데미생들과 통하기만 해도 만족했다.

    “델포이에 영광을!”

    아카데미생들이 부학장의 말에 크게 화답했다. ‘델포이’라는 브랜드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학장의 마음이 전해졌다. 울컥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좋지 않은 이미지의 제프리스가 지금만큼은 든든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들은 델포이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었다.

    * * *

    번쩍ㅡ.

    포탈이 열리며 게이트가 빛을 내뱉었다.

    유피테르 일행은 눈 깜짝할 사이 성국 크레이타에 도착했다. 델포이에서 포탈 속으로 들어가고 난 후 아직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신속함과 편리함이야말로 게이트의 장점이었다.

    제일 먼저 앞장섰던 제프리스 부학장과 교수 대표 로즈가 처음으로 포탈을 빠져나왔다. 에메리아나 유피테르와 같은 교수들이 뒤를 이었다. 카테리나를 포함한 아카데미생들이 마지막으로 성국의 공기를 맛보았다.

    들어간 순서 그대로였다.

    “빛이 있기를. 어서 오십시오. 제프리스 부학장. 그리고 델포이의 마법사 여러분.”

    성국에 도착한 델포이 일행을 잿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청년이 환영했다. 성국의 기호를 한껏 반영한 흰색의 옷은 은근히 잘 어울렸다. 흰색의 가슴팍에는 신성 기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위로는 부학장의 배지가 태양 빛을 머금고 있었다.

    “제프리스 학장 대리다. 당신은?”

    “신성 기관의 부기관장을 맡은 오스티안이라고 합니다.”

    처음 보는 얼굴의 등장에 제프리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부학장이었다. 델포이 밖에서는 아카데미생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델포이 밖으로 나온 이상, 움직임 하나하나가 주목의 대상이었다.

    피 튀기는 파벌 싸움은 델포이 안에서 만으로도 충분했다. 제프리스는 야망이 넘치는 자였지, 멍청하지는 않았다. 델포이에 해가될 일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기관장은?”

    “그분은 천검 학원 분들을 환영하러 가셔서 말이죠. 대신에 제가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네요. 하하하.”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웃는 오스티안.

    모른 척하는 신성 기관의 태도에 제프리스의 분위기가 싸늘히 식어갔다. 평소대로라면 기관장이 나서서 델포이를 환영해야 했다. 작년에는 피티아가 신성 기관의 선발전 멤버들을 환영했었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인상이 더 험악하시네요? 제, 제 뭐였더라. 아. 제스프림? 왠지 키위가 먹고 싶은 느낌이네요.”

    눈치 없는 오스티안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나름대로 유머 감각을 발휘해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해버린 셈이 되었다.

    일촉즉발의 분위기.

    “이, 이게…. 크흠흠. 우리는 쉬러 가겠다. 숙소는 어디 있나.”

    순간적으로 폭발하려던 제프리스는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도발에 넘어갈 필요는 없었다. 복수는 정당한 방법으로 치러야 했다.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 델포이의 명성에 누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작년처럼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주며 박살 내면 그만이었다.

    “아, 이쪽입니다. 제스프림 씨. 델포이의 다른 분들도 저를 따라 이쪽으로 오시죠. 숙소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러지. 모두 숙소로 향한다. 짐을 풀고서 내일 있을 경기를 대비하도록.”

    오스티안은 제프리스를 포함한 델포이 대표들을 흘끗 보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따라오기 편한 속도였다. 꽤 바람이 부는데도 그의 신관복은 흩날리지 않았다. 눈치 없는 모습과 달리 꽤나 강자인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신성 기관의 부기관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군.’

    제프리스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오스티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부학장의 직책을 단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신성 기관도 델포이만큼이나 실력 지상주의라고 알고 있었다.

    “자, 여기입니다. 성국의 기술이 총망라된 건물입니다.”

    묘하게 도발했던 태도와 다르게 그들이 한 달 동안 머물 숙소는 깨끗했다. 레아를 받드는 국가이니만큼 사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건물 외관에서부터 신경을 썼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입구부터 손님을 반겨주는 거대한 레아의 조각상은 압권이었다.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도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체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덕분에 10층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숙소의 높이는 뒷전이었다. 숙소 맨 위에는 델포이 아카데미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안에서 기다리는 신관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오스티안은 안내역의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델포이의 손님들을 숙소 안에까지 무사히 데려다줘야 마무리였다.

    “원래, 아카데미생들과 교수들은 서로 따로 숙소를 내어주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런 식으로 바뀐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껏 가만히 있었던 교수 대표 로즈가 물었다. 교수들의 대표인 만큼 그녀는 교류전이 익숙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숙소를 배정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래 교수는 교수끼리, 아카데미생은 그들끼리 묶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아카데미 교류전은 경쟁의 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교류전 동안, 세계 각지에서 모인 유망주들은 친구를 원하는 만큼 사귈 수 있었다. 또,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진 마법사들과 토론을 할 수도 있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게 교류전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러한 이유로 교류전은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오스티안 신관님. 예의 그것들이 나타났습니다!”

    “아, 잠시만요. 이쪽의 문제를 먼저 처리해도 될까요?”

    오스타인은 로즈의 말에 대답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다른 신관이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신관의 모습은 처참했다. 흰색 신관복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길지 않은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서 보기 흉했다. 마치, 거대한 몬스터와 혈전을 벌이고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죠. 답변을 들을 수 있다면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해요. 자, 우선 치료부터 하시죠 이안.”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한 모습에 로즈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오스티안은 그런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새로운 신관, 이안을 치료했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우우웅ㅡ.

    성스러운 마나가 움직이며 빛이 만들어졌다. 보기만 해도 따스해지는 빛이 닿자 이안의 상처가 낫기 시작했다. 숨이 모자란 듯 헐떡이던 이안의 안색은 점차 밝아졌다. 신관복을 타고 흐르던 피 역시 어느새 멈췄다.

    가벼운 치료가 끝나자, 오스티안은 결계를 치고서 이안이라는 신관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차음(遮音) 결계 인지 모습은 보였으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가 좋은데. 여기 섬이라고 했지?”

    “맞습니다. 카리나. 여긴 시라쿠사라는 이름의 섬입니다.”

    작년에도 교류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던 카테리나는 숙소 고르기에 열중이었다. 신성 기관 출신 클리오나가 옆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현지인의 가이드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카데미생들도 숙소와 교류전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워냈다. 정작 성국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려버린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교류전이 시작되는 게 아니기에 더욱 들떴다.

    경계심을 올리던 제프리스와 질문의 답을 기다리던 로즈를 제외한다면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펜데가 말한 수상한 움직임인가 보군.’

    교수 중 한 사람, 유피테르만이 두 신관의 대화를 신경 쓰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 결계 따위 박살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함부로 시비를 걸 수는 없었다. 잠깐 배운 독순술을 활용해보려고 했으나, 잘 먹히지 않았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듯했다.

    역시, 어쭙잖은 기술은 안 배우느니만 못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어라, 벌써 다. 숙소로 들어가셨구나.”

    오스티안이 이야기를 끝낸 건 약 30분 정도 후였다. 이미 아카데미생들은 기다림을 이기지 못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전부 이곳에 남을 필요는 없기에 제프리스는 흔쾌히 허가했다.

    이곳에 남은 건 오스티안과 이안 그리고 델포이의 교수진들이었다.

    “어차피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카데미생이 아무도 없다는 게 다행인 걸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리 말해두라고 합의된 사항이에요.”

    오스티안은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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