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70화 (70/265)
  • 인간과 마족 사이(7)

    * * *

    긴급한 상황에서도 유알라냐는 자신의 목숨보다 학생회 두 사람의 안전을 먼저 했다. 그리고 그건 유피테르의 마음에 쏙 드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숨겨왔던 본성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하늘을 수놓은 거대한 크기의 마법진들을 가뿐히 무시하며 시동어를 외웠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빛의 커튼

    마법진에서 다양한 마법들이 쏟아져나오려는 찰나 빛이 유피테르 일행을 다시 한번 감싸 안았다. 보기만 해도 따듯해지는 느낌의 빛은 그들이 원래 있었던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유피테르가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은 보내줄게. 곧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때에는 봐주지 않을 거라고.”

    다른 일행들은 눈 부신 빛이 시야를 가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옴팔로스의 말을 들은 건 딱 한 사람 유피테르뿐이었다. 그는 옴팔로스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으면서 오히려 두근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저기서 부들거리는 옴팔로스야 말로 그가 찾는 두 번째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강해졌으니까. 이 정도로 고대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옴팔로스가 저런 태도를 보이게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가 궁금하게 되었다. 옴팔로스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계약을 갱신해 온 피티아 라비린스 뿐이었다. 그녀가 델포이의 아카데미 생들과 교수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리 없었다.

    공간 이동 마법 덕에 일행은 고대 마법이 만들 축제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간발의 차로 사신을 만나지 않아도 되어 유알라냐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요. 게다가 소원권도 사용하지 않아 주시다니 정령왕이신가요.”

    “아니아니, 인간이라니까. 신 다음에 정령왕이라니. 이쯤 되면 다음에는 뭐로 불릴지 예상도 안 가는데.”

    마법사들에게 있어 꿈만 같은 존재들이 계속 언급되자 유피테르는 그냥 웃어버렸다. 그 말을 한 유알라냐 역시 엘프 중에서도 하이 엘프였으니까.

    엘프는 행운을 부르는 네 개의 잎을 가진 클로버보다 훨씬 찾기 힘들고 영험한 존재라고 인간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오죽하면 상인들의 나라에서는 엘프를 보면 대상(大商)이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오라버니 역시 강하시네요. 다음에 모의전 한 번 부탁드려요. 고대 마법진을 보며 새로운 마법을 생각해냈어요.”

    “교수님. 저도 그때에는 참가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자칫 잘못하면 고대 마법들의 포화에 휩쓸려 아침 해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카테리나는 향상심을 보여주었다. 고대 아티팩트를 직접 눈으로 본 후 현재 마법사들의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었으니까.

    고작 더블 캐스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과 비교할 때 멀티 캐스팅 능력은 대단하면서도 부러운 것이었다.

    옆에서 안도의 숨을 쉬고 있던 클리오나 역시 친구의 의견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능력은 조디악의 마법사나 성녀 이상으로 보였으니까.

    델포이에 입학한 후 카테리나를 목표로 삼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유피테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은발 교수의 힘을 보고 난 후에는 가장 소중한 친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문제는 없네. 라냐 너도 구경하러 올래?”

    “그럼요. 이곳에만 있거나 조용히 다니는 건 지겨우니까요. 저 아이들과 함께라면 뭘 해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유피테르의 권유에 유알라냐는 빠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엘프의 숲이라는 비밀 공간은 지루했다. 요리와 청소 그리고 허브를 키우는 건 즐거운 일이었지만, 밖에 잘 나갈 수 없다는 건 답답했으니까.

    “그럼,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즐거웠어 다들.”

    그 말을 끝으로 유피테르는 델포이라는 거대한 아카데미 속 숨겨진 엘프의 숲에서 나왔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열쇠의 실마리를 찾아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유피테르가 하이 엘프 유알라냐와 만난 후 며칠이 지났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유피테르도 델포이에 완전히 적응했다. 첫날부터 파란을 일으킨 그의 강의는 은근한 인기를 끌었다. 마나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했기에.

    이론과 실기가 적절히 혼합된 마나의 이해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가르치기 쉬운 강의였다.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직접 마법을 펼치며 보여주었기에.

    시동어만으로 다양한 마법을 보여주기도 하고, 원하는 위치에서 마법을 펼치며 요령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게다가 꿈의 기술이라고 불리는 더블 캐스팅을 성공시키며 단번에 인기 강의로 떠올랐다.

    “유피테르 교수님 강의 완전 쩔던데. 이 정도 실력이면 다른 실기 강의나 마블링 담당하셔도 될 것 같지 않아?”

    “그거 인정 또 인정. 곧 마블링 시즌인데 작년의 원수를 갚아주실지도 모르겠네. 그 저번에 더블 캐스팅 하는 건 진짜 대박이었어. 퍼스트 서클 마법 두 개를 그냥 써버리시던데.”

    “더블 캐스팅하시는 거면 조화 마법을 혼자서 펼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유피테르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높아져 두 사람의 다른 성질을 하나로 합치는 조화 마법을 혼자서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아무래도 그건 불가능하지 않냐는 의견이 강했어도, 혹시… 라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소문의 당사자 유피테르는 강의를 끝내고 연구실에서 아카데미 생들이 낸 리포트를 읽어보고 있었다. 이번 리포트의 주제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교수라면 중간고사로 낼 만한 주제였으니까.

    고대 마법의 마법식과 현대 마법의 마법식를 비교하여 논하라.

    그가 진행하는 마나의 강의는 늘 이런 식의 질문을 좋아했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 다양한 생각을 적는 게 고득점을 받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배경 지식이나 깊은 생각 없이 답을 적는다면 F라는 점수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유피테르가 생각하는 마법사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존재였다. 정말로 그들이 세컨드 서클을 이루고 싶다면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했다.

    “생각보다 형편없는 답들이 많네. 리나와 리오나의 수준이 평범하지 않았던 거군.”

    “그러니 아카데미로 배우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신께서는 고작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칼리스토의 일원 중 한 명인 트리아가 신성한 분위기의 빛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그녀에게 있어 이 은발의 후계자는 신과 다름이 없었다. 전장의 발키리라고 불리는 그녀들 전부가 작정하고 덤벼도 이길 수 없었으니까.

    “트리아? 정보 수집이 끝난 거야? 신이라는 표현 자주 들으니까 정겨워지려고 하네. 그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지.”

    “그렇습니까? 보고서로 정리해왔습니다.”

    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유피테르에게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는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10명의 칼리스토 중 정보 수집 및 처리능력이 뛰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전투력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야호― 마스터 나도 왔다고 인사해줘.”

    “오흐트? 넌 부르지 않았는데? 네가 왜 여기서…?”

    트리아 뒤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놓은 귀여운 소녀 오흐트가 유피테르에게 인사했다. 작은 키에 귀여운 체구였지만, 그녀 역시 전장의 발키리라고 소문난 칼리스토의 일원이었다.

    “또 차와 케이크를 노리고 온 거야? 넌 어떻게 새로 찻잎을 받아오면 나타나니.”

    “에헤헤. 그게 내 장점인걸. 마스터의 차는 에나스 언니의 것보다 훨씬 맛있는 걸 어떡해. 심지어 요리도 잘하잖아.”

    오흐트의 말대로 칼리스토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나스는 전투 상황에서는 최강이었지만, 가사에서는 최약이었다. 최강의 발키리임에도 항상 노력하는 그녀를 싫어하는 자매들은 없었지만.

    칼리스토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오흐트에게 그건 너무 참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도 처음부터 먹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마스터가 만들어준 요리와 디저트 그리고 차는 도저히 사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자매들이 자신에게 눈치를 주든 말든 상관 없었다. 이번 마스터는 전대에 비한다면 아주 상냥해서 그 정도는 괜찮다고 언제든지 오라고 말해주었으니까.

    “뭐, 대충 올 때라고 생각하긴 했어. 이거 먹고 있으렴.”

    “만세 마스터 정말 사랑해! 결혼해줘!”

    유피테르는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며 아공간에서 케이크를 꺼내주고 어울리는 홍차를 타주었다. 오흐트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며 마스터가 만들어준 케이크와 홍차를 눈 깜짝할 새에 해치웠다.

    “예상대로 마족은 꽤 옛날부터 델포이 아카데미에서 활동해 온 거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에키드나도 그렇고. 약속을 이런 식으로 어긴다니.”

    트리아가 준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본 유피테르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보고서에는 최소 1년 전부터 두 명 이상의 마족의 마나를 가진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고위 마족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자그마한 글씨가 덧붙여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단순한 마족도 아니고 공작의 수하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나의 잔향이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에키드나의 파벌인가? 요 근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던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잔향의 느낌이 분명히 다릅니다. 다른 공작 파벌인 것 같습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유피테르는 델포이에 숨어 있는 마족이 달의 몰락 사건을 주도한 에키드나일 거라고 추정했지만, 트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트리아의 마나 감지를 신뢰했다. 실적도 충분했고 ‘그녀’와 자신보다도 마나 감지 분야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니까.

    마나의 향기가 다르다고 하는데 그걸 전부 분간할 수 있다는 게 유피테르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마나 감지도 꽤 훌륭했지만, 그녀처럼 하나하나 분리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나 감지는 정령의 능력과도 비슷했다.

    “또 마족이 문제에요 마스터?”

    맛있게 케이크를 먹었다는 걸 보여주듯 크림을 입가에 묻힌 오흐트가 물었다. 트리아가 눈치를 주자 그녀는 손수건으로 황급히 입 주변을 깨끗이 닦아냈다.

    “늘 문제지. 마족은 어리석고 포기를 모르니까.”

    “그래도 마스터가 나선다면 마법 한 방으로 전부 해결할 수 있잖아요.”

    “문제는 도시에서 반마족을 이미 봤고, 델포이의 아카데미 생중 한 명이 반마족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거야.”

    오흐트가 말하는 것처럼 마법 한 방으로 마족이라는 종을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티아나가 병이라고 말하는 게 반마족으로 변해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반마족. 더비에서 파론이라는 용병이 보여주었던 모습이었다. 마족의 힘을 받아들여 인간을 포기한 그들은 경계 선상에서 헤매는 미아나 다름없었다. 모든 반마족의 최후는 늘 비극이었다.

    “그래서 마족을 조사하라고 명하신 겁니까?”

    “맞아, 성녀가 말했던 것도 있지만…. 반마족이 되었다는 걸 스스로는 모르는 눈치던데? 그렇게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