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62화 (62/265)

델포이 아카데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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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굉장히 간단하지만,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동시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부류의 함정이기도 했다.

마나에 대해서 그렇게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이들이 퍼스트 서클을 각성해 마법사가 될 수 있었을 테니까. 창조신 레아가 생명체에게 준 선물 ‘마나’는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로라하는 마나학 학자들도 마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는 못했다. 자칫 잘못 이야기하면 거대한 싸움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학계에서 제명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유피테르의 질문에 한 학생이 용기 있게 손을 들고서 대답했다.

“마나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마법사와 함께하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마나는 우리를 도와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사이가 좋을 수는 없습니다. 마치 친구처럼 싸우기도 하고, 다시 친해지기도 합니다.”

한 학생의 말에 강의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의견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마나학의 원론을 그대로 대답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읊은 것이다.

마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학계의 대답은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마나 역시 신이 창조한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으로, 현재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학설이었다. 다른 하나는 마나란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선물(Gift)이라는 것이었다.

저런 대답은 유피테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대답한 학생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가르친다는 건 선생과 똑같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학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다른 의견도 있나요?”

“마나는 친구 따위가 아닙니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유용한 도구이지요. 아직 연구가 부족한 것뿐입니다.”

마나는 친구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곧바로 다른 아카데미 생이 손을 들어 반격했다.

이번에 대답한 여자 아카데미 생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대답이었을 뿐인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이 마나학에 대해 이 정도로 깊게 공부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뻔히 보였다.

“좋아요. 일단 마나학의 기초는 다들 확실하게 알고 있네요. 역시 델포이의 입학시험을 통과할만한 자격이 있군요.”

유피테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일단 그들을 칭찬해주었다. 쉽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 자체는 정말로 좋았으니까. 살짝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현재 마법사들의 수준은 딱 이 정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마나와 마법에 관해 탐구하지 않았다면 유피테르도 진실에 다가갈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수업은 재능을 개화시키지도 못한 그를 이렇게 성장시킨 기적의 강의이었으니까.

“유피테르 교수님께서는 마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두 명 중 한 여자 아카데미 생이 유피테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첫 강의인데도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잘 보니, 어젯밤에 만났던 이졸데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은 이상하다고 혹은 제정신이 박힌 교수가 맞냐고 생각하겠지만, 마나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유피테르의 말에 넓디넓은 강의실은 침묵에 빠졌다.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생각하려는 고민 가득한 정적이 아니었다. 젊은 교수의 생각을 들으려고 하던 학생들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마나학에서 마나를 ‘친구’와 비슷한 존재로 인정하게 된 건 성국 크레이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조신을 믿는 레아 교의 교황이 바로 성국의 지배자였다.

초대 교황은 창조신으로부터 ‘신탁’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그 허무맹랑한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이타의 신관들이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후,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적들을 선보이자 사람들은 창조신 ‘레아’의 존재와 성국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초대 교황은 마나를 신의 준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신관들도 신성 마법사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유피테르가 내놓은 의견은 패러다임을 무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면으로 성국의 깃발을 밟아버린 것과 같았다. 성국이 자랑하는 이단 심문관들이 와서 그를 끌고 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세아니아 대륙은 하나의 종교로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회복 마법과 이로운 효과를 더해주는 마법을 사용하는 크레이타의 신관들은 알게 모르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교수님 지금 하신 말씀은 진심이신가요?”

“그건, 신성 모독입니다. 창조신 레아 님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성국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마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며 말했던 여자 아카데미 생이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교수를 모욕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이단 심문관의 무서움은 이미 대륙에 퍼져있었으니까.

올해 신입생으로 들어온 남자 아카데미 생은 유피테르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죽일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강의 중에는 살기를 내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원수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살기 어린 마나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때로는 마나가 다른 무엇보다 솔직하다는 말을 증명하듯이.

‘역시 이런 반응인가. 생각보다 성국의 영향이 크긴 하네. 그리고 저 녀석은 설마 프레이야가 말했던 성국 출신의…? 완전히 불타오고 있네.’

유피테르는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이미 알고 있었다. 델포이의 입학시험을 치른 이상 현재 유명한 이론들을 배웠을 테니까. 시험을 위해 책을 외우며 모르는 사이 생각의 넓이가 오히려 좁아진 것이었다.

마나가 친구라는 말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마나에도 일종의 의지가 있긴 했으니까. 큰 테두리 안에서 마나도 신이 만든 생명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건 정답에 한없이 가까울 뿐, 어디까지나 평행선을 달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오답이었다.

“다들 믿고 싶지 않은 것 같군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왜 전쟁이 난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자유롭게 대답해보세요.”

유피테르는 학생들을 진정시키고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귀를 의심할 발언을 차근차근 설명시켜준다는 말에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로 인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전쟁이 나는 것 아닐까요? 대륙 전쟁으로 모두가 큰 피해를 보았는데 현대에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잖아요?”

“저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역사가 말해주듯 사람은 원래 상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통해 악의 의지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인간의 욕심이라고 말하는 학생이 출발선을 끊었다, 그 이야기는 꽤나 타당해서 몇몇 학생들이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마법사들의 과도한 욕심으로 발발한 대륙 전쟁이라는 사례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했다.

‘인간의 욕심이 문제라…. 하지만 욕심과 욕망이 없다면 그건 살아가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륙 전쟁은 역사서가 잘 못 적혀있으니 어쩔 수 없을 거고.’

현재의 역사서는 진실을 적고 있지 않았다. 유피테르야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현대의 인간들이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오래 살지 못하는 인간은 기록을 통해서만 역사를 유추할 수 있으니까.

“전 모든 문제의 원인이 돈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와 다르게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경제 문제 때문이라는 걸 논문에서 읽고 공감했어요. 실제로 물이나 식량 같은 자원들은 유한한 것들이니까요. 희소성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요.”

의외로 파르테논 아카데미에서나 들을 법한 말을 한 아카데미 생도 있었다. 희소성이라는 경제학의 개념에 기반해서 전쟁이 날 수밖에 없는 논리를 펼쳤다.

“생각의 차이. 지금 여기 있는 학생들의 의견도 다 다른 거로 볼 때, 이 조그만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 싸움이 되고 전쟁으로 커지는 거죠.”

“지루해서가 아닐까요? 전쟁만큼 자극적인 건 없으니까요.”

이외에도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거나 단순히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유피테르는 학생들의 의견을 도중에 자르지 않고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이것 역시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전쟁은 셀 수 없는 많은 변수에 의해서 형태를 바꾸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도 같았다.

또,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들어두기로 마음먹었기에 막지 않았다. 이 대화를 통해서 앞으로 한 학기 동안 만나야 할 아카데미 생들의 얼굴과 가치관 그리고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에.

“제가 생각하는 답을 말하자면 마나 때문입니다. 아이 둘이 싸우는 게 전쟁입니까? 주먹으로 싸운다면 결국 한계가 있지요. 무기가 없다면 전쟁을 벌일 수 없습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 어떠한 문제가 발생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요. 단언컨대, 마나야말로 전쟁의 원인입니다.”

모든 학생의 의견을 시간을 들여서 다 들어본 후, 천천히 뱉은 유피테르의 말은 이번에도 심각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마법사가 마나를 탓하는 건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 존재의 근원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자가 강인한 이빨을, 토끼가 높은 점프력을, 곰이 강인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신이 정한 자연의 법칙이었다.

초식하는 사자, 거북이처럼 느린 토끼, 그리고 그런 토끼한테 지는 곰.

이는 있어서도 안 되고 절대로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었다.

신이 정한 그 법칙을 무시한다는 것은 고작 인간의 몸으로 신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공적으로 전락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대륙 전쟁이 신을 분노케 해서 벌어진 것이라는 것은 현재을 살아가는 마법사들에게 상식이었으니까.

몬스터와 마족 사이에서 인간이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마나’의 힘이었으니까.

고작, 칼과 창 그리고 화살과 같은 원시적인 무기로는 인류의 적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교수님? 그건 교육자 이전에 마법사로서 지녀야 할 자질이 부족한 거 아닌가요? 마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더는 마법사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그런 막말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수님이라고 하셔도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마나를 부정하는 것은 곧 레아 님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유피테르의 말에 학생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그들은 이곳에 시간을 낭비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지금 마나의 이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는 저마다의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옥의 난이도로 유명한 델포이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몇 번이고 도전해서 합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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