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대표 선발전(4)
* * *
[친구들 많이 기다렸지? 곧 경기가 시작한다구. 기대해줘!]
[오늘의 심판은 선발전에 출전하시는 사이가 교수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급변해도, 중계석은 여전히 발랄했다.
오흐트와 다른 진행자는 마음껏 수다를 떨며 분위기를 띄웠다.
결계 마법이 한층 더 강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옴팔로스가 약해진 걸 생각하지 못한 실수였다. 피티아가 있었다면 충분히 점검했겠지만, 없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오흐트의 경우에는 안심하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유피테르를 제외한다면 이곳에서 무서운 마법사 따위는 없었기에. 치료 마법만으로도 전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사람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말이었다.
마이야르의 결계 찢기.
1차전에서 벌어진 사고는 델포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결계에 금이 가거나 문제가 생긴 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경하던 사람이 다친 건 이야기가 달랐다. 덕분에 교수들과 가드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그 결과, 교수들의 마나까지 모아 결계를 확실히 강화하였다.
“시작해.”
심판을 맡은 사이가는 진지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폭풍전야.
마주 본 두 사람은 언제 맞붙어도 좋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랭킹 1위인 카테리나는 늘 사건의 중심이었다. 아르테미스 출신이라는 걸 티라도 내듯이. 그에 비해 4위인 아리아는 조용하고 성실했다. 묵묵히 제 일을 해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이건 흔하지 않은 천재와 수재의 대결이었다.
“선공은 가져가도록 할게.”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창
카테리나는 빠르게 마나를 배열했다.
그녀의 마법 시전 속도는 아카데미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얼음’ 속성의 마법답게 마나를 모은 것만으로도 주변의 온도가 빠르게 내려갔다. 카테라나가 천재라고 하더라도 아직, 정지까지는 사용하지 못했다.
얼음창은 아리아를 둘러싸며 존재감들 드러냈다.
[역시, 학생회장 마나 제어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아리아의 위에 얼음창이 나타났습니다!]
[에이 저런 건 나도 할 수 있다구.]
[그럼요. 그럼요. 특별 유학생인 오흐트가 못 할 리 없죠.]
대륙에서 유망한 마법사들이 다 모인 델포이 아카데미.
이곳의 마법사들조차 마법의 위치를 자유롭게 정하지 못했다. 마법이란 자신의 이미지로 세계를 바꾸는 것이었으니. 벽을 깨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계기와 재능이 있어야만 했다.
카테리나의 경우에는 특별한 교사가 붙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얼음성에서 대련을 할 때, 유피테르는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간단한 설명에도 고난이도의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카테리나 아르테미스의 재능은 끝도 없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고작 저 정도로 좋아하는 거야?’
오흐트에게 있어 이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에 비하면 나이가 어린 마법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잠재력 있는 마법사들이 많긴 했지만, 바꿔 말하면 고작 그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진행 보조는 그걸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였다. 제약 때문에 힘을 숨긴 오흐트의 진심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티아나를 치료한 것도, 마족과 싸움 일도 아카데미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막아봐. 아리아.”
카테리나가 손짓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명령을 기다리던 얼음창들이 아리아에게 무수히 쏟아졌다.
“아직 진심이 아니시네요. 선배.”
아리아 제 1 식 ― 참(斬)
그녀는 검술과 마법의 중간쯤 위치한 기술을 사용했다. 검사들의 제국에서 배운 검술을 오러가 아닌 마법으로 펼쳐냈다. 덕분에 검사가 아닌 마법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샤아악ㅡ.
아리아의 검이 만들어낸 참격은 얼음창들을 베어냈다.
카테리나는 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얼음창을 만들었다. 얼음창은 빠르게 만들 수 있으면서 마나도 적게 들었다. 탐색전에 쓰기에 가장 유용한 마법이었다. 때문에 아르테미스 본가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얼음 창과 얼음 화살 마법을 배웠다.
[오, 역시 아리아 선수. 간단하게 마법을 베어냅니다. 4위는 폼으로 유지하는 게 아니거든요!]
[얼음창은 가장 기본적인 마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중요한 건 이 다음이겠지.]
단 한 번의 공방에도 진행자는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했다.
명실상부한 아카데미 최강자들의 격돌이었으니까. 유피테르나 오흐트와 같은 초월자들의 눈에는 애들 장난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유피테르는 여동생의 싸움인데도 침착하게 상황을 해설했다. 듣기 편안한 미성이 마이크를 타고 콜로세움에 퍼져나갔다.
후우ㅡ.
아리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역시 지금 상태로는 쉽지 않네.’
마나의 양으로 카테리나와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지금 그녀의 몸 상태라면 바로 한계에 도달할지도 몰랐다. 약한 마법도 저 정도의 물량으로 쏟아지면 웃어넘길 수 없었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리아 제 1 식 ― 참(斬)
샤악. 샤아아악, 콰앙ㅡ.
검에 마나를 모아 펼쳐지는 참격.
아까 전보다 넓어진 참격은 얼음창들을 뚫고서 카테리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애검 다 카포(Da Capo)는 일개 대장장이가 만든 검이 아니었다. 역사 속에서 이름을 떨친 기사가 사용하던 검이었다.
순식간에 마법을 뚫고 코앞까지 들이닥치는 참격.
카테리나는 왼쪽으로 몸을 던져 아리아의 일격을 피해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했다. 유피테르가 얼음성에서 반쯤 죽여놓아서 만들어진 반응이었다. 천재의 직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다.
“저번보다 참격이 강하고 빨라졌는걸?”
카테리나는 깜짝 놀라며 자세를 고쳤다.
강해진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델포이에 속해있는 모든 자들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컨드 서클을 이룩한 마도사.
그 꿈에 가장 가까운 게 자신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도 거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방심한다면 이 역학 관계는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었다. 델포이의 랭킹 1위란 그런 짐을 지고 있는 셈이었다.
“꺼내세요. 아티팩트.”
아리아는 다 카포를 카테리나에게 겨눴다. 끝도 없이 공격해오는 얼음창을 부순 후임에도 흔들림 하나 없는 자세였다. 랭킹 4위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줬다.
“선배한테 협박이라니 많이 컸네. 아리아?”
“아티팩트를 꺼내지 않다니 저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야.”
“그러면 꺼내세요. 진심으로 덤비지 않는다면 무사하지 못하실 겁니다.”
아리아의 엄포에도 카테리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아티팩트 없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태도가 타오르고 있던 아리아의 호승심에 장작을 넣었다.
“역시 남의 말 따위 듣지 않는 폭군이네. 선배는.”
아리아는 한 걸음 만에 카테리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순동.
시에라 제국의 검사들이 애용하는 기술이었다. 발끝에 오러를 모아 넓은 거리를 한순간에 도약하는 오의.
이걸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검사는 유리한 간격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리아 제 1 식 변형 ― 연참(斬)
아리아의 선택은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 번의 참격으로 쓰러지지 않는다면, 쓰러트릴 때까지 공격하면 되는 것이었다. 잔재주보다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게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참격이 계속해서 쌓여나갔다. 아리아의 마나를 잔뜩 머금은 참격은 끝을 모르고 자라났다. 더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걸 부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담고 있던 참격은 벽에 가로막혔다.
“시동어도 없어?”
카테리나는 시동어도 없이 삼중의 벽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얼음 속성의 마나가 듬뿍 담긴 삼중벽은 여러 개의 참격을 합친 것보다 더 단단했다.
“이 정도는 예전에도 보여줬었잖아?”
“하지만…!”
애초에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재능이었다. 마나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창까지 필요했으니까. 무영창으로 마법을 펼치면서 위력을 유지하는 건 꽤나 어려웠다.
실제로, 퍼스트 서클 마법사의 싸움이 지리멸렬해진 건 줄어든 위력을 보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은 이미지와 마나의 배열 두 가지가 완벽해야만 발동했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세계의 섭리에 간섭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유피테르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마법의 이론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마나가 한 톨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주받은 대공자라고 불리며 차별받았었다.
반면에 반―반 마족화되어 있던 티아나는 마나를 배열할 수 없었기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나와 마족의 마나가 섞였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제어할 수 없었다.
또다시 깊이 느껴지는 재능의 벽.
아리아는 울컥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카테리나가 재능만큼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학생회장의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신입생들의 멘토까지 되어주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델포이 아카데미생들은 새로운 마법을 연구하거나, 상대를 이길 전략을 짜기에도 바빴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실기와 이론 모두를 강조하는 델포이에서 살아남는 건 어려웠다.
“날 상대하면서 생각할 여유도 있나 보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 탄환
카테리나는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마법을 선보였다.
타원형으로 압축된 얼음 결정이 아리아의 빈틈을 노리며 날아갔다. 얼음 화살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럴, 리가요!”
현재의 마법사들은 과거보다 일대일 전투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간격 안에서는 검사가 한 수 위였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한 몸은 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다.
열려있는 감각이 탄환의 궤도를 예측했고, 눈보다 빠른 발은 그녀의 몸을 움직였다. 조금 전의 카테리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깔끔한 자세였다.
“역시 시에라 출신이네. 아리아. 날다람쥐처럼 재빠르잖아?”
“선배는 혼자 다른 시간에 사세요? 또 새로운 마법을 익히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면 신이겠지.”
“당…!”
콰앙ㅡ.
아리아는 카테리나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마법을 쓰는 검사의 말은, 얼음 탄환이 만들어낸 거대한 소리에 묻혀버렸다.
[카테리나 선수의 새로운 마법은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군요.]
[음, 저건 좀 쓸만한데?]
중계석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이토록 엄청난 소리가 나면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는 게 인간의 당연한 행동 원리였다.
호기심이 캐트시를 죽인다.
이 속담처럼 아리아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대치 중에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건 곧 죽음과 같았다. 그러나 이론과는 명백히 다른 현실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론적으로 얼음 마법은 높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폴론 가문의 화염 마법이 높은 위력을 지녔다. ‘감속’이라는 사기적인 능력 때문에 높이 평가받을 뿐이었다.
그러나 카테리나의 마법이 닿은 곳은 완전히 파괴돼서 꽁꽁 얼어 있었다. 마치, 세이드의 마나 지뢰에 폭격당한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을 겪고 온 거죠. 선배?’
아리아는 카테리나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음 창이나 얼음 화살 등의 마법은 상대방을 얼리는 효과였지, 저런 식으로 폭발하지 않았다. 퍼스트 서클 마법사의 속성은 죽을 때까지 변화하지 않았다.
잠깐 실종되었다고 알려졌던 시기에 고대의 유산이라도 찾은 것일까?
“방심했네. 그치?”
카테리나의 노림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시나마 아리아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 그게 그녀의 목적이었다. 아리아가 마법사를 칭하고 있어도, 본질은 검사였다. 아무리 시동어가 빠르다고 해도 순동과 검술의 콤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카드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족이라는 이레귤러를 만나며 배운 것들이 실전에서도 통할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의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