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93화 (93/265)

마왕의 씨앗(4)

* * *

칼리스토를 포함한 동료들에게 모든 임무를 알려준 후.

유피테르는 파르니소스 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곳에 있는 옴팔로스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가 추측한 게 정답이라면, 진범의 본거지는 옴팔로스의 결계 안이었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드디어 왔네. 유피테르 교수. 엄청나게 기다렸다고.”

유피테르는 공간이동으로 제단에 도착했다. 꼬마 마족의 모습을 한 옴팔로스가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역시, 이곳인가.’

자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모습을 나타낸 옴팔로스. 그것을 보고 유피테르는 피식 웃었다.

옴팔로스의 행동은 강아지 같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주인을 보고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애완견 그 자체였다.

“재미있네. 정말로 재미있어.”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나도 같이 알면 안 돼? 치사해.”

“아니 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야. 그런 걸 한 번 더 들어봤자 재미있겠어?”

“히잉. 너무하다.”

의외로 유피테르와 옴팔로스의 대화는 평온했다.

범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어도 유피테르의 태도는 침착했다. 마치 친구 집에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옴팔로스 역시 동네에서 친한 형과 이야기하듯이 붙임성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친한 형제가 등산하다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왜 거짓말을 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유피테르 교수. 난 남을 속이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친절하게 힌트도 줬잖아.”

흑발 아이는 정말로 억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뭘 잘못 한 것인지 어림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두 손을 위로 뻗으며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유피테르가 올 때마다 힌트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가 가진 퍼즐은 쉽게 풀 수 없는 성질이었으니까.

“이러면 조금 생각이 바뀔까?”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하늘을 꿰뚫는 얼음창

유피테르는 옴팔로스의 대답을 듣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법을 전개해서 위협했다. 영롱한 푸른 빛을 뿌리는 다섯 개의 얼음의 창이 옴팔로스 바로 위에 나타났다.

창들은 보고만 있어도 얼어버릴 것만 같은 오싹한 기운을 뿌렸다.

“항복. 항복. 그래도 진짜 뭘 잘 못 했는지 모르겠으니까. 알려주겠어? 명색이 교수니까 친절하게 설명해주겠지?”

옴팔로스는 두 손을 얼굴 위로 들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알렸다. 아직까지도 그의 얼굴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걸 ‘교수’인 유피테르가 설명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옴팔로스는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

교수는 본질적으로 배움을 청하는 사람들과 꽤 거리가 먼 직업이라는 걸. 그리고 아는 것과 가르친다는 일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걸. 교수와 아카데미생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주민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었다.

가끔 교수들 중에서는 아카데미생들의 의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걸 모르고 뭘 어려워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교수가 볼 때는 너무나 간단하고 재미있는 문제였기에.

“너는 델포이에 있는 게 마족 두 명. 마족의 계약자 한 명이라고 말했었지.”

“응 맞아. 무슨 문제라도 있어?”

“마족과 계약자의 구분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유피테르의 질문에 옴팔로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기서 답변하는 것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게 보였다.

“마족은 마족이고 계약자는 계약자지…. 뭐 다른 차이가 있어?”

“그래, 정답이다. 마족과 계약자는 완전히 다른 존재여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지. 말과 검을 비교하라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너는 어떻게 했지?”

“뭘 말이야?”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옴팔로스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유피테르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델포이에 와서 강의를 시작한 이후, 이렇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는 처음이었다. 저렇게 못난 제자는 애초에 델포이의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유피테르는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싶어졌다. 고대 아티팩트의 에고인 옴팔로스가 생각 외로 멍청했으니까. 옴팔로스는 고대 마법을 쓸 줄 아는 에고일 뿐이었다.

“이곳에는 오직 한 명의 마족만 있을 뿐이야. 그 외에는 두 명의 계약자만 있지. 그렇지 않나?”

“어?”

옴팔로스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싱글벙글하던 미소가 뚝 끊겼다. 정곡을 찌르는 유피테르의 한 마디는 그만큼의 위력이 있었다. 옴팔로스는 이내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사람이 지은 표정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적이었다.

“제법이네! 그 정도로 당신의 눈을 속이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거 알았지만 아쉬워. 뭐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소식일지도.”

유피테르를 쳐다보며 옴팔로스는 그렇게 덧붙였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고위 마족이 한 명이 이 난장판을 쳐놓은 건가.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 방 먹었다고 해야할지 모르겠군.”

“계약자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헤헤. 엄청나게 고민했었다고. 그래도 아직 누가 마족인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에?”

유피테르는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손으로 꼬았다. 긴 머리카락이 그의 손을 따라 엉켜 들었다. 그래도 관리가 잘 되어 손을 떼자마자 돌아왔다. 옴팔로스는 그저 해맑았다.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이 아티팩트는 아카데미생들의 생명의 무게를 너무나도 가볍게 보고 있었다.

“아카데미생들이 죽었어. 네가 그토록 열심히 지키던 그 애들이 말야. 슬프지도 않아?”

“응. 맞아. 그래서?”

유피테르의 생각이 틀렸다.

옴팔로스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한 것은 작은 날갯짓이 아니었다. 델포이가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 올린 위상을 한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었다.

에너지 지원부터 심판까지 델포이 아카데미에 전부 옴팔로스의 작품이었다. 애써 만든 걸 자기 손으로 부숴버리다니. 유피테르는 옴팔로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하아….”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켜서 한숨으로 뱉어져 나왔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아티팩트에게 인간성을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도 몰랐다.

에고라는 건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을 뿐, 어디까지나 우연의 힘으로 깃든 존재였으니까.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교수가 힘든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도와주고 싶은데. 아 그래도 이 창들은 치워주면 안 될까?”

옴팔로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법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카데미생들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꺼냈는데도 말이다. 서슬 퍼렇게 자신을 노리는 얼음창들은 고대 아티팩트에게도 무서운 것이었다.

아르테미스의 마법은 대상을 ‘정지’시킬 수 있는 힘을 품고 있었으니까.

“이 마법은 무서운가 봐?”

“유피테르 교수의 마법은 조금 특별하니까. 교수도 알고 있잖아?”

아카데미생들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은 중요하다?

그 말은 유피테르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간에게 기대 자체를 버렸던 그였다. 하지만 얼음성으로 돌아온 후 가족과 함께 지냈던 시간이 인간성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주었다. 델포이 아카데미에서의 사제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싫다면?”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옴팔로스는 굽히지 않았다. 겁을 먹은 건 확실했으나 필요 이상으로 비굴하게 굴지는 않았다.

“생각?”

생각이 있다.

유피테르는 옴팔로스의 그 말에 집중했다. 대체 무엇을 준비했길래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게 바로 옴팔로스의 자신감의 원천일 게 분명했다. 델포이를 지켜보는 게 일이라면 자신의 힘을 모를 리 없었다.

현대 마법사들은 불가능한 공간이동을 마음먹은 대로 펼쳤다. 강의 시간엔 현대의 마법사들에게는 불가능한 다양한 속성 마법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고대의 마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응. 생각이 있어. 고대부터 이 산을 지켜왔던 자랑스러운 에고니까. 유피테르 교수에 대항할 방법 정도는 여러 가지 고민해놨지. 얼른 시험해보고 싶은걸?”

옴팔로스에게는 당당하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만 보면 꽤 대단한 계책이 있어 보였다. 유피테르는 지금까지 저런 말을 하는 사람 중 대단한 사람을 만났던 기억은 없었다.

옴팔로스는 어린아이와 유사한 사고방식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저 정도로 장담하는 거라면 꽤나 위협적일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말은 거짓보다는 미묘한 진실에 가까웠다.

유피테르 역시 모든 힘을 보여준 건 아니었다. 옴팔로스가 무슨 짓을 해도 이겨 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조심해야 했다. 옴팔로스의 묘한 사고방식이 어디로 튈지 몰랐기에.

“궁금하지? 궁금해 죽겠지? 보고 싶을 거야. 하지만 어쩌지 안 보여줄 건데.”

옴팔로스의 말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담해졌다. 유피테르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새로운 스태프를 사서 친구에게 자랑하는 어린 마법사 지망생처럼.

“어…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은데? 솔직히 여기서 왜 이런 시시한 이야기나 하는 건지 모르겠어. 비켜줄래. 그 결계 속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그런 아이들을 자극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관심이었다.

‘신상’이자 ‘한정판’ 스태프는 그 자체로도 좋긴 했다., 하지만그걸 구매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아이들이란 원래 또래 친구들의 시기와 질투를 먹으며 성장하는 존재였다.

“그, 그래?”

유피테르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자 옴팔로스는 당황했다. 그가 생각하던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저렇게 무덤덤한 표정을 보자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자신을 쳐다보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준비한 깜짝 선물을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깜짝 손님 등장해주세요!”

고대에 만들어진 아티팩트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진을 펼쳐내었다.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을 수놓으며 빙그르르 돌아갔다.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 안에 자그마한 여러 개의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복잡한 술식을 가진 난해한 고대의 마법이었다.

“공간이동(텔레포트)…?”

깜짝 선물을 기대했던 유피테르는 조금 실망했다. 결계 속에서 바실리스크 같은 고대 마수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작 무언가를 소환하려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뇌가 꼬일 정도로 난하한 술식이라고 해도 유피테르에게는 마나의 흐름에 불과했다. 저 마법진 역시 공간이동이라는 걸 한눈에 눈치챘다. 고대의 마법이라고 해봤자 ‘그녀’의 지식을 전수받은 그에게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술식으로 완성된 마법진은 제대로 작동했다. 공간이동의 환한 빛이 파르니소스 산 정상을 가득 메웠다. 눈이 아플 정도였기에 유피테르는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마법이 끝났는지 빛이 조금씩 약해졌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이곳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건 확실했다.

옴팔로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곳에 도착한 손님을 은발의 교수에게 소개했다.

“짜자잔. 오늘의 깜짝 선물은 바로… 이분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리나? 네가 왜 이곳에….”

유피테르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맞닥뜨렸다. 은발의 긴 생머리카락과 그와 같은 은색의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가 간절히 찾아다녔던 실종 되었던 여동생.

카테리나 아르테미스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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