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57화 (57/265)
  • 델포이 아카데미(8)

    * * *

    “저걸 보렴. 유피테르 군.”

    “저건…?”

    에메리아는 고갯짓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건 마도 열차였다. 도시만큼 거대한 델포이를 걸어 다닐 순 없었다. 그래서 도입한 게 순환형 마도 열차였다. 이 열차는 정해진 시간마다 여러 역을 이동했다.

    이 열차 덕분에 학생들과 교수들은 넓은 델포이를 걸어 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사람에 낑기고 좁은 자리를 찾느라 힘들었지만 말이다.

    “마도 열차 파에톤. 델포이의 학생과 교수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탈 것이란다. 생각보다 넓으니까. 아, 잠깐만. 예. 알겠습니다. 학장님.”

    에메리아는 마도 열차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말을 끊었다. 아무래도 학장 피티아가 연락을 한 것 같았다. 마도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는 유피테르를 두고서 그녀는 학장과 이야기했다.

    “많이 기다렸지? 모의전이 준비되었다고 하시네.”

    그로부터 몇 분 후.

    에메리아는 유피테르가 당당히 말했던 카테리나와의 모의전이 준비되었다고 알려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홍보와 준비가 끝난 것을 보고 역시 학장이 가지고 있는 힘은 어마무시하다는 걸 유피테르는 깨달았다.

    “그럼. 이 열차를 타고 가면 될까요?”

    “아니, 김나지움에 있는 원형 결투장 콜로세움에서 모의전이 펼쳐질 거야. 학년 1위와 아르테미스 대공자의 모의 전투라 유명한 랭커들도 많이 올걸?”

    랭커와 랭킹 그건 델포이 아카데미 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숫자였다.

    델포이는 이론과 실기 시험을 기준으로 아카데미 생의 랭킹을 나누었다. 랭킹은 델포이 전체 랭킹과 학년별 랭킹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전체 랭킹이 조금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낮은 학년의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이들이 전체 랭킹에서 높은 경우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나쁘지 않네요. 안내해주실 거죠?”

    “당연히, 아 나는 메리라고 불러 줄래? 사실 나도 네 소문을 들어서 모의전 기대하고 있으니까.”

    “알겠어요. 가시죠. 메리 누나.”

    메리 누나라는 말에 무언가 스위치가 켜진 듯한 에메리아는 갑자기 유피테르의 손을 잡더니 김나지움을 향해 뛰어갔다. 마치, 풋풋한 연애를 하는 소년 소녀처럼. 그곳에는 유피테르의 의사란 없었지만.

    주변에서 쳐다보는 아카데미생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유피테르와 에메리아는 김나지움의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유피테르는 안내에 따라 콜로세움의 준비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여동생 카테리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오늘은 잘 부탁드려요. 봐주지 않으셨으면 해요.”

    “나야말로. 한 수 배울게. 델포이 아카데미만의 룰 같은 건 있어? 승리 조건은 뭐야.”

    “글쎄요…? 저도 업무 중에 갑자기 연락받고 달려온 거라서요.”

    유피테르는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에게 인사를 하고서 어떻게 하면 승리하는 건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카테리나 역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도 그냥 학장이 불러서 왔을 뿐이었으니.

    마리안느의 생일이자 ‘달의 몰락’사건으로 델포이에서 떠나있는 동안 학생회의 업무는 너무나도 많이 밀려 있었다. 그녀는 얼음성 근처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동해서 한발 먼저 델포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서 잠깐의 숨 돌릴 시간도 갖지 않고 밀린 학생회 일을 빠르게 처리해나갔다.

    그 와중에 학장이 유피테르와 모의전이 있으니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었다.

    “델포이 아카데미에는 꽤 신기한 아티팩트가 있어서 말이지. 거기서 나오는 에고가 알아서 승패를 판단해줄 거야. 갤러리가 있으니 살상력이 너무 높은 마법은 금지. 장외 패 같은 건 없어. 한 번 시원하게 붙어 봐.”

    유피테르의 질문에 대답해준 건 학장 피티아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곳에 오더니 할 말만 하고서 빠르게 나가버렸다.

    그 행동에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몸을 풀고 있던 카테리나와 그걸 지켜보던 유피테르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학장이 언급했던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가 찾고 있던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없지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재미있으신 분이네? 피티아 학장님은”

    “늘 무서우셨던 분이셨긴 한데, 저런 모습도 있으셨다니 몰랐어요. 마블링 준비로 바쁘신 걸지도 몰라요.”

    “아, 곧 마블링 기간이긴 하구나. 리나 너도 대표로 뽑혔지?”

    “그럼요!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오라버니?”

    카테리나는 몸이 다 풀렸다는 걸 유피테르에게 알렸다. 유피테르는 딱히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몸을 풀기에는 급이 맞지 않았으니까. 마족과 조디악의 일원을 압도한 그가 고작 퍼스트 서클에 겁을 먹을 리는 없지 않은가.

    유피테르는 동쪽으로, 카테리나는 서쪽에 있는 문으로 나갔다.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이 남매는 적이었다. 아니, 적이라고 생각하고 싸워야 했다. 유피테르는 단기 교수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카테리나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오라버니에 대한 미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많은 갤러리에서 유피테르의 강함을 보여주면 뜬 소문 정도는 쉽게 날아갈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마법사들이야말로 세아니아 대륙의 차세대 유망주들이었으니까.

    “역대 최고 학생회장 카테리나 선배님 화이팅!”

    “사랑해요 눈나!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오늘도 멋진 모습 기대할게요 눈나!”

    문밖으로 나간 유피테르의 눈에 기대하지도 않던 엄청난 갤러리들이 콜로세움의 관중석을 채운 게 들어왔다. 종합 랭킹 1위의 카테리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빠와 싸우는 건 꽤나 흥미진진한 일인 게 분명했기에.

    어느새 준비해왔는지 응원하는 봉을 들고 있는 자들도 있었고, 한편에는 카테리나의 사진이 거대하게 걸려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팬들이 즐비한 콘서트장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승리 조건은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살상력이 지나치게 높은 마법을 제외하고 다른 룰은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유피테르는 콜로세움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서 카테리나와 마주 보자 델포이의 에고로 보이는 환영이 나타나 심판 역을 자처했다.

    “오라버니. 그럼 갑니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어붙은 심장

    그녀가 말을 하자마자 시동어를 외웠다. 그러자 엄청난 냉기가 그녀의 손에서 퍼져 나왔다. 유피테르가 더비에서 사용한 것과 비슷한 느낌의 마법이었다. 물론, 그때만큼 강력하지도 시간을 그대로 얼려버리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같은 마법식이라고 해도 주문과 시동어는 천차만별이었다. 주문 영창과 시동어 발동은 어디까지나 한 마법사가 마법식의 이미지를 제대로 떠올리기 위한 키워드를 사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카테리나의 선공에 갤러리가 환호했다. 제대로 대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시동어만으로 강력한 마법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생들은 대부분 영창을 하거나, 위력이 감소한 시동어를 사용했으니까.

    유피테르와 그가 지금까지 만났던 마법사, 마도사들이 특이한 케이스였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재밌게 해주는걸. 리나.”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방벽

    모두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가볍게 마법 장벽을 펼쳐 냉기를 버텨냈다. 시동어 없이 마법을 펼칠까도 고민했지만, 그 정도의 수준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유망주는 고작 유망주일 뿐이었으니까.

    저 중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카테리나 조차 손대중을 해야만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었다.

    “저, 저걸 막다니! 엄청나잖아. 저 사람. 혹시 상대가 누군지 아는 사람 있니?”

    “아마 학생회장 선배의 오빠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꽤나 강력한 마법이 펼쳐졌는데도 쉽게 막아낸 유피테르의 모습에 갤러리가 술렁거렸다. 대체 그의 정체가 누구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오갔다. 미리 정보를 들었던 몇몇은 아르테미스의 대공자라는 그의 정체를 맞추기도 했다.

    “역시나세요 오라버니.”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어붙은 심장 : 부수기

    애초에 빙결의 바람을 내뿜는 게 목적이 아니었는지 카테리나는 바로 다음 마법의 시동어로 넘어갔다. 유피테르의 방벽을 뚫지 못했던 냉기가 그대로 조각조각 얼어붙어 방벽에 날아가 꽂혔다.

    바삭.

    이번에는 그녀의 생각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유피테르를 지켜주고 있던 방벽이 그대로 얼어붙어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까. 그건, 얼음 속성의 마법을 쓸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 정도의 마법밖에 보여주지 못하는데 델포이의 폭군이라고 하면 조금 실망일지도 모르겠는데?”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파론과 싸웠을 때의 바로 그 결계 마법이 다시 한번 이곳에서 펼쳐졌다. 갤러리들은 물론 카테리나와 교수들까지도 아름다운 푸른색 나비가 날아다니는 결계를 극찬했다. 살아생전 저렇게 아름다운 마법은 처음이었으니까.

    그가 결계를 친 이유는 간단했다. 갤러리를 위한 기본적인 결계로는 유피테르나 카테리나 모두 본 실력을 낼 수 없었으니까. 카테리나가 퍼스트 서클이라고 하더라도 어중간한 마법사들과는 레벨이 달랐다.

    “설마요. 이 정도로 끝이라면 오라버니의 여동생이라는 이름이 울겠죠.”

    카테리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돌아온 그녀의 오라버니 유피테르는 상식 밖의 공격이 아니라면 타격을 줄 수조차 없었다. 그녀가 아는 마법사 중 완전무결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렸다.

    얼음성의 문이 닫힌 몇 달 동안 카테리나는 유피테르를 졸라서 그에게 몇 번이고 도전했다. 슬프게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오죽하면 마리안느가 지루해하며 모의전을 그만하고 놀아달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계속 고민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짜냈지만, 그녀의 오라버니는 어떠한 방법도 두 번 이상 당하지 않아 주었다. 한 번쯤은 당한 적도 꽤 있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절대로 당해주지 않았다. 단점은 꿰뚫고, 장점은 강화해주는 그야말로 ‘교육적 지도’라고 할 수 있었다.

    유피테르가 그때그때 카테리나의 수준에 맞는 상대의 역할을 해주었던 덕에 카테리나는 델포이에서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의 꽃

    산산이 조각난 상태로 땅바닥에 꽂혀있던 얼음 알갱이들로부터 엄청난 속도로 꽃이 자라났다. 그 꽃은 이윽고 결계를 다 덮어버렸다. 꽃은 숨을 죽이고서 카테리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라도 유피테르를 공격할 준비를 마치고서.

    “나왔어. 카테리나 회장님의 특기 마법이야!”

    갤러리가 말했듯 이 연속 마법은 카테리나의 특기 중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가 여왕의 군대를 만드는 것과 유사했다. 후계자 수업 당시 최강의 마도사 카르멘의 지도를 받았던 것이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얼음’ 속성에서 카르멘을 능가할 수 있는 마법사는 전무후무하다는 게 당시의 상식이었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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