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교류전(1)
* * *
강화 합숙.
일주일 동안 진행된 훈련에서 선발된 아카데미생들은 지옥을 맛보았다.
보통 교수들은 현장직이 싫어 아카데미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고정수입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델포이의 교수들은 뭔가 달랐다. 어지간한 현직 마법사들 정도는 눈 깜빡하지 않고 박살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카데미 교류전은 교수들에게도 중요한 대회였다. 교류전에서의 성적은 논문이나 연구의 실적만큼이나 중요한 평가 지표였다.
성적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교수 본인이 기록한 성적이었다.
교류전에서 교수들은 애피타이저가 아니라 메인 디시였다. 여러 아카데미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들은 토너먼트에서 서로 맞붙었다. 여기서 기록한 등수가 직접적인 평가대상이었다. 개인전과 단체전이 존재해 다양하고 공정한 평가가 가능했다.
둘째는 교수가 직접 가르친 아카데미생들이 기록한 성적이었다.
교수가 늘 두 명의 아카데미생을 맡아 가르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교수들은 아카데미생들은 고를 수도 있었고, 바꿀 수도 있었다. 강화 합숙 이후의 아카데미생은 교수의 아바타나 다름없었다.
교류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기 위해 교수들은 아카데미생들을 끊임없이 굴렸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 몬스터 토벌. 극한 상황에서의 서바이벌 등 다양한 훈련이 아카데미생들을 환영했다. 합숙에 참여한 아카데미생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젠장, 교수고 뭐고 상관없이 당신 죽여버리겠어!”
라고 분노에 차서 마법을 난사하는 아카데미생도 있었고,
“묻고 두 배로 가시죠 교수님!”
“너무 약한 훈련이잖아! 좋아좋아, 더 하자고!”
이 정도 훈련은 전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아카데미생도 있었다.
“교수님 그만. 제발 그만해주세요. 이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게 정말 교류전 대비가 되는 거예요? 그냥 교수님 스트레스 푸는 거 아닌가요?”
교수의 진심에 공포감을 느끼며 울부짖는 아카데미 생도 여럿 있었다.
유피테르는 면식이 있던 두 사람을 선택했다. 한 명은 당연히 여동생이었던 카테리나였고, 다른 한 명은 클리오나였다.
카테리나는 작년 교류전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었다. 아카데미 수준에선 이미 완성된 인재였다.
제자들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던 유피테르는 답을 찾아냈다.
카테리나에게는 마왕의 심장을 이용하는 법을 익히자고 제안했다. 고작, 일주일의 시간으로 완전히 새사람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얼음성에서 했던 훈련을 반복하며, 마왕의 심장을 다루는 법을 익히게 했다.
이게 지금의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일단 바뀐 마나의 성질을 계속 사용해서 익숙해져야 해.”
“알았어요. 오라버니”
클리오나의 경우는 애매했다.
신성 마법은 특별한 마법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국과 친분이 있을 뿐,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순 없었다. 원리를 파악하는 힘으로 조언을 할 순 있었지만, 그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흐트를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선발전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미 다른 교수의 제자가 되어 훈련 중이었다.
할 수 없이 유피테르는 성녀 프레이야를 불렀다.
“나 진짜 바쁜 사람인데 왜 여기로 부른 거야. 유피테르?”
“마족 문제를 해결해 줬으니까. 이제는 내 차례 아닐까? 서로 돕고 사는 거라며.”
“그래서 부탁이 뭔데. 내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이야기해.”
“이 친구를 좀 봐줘.”
투덜거리면서도 게이트를 통해 델포이로 건너온 성녀 프레이야. 유피테르는 그런 그녀에게 클리오나를 소개해 주었다.
“교, 교수님. 이분은 서, 서, 성녀님?!”
클리오나는 프레이야를 보고서 기절해버렸다. 롤 모델로 삼았던 성녀가 직접 가르쳐주는 건 분수에 맞지 않는 영광이었다. 델포이에서야 부회장에 상위 랭커지만 성국에서는 일개 평신도에 불과했다. 성녀를 배알할 수 있는 건 상위 신도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흐음. 너 신성 기관 출신이야?”
“네, 네 맞습니다.”
“따라와. 다름 아닌 유피테르의 부탁이니. 일단 봐주기나 할게.”
* * *
선발전과 강화 합숙이 끝나고 아카데미 교류전의 시기가 다가왔다.
“마스터.”
“무슨 일이지. 트리아? 거기에 펜데까지?”
강의를 다 끝낸 오후.
유피테르는 전용 기숙사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델포이에는 양질의 책들이 많이 있었다. 감히, 얼음성 이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가 델포이에서 바로 떠나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학대받았던 어린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게 바로 독서였다. 델포이의 특별 교수로 근무하고 나서는 시간이 부족해져서 지금 같은 시간이 아주 소중했다.
그런 그에게 손님이 두 명이나 찾아왔다.
마족의 동향을 감시하는 트리아와 단독으로 다른 임무를 수행하던 펜데었다.
부르지도 않은 칼리스토 자매들이 두 명이나 찾아왔다는 건,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였다. 유피테르는 고개를 돌려 오르트를 찾았다. 칼리스토에게 문제가 생긴 거라면 당연히 그녀도 있어야만 했다.
“오흐트는 파티 때문에 친구들과 있습니다. 신이시여.”
유피테르의 생각과 다르게 오흐트는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 칼리스토 유일의 치유사는 델포이에 너무 적응해 버렸다. 교류전에 나가게 되니 친해진 친구들이 기어코 파티를 열어주었다.
“언니, 그 말버릇 아직도 못 고쳤어? 그거 꽤나 위험한 발언이라고. 아무튼 마스터. 신성 기관이 이상해.”
트리아의 말투에 태클을 건 펜데는 조용히 폭탄을 던졌다.
“신성 기관이 이상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닌 거로 아는데? 크레이타 자체가 원체 평범하지는 않잖아.”
유피테르는 펜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국 크레이타는 창조신 레아를 모시는 도시였다. 신의 말씀이 곧 법인 공간에서 논리를 찾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런 교리를 그대로 답습한 신성 기관은 더욱 무서웠다.
“성국에서 마족이 나타났다고 말해도 웃어넘길 수 있어 마스터?”
“그게 무슨 소리지?”
성국에 마족이 나타나다니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레이타에는 ‘헤카테’라고 하는 거대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초대 교황이 주신 레아에게 직접 받은 성배가 결계를 만들어주었다. 마(魔)를 물리치는 결계는 얼음성이나 옴팔로스와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사람의 눈이 아니기에, 결계를 통과할 속임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프레이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바로 며칠 전 이곳에 왔던 프레이야는 유피테르에게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투덜거리면서도 진지하게 클리오나의 의문점을 풀어주었다. 그 모습이 거짓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프레이야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델포이에서 마족의 낌새가 보인다고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 그를 속일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나도 믿을 수 없었어. 성국은 마족이라면 치를 떠는 곳이니까. 그래서 트리아 언니에게 부탁했지.”
“신이시여. 그건 분명히 마족의 마나였습니다.”
펜데의 임무는 자매 중에서도 막중했다. 펜데는 ‘그녀’이자 ‘전대 마스터’의 봉인을 깰 4개의 아티팩트의 단서를 찾고 있었다. 유피테르가 델포이에 정착했기에 잠시 업무를 대신하는 중이었다.
탁.
이야기가 심각해지자 유피테르는 읽고 있던 책을 접었다. 펜데나 트리아는 오흐트가 아니었다. 저런 이야기로 장난을 치는 성격이 아니었다. 요새 들어 마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공작 급의 마족들이 나서는 게 무언가의 전조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성국에는 왜 간 거지?”
“이곳에 있는 게 두 번째 아티팩트가 아니었다며? 아마, 내가 들은 소문이 두 번째 아티팩트에 대한 것일지도 몰라서 말이지.”
유피테르의 질문에 펜데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사실, 칼리스토 자매들은 유피테르보다 뛰어난 마법사의 눈에 든 자들이었다. 유피테르를 마스터로 모시고는 있었으나, 특정한 분야에선 그를 능가하는 때도 간간이 있었다.
“마스터 무슨 이야기인지 흥미는 있어?”
“좋아. 이곳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들어보도록 하지.”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라면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애초에 유피테르가 요람을 떠난 목적이 바로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손을 더럽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피테르는 연구실에 자리를 만들고 에냐와 트리아에게 의자를 권했다. 연구실은 델포이의 명성에 맞게 거대했기에 자리는 충분했다. 현재 휴식 중인 피티아는 친구의 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트리아는 전에도 연구실에 와본 적 있었다. 그래서 익숙하게 의자에 앉았다. 쇼파보다 더 푹신푹신한 의자가 그녀의 등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반면에, 펜데는 이 상황이 어색했다.
‘마스터가 웃는다고?’
전대 마스터가 사라진 이후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는 웃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얼음처럼 차갑게 말하는 마스터를 볼 때마다 정말 인간인가 고민될 정도였다. 마치, 전대 마스터를 연상시키는 판단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슨 차를 마시고 싶지?”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준 손님에게는 그에 맞는 대가가 필요했다. 이 경우에는 그가 좋아하는 ‘차’였다.
“루이보스로 부탁드립니다. 신이시여.”
“얼그레이가 취향에 맞더라.”
에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니 마스터가 맞았다. 작전을 짤 때보다 신중하게 차를 고르고 우리는 모습은 늘 보던 그것이었다. 누군가가 마스터를 사칭하고 있다고 한다면 저런 움직임은 절대 불가능했다.
차(茶)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광적인 움직임은 전대 마스터조차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성국 내의 불온한 움직임과 마족이라….”
이야기를 다 들은 유피테르가 깊게 탄식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마족이 개입한 것 같았다. 제 분수를 모르는 마족들이 늘 문제였다. 자신에게서 ‘그녀’를 빼앗아간 것도 어찌 보면 마족 탓이었다. 어떻게 신의 결계를 무시하고 타르타로스에서 빠져나왔는지 시트시거에게서 들었어야만 했다.
‘마왕을 죽였는데도 날뛰는 바보들일 줄은 몰랐네.’
티폰을 죽였을 때 분명히 경고했다.
더는 세계로 나오지 말고 타르타로스 안에서 오순도순 살라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누르자 공작들은 겁에 질려 고개를 연신 끄덕였었다. 유피테르의 진정한 입은 ‘강자’를 상대할 때 빛이 났으니까.
그런 그들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이야. 마족에게 진심은 없다고 ‘그녀’가 말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안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는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지만은 않으리라 결심했다.
“조금 더 정보를 얻어다 줘. 펜데. 마족이 뭘 꾸미는지 알아야겠어.”
“알았어. 맡겨줘 마스터.”
“신이시여…?”
펜데에게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달라고 이야기하는 도중 트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원래 타르타로스 감시는 트리아가 하던 것이었다. 뭔가 덧붙일 말이 있나 유피테르가 물었다.
“트리아?”
“혹시, 이 차 조금 주실 수 있으십니까?”
트리아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유피테르는 작게 웃은 뒤, 찻장으로 이동했다. 연구실에도 어느 정도의 차는 비치되어 있었다. 독서가 취미라면 차를 모으고 마시는 건 생명의 물이었다.
덜컹.
찻장을 열자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피테르는 고민 없이 루이보스를 골랐다. 다른 맛도 즐겨보라고 블랙퍼스트도 꺼내 마법으로 포장했다.
촤르르륵.
기초 마법인 포장 마법도 유피테르의 손으로 펼쳐지자 환상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강화 마법이 걸린 병은 봉투에 들어갔고, 포장 줄은 스스로 나비 모양으로 묶였다. 유피테르는 작품에 만족하며 봉투를 트리아에게 건네주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마나가 아깝다고 한마디 할 정도로 세심했다.
“작은 소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트리아 언니는 재밌다니까.”
둘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보며 펜데는 오랜만의 휴식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