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95화 (95/265)
  • 마왕의 씨앗(6)

    * * *

    애초에 사람들이 카테리나를 무서워했다면 학생회장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카테리나는 아카데미생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아카데미 생들은 그녀가 역대 회장들 중 최고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다양한 전장을 누비는 아르테미스의 폭군.

    아카데미 교류전(마블링)에서조차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카테리나는 델포이의 자랑이었다.

    “지금 네가 보여주는 걸 강함이라고 할 수는 없단다.”

    “그래요? 힘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 이 모든 게 착각이라고 하고 싶으신가요?”

    카테리나의 눈이 붉게 빛났다. 마족처럼 암울한 색은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른 은발에 붉은 눈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설마, 마족의 피를 주입 당한 건가.’

    경계 도시 더비에서 만났던 파론과 증상이 비슷했다. 파론은 알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빼앗겼고, 여동생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티아나와 다른 진정한 반 마족화의 증상이었다.

    오흐트와 이야기를 한다면 진실이 무엇일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통신 마법도 전해지지 않은 지금, 그건 조그만 가능성에 불과했다.

    반마족이 아니라 반―반 마족이라는 특수한 사례도 있었다. 치유사 없이 카테리나의 상태에 대한 속단은 금물이었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 기둥

    카테리나는 망설임 없이 마법을 펼쳤다.

    얼음성에서의 모의전 당시에도 카드세우스를 꺼내 든 적은 많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공격에는 적을 죽이고 싶다는 찐득찐득한 살기가 가득했다.

    쾅. 쾅. 쾅.

    엄청난 크기의 얼음 기둥들이 땅에서 솟아났다. 유피테르는 무작위로 생기는 기둥들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마치, 어디에서 마법이 나올지를 미리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있는 것. 그 이상으로 보이네요. 역시 오라버니세요.’

    자연스럽게 마법을 회피하는 오라버니를 보며 카테리나는 그의 강함을 실감했다. 마나를 단순히 감지하는 것과 흐름을 읽어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유추하는 건 난이도가 달랐다.

    그게 가능한 건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극소수의 사람들뿐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사람을 죽였구나.”

    농후한 살기를 풍기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유피테르는 말했다. 그건 아카데미생 수준에서 뿜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에서 타오는 투기와는 전혀 달랐다.

    정말로 사람을 죽여본 자들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생들은 살인 같은 것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세컨드 서클에 도전할 소중한 유망주들이었다. 졸업 후, 현역 마법사가 되면 싫어도 지겹게 경험할 것들이었다. 전쟁이나 용병에 참여한 마법사들 중 그게 싫어 연구직으로 옮기는 자들도 많았다.

    때문에, 굳이 그런 걸 지금부터 권하지 않았다.

    또, 실전형 마법사가 되어갈수록 세컨드 서클에 도달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먹고 살기가 바빠 강해지고 싶다는 본래의 목적이 점점 희미해졌다. 현역은 대부분 퍼스트 서클이었고, 그들과 싸워서 느는 건 수 싸움밖에 없었다.

    카르멘 비제 역시 한 우물만 계속 팠기에 세컨드 서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초대 가주 나이아드의 결계에 반했기에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와 같은 세계를 바라보고 싶어 밤을 새워가며 노력했다. 발자취를 따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은 결국 그에게 길을 보여주었다.

    “아. 얻은 힘을 좀 확인하다가 말이죠…. 힘 조절이 어렵더라구요? 오라버니가 더욱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사실을 널리 널리 알리도록 해요. 오라버니가 …라고요.”

    실종 이후에 벌어졌던 몇 건의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유피테르는 믿고 싶지 않았으나 저 말이 거짓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을 죽였다는 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 텐데.”

    “그건 강해졌다는 증표 아닌가요? 대체 오라버니가 왜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넌 아카데미 랭킹 1위지 않아? 곧 다가올 마블링 개인전에서 우승하면 그것이야말로 동세대 최강의 증표일 텐데.”

    “하. 마블링. 그건 너무 시시해요. 차라리 오라버니랑 목숨을 걸고 이렇게 싸우는 게 더 재미있는걸요. 어서 제게 더 많은 마법을 보여주세요.”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는 작년 마블링 개인전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며 우승했다.

    사실, 아카데미생들의 수준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마나를 지닌 모든 사람들이 퍼스트 서클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마법사라는 칭호도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꿈만 같은 것이었다.

    마블링 역시 전술과 지혜를 짜내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긴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강한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신성 기관이나 시에라의 오러 검사들이 있어 그나마 다채로워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잊혀진 세대에 살았던 고대의 마법사들은 전투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마법사들은 평화에 젖어 보다 게을러졌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신성들이 있었으나, 아직은 성장해야 할 씨앗에 불과했다.

    먼저 싹을 틔운 씨앗은 기다림에 지쳐 따분함에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일단 사건을 해결해야 하니. 넌 잠깐 이곳에서 쉬고 있으렴.”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직 제 전력을 보여드린 게….”

    유피테르 식 반 마법 ― 충격파

    유피테르의 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법이 펼쳐졌다. 얼음성 주변의 던전을 소멸시킬 때 사용했던 그 마법이었다.

    ‘뭐야, 그냥 겁을 주시려는 건가.’

    마법을 전개했음에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카테리나는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경애하는 오라버니가 마법에 실패할 리는 없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감히 자신이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카테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피테르에게 천재의 칭호를 양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식, 암기력, 응용 능력 등 자신보다 뛰어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자신에게는 고작 마나의 재능이 있을 뿐이었다. 오라버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유피테르가 카테리나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카테리나 역시 유피테르의 거대한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엄청난 마법사가 되어 돌아오자 그녀는 알게 모르게 초조해졌다. 모의 전투에 목을 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변은 바로 시작되었다.

    ‘말도 안 돼. 마나가 마법사를 거절한다고?’

    자신에 몸에 들어있었던 마나들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다시 명령을 내려봐도 똑같았다. 방금까지 순한 양처럼 굴던 마나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새로운 힘을 얻은 이후, 어떠한 마법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고통에는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제어를 벗어나 요동치는 마나들은 그 어떠한 공격보다 아팠다. 늘 장비하고 있던 포션으로 손을 뻗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불가사의한 마법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충격파. 정말로 이름 그대로네요. 이런 마법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었잖아요 오라버니.”

    “아버지가 말했지 않니 마법사는….”

    “…실력을 늘 숨겨야만 한다.”

    털썩.

    결국, 카테리나는 그 말을 남긴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유피테르는 여동생의 상태를 확인한 뒤 결계 마법을 펼쳐 그녀를 보호했다. 이 결계는 그녀를 지키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감옥이었다.

    “잘자. 리나. 네가 눈을 떴을 때는 아마 모든 게 끝나있겠지.”

    유피테르는 제단을 방어하는 결계로 다가갔다. 결계는 외부인의 침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짜릿짜릿한 마나를 내뿜었다. 언뜻 봐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고대 마법의 결계는 들었던 것보다 대단하네.”

    이 안에 델포이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기다렸다. 더비에서부터 이어져 왔던 마족들의 계획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피테르라고 해서 마족들의 모든 걸 파악한 건 아니었다.

    작은 단서들을 모아 사건을 파헤치는 게 그가 가진 능력 중 하나이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을 상대할 때의 이야기였다.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마족들을 이해하는 건 ‘그녀’의 후계자인 유피테르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기둥

    유피테르는 옴팔로스가 만든 결계를 부수기 위해 마법을 전개했다. 조금 전 여동생이 사용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마법이었으나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그의 마법에는 얼음 속성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 정지가 제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쿵. 쿵. 쿵. 쿵.

    얼음 기둥들은 점점 결계에 가깝게 솟아났다. 카테리나 것과 같이 거대하고 웅장한 기둥은 아니었다. 적당한 크기의 기둥임에도 충분한 위력이었다. 마나 제어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정지의 속성이 담긴 기둥이 결계와 부딪치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 막는 결계와 그 결계 자체를 부숴버리려는 기둥.

    두 세력의 격돌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지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결계을 멈추어버렸으니까. 고대 마법이 중첩되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결계라도 마나의 흐름 자체를 막아버리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작동을 멈춘 결계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결계가 감추고 있던 제단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위험한 분위기의 신전이 있었다. 결계가 침입자들의 눈을 속이고 있던 것이었다.

    “타르타로스에서만 자라는 나무들이잖아? 만드라고라까지. 마족이 있는 건 확실하네.”

    마족령 타르타로스에는 특별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족들이 본능적으로 내뿜는 마나의 독성 때문이었다. 나무 몬스터 플랜트나 식인 식물 라플레시아 등은 약과였다. 곳곳에 인간은 견딜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들이 기회를 노렸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무한의 얼음 화살

    그는 얼음 화살들을 만들어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냈다. 마족과 관련된 것들은 꼴도 보기 싫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신전 안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마족들도 무서워하는 식물들도 꽤 있었지만, 모두 얼음 조각이 되어버렸다.

    산 위에 있는 신전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결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던 것인지, 아니면 식인 식물들을 믿었던 것인지 그저 일직선이었다. 그 끝에는 거대한 제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피테르는 제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그러자 옴팔로스가 제단 옆의 휘황찬란한 의자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왕좌에 앉은 제왕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의자에 앉은 꼬마 그 이상의 감상을 해줄 수는 없었다.

    “드디어 온 거야 유피테르 교수? 마침 준비가 모두 끝난 참이야.”

    “준비가 끝났다라. 뭔진 몰라도 일단 축하해.”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 그렇다면 진짜로 기쁠 텐데.”

    옴팔로스는 여전히 해맑았다. 카테리나를 마음속 깊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태도에 유피테르는 적잖이 화가 났다. 여동생을 물건 취급한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기왕이면 다른 선물을 주는 게 어때. 예를 들면, 이 모든 계획의 비밀 같은 것도 좋아.”

    “에. 마음에 안 든다니. 그건 유감이네. 꽤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는데 말이야. 비밀 같은 건 마지막까지 이곳에 있으면 알게 될 거야.”

    “나를 위해 힘들게 선물을 준비한 건. 옴팔로스 너 혼자야?”

    유피테르는 옴팔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핵심은 간단했다.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진범이 옴팔로스가 맞냐는 의미였다. 고개를 끄덕인다면 진범을 찾는 수고를 덜고 그대로 벌을 내리면 되었다.

    만약, 고개를 젓는다면 그건 일이 골치 아파진다는 걸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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