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73화 (73/265)

인간과 마족 사이(10)

* * *

마족의 마나로 보이는 어두운 기운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졌다. 그게 인간이 마족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이 두 존재는 애초에 어울릴 수 없는 존재였다.

유피테르는 티아나에게서 빠져나오는 어둠의 기운을 한 곳으로 모았다. 마족의 마나를 인간이 제어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손짓만으로도 어둠의 마나는 홀린 듯 따라왔다.

달콤한 과자 향기에 끌려간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책처럼 말이다.

감히 어떤 마족이 조약을 깬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마나가 필요했다. 한 줌의 마나만 있어도 트리아를 통해 어떠한 파벌에 속한 마족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기분은 어때?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말해주렴.”

유피테르는 티아나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반마족을 치료하는 과정은 ‘그녀’도 알지 못하는 일 중 하나였다. 반마족은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의 예외라고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반(半)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애매한 존재였다.

“이 이상한 연기를 빼고는 딱히 아무런 일도 없어요. 아프지도 않고요. 그래서 이 연기는 뭔가요? 저주를 해제할 때 이런 게 나오는 건가요.”

그녀는 몸에서 어두운 연기가 빠져나오는 것을 신기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건 치유 마법을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도망치는 마족의 마나였다. 그녀는 저주를 해제하며 나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티아나는 치유 마법과 함께 검은색 연기가 꾸역꾸역 나와 제대로 치료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피테르 교수는 해주를 해야 마나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다 없앨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흐트는 구슬땀을 흘리며 치유 마법을 펼쳤다. 그녀가 펼치는 원상복귀라는 마법은 굉장한 집중력이 있어야 했다. 시동어가 뜻하는 그대로 사람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었으니까.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대상의 상태를 이해하고 올바른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집중력과 마나가 필요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순수한 마음도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편견이 있다면 대상은 죽을 수도 있었기에.

“끝이 보이는군. 오흐트와 티아나 두 사람 모두 힘내.”

“저, 정말인가요? 정말로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점점 티아나의 몸에서 나오는 검은색 연기가 줄어들었다. 유피테르는 그걸 보고서 치료가 곧 끝날 것 같다고 알렸다. 몸을 잠식하고 있는 마족의 마나를 모두 빼내는 게 치료의 처음과 끝이었으니까.

“이럴 순 없어. 이 마법의 제어를 벗어날 수 있다니. 대체 어떤 마족이길래.”

끝이 보인다는 말이 무언가를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라도 된 걸까.

유피테르의 인도에 따라 한곳에 모여 있었던 마족의 마나가 확실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화난 얼굴 같기도 했고, 우는 얼굴 같기도 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인간의 얼굴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 뵙도록 하겠네. 인간 제군들.”

의지를 가진 마족의 마나가 말을 하는 상황에 연구실 안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제일 먼저 대답한 건 놀랍게도 티아나였다.

“당신이 내 몸속에 있는 저주를 건 존재야? 대체 내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한 거야.”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라는 모멸과 고통이 저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자,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과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저주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평범한 아카데미 생처럼 지냈을 것이었다.

아니, 입학 당시 수석이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델포이 아카데미를 대표해서 마블링에 참여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마블링은 관람객들에게 돈을 벌 기회의 장이기도 했지만, 마법사들에게서는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실제로 마블링에 참여한 마법사들은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뛰어난 마법사를 쉬게 해줄 정도로 행복한 대륙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아픈 행복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목이 아프지 않나.”

마족의 마나로 만들어진 형상이 걱정하듯 말했다. 그러자 티아나가 목을 붙잡으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떠한 마법도 쓰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쇼파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설로만 내려오는 언령(言靈) 마법 같았다.

오흐트 식 치유 마법 ― 과다 치유

티아나를 치유하던 오흐트는 황급히 달려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숨을 쉴 수 없는 듯 보이는 그녀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며 회복하기를 기다렸다. 큰 부상을 입었던 칼리스토들을 완벽하게 고쳤던 그녀의 마법이 이번에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

“마스터! 티아나가 위험한 상태에요.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주세욧!”

오흐트의 말을 들은 유피테르는 그녀 쪽을 한 번 흘끗 보고서 빠르게 움직였다. 설령 에키드나가 나타났다 해도 무서울 리 없었다. 그가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쪽이었으니까.

“마족인가.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기왕이면 본체로 등장하는 게 편했을 텐데 말이지”

“당신을 상대로 전면전을 시도할 간 큰 마족이 있을까? 패배가 정해져 있는 싸움에 발을 들이는 취미는 없다네. 그건 아름답지 않지.”

어둠의 마나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마족은 유피테르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유피테르가 ‘그녀’와 함께 마왕을 죽일 때, 곁에 있던 건 에키드나를 포함한 7명의 공작뿐이었다. 자연스럽게 하위 마족들은 그를 알 수가 없었다.

“에키드나의 파벌은 아닌가 보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야.”

“질투의 공작님이랑 친한듯하구나. 그분은 옛날부터 이해받을 수 없는 분이셨지. 고작 인간과 말을 섞으시다니.”

별 것 없는 말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큰 단서가 숨어 있었다.

“교만의 파벌이군.”

“역시 마족에 대해서 마족보다 더 잘 아는군. 박수를 쳐 드리고 싶지만…. 이 몸으로는 한계가 있어 아쉽군.”

환영처럼 마족의 마나는 실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메시지를 전하려고 모인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딱히 공격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고통받고 있는 제자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뻔히 보이니 티아나는 풀어주지? 종족 전체가 전멸당하고 싶지 않다면 말야.”

“당신의 이야기는 들어드릴 수밖에 없지. 이런 곳에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마족의 말이 끝나자마자 치유 마법도 듣지 않던 티아나의 고통이 멎었다. 티아나가 편안하게 숨을 내쉬자 오흐트는 문제가 있는 곳이 없는지 진찰했다. 그녀의 몸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몇 번이고 확인하고서야 안심했다.

“그래서 델포이의 아카데미 생에게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얘는 힘도 권력도 없는 그야말로 병아린데.”

“그건… 비밀이다만? 뭐, 당신이라면 언젠가 진실에 도달할지도 모르지. 그건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기도록 하겠네.”

유피테르의 협박에도 마족은 굴하지 않았다. 티아나는 풀어줬지만, 그가 왜 이곳 델포이에 있었는지는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곳에 나타난 거지?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잖아?”

“당신은 이 일을 끝내 막지 못할걸? 이건 경고다. 마족의 일에 너무 깊게 개입하려고 하지 마.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받을 테니.”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마족의 마나는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유피테르는 사라지는 마나의 일부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 마나를 결정화시켜 아공간에 집어넣은 후 오흐트를 쳐다보았다.

“마족들이 감히 제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군.”

“죽일까 마스터?”

오흐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결코 치유 마법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칼리스토의 일원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티아나가 주위에 있어서 살기를 죽이긴 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군. 에키드나부터 시작해서 마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마스터를 적으로 돌리는 용감한 바보도 있단 말이야?”

오흐트는 마족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자신들 칼리스토도 대륙에 있어서는 정점에 가까웠다. 현재 대륙의 최고 악(惡)인 마족과도 무리 없이 싸울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칼리스토의 마스터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는 감히 힘의 저울에 달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의 진정한 힘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으니까.

“티아나의 몸 상태는 어때? 아까 마족의 마법으로 충격을 받았을 텐데. 그래도 마족이 몸 안에 있었다는 걸 모른다는 게 다행인가.”

유피테르의 말이 맞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도 손가락질당하는 세계에서 마족이 몸 안에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면 그녀는 사형에 처했을지도 몰랐다. 마족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쓰러진 게 그녀에게는 행복한 일이었다.

“마족의 마나가 전혀 없어. 깨끗해. 아마 깨어나면 마법을 원래대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마스터.”

오흐트는 마지막으로 티아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단언컨대, 마족에게 당한 상처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치유 마법은 전대 마스터도 인정했으니까.

다만, 티아나가 부탁했던 대로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검사한 것이었다. 확인 결과 몸속 마나의 흐름은 막힘이 없었다. 이론대로라면 문제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티아나. 티아나? 일어나봐. 지금 안 일어나면 마법을 다시 못 쓸지도 몰라?”

오흐트는 검사 결과 이상이 없자, 은근히 무서운 말로 티아나를 깨웠다. 그 소리가 무서웠던 것인지 아니면 과다 치유 마법으로 상태가 좋았던 건지 바로 일어났다.

“아니, 마법을 못 쓰다니 그것만은 안 돼요. 제발요. 용서해주세요.”

그게 정신을 차린 티아나의 첫 마디였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일로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가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져 오흐트는 눈물을 글썽였다.

오흐트가 조금만 더 이 아이의 병을 알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덜어주었을 테니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흐트는 뛰어난 치유사였다. 당연히 환자를 보면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애초에 치유 마법사나 신관이 되기는 힘들었다.

“티아나. 문제는 해결했으니 마법을 써 보도록 해봐.”

“네. 유피테르 교수님.”

티아나 식 독 마법 ― 맹독 감염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무사히 끝낸 티아나는 유피테르의 말에 따라서 마법을 써보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정말로 오랜만에 마나를 움직여 결계를 노렸다. 아군이 있는 곳에서는 보통 사용하지 않았지만, 결계가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무엇보다도 치료가 끝났다는 말에 마법을 사용하고 싶어졌으니까.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다른 생각이 제대로 의견을 주장하지 못했다.

유피테르가 장담하고 오흐트가 담당한 치료의 결과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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