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60화 (60/265)
  • 델포이 아카데미(11)

    * * *

    반 묶음 머리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에메리아는 이미 남자 아카데미 생의 마음을 훔친 상태였다. 거기에 서글서글한 성격까지 더해져 인기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포세이돈 가문 출신답게 강력한 물의 혈계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크리스틴은 에메리아 교수의 열렬한 팬이었다. 델포이의 교수 중에서 그나마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유행에도 민감해 패션도 아카데미 생들보다 한 세대 앞선 경우가 많았다.

    사소한 고민 상담 같은 것도 언제든지 잘 받아주었기 때문에 친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믿기지 않는 외모를 보유한 저 남자 교수는 오늘 학생회장 선배님과 모의전을 했던 유피테르라는 사람이 분명했다. 본인은 모르는 듯했지만, 저 사람이 식당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이곳에서 식사하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었다.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남자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외모였다. 목소리마저도 귀를 녹이는 미성이었지만, 조각 같은 외모에 비한다면 극히 평범한 수준이었다.

    “축하해. 강의도 안 했는데 벌써 1호 팬이 생겼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유피테르 군.”

    에메리아는 자기 일인 듯 박수를 치면서 기뻐해 주었다. 오늘 처음 만난 유피테르와 에메리아였지만, 그녀의 태도는 그야말로 평생을 같이 살아온 친누나 같았다. 이러한 태도가 남학생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걸지도 몰랐다.

    “설마, 오늘 모의전 하셨던 바로 그 교수님이세요? 학생회장 선배님과 같은 은발과 은안을 가지고 있어 정말로 남매가 아니냐고 소문이 났어요.”

    “애들이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안 그러니 유피테르?”

    단순히 은발이라면 모를까 은발과 은안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메리아는 은근히 분위기를 띄웠고 자연스레 크리스틴도 그녀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리나와 난 남매가 맞긴 하지만 그게 딱히 중요한 일인 건가요?”

    “당연하지. 어머어머. 얘가 뭘 모르네! 여자아이에게 소문은 파르페 같은 거라고?”

    “여자, 아이요?”

    유피테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말은 절대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금구였다. 에메리아가 아무리 동안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줄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아. 제가 어떤 강의를 맡게 될지 궁금하다는 이야기였어요. 학장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말도 없으셔서요.”

    화가 난 듯 보이는 에메리아를 보고서 유피테르는 급격히 말을 돌렸다. 정말 위태위태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한 번쯤은 웃으면서 넘어가 주었다. 이미 불타오르고 있는 분위기를 막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지금 빈 자리가 있는 강의는… 아마 마나의 이해 강의가 아니실까요?”

    “이졸데? 너도 결국에는 와버렸구나. 그러니까 처음에 같이 오자니까!”

    연상이 취향이라는 다른 소녀가 3명이 모인 테이블로 와서 이야기에 참여했다. 그렇게 먼 거리에 앉아있던 것이 아니라 대화의 내용을 잘 들었기에 따라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사실, 이졸데 말고 다른 아카데미 생들 모두 이 테이블을 주목하고 있었다.

    “맞아. 아마 마나의 이해를 맞게 될 거야. 마나의 이해 강의가 공석이기도 하고 유피테르가 직접 보여주었던 말도 안 되는 마법들을 설명하기에 최적이니까.”

    마나의 이해.

    그건 가장 쉬우면서도 심오한 강의였다. 델포이의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본 자격은 퍼스트 서클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퍼스트 서클의 마법을 사용한다고 모두가 같은 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마법사의 기본은 ‘마나’를 지배해서 마법식을 발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나 지배력은 강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높은 서클의 마법사가 낮은 서클의 마법사에게 일방적인 우위를 가지는 것도 차원이 다른 ‘마나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마나의 이해 강의라. 어떤 강의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메리 누나.”

    “그냥 말 그대로야. 마법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다시금 새겨주는 거지. 이론 강의이긴 하지만 동시에 실기도 어느 정도 필요한 특별한 과목이야. 혹시 내가 빠트린 게 있을까? 크리스틴 양.”

    에메리아의 설명은 간단하고 확실했다. 아카데미 생들에게 있어 마나의 이해 강의는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마법사에게 마나를 다루는 건 기초 중에서도 기초라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숨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 말이다.

    그러나 기초 공사가 부실하면 어떤 건물도 오래가지 못하는 법.

    델포이 학장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마나의 이해 강의를 가장 믿을 수 있는 교수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극과 극의 소문이 같이 도는 유피테르의 순서가 될 것 같았다.

    “아, 그리고 1학년 과목에다가 여기 있는 이졸데가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예정이에요.”

    “아니, 부끄럽게 그걸 여기서 말하면 어떻게. 크리스.”

    이졸데가 크리스틴을 나무랐지만 소용없었다. 발동이 걸려버린 크리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듣기로는 1학년 학생들 중 유망주들이 이번 학기에 마나의 강의를 듣는다고 하더라구요. 이졸데는 2학년 중에서도 나름 실기는 강한 편이구요.”

    유피테르는 유망주가 대거 강의에 들어온다는 말에 눈을 빛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 중 하나인 마법사단의 결원을 찾아볼 수 있었을 테니까. 마족도 찾아보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모든 걸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너무 과도한 욕심은 재앙에 가까운 화를 불러올 뿐이었다.

    “나를 찾은 이유가 있을까? 나는 유피테르.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란다. 너희들이 학생회장으로 알고 있는 카테리나의 친오빠이기도 하지. 분위기로 볼 때 아마 마나의 이해 강의를 맞게 될 거 같네. 잘 부탁해.”

    “아, 저기. 그냥 궁금해서요. 처음 보는 분이 에메리아 교수님 옆에 앉아계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

    유피테르와 눈이 마주치자 에메리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들며 결국에는 우물거리며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유피테르는 멀리서 볼 때도 아름다웠지만, 가까이서 쳐다보니 더욱 환상적이었다.

    유피테르의 눈빛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크리스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정신계 매혹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은 쿵쿵 뛰고, 시야는 안개가 낀 듯 뿌옇고, 정신은 어지러웠다.

    “크리스틴 학생? 크리스틴? 괜찮아? 이게 말로만 듣던 부정맥인가. 그게 아니면 피로 누적? 대체 과제를 얼마나 학생들에게 주는 거야. 아직 학기 초인데.”

    유피테르는 아직도 자신의 외모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어렸을 때 생일 파티에서 있었던 황녀와의 나쁜 기억으로 인해, 그저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외모를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가 빤히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을 빼앗아 버릴 정도로 매력이 넘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크리스틴이 아픈 건 아닐까 걱정했다.

    처음엔 독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했으나, 이곳은 지옥 같은 분위기의 얼음성이 아니었다.

    “제자한테 미인계를 쓰면 안 된다고? 위병한테 끌려갈지도 몰라? 넌 교수고 크리스틴은 제자야? 물론 두 사람 모두 어른이라서 끼어드는 건 매너가 없는 거지만 말야.”

    크리스틴을 구해준 건 의외로 빨리 정신을 차린 에메리아였다. 그녀는 마나를 이용해 손뼉을 크게 쳐서 크리스틴의 정신을 또렷하게 해주었다. 에메리아는 델포이를 안내해 줄 때,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유피테르에게 몰리는 걸 이미 겪어서 알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인큐버스인가 하는 사람을 홀리는 마족이 이렇게 생겼을지도 몰라.’

    에메리아는 델포이에서 근무하며 꽤 괜찮은 외모를 지닌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유피테르는 그냥 달랐다. 그가 쳐다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마족이 위장한 것인가 의심했지만, 아티팩트 옴팔로스가 작동하는 한 마족은 이곳에 침입할 수 없었다. 다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이상 옴팔로스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르테미스 가문의 인증서도 들고 있었고, 피티아 학장 역시 별말이 없었다. 그의 여동생인 카테리나 역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렇다면 유피테르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라는 대답밖에 남지 않았다. 대체 가족은 무엇을 한 것인가? 저 외모가 얼마나 흉악한 무기라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미모였다.

    포세이돈 가문의 딸이었기에, 유피테르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기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애초에 유피테르는 생일 파티도 처음 몇 번 빼고는 크게 연적도 없으며,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황녀가 유피테르의 외모를 시기해서 폭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건 어느새인가 금방 사라져버렸었다.

    그리고 저주받은 대공자라는 소문 만이 그 빈자리를 채웠을 뿐이었다.

    “미인계요? 누가요? 설마 제가요? 저는 평범한데요. 일단 이 학생부터 살리죠? 호흡도 가빠지는 것 같아 위험한….”

    유피테르는 미인계라는 말에 정말로 황당했다. 자신의 외모는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니까. 외모가 뛰어나다는 말은 동생 쿨한 카테리나나, 지적인 외모를 지닌 남동생 제이스란, 귀여움으로 잔뜩 무장한 마리안느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카르멘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미의 화신들인데 왜 자신은 아닐까 고민해본 적도 있었다. 결국, 답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 아뇨 이제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유피테르 교수님.”

    유피테르가 체온 측정을 위해 한 발 자국 더 다가가려고 하자, 크리스틴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서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이마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간신히 잡은 정신의 끈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는 빠르게 인사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이졸데를 데리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이졸데는 끌려가면서도 목례를 하려고 노력했고, 에메리아는 그런 그녀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건 정말로 교육이 필요하겠네. 일단 오늘은 내가 알려준 지리를 되짚어보는 게 좋을 거야. 아마 이른 시일 내에 학장님이 정확히 어떤 강의를 맡게 될지 알려주실 테니까.”

    “감사해요. 메리 누나. 하필 마나를 가르치는 과목이라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그럼, 다 먹었으니 그만 일어날까요?”

    “그러게. 그러면 여기서 헤어질까? 나도 강의를 준비해야 하니까. 내일 보자.”

    “오늘은 정말, 정말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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