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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91화 (91/265)
  • 마왕의 씨앗(2)

    * * *

    클리오나는 확신을 얻어야만 했다. 그래서 가면을 쓴 한 아카데미생에게 가까이 가서 손을 대보았다.

    우웅.

    신성한 마나에 아카데미생들의 얼굴을 덮은 가면이 강하게 반응했다. 이건 틀림없이 마족의 마나였다. 델포이 아카데미에 오기 전 성국에서 공부했으므로 확실했다. 크레이타의 신관이 되기 위해서는 마족의 마나를 감지하고 분류하는 게 필수였다.

    마족 반응을 확인한 것 좋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가면에서 느껴지는 건 이모리엣의 마나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마나를 감지할 때마다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그렇다면 이게 마족의 마나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나 방금까지 이곳에서 활보하던 이모리엣의 마나와는 성질이 분명히 달랐다.

    “그 말 확실합니까 에냐?”

    트리아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 말은 이곳에 적어도 두 마리의 마족이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럼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확실히. 새로운 느낌의 더러움이네. 리오나, 이걸 벗길 방법은 없어?”

    에냐는 마족보다는 아카데미생들을 구할 방법을 열심히 생각해는 중이었다. 어차피 마족은 마스터나 트리아가 상대하게 두면 되었다. 마족은 너무나 증오스러웠지만, 자신은 아카데미생을 옮기는 역할이었다.

    가면이 마족의 물건이라는 것과 다른 마족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아카데미생들을 구할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칼리스토의 마스터인 유피테르와 치유사인 오흐트.

    이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이 자리에 없었다. 유피테르는 바쁠 테니, 지금은 오흐트를 불러야 할 타이밍이었다.

    “언니, 정령은? 혹시 몰라서 정령을 하나씩 붙여놓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군요.”

    유알라냐는 한 팀에 하나씩 정령을 붙였다. 대기조의 인원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정령들에게 그 정도 일은 심심풀이에 제격이었다. 그래서 두 팔을 벌려 환영하며 계약자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하지만 저희는 정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클리오나는 에냐의 희망을 깨버리는 말을 서슴지 않고 말했다. 아카데미생을 눈앞에 두고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확실한 해결책이었다.

    “맞아…. 그랬지.”

    “우리가 정령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정령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트리아는 정령의 힘을 믿었다. 정말로 믿고 싶었다. 세계를 구성하는 정령이라면 이 정도는 가능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정령과 교감을 시도했다.

    “정령이여. 계약자인 엘프에게로 돌아가서 이 편지를 전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이 도박 같은 수가 통했던 것일까.

    바람의 정령 실프가 트리아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의 모습을 한 정령은 만일을 대비해 적어 놓았던 편지를 부리로 물었다. 그 후, 트리아의 주변을 몇 번이나 빙빙 돌다가 사라졌다.

    “그럼 이제 카리나를 구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겁니까?”

    아카데미생들은 고통스러워하거나 몸부림치지는 않았다. 단지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구속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괜찮아 보였다. 오흐트가 무사히 이곳에 도착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니 이제는 카테리나를 찾아야 했다.

    트리아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는 아직도 이 던전을 가리켰다. 그러나 세 명이 샅샅이 수색해도 단서 하나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잘 못 돌아가고 있었다.

    “환영 결계가 쳐져 있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이모리엣도 왠지 모르게 사라졌고 말이야.”

    에냐의 마나 감지에는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었다. 혹시 몰라 다른 두 사람에게도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개를 젓는 행동뿐이었다.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를 찾을 단서가 더는 없었다.

    칼리스토의 참모 역할을 수행했던 트리아에게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마치, 부술 수 없는 벽을 만난 것 같았다.

    ‘사슬을 부술 방법이 없나.’

    아직도, 에냐는 자신의 힘으로 미션을 끝내고 싶었다. 아카데미생을 데리고 공간 이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 사슬이 문제였다. 가면은커녕 사슬마저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마족이 무언가를 해놓은 게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테리나를 찾는 일에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혹시 신성 마법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와 다르게 클리오나의 마법 역시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몰라 힘으로 무작정 부술 수도 없었다.

    만약, 저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라면 억지로 부실 수도 없었다. 무심코 던진 돌이 아카데미생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다. 마스터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마땅히 생각나는 방법이 없으니 오흐트가 이곳에 오는 걸 기다리도록 합시다.”

    트리아는 어쩔 수 없이 대기조의 지원을 기다리자고 말했다. 에냐와 클리오나 역시 동의하며 오흐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특수한 마법을 지닌 그녀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정령의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빠른 것인지 그들의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야호. 여러분이 그렇게 원하던 오흐트야. 많이 기다렸어?”

    빛과 함께 나타난 오흐트의 입에는 생크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미 다 먹었는지 우물거리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보니 신뢰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또 케이큽니까.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아직 작전 중이지 않습니까.”

    트리아는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칼리스토 자매들 중에서도 오흐트는 늘 튀었다.

    좋은 의미로든, 좋지 않은 의미로든 말이다.

    “배고파서 어쩔 수 없었다구…헤헤. 가면이란 게 바로 저거구나?”

    살길을 찾기 위한 오흐트의 방법은 뻔했다. 가면과 사슬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 것이다. 트리아는 그녀의 마법이 필요했기에 더는 추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오흐트가 아니면 이 현상을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에.

    “흐음… 마족의 기운이 담겨있네. 애들의 말과 다르게 펜던트의 형태가 아닌데? 게다가 이거 마왕의 심장을 만드는 과정이잖아?”

    오흐트는 아카데미생에게로 다가가 가면과 사슬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동료들이 찾지 못했던 걸 한 번에 알아냈다. 마족과 신성 마법 분야 최고의 전문가라는 칭호는 틀리지 않았다.

    “오흐트. 설명은 나중에 해줘도 된다고. 이거 분리할 방법은 있는 거야?”

    에냐가 결론부터 말하라고 채근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건 지겨웠다. 아카데미생들만 구한다면 그들의 임무는 끝났다. 그렇다면 마스터를 도우러 갈 수도 있었다. 마스터 혼자서 뭘 하는지는 몰라도 가장 힘든 부분을 맡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마법으로 풀릴 것 같으니까 잠시 기다려봐.”

    오흐트 식 치료 마법 ― 원상 복귀

    그녀는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인 원상 복귀를 사용했다.

    오흐트의 마법은 무언가 달랐다. 마나가 사슬과 가면에 닿자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구속구는 마나 입자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갔고, 가면 역시 조금씩 금이 가면서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던 처음으로의 회귀. 그게 그 마법의 진정한 가치였다.

    “저렇게 쉽게 부서지는 걸 우리는 이렇게나 고민했단 말입니까?”

    “그러게. 우리의 노력은 뭐였나 싶네. 처음부터 오흐트랑 함께 올 걸 그랬어.”

    클리오나와 에냐는 마법 하나로 고민이 해결되자 허탈했다. 오흐트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구속구들을 하나둘씩 풀어주었다. 사람을 치유할 때의 그녀는 언제나 진지했다.

    “이걸로 마지막이야.”

    오흐트는 구속구와 가면을 전부 부숴버렸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속도가 붙었다. 마족의 마나를 없애버리는 게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 그녀 역시 마족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지역 출신이었다.

    “수고했습니다. 오흐트.”

    트리아는 오흐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녀의 마법은 집중력과 체력 그리고 섬세함을 요구했다. 기적 같은 힘에는 늘 어느 정도의 대가가 있는 법이었다.

    그 순간, 갑작스레 공기가 무거워졌다.

    “에냐.”

    “알고 있어 트리아 언니.”

    트리아는 전투 자세를 취하며 에냐에게 경고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녀 역시 칼리스토의 일원이었다. 에냐는 재빠르게 트리아의 옆으로 이동해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클리오나는 지쳐있는 오흐트를 지키고 있었다.

    “그걸 제거하다니 정말 대단한데? 어중간한 마법으로는 건들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야.”

    비웃는 것인지 정말로 칭찬하는 것인지 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 들린 게 아니었다. 잘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 방향은 마족이 사라졌던 그 방향이었다.

    그 방향에는 던전 수호자를 성공적으로 공략하면 나오는 출구밖에 없었다.

    뚜벅뚜벅.

    발소리는 점차 커졌다. 다가올수록 숨을 쉬기 어려워져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트리아와 에냐는 후방의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동료를 잃게 만드니까.

    ‘왜 목소리가 익숙한 거지?’

    칼리스토와 다르게 오흐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이 애매하지만, 분명히 한 번쯤 들어본 목소리였다.

    “어머. 싫다.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좀 서운한데.”

    목소리의 주인은 결국 일행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래서 목소리도 얼굴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트리아 일행은 벌려진 입을 닫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절대로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피티아 학장….”

    델포이 아카데미 학장 피티아 라비린스. 미궁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아카데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어야 할 학장이 이곳에 있다는 건….”

    “마족의 계약자가 그녀라는 말이겠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챈 에냐의 말에 트리아가 대답했다. 학장 역시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그들은 두 명의 마족과 한 명의 계약자라는 키워드만 알 뿐이었다. 누가 범인으로 의심되고 있는지는 유피테르만 알고 있었다. 트리아가 진지하게 누구냐고 물어보아도 그는 웃으며 대답해 주지 않았다.

    임무에 따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거라는 수수께끼를 남겼을 뿐이었다.

    “음. 다 좋은데 한 가지가 틀렸어.”

    피티아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툴툴댔다. 평소의 그녀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여럿 보여주자, 클리오나는 넋이 나가 있었다. 애초에 피티아가 정장이 아닌 옷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그곳에 있는 모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피티아가 하는 말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모리엣과 피아쿠스.

    마족 두 명을 눈으로 봤다. 그리고 마지막에 학장이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그녀가 마족의 계약자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 모든 계획을 세운 마족인걸?”

    그러나 트리아 일행의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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