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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79화 (79/265)
  • 고요한 밤, 사냥의 밤(5)

    * * *

    작은 새의 모습을 한 실프는 유유히 날갯짓하며 유알라냐의 어깨에 착지했다. 평소에도 자주 그런 것인지 그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그리고는 계약자인 엘프에게 무엇을 보고 왔는지 말해주었다.

    정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는 들은 내용을 요약해서 유피테르에게 전했다.

    “한 아카데미 생이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바로 갈까요?”

    “위치는?”

    “아래 델포이 키리에 레스트랑 부근이라고 하네요. 실종된 아카데미 생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날뛰기 시작했다고 해요.”

    “리오나와 유알라냐만 따라와 줘. 칼리스토 둘은 상황을 보고 명령을 내릴 테니 이곳에 대기해.”

    의문이 들만한 말이었지만, 유피테르의 판단은 빨랐다. 클리오나는 부회장이기에 명분을 만드는 데 충분했고, 유알라냐는 비밀 공간의 주인이었다. 칼리스토인 둘은 지금 당장 필요한 전력은 아니었다. 더 위험한 시기에 비장의 패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신이시여.”

    “마스터. 힘내!”

    칼리스토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피테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이심전심의 관계였다.

    “공간 이동을 사용할 거야. 이리로 모여줘,”

    유피테르의 말을 듣고서 클리오나와 유알라냐는 가까이 붙었다. 마법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이 마법은 일개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번쩍-.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천둥이 치고 나자, 유피테르 일행은 유알라냐의 비밀 공간에 도착했다. 그의 공간 이동은 뒷맛마저 깔끔했다. 살짝 어지러움을 느끼게 하는 텔레포트 게이트보다도 승차감이 좋았다.

    “역시 공간 이동…. 유피테르 교수님 대체 당신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클리오나는 파에톤을 타지 않고 위 델포이에서 아래 델포이로 순식간에 이동한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존경하는 성녀 프레이야도 공간 이동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일단 유알라냐는 이곳에서 기다려. 다른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잖아? 리오나는 바로 따라오렴.”

    “여기서 산다는 걸 비밀로 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워지네요. 도움이 될 수 없어서 미안해요.”

    “알겠습니다.”

    유알라냐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식탁에 앉았다. 반면, 클리오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서 키리에 레스토랑으로 빠르게 뛰어가는 유피테르의 뒤를 따랐다. 유피테르의 속도가 빨랐음에도 클리오나는 크게 뒤처지지 않고 잘 쫓아갔다.

    그는 아직 자신의 패를 다 보여준 게 아니었다.

    “저기입니다. 저 아카데미 생인 거 같습니다.”

    단 3분. 하나의 요리가 완성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고작 그 시간 만에 두 명은 키리에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식당 앞에서 붉은 머리를 한 마법사가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폴론 가문의 마법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계속해서 불의 마법을 쏘았다. 델포이의 건물들은 기본적인 방어 마법으로 강화되어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화단 등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곳들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머리면 아폴론 가문인가. 아무리 공작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마법을 난사할 수 있지는 않을 텐데.”

    “교수님의 가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실종된 아카데미 생 모두 마족의 계약자가 된 거라면 앞뒤가 맞습니다.”

    붉은 머리와 붉은색의 눈동자는 아폴론 가문의 특징이었다. 그 점을 유피테르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폐공자였다고 해도 그 역시 공작 가문의 후손이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마법을 사용해서 지쳐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마법을 쓰는 걸 그만두지 않는다는 점이 의문이었다.

    클리오나는 그 모습을 보고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성국 크레이타에서 지낼 때 지겹도록 외웠던, 마족의 계약자에 관한 내용이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족의 계약자는 어둠의 마나를 양도받아서 거의 무한정으로 마법을 퍼부을 수 있었다.

    “저 학생은 세,세…. 세이드 아폴론이에요.”

    클리오나는 아카데미 생의 얼굴과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었다. 카테리나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4대 공작 가문의 자제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뛰어난 성적을 보여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세이드…. 기억에는 없는 이름이네. 일단 불부터 끌까?”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의 멜로디

    날뛰고 있는 세이드를 제압하기에 앞서, 유피테르는 옮겨붙은 불을 마법으로 껐다. 단순하게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타오르는 불만 골라서 얼어붙게 했다. 그의 섬세한 마나 조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휘유. 정말 대단한데?”

    “역시… 교수님.”

    도망치던 아카데미 생들은 자리를 멈추고 입을 벌렸다. 구경하던 아카데미 생들 역시 휘파람을 불었다. 옆에 있던 클리오나 마저 움직임을 멈추고 그 정확한 마나 지배력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법이 특정 대상에만 효과를 주도록 제어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한 곳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곳에 냉기를 퍼트렸기에 더욱 대단했다.

    “캬악? 캭캭, 캬아아악?”

    세이드는 자신의 불 마법이 하나둘씩 얼어붙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그저 캬악이라고 들릴 뿐이었다. 그곳에 모여 있던 누구도 세이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건 계약자라기보다는 이미 반마족화 되어버린 것 같은데? 리오나 저 세이드라는 아카데미 생 언제 실종되었어?”

    “그러니까…. 세이드는 두 번째로 사라졌습니다. 확실합니다. 두 번째로 사라진 학생이 붉은 머리의 아폴론이었으니까.”

    유피테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클리오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녀는 카테리나가 사라진 이후 쉬지 않고 보고서를 읽었다. 이 정도 질문은 가뿐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제대로 말도 못 하다니 꽤 반마족화가 진행되었다는 건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겠어.”

    “전 교수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클리오나는 반마족화가 많이 진행된 세이드를 제압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유피테르에게 판단을 맡겼다. 티아나의 반마족화을 해결했다는 업적이 있었기에. 클리오나 랭킹 3위라고 하더라도 유피테르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성을 잃은 반마족을 힘으로 억누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압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도록 하자. 오흐트가 있으니 치료는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

    사람을 원래 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는 오흐트의 마법이 있는 이상 문제는 없었다. 죽지만 않으면 살려낼 수 있었다. 다만 반마족화가 확실히 진행되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서 조금은 불안했다.

    여동생도 저렇게 반마족화가 되었을지도 몰랐으니까. 반마족화를 치료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었다.

    카테리나를 한시라도 빨리 찾기 위해서는 세이드를 제압해야 했다. 그리고 데려가서 오흐트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유피테르는 고민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그는 먼저, 자신과 세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결계 마법을 펼쳤다. 결계 마법들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도 설정할 수 있었다. 전술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결계 마법사들이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이었다.

    “일단 사람들의 눈은 가렸네. 저 친구를 제압 후 바로 유알라냐가 있는 곳으로 움직일 거야. 리오나.”

    신성 마법으로 지원해보겠습니다. 반마족이라도 충분히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원 타이밍은 알아서 맡길게. 그럼 시작해볼까.”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의 창

    유피테르는 그렇게 말하고서 세이드를 향해 달려가며 마법을 쏘아냈다.

    허공을 지배하는 무수한 푸른 창들.

    그건 아르테미스 가문의 마법사들이 가장 즐겨 쓰는 방식이었다. 창의 형태로 만들어진 얼음의 마나는 세이드를 강하게 압박했다.

    창은 화살보다 느렸지만, 동시에 화살보다 강했다.

    “캬오―캬캬캬캬악. 캬오오오.”

    세이드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유피테르의 마법을 맞으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캬오오하며 마법을 펼쳐냈다. 물론, 이번에도 무슨 시동어를 외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화르륵ㅡ

    그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결계 속을 뒤덮은 얼음의 창을 세이드가 만든 불꽃의 검이 가로질렀다.

    이글거리는 불꽃과 보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 같은 창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했다.

    검과 창의 진검승부.

    물론, 대결의 승자는 당연히 유피테르였다.

    얼음의 창들은 가뿐하게 불꽃의 검을 밟고 세이드에게로 향했다. 날아가는 창에는 망설임 하나 담겨있지 않았다.

    “캬오오오!”

    세이드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안는지 발로 바닥을 연신 쳤다. 마치, 아기들이 떼를 쓰는 것처럼. 그러더니 강렬하게 소리치며 불꽃의 검들을 만들어냈다.

    “이미 읽힌 마법을 쓸 정도로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유피테르는 그게 세이드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만나보았던 파론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었다. 반마족화가 된 후 사용하는 강한 힘의 대가로 사고방식이 단순하게 바뀌게 되었으니까. 세이드 역시 비슷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캬오오오오오오!”

    짐승, 아니 몬스터의 울음소리 같은 울부짖음이 끝나자 붉은색을 띠고 있던 불꽃은 애매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건… 반마족의 색이었다.

    마족의 힘을 나누어 받아 반마족으로 전락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순수하지 못한 검정색의 마나. 마법사의 마나와 마족의 마나가 섞여 제멋대로 날뛰는 추악한 색이었다.

    클리오나 식 신성 마법 ― 성스러운 빛의 구슬

    “무언가를 준비할 때 시간을 주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색이 변하는 그 정확한 타이밍에 클리오나가 신성 마법으로 지원했다. 상황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배우지 않았으니까. 적이 필살기를 쓰도록 기다려주는 마법사는 멍청이일 뿐이었다.

    적어도, 델포이에 그런 마법사들은 없었다.

    “나쁘지 않은걸. 그럼 이대로 끝을 내자고. 우리가 좀 급해서 말이야.”

    마족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신성 마법이 검에 닿았다. 그러자 반마족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추잡한 검은색으로 타오르던 불꽃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제대로 공격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캬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세이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반마족의 힘은 절대로 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마족이었다면 신성 마법에 대한 대책을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본능에 충실한 반마족이었다.

    유피테르가 만든 얼음 창들은 어느새 원래의 수 이상으로 불어났고 한 치의 용서 없이 세이드를 공격했다. 느리게 하는 속성을 가진 얼음의 창은 세이드를 발끝부터 얼리기 시작했다.

    “캬, 캬오.”

    세이드는 얼어붙은 발을 움직여보려고 노력했으나 얼음 마법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유피테르의 마나와 지배력이 명백하게 위였으므로.

    마법이란 이 두 개로 우열이 결정되는 불합리한 힘이었다.

    불의 가문을 연상시키는 듯한 열정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천히 얼어붙었다. 용병 파론과 마찬가지였다. 발부터 천천히 얼어붙은 세이드는 이내 움직이지 못하는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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