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08화 (108/265)
  • 마이야르 식 신성 마법 ― 빛의 사자(使者)

    마이야르가 성스럽게 빛나며 일직선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빛은 세상을 여는 개벽의 색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마법사들의 세계를 흰색으로 물들이며 막힘없이 뚫고 지나갔다.

    “젠장!”

    순간적으로 쏘아진 빛에 시야를 잃은 세이드.

    평범한 마법사라면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찰나의 시간.

    그는 선택했고,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가문에서 받았던 훈련과 델포이에서의 1년은 그의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었다.

    시야를 잃었음에도 2초 만에 장미들로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방패가 공격을 막는 일은 영원히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공격의 충격은 전해지지 않았다.

    “뭐? 내가 아니라면 대체 누굴 노리는….”

    세이드의 의문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마이야르 선수가 유피테르 교수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마법을 제어하지 못하고 세이드 선수의 뒤까지 파고든 걸까요?]

    경기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마이크를 잡은 두 명의 진행 지원자들은 놀란 와중에도 중계를 계속하고 있었다. 놀란, 에메리아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한 벌의 창이 된 마이야르가 노린 건 유피테르였다.

    “나를 노렸나? 마이야르.”

    “이걸로도 죽이지 못했다니. 당신은 대체…!”

    사라진 것만 같았던 빛의 검은 여전히 마이야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성스러운 빛은 정확히 유피테르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피테르의 압도적인 마나에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젠장. 젠장. 젠장!”

    분했다.

    이렇게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라면 분명히 통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레아 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는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게 숨겨져 왔던 신성 기관의 원래 목표였다. 레아 님을 믿지 않는 건 불쌍한 일이었다. 세계에 퍼진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애처로웠다.

    하지만, 레아 님을 모욕한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피테르가 교수이든 학생회장의 가족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마족을 물리칠만한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써 무시했다.

    자신을 키워준 성국 크레이타와 신성 기관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었다.

    “복수인가?”

    “네게 있어는 가벼운 복수지만, 우리에게는 위대한 한 걸음이다.”

    유피테르가 묻자 마이야르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 후, 힘이 다했는지 눈을 뜬 채 기절해버렸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기 위해 곳곳에 흩어져 있던 델포이 가드들이 나타났다. 델포이 졸업생들과 현직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가드들은 마이야르를 쉽게 제압했다. 가드들은 마법으로 마이야르의 몸 상태를 점검하며 콜로세움을 벗어났다.

    [스, 승자는 세이드 아폴론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이드 선수는 델포이의 대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세이드는 좋은 마법사야. 자랑스러운 제자지.]

    ‘너희들은 신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 있어.’

    중계석상의 얼떨떨한 목소리와 승자가 나왔다는 환호성에 유피테르의 마지막 말은 그저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 * *

    첫 경기부터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선발전은 계속 진행되었다. 마족 사건으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회복하는데 이만한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5명의 교수와 10명의 아카데미생을 선발하는 대회.

    교수들은 합의를 통해 5명을 모두 선발한 상태였다. 학장 피티아의 부재로 인해 급격히 늘어난 업무량이 문제였다. 논문과 연구 실적만으로 바빠 죽겠는데 피티아의 업무 일부를 나눠 가지니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10명의 아카데미생들도 거의 다 선발되어가는 중이었다. 애초에 대표 선발전은 입학시험과는 성격이 달랐다.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선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델포이의 얼굴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예선을 치러야만 했다. 다양한 힘을 확인하는 예선을 뚫고 나와야 선발전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만 델포이의 명예에 금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대망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기다리셨던 마지막 경기는 화제에서 끊이지 않는 유피테르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마나의 이해를 담당하는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입니다.]

    [다들 안녕? 여러분의 귀염둥이 오흐트야!]

    에메리아 때와 마찬가지였다. 해설을 맡은 한 명의 교수와 두 명의 아카데미생이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특이한 점은 오흐트가 유피테르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 역시 델포이 대표로 선발되어 있었다.

    [저기 보십시오. 델포이가 자랑하는 아카데미의 유일한 폭군. 카테리나 선수가 입장합니다.]

    해설의 말대로 콜로세움 경기장 왼쪽 끝 편에서 카테리나 아르테미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앞을 바라보는 시선과 당당한 자세가 그녀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회장님! 여기 좀 봐주세요!”

    “카테리나 회장님 사랑해요!”

    카리스마 넘치는 등장에 아카데미생들이 환호했다. 선발전 마지막 경기에 카테리나를 배치한 노림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 상대는 바로….]

    […바로오오오오!]

    중계을 돕는 남자 아카데미생이 긴장감을 최고조로 만들었고, 오흐트가 재치있게 그걸 받았다.

    [델포이 아카데미 랭킹 4위 아리아 캐롤 선수가 학생회장에게 맞섭니다.]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되는 순간. 유피테르가 기대의 정점을 찍었다.

    [아리아 캐롤 선수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죠?]

    [맞아. 이 선배는 무려 마법 검사야. 흔치 않은 시에라 제국 출신이라고 들었어]

    오흐트는 실제 나이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아카데미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녀는 붙임성 좋은 성격을 충분히 발휘해서 진행을 이어갔다.

    델포이 종합 랭킹 1위 카테리나 아르테미스와 4위 아리아 캐롤.

    이 둘의 사이는 사실 나쁘지 않았다. 시에라 출신임에도 검술과 오라에 목메지 않는 특이한 조합.

    “오랜만이야. 카리나 선배.”

    “아리아 어째서 내게 도전한 거야. 넌 가만히 있어도 추천을 받을 수 있잖아?”

    카테리나는 이 후배가 왜 자신에게 도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Top 5의 마법사들은 늘 최우선 선발 대상이었다. 해당자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상위 랭킹을 유지하는 아카데미생의 특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리아는 델포이 사상 처음으로 추천을 거절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카테리나를 상대로 지정했다. 지금까지 대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무패의 폭군을 말이다.

    “선배. 진심으로 부탁드릴게요.”

    아리아의 눈은 진지하게 빛났다. 카테리나에게 고정된 시선은 움직일 줄 몰랐다. 그녀에게는 꼭 이뤄야 할 꿈이 있었다. 회장과의 결투는 그걸 위한 첫걸음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좋아.”

    그걸 본 카테리나도 덩달아 기세가 바뀌었다.

    아카데미의 동료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쓰러트려야 할 적이었다. 아리아가 무슨 결심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도 마왕의 심장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끼던 후배였기에 그 마음에 응해주고 싶었다.

    ‘어째서 예전보다 더 강해진 거 같지?’

    아리아는 처음으로 카테리나에게 공포를 느꼈다. 폭군이라고 불려도 이런 분위기를 내는 마법사는 아니었다.

    꽈악.

    자연스레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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