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58화 (58/265)
  • 델포이 아카데미(9)

    * * *

    “이번엔 그 마법이구나. 나쁘지 않아.”

    카테리나의 새로운 마법을 보며 유피테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의전을 할 때 뎌동생은 천재라는 재능에 걸맞은 다양한 마법을 보여주었다. 연속 마법도 그중 하나였다. 카르멘 주로 사용하던 연속 마법 역시 마나 지배력이 뛰어나야 가능했다.

    만약 유피테르가 ‘그녀’의 모든 것을 이어받지 않았다면, 카테리나를 쉽게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직, 퍼스트 서클이지만 그녀의 힘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괜히, 조디악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거라 카르멘이 평가한 게 아니었다.

    “이게 제 고민의 결과에요. 오라버니!”

    흐드러지게 피어난 얼음의 꽃. 그 꽃들은 끝을 모르고 성장해나갔다. 이윽고 꽃에 탐스러운 열매가 열렸다. 열린 열매속에서 얼음의 요정들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패턴이었다.

    “빌어먹을 그 사람의 마법과 엄청 비슷하네. 그래도 이런 식의 활용은 처음 보니 기대가 되는구나. 하지만….”

    얼음의 꽃에서 태어난 요정들은 카테리나와 유피테르가 마주 보고 있던 중간 지점에 섰다. 그리고서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서 강대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적을 노려보았다. 귀여운 외모임에도 빙결의 마나를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 요정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아기자기한 손에 들려있는 흉흉한 무기들. 그러나 갤러리들은 그 외모와 새로움에 집중했다. 카테리나가 원래 쓰던 얼음의 꽃과는 성질이 전혀 달랐으니까.

    “저 얼음의 요정들 좀 봐! 너무 귀엽지 않아. 응응, 하나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얼음의 꽃이란 마법은 원래 그대로 공격하는 거 아니었어…? 상대방을 억압하는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아, 저번 랭킹전에서는 그런 식으로 사용하셨었어. 기억나는 거 같아. 꽃이 무한하게 자라나서 적의 발을 잡았었지.”

    유피테르는 새롭게 나타난 존재들을 보며 씩 웃었다. 여동생이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 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었다. 교수의 자리가 걸린 모의전이긴 하지만 찬란한 재능이 꽃을 피워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웠으니까.

    능력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순수한 기쁨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조금씩 지쳐갔지만, 결코 그런 감정을 티를 내지 못했던 시절. 그때의 유피테르는 여동생을 조금이나마 시기했다.

    저 재능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동생이 가진 재능의 극히 일부만 있었어도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

    어린 시절의 그는 어른스럽고 꽤 총명한 아이였지만, 결국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재능이 없던 그에게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의 대공자라는 자리는 긴장을 풀면 생명마저도 위험한 그런 자리였다.

    “자 춤추세요. 요정들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처럼 카테리나가 손을 휘젓자 요정들은 그에 맞춰 움직였다. 카르멘의 마법처럼 정교한 군대의 모습은 아니었다. 요정들은 자유분방하고 해맑게 움직였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 공격의 궤도를 예측하기 힘들게 느껴졌다.

    “그럼 나도 조금은 성장했다는 걸 보여줘야겠지?”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과 불의 노래

    그의 마법을 이미 보았던 카테리나와 가족들을 제외하고 모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나타났다. 그가 끌어올린 마나의 속성을 두 가지로 변화시켰으니까. 심지어, 혈계 마법이라고 불리는 아폴론의 불과 아르테미스의 얼음을 동시에 만들었다.

    혈계 마법은 피를 이은 사람이 아니면 거의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세아니아 대륙에서 리투아 제국이 강대국으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황실과 4대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의 속성이었다.

    왜 그들만 사용할 수 있는지 이유를 끝내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실험 끝에 그 고유의 마법이 혈계 마법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두 개의 혈계 마법을 조화 마법으로 사용했어…? 그것도 영창 없이 시동어만으로?”

    “아폴론 가문이 바람이라도 핀 거야? 혈계 마법은 다른 가문의 사람은 사용할 수 없는 거 아니었어?”

    갤러리들에 있던 학생들은 상식이 부서지는 마법을 보고서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델포이 아카데미에서 배운 이론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토대가 모래가 되어 조금씩 부서져 가고 있었으니까.

    “저건… 말도 안 돼. 저자는 혹시 마족이라도 되는 것인가? 아니지, 그렇다면 델포이의 아티팩트가 경고를 보냈을 텐데.”

    교수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를 마족이라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세컨드 서클로도 혈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는 않았기에. 그러나 마족이라고 하기에는 델포이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경고 하나 보내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카데미 지역은 애초에 군사가 들이닥칠 수 없도록 조약이 되어 있었다. 마족이 ‘달의 몰락’ 때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그 이외에는 조용했다. 게다가 함부로 사람을 마족으로 몰게 된다면 성국 크레이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혼자서 조화 마법을 만들어내는 건 조금 치사한데요. 오라버니. 제가 그걸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아시잖아요?”

    회오리치는 얼음과 불의 마나, 그건 유피테르를 둘러싸고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마나가 얼마나 강력한지, 만일을 대비해 깔아둔 결계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었다. 금이 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결계 자체가 흔들렸다.

    조화 마법. 이 미지의 영역에 있는 마법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물음표나 다름없었다.

    “그럼 이만 항복이야?”

    “설마요. 죽지 않을 정도라면 부딪쳐보라는 게 오라버니의 가르침이었잖아요?”

    카테리나의 말대로 유피테르의 가르침은 꽤나 심플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죽을 게 뻔한 곳에 가라는 멍청한 가르침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는 소리였다.

    적을 완전히 압도할 때까지 이빨을 드러내지 말라는 카르멘. 그리고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는 게 최고라는 리테리아 제1 마법단장. 이 둘의 말이야말로 기존의 아르테미스의 전법이었다.

    유피테르의 말은 그들과는 조금은 달랐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적을 분쇄하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과거와 다르게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계략과 모략은 강한 힘 앞에 유리처럼 부서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하며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었으니까. 진정한 힘이란 자유와 같았다.

    “그래?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나는 모르는 일인 거다?”

    카테리나의 비장한 각오를 들으며 유피테르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봐주는 것 없이 조화 마법을 그대로 여동생에게 작열시켰다.

    휘몰아치는 얼음과 불의 폭풍은 카테리나가 만든 얼음의 요정들은 바스러뜨렸다. 요정들은 외마디 비명도 외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유피테르의 마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요정들을 박살 낸 조화 마법은 그대로 카테리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조화 마법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마법 역시 그녀에게는 익숙했으니까. 그래서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일을 현실로 옮겨보았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 요정의 방패, 마나 방벽

    그녀는 두 가지의 마법을 한 번에 사용했다. 마도사급 중에서도 일부만 가능하다는 다중 마법. 이른바 멀티 캐스팅(Multi Casting)중 듀얼 캐스팅을 사용한 것이다.

    그나마 도망쳐서 살았던 요정들이 일차적인 방패가 되어 주었고, 그 뒤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마나 방벽이 넓게 펼쳐졌다. 이중 방벽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다른 마법을 동시에 펼치는 건 아카데미 생 중에서는 최초였다.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쓰다니 머리 좀 썼네. 하나가 제로 서클이라는 게 아쉽지만 말야.”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을 펼쳐내는 것. 단순하게 같은 방벽을 여러 개를 까는 것과는 수준과 난이도가 달랐다. 방벽을 겹치는 마법도 꽤 집중이 필요했다. 시동어란 결국 상상을 현실화하는 말에 불과했으니까.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선 제어하기 위한 마나 지배력이 필요했다. 그 지배력은 곧 집중력과 재능을 의미했고. 방벽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한순간이라도 지배를 놓으면 안 되었다. 바로 마나 덩어리로 돌아가 버릴 테니까.

    카테리나의 고민과 노력은 충분히 빛을 발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던 조화 마법을 얼음 요정의 방패가 어느 정도 막아주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 대가로 간신히 살아남았던 요정들이 전부 사라져버렸지만.

    그러나 결국 그뿐이었다.

    조화 마법을 전부 막을 수 없었고, 듀얼 캐스팅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펼친 마나 방벽은 불안정했기에. 얼음과 불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직격당해버렸으니까.

    “거기까지입니다. 두 분 모두 떨어져 주세요. 승자는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입니다.”

    엄청난 폭발음이 들린 이후. 심판을 보던 환영이 모의전의 종료를 알렸다. 당연히 승자는 유피테르였다. 그 누구도 결과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짝짝짝.

    갤러리들은 고난이도의 마법이 펼쳐진 모의전에 감동했다는 듯 일어나서 박수를 쳐주었다. 델포이의 랭킹전 아니, 마블링 본선보다도 수준이 높았으니까. 듀얼 캐스팅, 조화 마법. 그리고 의문으로 남은 두 개의 혈계 마법까지. 그 어떠한 마법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유피테르는 혈계 마법을 활용한 조화 마법 하나로 상황을 주도하고서 승리라는 달콤한 술잔을 쥘 수 있었다.

    “으으…. 정말로 봐주지 않으시네요.”

    폭발 속에서 옷을 털며 일어난 카테리나가 입을 삐죽였다. 교수직이 걸려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모의전에서 그가 가진 힘을 여기까지 보여줄 줄은 몰랐다. 물론,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네가 봐주지 말라고 했잖아? 그대로 한 건데.”

    “그건 그렇지만요. 오라버니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예요? 상상 속의 듀얼 캐스팅을 성공시켰는데도 꿈적도 하지 않으시다니.”

    “정확히 말하면 듀얼 캐스팅이 아니잖아. 둘 다 퍼스트 서클의 마법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제어가 불안정해서 마나 방벽은 스스로 무너졌던 거 알고 있지?”

    유피테르는 승리에 취하지 않고 카테리나에게 부족했던 걸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동생의 약점을 퍼트릴 생각은 없었기에. 시동어 없이 침묵 마법을 걸어 주변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다.

    “축하한다. 아리엘의 아들. 아니 이제 유피테르 교수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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