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85화 (85/265)
  • 고요한 밤, 사냥의 밤(11)

    * * *

    이사야가 원치 않은 납치를 당했던 그 날 밤.

    유피테르 일행은 엘프의 비밀 정원에 모여있었다. 이미 사건의 퍼즐은 어느 정도 완성되어있었다. 이사야를 반 납치해서 들었던 것들은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또, 정령들이 곳곳에서 모아준 정보들 역시 유용했다.

    마스터 유피테르. 칼리스토 소속 트리아, 에냐, 오흐트. 하이 엘프 유알라냐. 인간 마법사 클리오나.

    다양한 종족의 여섯 명이 모였는데도 비밀 정원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애초에 유알라냐 혼자 살기에는 큰 크기의 집이었으니까. 이곳에 정착할 그녀가 걱정되었던 트리아가 신경을 써준 결과였다.

    “저 사람이 새로운 동료인 건가요?”

    그동안 함께하지 않던 얼굴이 보이자 유알라냐는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새로운 동료는 묘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트리아처럼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오흐트처럼 천진난만함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유피테르의 동료라기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물론, 이곳에 모인 자들 중에서 외모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에냐입니다. 이번 작전에 새롭게 투입되었어요. 잘 부탁드려요.”

    유알라냐가 보기에 에냐의 인사는 다른 칼리스토들보다 상식적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에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특징을 보유하고 있었다. 보기만 하더라도 초월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에냐의 존재감은 조금 옅었다. 물론, 그녀 역시 가공할만한 마법을 보유하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어떤 식으로 적을 사냥할지 설명해줄게.”

    유피테르를 제외한 다섯 명은 이곳으로 온 이유를 대략적으로만 알 뿐이었다. 준비가 되었으니 오라는 그의 말에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델포이 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의 범인을 잡는 것.

    세세한 목표는 조금씩 달랐지만, 이곳에 모인 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다. 아카데미의 내통자를 잡고 그 뒤에서 사건을 조종하는 흑막을 처단하고 싶었다.

    여러 대의 잽을 연속으로 맞으며 상처가 벌어졌다. 한 대라면 참아줄 수 있었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앙갚음하려면 최소한 깨끗한 스트레이트 한 방을 흑막에 날려야만 했다.

    “마족 놈을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계획이 완성되신 겁니까?”

    클리오나가 궁금증을 가득 담아 은발의 교수에게 질문했다.

    유피테르의 대단함은 귀가 빠지게 들었고, 실감도 했다. 그러나 아직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이건 존경하는 성녀 프레이야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족의 잔향은 트리아가 확실히 추적할 수 있었지만, 계약자의 마나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계약의 증표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는 당사자들 간의 비밀이었으니.

    “그 전부터 대충 그림은 그려왔어. 유알라냐가 라우라에 대해서 조사를 해주고, 이사야 전 교수를 만나서 확신이 선 거라고나 할까.”

    “그, 그렇습니까.”

    이전과는 다르게 막 나가는 듯한 유피테르의 모습에 클리오나는 감동했다.

    바로 저거였다.

    저런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신성 기관에 들어간 것도 프레이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순히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었다. 정보를 모으고 이에 근거하여 가설을 세웠다. 가설이 틀릴 때는 주저하지 않고 사과하는 용기도 가지고 있었다.

    그건 평범한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설명할게. 리오나 지도를 부탁해.”

    “알겠습니다.”

    유피테르의 말에 클리오나는 늘 가지고 다니던 델포이의 지도를 꺼냈다. 여기저기 귀여운 그림과 메모가 적혀있었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지도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마스터 그래서 난 뭘 하면 돼?”

    오흐트는 몸이 근질근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전면전에 투입되었기에 상태가 최고조였다. 게다가 딱 좋게도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마족이 상대였다.

    “오흐트. 마스터께는 제대로 존칭을 써야지.”

    “히잉.”

    새로운 얼굴인 에냐는 등장하자마자 오흐트에게 주의를 주었다. 오흐트는 지적을 받자 싫은 듯 앙탈을 부렸지만, 에냐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에냐가 칼리스토 중 마지막 상식이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먼저, 유알라냐와 오흐트.”

    “제가 먼저 이름이 불릴 줄이야 상상도 못 했는데요. 그래서 뭘 하면 될까요? 카테리나를 구하는 거라거나….”

    “좋아 마스터. 맡겨만 주라고 다 해치워 줄 테니까.”

    유피테르가 부른 두 사람은 조금 다르게 반응했다. 유알라냐는 카테리나를 구할 수 있는 임무에 투입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반면에 오흐트는 그냥 어떠한 일이라도 좋으니 빨리 시작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안하군. 둘은 대기조야.”

    “에…?”

    처음으로 두 사람의 반응이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뤘다.

    유알라냐는 하이 엘프이자 정령의 계약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엘프들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에 정령술로 인간들의 마법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오흐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리게만 보이긴 해도 그녀가 에냐보다는 강했다. 게다가 티아나, 세이드 두 명을 치료했으니 이쯤이면 전투에 참여시켜 줄 거라고 기대했었다.

    거기다 예전에 했던 약속도 있었다.

    “오흐….”

    “마스터의 말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냥 끝까지 들어.”

    에냐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트리아를 제지했다. 그러면서 오흐트에게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유피테르의 인원 배치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마스터와 함께한 다양한 임무에서 경험해 신뢰할 만 했다. 전대 마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보다 이런 전술 능력이 그가 가지고 있는 본래 힘이었다.

    “유알라냐는 정령으로 통신을 제어해줘야 해. 이번 상대는 만만치 않은 마족들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오흐트의 경우 비장의 패야. 만일의 상황에서는 반드시 네 힘이 필요하게 될 거야.”

    그의 말은 두 명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령술의 가치를 분명하게 인정해주었고, 오흐트가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역할을 주었으니까. 그 증거로 두 명은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음은 리오나와 에냐.”

    유피테르는 곧이어 다른 팀을 발표했다.

    이번 조합 역시 꽤 신선했다. 아직 어떤 힘을 가진지 보여주지 않은 에냐와 성국 출신이지만 아직은 아카데미생에 불과한 클리오나였으니까. 그들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미지수였다.

    “교수님. 저는 아직 아카데미생에 불과한데 동료여도 괜찮습니까?”

    클리오나는 다른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 껴있으니 불안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델포이 아카데미 랭킹은 무의미했다. 하나하나가 경지를 부순 초월자들이었다. 만약, 자신이 카테리나의 친구여서 이 임무에 넣어진 것이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걱정 마. 그 정도는 마스터의 계산 범위 안일 테니까.”

    이번에도 문제를 해결한 건 에냐였다. 그녀는 클리오나의 걱정을 빠르게 눈치채고서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칼리스토 내에서 에냐의 역할은 윤활유였다. 강력한 마력을 지닌 톱니바퀴들을 제대로 맞물려 일하게 만드는 것쯤은 익숙했다.

    “너희 팀은 실종자들을 구하는 게 목표니까, 네가 필요해. 에냐는 아카데미 생들의 얼굴이나 특징을 모르니까. 너 역시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다. 고개를 들어.”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교수님.”

    유피테르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클리오나도 곧바로 이해했다. 길치이긴 했지만, 델포이 학생회 부회장으로 실종자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데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잘 부탁해. 난 에냐라고 해.”

    “클리오나 브레닐스입니다. 트리아 씨 만큼 강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트리아는 우리 자매 중에서도 엄청나게 강한 편인데. 뭐,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만 말해둘게.”

    실종된 아카데미생들을 찾는다는 공동 임무를 받은 클리오나와 에냐.

    둘은 임무에 앞서서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정확한 내용은 몰랐으나 합을 맞추는 건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이제 제 차례입니까? 신이시여.”

    유피테르가 자신에게 가까이 오자 트리아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칼리스토 자매들 중에서도 그녀는 유난히 유피테르를 따랐다.

    이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아직은 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트리아는 카테리나를 구해줘. 아마 다른 실종자와 다르게 따로 갇혀있을 거야.”

    “신께서 직접 구하시지 않고 왜 저에게 맡기시는 것입니까?”

    트리아가 내뱉은 의문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여동생 카테리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유피테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에게는 정보도 힘도 있었으니 다른 것보다 우선시해서 구하러 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설마 혼자서 마족을 사냥하시려는 겁니까. 신이시여.’

    생각을 거듭하던 중 트리아는 유피테르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일으킨 마족들을 직접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데려가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결말을 짓고 올 게 분명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스터. 왜 우리를 좀 더 믿어주지 않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고위 마족을 상대하는 건 위험해.”

    “마스터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자매 중 한 사람을 더 불러서 같이 싸우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오흐트와 에냐는 유피테르를 걱정했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와 마족을 상대하는 건 난이도가 완전히 달랐다. 유피테르가 전대 마스터의 후계자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자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전대 마스터와 다르게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으니까. 전대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었다면, 부족한 부분도 가지고 있었다.

    “마왕도 잡았는데 뭘. 걱정하지마. 혼자서 가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너희들이야말로 방심하지마 특히 트리아.”

    “네. 신이시여.”

    “아마, 네 임무가 가장 힘들게 될지도 몰라. 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트리아는 유피테르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말에 감격했다. 은색의 눈동자를 가진 마스터는 정말로 괴로운 일은 스스로 껴안아 버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세부 작전을 설명할 게 먼저, 에냐와 클리오나. 다음이 트리아 마지막이 유알라냐와 오흐트야. 계획과 맞지 않는 상황에 마주쳤을 때는 스스로 판단해서 극복할 것.”

    유피테르는 일행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눈은 모두 맑았고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라면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 후, 그는 말했던 것처럼 한 팀씩 불러 어떠한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이번 작전에서 중요하지 않은 팀은 없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었다.

    작전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일행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끝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유피테르 역시 마지막까지 그들을 쳐다보다 마족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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