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족 사이(1)
* * *
마나를 사용할 방법을 찾아 강해진 게 아니냐는 그녀의 말에 유피테르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델포이 아카데미의 문턱을 밟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은 퍼스트 서클을 각성하는 것이었기에.
게다가 델포이의 입학시험은 퍼스트 서클의 경지라고 해서 돌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용기나 지혜 등 다양한 방면의 능력이 필요했다. 재능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예비 델포이 생의 입에서 걸음마 수준의 대답이 나오는 걸 심사위원이 용서할 리 없었다.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란 존재할 수도 없었고, 델포이란 이름의 정글 속에서 절대로 적응하고 살아갈 수 없었다는 걸 심사위원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델포이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은 상황의 아카데미 생이 있다는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의 함정이 아닌가 더욱 의심만 켜졌다.
“교수님께서 비밀을 지켜주시리라 믿고서 이야기할게요. 저는 사실….”
티아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심하는 유피테르를 앞에 두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거침없는 그녀를 보며 유피테르는 왜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신뢰의 이유도 같이 나오리라 생각했기에.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부끄럽지만, 작년 수석이었어요. 주로 독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였죠. 전투에 모든 능력치가 분배된 독 마법을 통해 적을 찍어누를 수 있었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독 마법은 대인 살상 능력이 최고조로 평가받으니까요.”
“확실히. 독 마법은 상황 파악만 제대로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긴 하지.”
유피테르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독 마법은 다른 마법과는 다르게 직접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태 이상 마법들은 적을 압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공기 중에 독을 풀어서 호흡을 가빠지게 만들 수 있었다. 또,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천천히 중독시킬 수도 있었다. 이 특성 때문에 그녀는 입학 시험 때부터 눈길을 끌던 유망주였다.
“맞아요. 그리고 독 마법은 연구에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었기에 아직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교수님들의 연구실에도 들어갈 수 있었어요.”
델포이의 교수진들에게 그녀는 꼭 곁에 두고 싶은 인재였다. 독 마법은 대상을 원하는 상태 이상으로 중독시킬 수 있었으니까. 몬스터들의 약점을 연구하는 데 독 마법만큼 도움이 되는 마법은 없었다.
논문을 대신 써주는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모를까.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델포이의 구성원에게 감격했고, 더욱 노력해서 그 델포이의 이름에 걸맞은 마법사가 되기로 강하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생각하기도 싫은 그 일이 일어났어요…. 감기 같은 증상을 앓고 난 후에 마나를 점점 사용할 수 없게 되었어요.”
“마나를 잃게 되는 고통은…. 그래. 아무도 모르지.”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열은 끝을 모르고 올라갔고, 기침이 점점 심해지는 몸살을 앓았다. 원래부터 감기에 잘 걸리는 연약한 체질이어서 평범하게 아픈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델포이에서 대기 중인 신관을 통해 신성 마법으로 치료받은 후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푹 쉬었다.
빨리 나아, 하루빨리 평소의 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컨디션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한 후에 참여한 첫 실기 수업에서 그녀는 생각대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마법 제어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아직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은 것 아니야? 계속되면 교수님이나 신관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보는 게 어때?”
마나 지배력이 약해져서 마법 자체의 위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독 마법은 제멋대로 날뛰며 오히려 아군을 공격했다. 가벼운 상태 이상에 걸린 그녀의 친구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혹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문가를 찾아가라는 조언과 함께.
“그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선배들에게 물어도 비슷한 답변만 해주셨구요.”
그러나 그녀는 가득 채워졌던 마나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몸이기에 누구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고, 점점 뚜렷해지는 증상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의 조언에 따라 신관과 교수들을 찾아갔다. 신관은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이 몸을 지배하고 있다고밖에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신관이 저렇게 말하는 거라면 마족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족은 벌써 몇백 년 동안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널리 알린 것도 아닌 자신을 마족이 노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교수들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중에 한 교수가 그녀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주었다.
“이 수치는 마나 감소증이구나. 혼자서 힘들었겠네.”
그렇게 말한 건 유피테르가 맡고 있던 마나의 이해 강의를 맡고 있던 한 남자 교수 이사야였다. 마나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티아나의 몸을 진찰해보고서 그렇게 말했다.
“마나 감소증이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치료할지 알고 계신가요?”
“백 년에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한 희귀병이란다. 치료법은…. 아직 나오질 않았어.”
절망.
잠깐 동안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동아줄이 내려왔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충격으로 어질어질한 머리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고칠 수 없는 희귀병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무서운 단어였다.
“아직 학계에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증상을 조금 늦추는 방법이라면 생각해 본 바가 있단다.”
“어떤… 방법인데요?”
위험하다고 소문난 던전에 발을 들이는 것 같아 느낌이 묘했지만, 완전히 마나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거라고 믿었다. 마법사가 될 수 없어도 모두가 마나를 가지고 있는 대륙에서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내가 직접 설계한 마법식이 그려진 아티팩트란다. 효능은 마나의 극대화시켜주는 거야. 적은 마나로도 어느 정도 효율을 볼 수 있게 도와줄 거란다.”
“저, 정말이에요?”
“제자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단다. 이걸로도 부족한 상황이 오면 약을 먹어야 할 텐데. 그건 내 전공이 아니라서 그때 생각해보도록 하자.”
“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날 이후 그녀는 교수가 준 펜던트를 차고 다녔다. 교수가 말한 내용에는 거짓이 없었다. 펜던트는 확실하게 제 역할을 해서 독 마법을 보조해주었다. 왠지 모르게 마나가 줄어드는 병도 늦춰주는 듯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문제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이후 사용할 마나를 미리 끌어다 쓰는 식이었겠지. 아마.”
“네…. 그 말씀대로예요.”
울상을 지으며 티아나는 긍정했다. 그걸 보여주는 듯 그녀의 목에는 펜던트 따위 걸려있지 않았다.
“마나 증폭 마법식이 있던 건 맞지만, 그건 제 잠재 마나를 깍아먹는 일이었던 거죠.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구요.”
조금씩 나아가는 듯 보였던 증상은 어느 순간 심해져 버렸다. 제로 서클의 간단한 생활 마법도 그녀의 말에는 묵묵부답했다. 게다가 그녀에게 펜던트를 주었던 마나학 교수는 언제부턴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제로 서클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더는 이 세계에 속할 수 없다는 선고와도 같았다.
델포이라는 위대한 이름에 먹칠을 하기는 싫었고, 수석 입학한 아카데미 생이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을 듣기도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퇴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학장 피티아를 찾아갔다.
“당신이 평소 얼마나 노력했는지 교수들과 아카데미 생들에게 충분히 들었습니다. 델포이는 학생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학생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당신의 독 마법은 교수들의 연구에도 꽤나 도움이 되었으니 모른 척할 수는 없죠. 성국 출신의 신관들에게 미리 연락해놓겠습니다. 제대로 치료받고 돌아오도록 하세요.”
피타아는 자신의 재량으로 그녀에게 1년간의 휴학을 주겠다고 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평소 무섭다고 소문난 학장의 말에 티아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적자생존 그 자체였던 델포이에서 이런 따듯한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정말, 감사합니다. 꼭 치료받고 돌아와서 마블링에서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굳은 의지를 보여준 이후 티아나는 크레이타의 신관들과 함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게 되었다.
학장의 소개로 만난 신관들은 마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신성 마법으로 진단한 결과 티아나의 마나가 마법사의 말이 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제어력과 마법을 쓸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신관들은 원인은 제대로 알았지만, 아직 치료법까지는 모르겠다고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요청했다. 치료법이 나온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원인을 알게 된 그녀는 기뻐했다.
“아뇨, 정말로 감사해요. 마나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듯 행복한걸요.”
“달의 대공자가 비슷한 증상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죠. 티아나 씨.”
신관에게서 달의 대공자.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라는 힌트를 얻은 그녀는 델포이의 거대한 도서관을 거점으로 움직였다. 저주받은 대공자라는 소문은 곳곳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회장이었던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를 찾아가 보려고 했지만, ‘폭군’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마나가 없는 몸으로 찾아가기는 무서웠다. 왠지 그녀는 오라버니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낸다고도 알려져 있었고.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괜히 굶주린 맹수를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을 때쯤이 되자 유피테르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강인하다 못해 질투가 날 정도로 뛰어난 귀족 마법사 가문의 이단아였던 그 역시 아프고 나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읽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며 동료애가 느껴졌다. 마나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외로웠으니까.
델포이에서 나와 성국에서 지내던 도중 ‘달의 몰락’사건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마법을 못 써야 정상인 유피테르 아르테미스가 마족을 격퇴하고 상황을 해결했다고 신관이 말해주었다.
그래.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라면 혹시 해결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서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일국의 고위 귀족을 만나기에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보잘것없었으니까. 그러던 도중 유피테르가 델포이의 교수로 부임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회라고 생각해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