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사냥의 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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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피테르는 트리아가 내민 보고서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서류를 읽는 그의 눈동자는 그 어떤 마법보다 신속하고 정확했다. 많은 양의 내용 중에서 카테리나의 실종 사건과 관련 있는 부분만 빠르게 확인했다.
“마족들이 단체로 돌아버린 건가. 아니, 카테리나가 내 가족인 걸 알고 일부로 데려간 건가?”
“아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파벌에 속한 마족들은 신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잘 알 겁니다.”
보고서의 결론은 간단했다. 티아나를 괴롭혔던 마족 이외에도 두 명이 더 있다는 것. 그게 옴팔로스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마족인지 아니면 계약자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실종 장소에 마족의 마나가 당당히 남아있었기에 오히려 의심만 증폭시켰다. 마치, 자신을 찾을 능력이 된다면 찾아보라는 것같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마족들은 더는 숨어 있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서 카테리나를 데리고 간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트리아는 부정했다. 상황은 그럴듯해 보였으나 공작의 파벌에 속해있었다면 유피테르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을 리 없었다.
7명의 마족에게 중상을 입히고, 마왕을 순살(瞬殺)했던 후계자를 잘 못 건들면 그날이야말로 아마겟돈이 오는 날이니까.
“하지만 대체 왜? 아카데미 생을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걸까. 차라리 교수 쪽이 쓸모가 많을 텐데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족들의 꿍꿍이를 알 수가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마법이 개발되기 전. 많은 마나를 보유했던 자들을 에너지원으로 희생시킨 적이 있었다. 이는 인류에게 있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마법을 쓰지 못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몬스터에 대항할 수단이 없었으니까. 몬스터에게 죽고 싶지 않아 마나를 지닌 자들을 공물로 바쳤다. 당시에도 몬스터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탐했으니까.
마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건, 잊혀진 시대를 간신히 끝낸 신 인류에게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적어도 마족은 인간의 마나를 노리는 몬스터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마족들의 생각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마족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마족뿐이지. 에키드나에게 연락한다고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파벌이 다르면 제어도 못 하니까.”
유피테르는 그를 사랑하는 마족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족은 파벌 간 싸움이 엄청난 종족이었다. 그 모든 파벌을 다스릴 수 있는 건 마왕 파론 뿐이었다.
파론이 죽고 에키드나도 마왕 대리의 직무를 벗어난 지금. 마족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유알라냐를 찾아가 봐야겠어. 내게 하지 못한 이야기라도 엘프에게라면 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리나를 찾는 게 제일 급해. 트리아 넌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신이시여.”
정보 수집 임무를 맡고 있던 트리아를 전투 대기로 돌린 유피테르는 즉시 유알라냐가 사는 엘프의 비밀 공간으로 향했다. 카테리나가 소개해 준 이후 꽤 많이 갔었기에 길을 헤매지 않고 곧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오셨나요. 카리나가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비밀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유알라냐는 바로 핵심 질문을 찔러왔다. 엘프의 동선이 한정적이라고 해도 카테리나의 실종은 상당히 큰 규모의 사건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생 중 일인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었으니.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혹시 네게 한 이야기 중 실마리가 될 만한 건 없나?”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평소와 같이 수다를 떨 뿐이었어요.”
유피테르의 질문에 엘프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카테리나가 이곳에 왔을 때 차를 마시며 했던 이야기를 빠르게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딱히 키워드가 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유알라냐를 보며 그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여동생은 이 엘프와 꽤 친하게 지내서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으니까.
증거는 없었고, 여동생도 없었다.
“딱히 없는 것 같네. 여기서도 막혀버린다면 결국 옴팔로스를 만나야 하는 건가.”
“옴팔로스요? 그 빌어먹을 아티팩트는 또 왜요?”
갑자기 나온 아티팩트의 이름에 유알라냐가 귀를 쫑긋 세우고 물어보았다. 그녀에게 있어 옴팔로스는 대마법으로 자신을 죽일뻔한 위험한 존재였다. 유피테르가 있어서 살아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카데미 생들이 실종된 것과 옴팔로스가 무슨 관계인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옴팔로스는 에너지원이자 결계를 펼치는 등 델포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는 아티팩트일 뿐일 테니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리는 없었다. 아티팩트에 에고가 있다고 해도 그건 신이 직접 만든 인간이란 존재들과 비견될 수는 없었다.
“카테리나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모습을 본 게 빌어먹을 아티팩트라고 하더군.”
유피테르가 그녀에게 점과 점을 잇는 단서를 제공했다. 그걸 들은 유알라냐는 잠깐 고민하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카테리나가 옴팔로스의 결계 뭐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긴 한데 말이죠.”
점과 점을 이어주는 힌트가 선도 아닌 면이 되어서 되돌아왔다. 옴팔로스의 결계를 뚫고 온 방법은 유피테르가 고심했던 부분이었다. 이 상황에서 결계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산산이 조각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연이란 가면을 쓴 필연이었으니까. 단지, 인간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결계, 옴팔로스 그리고 마족이라. 재미있는 조합이네.”
세 개의 키워드가 이어지자 유피테르는 씩 웃었다. 여동생의 실종은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라 조금은 답답했었다. ‘그녀’와 함께 있었을 때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마족이요?”
유알라냐에게 있어 델포이에 마족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애당초 그녀를 이곳으로 안내한 트리아는 안전 하나는 자신했다. 트리아의 안목을 믿었기에 델포이에 정착했고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마족이 있다면 평화가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건 엘프의 삶에 있어서 절대로 좋은 게 아니었다.
“마족 세 명 정도가 델포이에서 암약하고 있다. 학장은 실종 사건을 그중 하나의 소행으로 추측하고 있더군.”
“세상에나 마족이라니 그건 끔찍하네요. 원래 대륙 북쪽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로 아는데.”
하이 엘프여서인지 아니면 트리아에게 들었는지 그녀는 유피테르와 마족 간 이루어진 조약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잊혀진 시대 이후 인간과 마족은 알게 모르게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인간에게 있어 마족은 두려운 존재였었기에 당연했고, 마족에게 인간은 귀찮은 생명체였으니까. 대부분 약한 존재들이었지만, 하나가 되어서 뭉치면 쉽게 해결하기 어려워졌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뭉치지 못하게 수면 아래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왔다. 이는 평범한 인간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성국의 교황과 성녀 그리고 ‘그녀’ 만이 이 사실을 알고 대비책을 세워두었다.
“그래 얼음성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마족이 요즘 들어 너무나도 활발한 거 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이렇게 적극적인 마족이라니 새로운 마왕이라도 생긴 건가.”
‘그녀’와 작별한 이후 유피테르는 마족의 동향을 칼리스토들에게 맡겨두었다. 칼리스토 들은 ‘그녀’가 직접 모으고 키웠던 자들답게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마족에서 신경을 끌 수 있었다.
“전대 마왕이 죽었어요?”
마왕의 죽음에 대한 소문 역시 일반적인 인간들에게 퍼지지는 않았다. 그건 하이 엘프의 숲에서 꽤 떨어져 있었던 유알라냐도 마찬가지였다. 엘프의 왕족 같은 존재라고 해도 숲을 나간 엘프는 더는 그런 취급을 받지 못했으니까.
“죽었지. 아주 처절하게 말이야. 그 이후 새로운 마왕이 등극했다는 소리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돌아가는 상황이 아주 이상하네.”
유피테르가 알기로 마왕 대리는 에키드나였다. 일곱 명의 공작 중 가장 강한 마족이었으니까. 게다가 난해한 성격까지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포인트가 높았다.
그러나 얼음성에서 잠깐 재회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마왕 대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부족한 정보들을 가지고 몇 가지의 가능성을 추려냈다. 그 결과 에키드나가 마왕이 되었을 경우와 다른 마왕이 등극했을 경우가 가장 확률이 높았다.
에키드나가 마왕이 되었다면 얼음성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마왕이 직접 인간 세계로 오는 건 그만큼 위험이 컸다. 인간들이 아닌 ‘신’들이 아직 남아있었고 유피테르의 힘을 추종하는 가장 큰 팬이었으니까.
잠시 고민하고 있던 유피테르를 다시 깨운 건 유알라냐의 말이었다.
“그럼 실종 사건을 파보기 위해서는 옴팔로스를 만나러 가야 하는 거네요?”
“그렇게 되겠지. 때마침 위치도 알고 있으니까. 네 정령술의 도움이 아주 컸어. 고마워.”
유피테르는 엘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가 그의 아버지와 가장 다른 점은 단 하나. 실수에 미안함을 고마운 일에 감사함을 제대로 표시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카르멘 비제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남들에게는 엄하고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상냥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자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얼음성은 공포로 지배되고 있는 곳일 뿐이었다. 공포의 존재가 사라지자마자 유례없이 흔들린 게 증거였다.
“바로 가실 건가요? 위험할 수도 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사악한 마음을 지닌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이 일을 준비해왔다는 예감이 드는걸요.”
정령과 계약을 맺은 엘프의 감은 정확한 편이었다. 정령이란 자연의 의지를 보여주는 존재였으니까. 자연은 어떠한 존재보다 깊이 들을 수 있는 귀와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존재였다.
“내 힘을 너는 알고 있잖아. 트리아에게 듣지 못했나?”
“지금까지 힘의 절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마족을 쉽게 보시면 안 된다구요.”
믿고 있었던 카테리나의 실종 이후여서 유알라냐는 잠깐 주저했다. 가장 친했던 언니 트리아에게 들어 저 은발의 후계자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공간 이동을 사용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다.
그는 아티팩트의 힘을 빌렸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볼 때 그건 오로지 유피테르의 힘이었다. 당장, 그녀의 언니 트리아도 빛 마법을 사용한 이동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들의 주인이 불가능할 리는 없었다.
만약, 저 유피테르마저 실종된다면 이번 사건은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단순한 마족의 장난에서 인간과의 전면전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그건 내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지. 마왕을 죽인 사람이 바로 나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유피테르의 목소리에는 자랑하려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마치, 어제저녁으로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었다는 것처럼.
“마왕을 죽인 사람이… 유피테르 님이라구요? 뭐,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가 있으니 더는 놀랄 일도 아니겠죠. 언니가 말해준 대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카리나를 꼭 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