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78화 (78/265)
  • 고요한 밤, 사냥의 밤(4)

    * * *

    델포이 학생회장 카테리나가 실종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짧으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3일 동안 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아카데미 생 실종 사건이 살인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기존에 실종되었던 아카데미 생들이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새롭게 실종자로 보고된 아카데미 생들이 하루에 한 명씩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들은 원래의 상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델포이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해가 지는 순간 발 길이 끊길 정도로 흉흉했다.

    끔찍한 형태로 진화해가는 범인의 수법.

    피티아는 교수들과 델포이의 치안을 담당하는 마법사들을 불러 공개적으로 회의를 열었다. 이전에도 치안 마법사들과 비밀리에 협력하기는 했지만, 사건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아무리 그녀가 명망 있는 학장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피티아는 교수들과 아카데미 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실종 사건을 알리자고 주장했다. 어차피 소문은 드센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 교수들 역시 학장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고 동의했다.

    조심해서 위기를 극복하자는 소극적인 방법이 전혀 소용이 없었기에.

    카테리나 아르테미스의 실종은 친했던 유피테르 일행뿐만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었었다. 하지만 그건 학생회장의 업무나 퀘스트가 바빠서 그런 것뿐일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마법 재능과 순간적인 재치는 가히 교수들에게도 비견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밤의 유혹사건에 휘말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칼리스토 소속 트리아와 오흐트, 학생회 소속 클리오나, 엘프 대표 유알라냐 그리고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교수.

    이렇게 다섯 명은 유피테르의 연구실에서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피티아 학장. 전대 마나의 이해 교수 이사야. 학생회 서기 라우라. 이 세 명 중 한 명이 마족의 계약자라고 나는 의심하고 있어.”

    유피테르가 생각하는 마족의 계약자 후보는 세 명이었다.

    만날 때마다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실종 대처도 늦었던 학장 피티아. 티아나의 반마족화를 가속시킨 교수 이사야. 카테라나가 실종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서기 라우라.

    이 세 사람 모두 충분히 의심할 만한 충분한 정황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학생회의 서기가 거기에 들어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라우라는 성실하고 좋은 후배입니다. 의심할 거라면 차라리 옴팔로스를 의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유피테르의 용의 선상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시한 건 클리오나였다. 그녀는 학생회 부회장이었다. 당연히 이 중에서 라우라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클리오나의 기억 속에서 라우라는 잘 웃어주는 서기였다. 라우라는 항상 회장과 부회장을 도우려고 두 팔 걷고 나섰었다. 두말할 필요 없는 성실한 아카데미 생이었을 뿐이었다. 결코, 그런 범죄를 저지를 만한 용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의미심장한 말을 하던 옴팔로스를 의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트리아의 보고서를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능력은 유피테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3개의 마족 반응을 확인했다는 말이 옴팔로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았다.

    “그 세 명의 사람 중 아무도 친하지 않은 관점에서 말하자면 학장이 제일 의심스럽네요. 델포이에서 무언가 음모를 꾸미려면 학장의 자리가 제일 편해 보이니까요.”

    하이 엘프 유알라냐 역시 확실한 의견을 내놓았다.

    피티아는 유알라냐가 델포이의 숨겨진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만나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는 아는 관계였을 뿐 그 이상으로 친하진 않았다.

    유알라냐의 의견 역시 합리적이었다.

    티아나의 사건이 최소한 일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다면, 마족 역시 그때부터 있었을 것이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준비하려면 학장의 자리만큼 적절한 위치는 없었다. 델포이에서 학장의 권한은 황제와도 같았다.

    “이사야 교수의 위치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언제든지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마스터 그냥 다 부숴버리면 안 돼? 시비는 저쪽에서 걸었잖아. 칼리스토들은 언제나 대기 중이라고.”

    두 명의 칼리스토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실전을 많이 겪어본 마법사라는 점도 있었지만, 애초에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델포이 전체를 폐허로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당하고만 있는 건 그들의 취향이 절대로 아니었다. 이렇게 잠자코 있는 마스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우선, 옴팔로스에 대해 말해볼까. 리오나의 말은 당연히 그럴듯해. 하지만 옴팔로스의 증언과 피티아 학장의 말을 교차로 대조해보면 쉽게 나와.”

    “제단에 가셔서 옴팔로스와 한 번 더 이야기하셨죠? 그때 무언가 정보를 건지셨습니까?”

    옴팔로스 설을 부정당한 클리오나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옴팔로스야 말로 범인이었다. 유피테르가 말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옴팔로스는 검은색 머리에 붉은 눈을 한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

    “그건…. 아니, 그거야말로 마족의 계약자라는 증거 아닙니까? 달의 몰락 때 나타났던 마족도 그런 형상이었다고 카리나에게 들었습니다.”

    유피테르가 옴팔로스의 생김새를 들고나오자, 클리오나는 역시 자신의 추리가 맞았다고 생각해 자연스레 목소리가 커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 가장 어렸기에 가능한 혈기였다.

    “그 놈은 웃고 있었어. 옴팔로스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이 모든 걸 주도하고 있는 느낌이었어. 피티아 학장과의 계약도 그렇게 단단한 거 같지 않았고.”

    “웃고, 있었다구요? 에고가 그 정도로 인간에 가까운 감정표현을 할 수 있어요?”

    “꽤 오랜 삶을 산 아티팩트들은 인간과 유사하다고 들었어. 에고가 담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언니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었어.”

    유피테르의 말에 클리오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성국에서 아티팩트들을 보았었다, 그러나 에고를 가진 아티팩트는 극히 드물었다. 에고 자체가 쉽게 생기는 게 아니었으니까.

    클리오나에게 깔끔하게 설명을 해준 건 유알라냐였다. 하이엘프의 숲에서 살 때 그녀는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었다.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에고가 정확한 판단력과 감정을 가지게 되니 조심하라고.

    “나 역시 그 정도의 에고를 지닌 아티팩트를 가져 본 적은 없으니까. 아마 라냐의 말이 맞을 거야.”

    유피테르는 가주의 펜던트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정령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아마 오래 산 에고일 수도 있었다. 쌍둥이들은 가주 선정의 의식 때 한 번 만난 이후로는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도 확신이 없었다.

    “그럼…. 만약 옴팔로스가 범인이라도 잡범은 아니라는 거네요. 좀 더 총체적인 계획을 세운 인물이라는 거죠?”

    “내 생각은 그래. 정보가 적어서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럼 학장은 왜 범인으로 지목이 안 되는 건지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클리오나가 납득하고서 조용히 하자 다음으로 나선 건 유알라냐였다. 그녀는 유피테르에게 학장 범인 설의 부족한 점을 물었다.

    학장이 범인이라면 지금까지 모았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으니까.

    만약, 학장과 옴팔로스 사이의 계약이 아슬아슬하다고 해도 문제없었다. 계약한 이상 결계에 구멍을 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 마나의 이해를 담당하던 이사야 교수를 협박하거나 조종할 수도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강한 힘을 가진 마법사였으니까.

    “솔직히 나도 아직 망설이고 있어. 학장과 이사야 중에서 누가 범인인지.”

    그 말대로였다. 유피테르는 분명 뛰어난 두뇌와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전지전능한 건 아니었다. 그가 배워서 알고 있는 것에만 해박할 뿐이었다.

    모든 걸 다 알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신과 ‘그녀’ 뿐이었다.

    유피테르는 ‘그녀’의 후계자이자 칼리스토의 새로운 마스터로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럼 소거법으로 가보도록 해요. 한 사람씩 의견을 내놓고 왜 안 되는 건지.”

    유알라냐는 살짝 흔들리는 듯한 유피테르를 붙잡았다. 그는 흔들리면 절대로 안 되는 존재였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둥이 흔들리면 성이 부서지는 법이었다.

    혹시, 범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진범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사야 교수가 마족의 계약자이기 때문에 이상한 펜던트를 치료제라고 속인 거 아닐까, 마스터.”

    차례를 기다렸던 오흐트 역시 의견을 내놓았다.

    그녀가 델포이에 유학 오고 나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사야 교수는 원래 좋지 않은 말이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이상한 구석이 있었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물론, 강의 실력은 괜찮은 편이어서 다들 쉬쉬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계약자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단순히 조종당한 것일수도 있으니까요.”

    유알라냐가 곧바로 그 의견에 반박했다.

    마족의 마나를 받아들여 반마족이 되어버린 자들은 대부분 성격이 공격적으로 변하기는 했다. 그러나 일부 마족은 사람을 조종하는 정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가 조종당해 일을 벌였다는 가능성도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런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애초에 두 사람 모두 마족의 계약자라는 가설은? 상당히 그럴듯합니다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트리아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잔잔한 그녀의 목소리가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마족의 계약자가 두 명이라는 발상은 확실히 신선했다.

    모든 마족이 계약자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원한다면 계약자는 여러 명으로 늘릴 수도 있었다. 조사 전문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아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럼 한 마족이 여러 명의 계약자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네.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마스터.”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게 마족들의 흔한 수법입니다. 그러다 자멸하는 순간을 즐기며 비웃는 거죠.”

    오흐트의 말에 성국 출신이었던 클리오나가 대답했다. 델포이에 오기 전 성국에서 공부했던 그녀는 마족의 비열한 수법을 아주 싫어했다.

    “최악의 경우 잡혀간 아카데미 생 전부가 마족의 계약자로 변해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맞습니다. 신의 말씀대로입니다. 계약자의 경우, 마족 소환 마법진의 성공률이 올라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델포이 아카데미 생이라면 아무나 골라도 괜찮은 마나를 지니고 있겠죠.”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유피테르가 모두가 눈을 돌리고 있던 문제를 꺼냈다. 그리고 트리아가 나서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했다.

    그랬다.

    아카데미 생들은 제 발로 나간 것이 아니라 납치에 가까운 실종을 당했다. 이 사건의 범인이 마족이나 계약자라면 아카데미 생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특히, 그들의 목표가 분노의 공작을 이곳으로 불러내는 것이라면 더욱.

    “어떻게 해야 할까 마스터. 델포이 일원 전부를 확인해볼 수는 없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아군도 적은걸. 마족이 상대면 언제나 이렇게 골치가 아프네.”

    골치 아픈 일은 딱 질색인 오흐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구실의 창문이 천천히 열렸다. 생각도 못 했던 일이라 모두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아, 바람의 정령들이 무언가 정보를 가지고 온 것 같네요. 무언가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유알라냐의 부탁에 정령들은 델포이 곳곳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 중 바람의 정령 실프가 연구실에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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