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75화 (75/265)
  • 고요한 밤, 사냥의 밤(1)

    * * *

    카테리나가 직접 밤의 유혹사건을 조사한다는 소문이 돌고 일주일이 지난 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유피테르에게 전해졌다. 학생회의 일원 중 유피테르와 친분이 있는 리오나가 연구실로 뛰어 들어와 학생회장의 실종을 알린 것이다.

    “유, 유피테르 교수님. 카리나, 카테리나 회장님이 실종되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

    떨리는 그녀의 말투에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델포이 랭킹 1위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일은 정말로 충격이었으니까. 심지어, 그녀와 가장 친하던 사람이었기도 했으니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리나가 실종되었다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를 마시러 왔잖아?”

    유피테르는 부회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카테리나는 처음 사건 조사를 할 때, 그에게 비밀로 했었다. 물론, 그는 오흐트로 인해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카데미에 녹아든 오흐트의 정보망은 얕잡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유피테르는 사라져버린 아카데미 생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전혀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학년, 출신, 신분, 랭킹 등 어떠한 기준점을 두더라도 전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오직, 델포이 아카데미 생이라는 것뿐이었다.

    유피테르와 같은 곳에 다다랐던 카테리나는 오라버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렸을 때부터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유피테르가 자연스레 떠올랐으니까. 친애하는 오라버니라면 정답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 새벽에 카리나가 무언가에 홀려 밖으로 나간 것 같다고 합니다.”

    “같다는 건 대체 무슨 표현이야. 정확하게 말해 봐.”

    유피테르가 클리오나를 다그쳤다. 부회장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동생이 실종되었다는 말은 평정심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 달의 몰락 이후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 덕에 그는 이전에 몰랐던 가족애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녀’ 만큼은 아닐지라도 가족 역시 충분히 소중한 존재였다. 특히, 카테리나의 경우 델포이 아카데미에서 같이 있었기에 더욱 가까워졌다.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영역에 포함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게… 아무도 카리나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학생회 서기가 카테리나를 찾아다녔다고 하지만 만나지는 못했답니다.”

    “진정해. 크게 심호흡해. 그래 그런 식으로 호흡을 가다듬고서 천천히 말해 봐. 리나는 학생회장에 델포이 랭킹 1위라 기숙사를 혼자 쓰잖아? 애초에 리나가 나갔다면 아무도 못 봐야 정상이야. 대체 나간 것 같다는 추측은 어디서 어떻게 퍼진 거야.”

    어쩔 줄을 모르는 부회장 클리오나를 보며 유피테르는 침착해질 수 있었다. 옴팔로스 사건 때 초조해져서 정령이라는 쉬운 방법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떠올렸다. 이건 그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과거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돌이켜보면 초조하거나 들뜬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으니까.

    “카리나의 마지막을 봤다고 주장하는 건 델포이 중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아티팩트 옴팔로스입니다. 에고가 학장님께 경고했다고 합니다.”

    “제단에서의 그 말이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군?”

    옴팔로스의 제단에서 공간 이동을 하기 전, 그 아티팩트는 유피테르 일행에게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자신을 저격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옴팔로스가 두 번째 열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그곳에 다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답은 그게 아니었다. 리나가 갑자기 실종되고 유일한 증거를 옴팔로스가 가지게 되는 구도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그때 그 일로 저희에게 앙심을 품고서 이번 일을?”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어차피 너도 알게 될 테니 미리 말해주도록 하지.”

    부회장은 옴팔로스의 제단에 몰래 침입했던 일 때문에 카테리나가 실종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유피테르가 생각하기에 그건 지나친 생각이었다. 옴팔로스 정도의 마법 실력이라면 이렇게 귀찮은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옴팔로스가 아카데미 생에게 악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관리자인 학장이 모를 리 없었다. 누구보다 아카데미를 사랑하는 그녀가 에고의 고삐를 단단히 잡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만약 목줄도 없이 강대한 힘을 지닌 아티팩트를 자유로이 뒀다면 그녀는 지금과 같은 명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교수님?”

    “마나 감소증을 앓던 티아나 리스테인에 대하여 알고 있나. 리오나 부회장.”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병에 걸린 불쌍한 후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관의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얼마 전 복귀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까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라도 풀려고 하는 듯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후배가 그러더군요.”

    티아나 리스테인을 모르는 델포이의 구성원은 없었다. 병에 대한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려운 입학시험을 뚫은 수석 입학생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학생회 부회장 클리오나는 유망주들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그게 델포이 부회장의 업무였으니까. 카테리나에 어울리는 부회장이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한 결과였다.

    “사실, 그건 병이 아니라 일종의 저주와 비슷한 거다. 마족의 짓이었지.”

    “마, 족이라고 하셨습니까? 달의 몰락 때와 같은 자가 설마 이곳에…. 델포이에서도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거라면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클리오나는 성국 출신답게 마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진정하기는커녕 흥분했다. 그녀는 마족에 대한 본질적인 증오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분노는 달의 몰락 사건을 보며 더욱 강해졌다.

    레아교의 경전을 마음의 양식으로 하는 그들에게 마족은 틀림없는 인류의 적이었다.

    “아니, 같은 마족은 아니야. 다만, 티아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섣부르게 마족을 자극한 것 같기는 하군. 이번 적은 꽤 교활해.”

    “그렇습니까…. 그럼 그 소문처럼 티아나를 치료한 건 유피테르 교수님이시군요. 역시, 카리나의 오라버니는 뭔가 다르셔서 존경스럽습니다.”

    “최근에 사라진 학생 명단을 좀 찾아서 가지고 와줄래? 난 학장과 담판을 지어야겠어. 옴팔로스는 그 뒤의 문제야.”

    “알겠습니다.”

    옴팔로스가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 있든 간에 상관없었다. 이번에야말로 학장과 담판을 지어 진실을 확인해야 했다. 유피테르는 굳게 다짐했다. 그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전부 말하게 만들자고. 피티아가 유피테르의 상사라는 건 상관이 없었다.

    학생회장 카테리나 아르테미스가 사라진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리오나와 대화를 마친 유피테르는 그대로 학장실로 찾아갔다. 메르카르트로 강화한 그의 육체는 마치 전설 속 드래곤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주변을 걷고 있던 아카데미 생들이 폭풍이 부는 거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였다.

    학장 집무실에 도착한 그는 문을 열어젖히고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노크? 그건 지금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사치였다.

    “옴팔로스에 대해 뭘 알고 계시죠?”

    “예의가 없군. 유피테르 특별 교수. 학생회장의 일 때문에 온 거겠지. 일단 앉게나. 그렇게 흥분해봤자 손해만 볼 거야.”

    그가 학장실로 들이닥칠 것을 예상했는지 피티아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유피테르를 더욱 자극했다. 아카데미 생이 사라진 이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화가 났었는데,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이니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피티아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고 있는 저 얼굴이 꼴도 보기 싫었다.

    “제대로 된 대답부터 해주시죠. 마족이 옴팔로스가 만든 결계를 뚫고 들어온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당신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만 계속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달의 몰락 때도 비슷했잖아? 얼음성의 결계 속에서 에키드나라는 마족이 마음대로 활보했다고 들었는데? 학장의 일이란 게 생각보다 바쁜 거란다. 옴팔로스 역시 현자의 돌이 아니야.”

    유피테르가 제기한 의문을 피티아는 사실을 무기로 해서 부숴버렸다. 달의 몰락 사건 때 에키드나는 무도회장에 간단하게 진입했다. 세아니아 대륙의 사람들은 카르멘이 배신해서 미리 얼음성의 결계를 무력화시켰다고 알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진실은 숨겨져 있었다. 애초에 에키드나가 미리 결계석을 빼돌렸다는 사실은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녀’를 구하기 위한 열쇠들을 다른 자가 선점하려는 걸 막기 위해서. 자신을 방해하는 건 에키드나로도 충분했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아닐까 하는데 말이죠.”

    “학생회장의 실종이라면 짚이는 곳이 있네. 사실은 자네도 범인을 알고 있지 않나?”

    안경 속에서 피티아의 눈이 빛났다. 사람의 속을 내다보는 듯한 눈빛을 받고서 유피테르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챘다. 여동생의 실종 이후 한시가 급했던 그는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옮겼다.

    “밤의 유혹사건의 범인이 마족이라고 하고 싶으신 건가요.”

    “조사해본 결과 옴팔로스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네. 자네가 티아나의 병이 마족 때문이라고 말한 이후 따로 사람을 보냈었지. 그래서 3명의 마족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냈네. 다만,”

    “다만? 뭐죠.”

    “마족이 누구로 변신해서 잠입해 있는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어. 아마 이번 사건의 범인은 세 마족 중 한 명이 주도해서 벌인 일이라고 추측하고 있네.”

    피티아는 유피테르에게 지금까지 알아낸 걸 말해주었다. 그녀는 마족이 델포이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현실이 바뀌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델포이 정보기관은 과거의 여러 사건을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티아나의 경우처럼 마족이 원인이 되어서 일어난 사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세력이라면 문제가 없었으나, 인간보다 강하고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마족은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마족의 존재를 확실히 하기 위해 그녀는 옴팔로스에게 여러 번 물었다. 하지만 델포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그저 세 명의 마족이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서 학장님께서는 책임이 없으시다고? 카테리나뿐만 아니라 열 명이 넘는 아카데미 생들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죠.”

    “잘 알고 있네. 해결책을 세우는 중이야. 옴팔로스와 교수들의 협조로 마족을 가리고 있네.”

    피티아가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학장이라고 해도 마족이 상대라면 고작 아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인류 중에서 마족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조디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12명뿐이었다. 물론,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건가요.”

    “글쎄. 대책이 없는지는 자네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 어차피 자네는 옴팔로스의 위치를 알고 있지 않나.”

    피티아의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버린 듯 유피테르는 그대로 학장실을 나가버렸다. 더는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태도에 그대로 담겼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수많은 거짓이 눈을 가리는 상황에서 너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래서 피티아 학장의 의미심장함이 가득 들어간 마지막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학장실에서 나온 유피테르는 근처에 있는 교수용 기숙사로 빠르게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움직임은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트리아. 지금 바로 올 수 있나?”

    “신이시여. 무슨 일이십니까. 아직 마족에 대해 전부 조사를 끝마치지는 못했습니다만.”

    유피테르는 통신 마법으로 조사 중이었던 트리아를 호출했다. 그러자 빛 속에서 트리아가 나타나 유피테르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유피테르의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테리나가 사라졌다. 학장은 마족의 짓이라고 보고 있어. 그러나 학장 역시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보고하겠습니다.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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