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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74화 (74/265)
  • 인간과 마족 사이(11)

    * * *

    “티아나 혹시 너와 다르게 마나가 갑자기 늘었거나 하는 아카데미 생들이 있니? 이런 저주는 하나만 있을 리 없어. 질이 나쁜 마법이니까. 당연히 여러 명에게 걸었을 거야.”

    유피테르는 마법을 성공적으로 사용해 기쁨에 젖어있는 티아나를 에게 물어보았다. 그녀의 독 마법은 예전과 같은 위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발동했다.

    천천히 나아가는 독은 결계의 일부분을 감염시키는 데 성공했다. 티아나는 마나가 자신의 말을 듣고 이동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이제, 노력하면 예전과 같이, 아니 예전보다 더 위로 향할 수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티아나는 너무나 놀라 토끼 눈으로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저 교수가 델포이에 온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델포이의 전설로 은근히 퍼져 있던 내용을 물어보았으니까.

    자신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과는 별개로 갑작스럽게 마나의 성질이 흉포해지거나 양이 늘어난 아카데미 생들도 있었다. 제어가 힘들어도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는 걸 보고 한없이 부러워했었다.

    0과 1의 차이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깊었으니까.

    “마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만이 아니니까. 이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지.”

    “역시, 마나의 이해 교수님이신가요….아, 저주를 건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해치워주셨나요?”

    정신을 잃은 덕에 티아나는 저주를 건 마법사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진실을 모르는 게 행복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이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저주를 건 자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죽지는 않았고 이제 마음먹고 찾아봐야지. 생각보다 일이 귀찮게 되었거든. 복수가 하고 싶은 거니?”

    “맞아요. 가능하다면 제 손으로 하고 싶지만, 불가능하겠죠?”

    티아나가 유피테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정신을 잃어서 잘 기억이 나지를 않았지만, 적 마법사의 공격을 자신은 막지 못했다는 건 확실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무슨 마법인지도 파악하지도 못했다.

    그건, 상대가 자신보다 확실히 위라는 걸 의미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으니 확실히 그건 무리일지도.”

    오흐트가 티아나가 복수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지했다. 특별 유학생이 아니라 그녀의 병을 고친 치유사의 자격으로 말한 것이었다. 마나가 티아나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지만, 바로 예전과 같은 힘을 보여줄 순 없었으니까.

    게다가 마족의 마나를 전부 제거하긴 했지만, 그걸로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비슷한 사례가 부족했다. 지금은 그저 천천히 회복하며 추세를 봐야 할 시기였다.

    강제로 마나를 빼버린 부작용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알았어요. 치료해줘서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오흐트. 유피테르 교수님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별말씀을. 오늘은 기숙사에 가서 푹 쉬어.”

    “마나의 이해 강의에서 나아진 실력을 보여준다면 충분해. 빠르게 회복해 마블링 예선에서 활약한다면 더 좋고.”

    티아나는 계속해서 울먹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단 한 명도 고치지 못했던 병을 이 두 사람은 고작 며칠 만에 해결해주었으니까. 정말로 신이 있다면 이 만남에 백일기도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오흐트는 엄마의 미소를 지었고, 유피테르 역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고의 감사 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별한 목적이 있던 게 아니라, 단지 구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티아나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서, 오흐트와 유피테르를 껴안고 울다가 기숙사로 향했다. 올 때와는 다르게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단 하나의 절망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유피테르는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티아나가 떠나자 웃고 있던 유피테르와 오흐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마족이 저렇게 당당하게 활동하는 건 생각보다 좋지 못한 징조였기에. 누구보다 세계를 사랑하는 ‘그녀’의 의지가 허무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역시 마족 다 죽여버릴까? 마스터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아냐. 마족이라고 해서 전부 죽이면 그녀의 뜻에 어긋나게 되잖아? 일단은 왜 이곳에 있는지 더 알아보자.”

    칼리스토 선에서 마족을 정리하겠다는 말에 유피테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를 위해 모였던 칼리스토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트리아의 정보만 기다릴 수는 없지. 오흐트 네가 아카데미 생 주변에 숨어서 특별한 일이 벌어졌던 소문들을 전부 모아와. 혹시라도 마족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마스터.”

    그 말을 끝으로 오흐트도 연구실 밖으로 나갔고 유피테르 역시 간단하게 연구실을 정리했다. 청소하며 그의 마법은 다른 무엇보다 정리에 특화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왜 하필 티아나를 골랐는지 그걸 알아야 해. 마족들이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면, 그들의 협력자가 한두 명일 리는 없어.’

    아직도 마족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앞으로의 방침이 정해진 후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델포이 아카데미에는 두 개의 큰 소문이 퍼졌다.

    첫 번째는 티아나 리스테인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1년 이상 고통과 멸시를 받았던 그녀는 당당히 실기 수업에 참여했고, 마법을 선보였다. 그녀가 회복했다는 걸 학장 피티아가 직접 공인했다.

    “티아나 리스테인 양의 병은 신관에 의해 제대로 회복되었으니 이 점을 의심하지 마세요.”

    가끔, 유피테르와 오흐트가 치료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오흐트가 능숙하게 소재를 돌렸다. 칼리스토 중에선 젊은 편인 그녀도 학생들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았으니까.

    “그 오흐트라는 특별 유학생의 마법 치유 계통이지 않아? 게다가 유피테르 교수님께서 직접 데려왔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혹시….”

    “내가 마나 감소증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델포이가 아니라 신성 기관의 마스터로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오흐트가 나타나자 혼비백산하며 이야기가 끊어졌다. 실제로, 오흐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희귀병 치료의 종착지는 언제나 크레이타였다. 그곳의 최고 연구소가 신성 기관에 속해있었으니까.

    마나 감소증은 이름도 익숙지 않은 희귀한 병이었다. 그러나 티아나라는 환자가 있는 이상 병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료되었다는 것 역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건 그러네?”

    “그치? 혹시 에메리아 교수님 과제 다했어? 마법식이 너무 복잡하던데.”

    오흐트의 유도에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과제가 너무 어렵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으니 유피테르가 원했던 내용도 화제로 올라왔다.

    “오흐트 혹시 그 소문 들었어?”

    “어떤 소문? 유피테르 교수님의 팬클럽에 교수님들도 포함되어 있는 거?”

    “그래 그거그거. 학장님도 팬클럽 소속이라는 소문이 있어. 아, 아니 이게 아니라. 그 밤의 유혹사건 말이야. 내가 아는 선배님도 사라지셨대.”

    두 번째는 오흐트의 친구가 말한 실종 사건이었다. 깊은 밤 중 아카데미 생들이 한두 명씩 사라졌다. 룸메이트의 실종 신고를 받고 전문팀이 조사에 착수하자, 어떠한 전조도 없이 그냥 연기처럼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실종자는 밤에 사라졌기에 이 사건에는 ‘밤의 유혹’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유례없는 사건에 아카데미 생들은 무서워했으나 이내 범인이 잡힐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실종 사건은 학년과 강함에 상관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발생했다. 그나마 빠르게 조사가 이루어지고 조치가 취해져서 실종자가 확연히 늘지는 않았다. 야간 통행 자체를 금지해버려 아무도 나갈 수 없었으니까

    “밤의 유혹 말이지? 밤에는 최대한 나가지 않는 거 알지? 다들 조심해야 해. 이곳에는 중추석이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오흐트는 유피테르에게 들어서 옴팔로스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전대 마스터를 구할 수 있는 두 번째 열쇠로 의심된다는 사실 역시.

    유피테르와 칼리스토들은 이 사건의 범인을 마족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티아나의 몸에서 마족의 마나를 몰아낸 이후부터 이 사건이 시작되었기에. 두 개의 사건이 관련이 없다기에는 너무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러게. 학생회에 소속되어있는 몇 분도 순찰하다가 사라지셨대. 너무 무섭다.”

    “이거 혹시 마블링에서 우리 견제하려는 다른 아카데미의 공격 아닐까?”

    “에이 설마….”

    조심하라는 오흐트의 말에 다른 아카데미 생들이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한 명은 학생회의 일원이 사라졌다는 정보를 말하자 그에 이어서 다른 한 명이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마블링은 마법사와 아카데미에 있어 최고의 영예였다. 그래서 다른 아카데미에 테러를 감행하는 것도 들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강한 세계에 살고 있었다.

    “빨리 실종자들이 발견했으면 좋겠다. 카테리나 님이 제대로 조사하신다니까 확실히 해결될 거야.”

    “그럼그럼, 회장님은 최강이신걸. 마블링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잖아.”

    카테리나에 대한 아카데미 생들의 믿음은 확고했다. 워낙 강력한 마법을 펼쳐내는 마법사기도 했고, 그녀가 회장이 된 이후로 해결한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교수급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아카데미 생들 중에선 확실하게 최강이었다.

    “그래. 그럼 나는 강의 들으러 갈게. 나중에 또 봐.”

    “잘 가 오흐트.”

    “중간고사 끝나고 살아서 보자.”

    오흐트는 필요한 정보를 어느 정도 들었기에 작별인사를 나누고 자릴 떴다. 이 정보를 그녀의 마스터에게 전해주는 것이 진짜 임무였으니까. 델포이에서 지내는 건 두말할 필요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칼리스토의 일원이었다. 임무를 잊어버릴 리 없는 최고의 치유 마법사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통신 마법을 이용해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유피테르에게 전해주었다. 교수가 얻을 수 없는 정보의 출처는 대부분 오흐트였다. 오흐트는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엄청난 친화력과 치유 마법으로 금세 델포이의 일원이 되었다.

    “마스터. 여동생분이 밤의 유혹 사건 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거 알고 있어?”

    “저번에 같이 식사할 때에는 그런 말 없었는데. 비밀로 하려는 건가. 뭔가 커가는 딸을 보는 느낌이네.”

    “가끔, 마스터의 감성을 이해할 수가 없어. 너무 나이 든 거 같아. 전대 마스터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네.”

    “이 사건의 용의자 후보가 대충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계속 정보를 모아줘. 마족 사건을 해결해야. 옴팔로스에 집중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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