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50화 (50/265)

델포이 아카데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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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아카데미.

초대 황제의 유언에 따라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에 목맨 아르메 제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기관. 대륙의 사람들에게 자식들을 어느 교육 기관에 보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제일 먼저 이곳을 떠올릴 것이다.

“델포이 아카데미요? 그곳에 보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죠. 제 자식이 그곳에 가는 게 일생의 소원입니다. 소원.”

다른 어떠한 말보다 이 말이야말로 델포이 아카데미에 대해 잘 표현했다.

델포이가 유명한 이유는 스파르타 식의 커리큘럼도 있었지만, 조디악의 일원을 배출하는 데 성공한 유일무이한 아카데미였기 때문이었다. ‘교육’ 만으로 인류 최강을 육성하는 것에 성공해 세계에 깊은 울림이 주었다.

심지어, 조디악의 일원이 된 마도사는 귀족과 비교해 마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알려진 ‘평민’ 이었으니까. 이는, 신분에 상관없이 재능만 있다면 최고의 커리큘럼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게 도와준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이 사실은 리투의 파르테논 아카데미, 성국의 신성 기관. 기사 왕국의 천검 학원, 카토 연합 왕국의 바자르 등에 비해 델포이 아카데미가 우월한 위치에 있을 수 있게 했다.

어느 시대나 신분과 재산의 여부에 상관없이 부모의 교육열은 위대했다. 이 말을 증명하려는 듯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식들을 델포이 아카데미로 보내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온갖 방법을 사용한 부정행위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평민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귀족에 비하면 우스운 정도였다. 비밀리에 유통되는 족보를 사거나 무리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거나 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조금 더 선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입학시험 준비를 좀 더 철저히 시키는 정도일 뿐이었다.

귀족들은 좀 더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권력과 인맥을 최대한 동원하여 입학 심사관을 압박하거나 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외로 델포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학장 피티아 라비린스는 이를 막지 않았다.

“그냥, 받고 용돈으로 써. 아니면 가족들에게 맛있는 소고기나 사주던가. 월급도 많지 않잖아? 어차피 떨거지들은 와서 제대로 적응 못 할 거 다들 알고 있잖아?”

입학시험에서 있던 부정행위에 분노한 젊은 교수에게 피티아가 말한 말은 그날 이후로 전설이 되었다. 그녀는 멍청하게 행동하지 말라며 오히려 직원들을 타박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부정은 잡아내라고 덧붙였지만, 일정 범위 내에서는 알아서 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녀의 말 때문에 부정 행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녀의 말을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이해한 귀족들이 미쳐 날뛰었으니까.

그러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델포이의 커리큘럼은 따라갈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쉴 틈도 없이 쏟아지는 과제에 지쳐버린 학생들의 사정? 그건 교수들과 피티아가 신경을 쓸 부분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마도사가 되지 못했는데 설마 날로 먹으려고 한 거야?”

피티아의 이 말 역시 델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마도사를 꿈꾸는 델포이의 학생들이라면 이 정도의 레벨의 수업은 따라와야 하는데 당연했으니까.

“아카데미 생에게 따라잡히면 교수로서 부끄럽지 않아? 나이는 카드 게임으로 딴 걸까. 흐응. 이번 주 내로 나가줄래 패배자 씨?”

이 커리큘럼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평가하는 교수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고 엄격한 잣대가 들이밀어 졌다. 피티아는 그야말로 델포이의 마왕이었다. 교수, 학생 양쪽 다 그녀를 두려워하며 관심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얼음성에서 델포이로 가려면 더비나 랭커스터를 지나가야 하나. 생각보다 멀지는 않네.”

유피테르는 카테리나가 설명해준 델포이의 기본적인 지식을 떠올리는 걸 멈추고 지도를 펼쳐 가야 할 길을 확인했다. 말을 타고 있지만, 마법의 도움이 있다면 이 정도는 간단했다.

경계 도시 더비와 온천 도시 랭커스터 중 어느 곳을 경유해도 델포이로 향할 수 있었지만, 그는 아르테미스 가문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해 굳이 더비를 택했다. ‘더비’는 경계도시이었던 만큼 무장이 허용되어있었으니까.

새롭게 가주에 취임한 그가 반란을 일으킬 힘을 가지고 있는 영지를 시찰하는 건 당연했다.

아르테미스의 영지 중 하나인 더비에 도착하자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유피테르는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아 위병을 통과하고서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아서 짐을 풀었다.

위병이 의심하긴 했지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로 위장해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귀족 그것도 영지를 다스리는 아르테미스의 직계가 온 것을 알면 원래 모습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서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경계 도시는 생각한 것만큼 삼엄한 군사도시가 아니라 평범한 도시에 군사적 기능을 더한 요새처럼 보였다. 그가 두르고 있던 로브는 꽤나 괜찮은 아티팩트라서 그의 은발을 조용히 숨겨주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

경계 도시의 물가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한 무구점을 찾은 유피테르는 적당한 수준의 스태프를 발견했다. 가격을 알기 위해서 가격표를 찾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싯가’라는 두 글자만 적혀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근처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불러서 가격을 물었다.

“혹시, 이 스태프는 얼마 정도 하나요?”

“아, 그…. 그게. 자, 잠시만요!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평범한 여행자의 차림을 하고 있음에도 뿜어져 나오는 미의 찬가에 무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은 얼굴을 붉히고 주인장에게로 도망갔다. 그것을 보고서 유피테르는 자신의 모습이 수상한가 옷차림을 확인했지만, 딱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거 호갱… 아니 손님이 오셨구먼? 그 스태프가 마음에 드시는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소?”

“요새 시세를 잘 몰라서…. 대충 10 실버 정도면 되나요?”

“고작 10 실버란 말이죠. 손님, 맞을래요?”

아르바이트생을 대신해서 나온 주인장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피테르는 ‘그녀’와 함께 있었기에 현지의 시세를 잘 몰랐다.

“아, 나중에 다시 올게요.”

분위기가 험악해진 걸 느낀 유피테르는 천천히 무기점에서 나왔다. 시세를 알기 위해 들어간 곳에서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있고 싶지는 않았다.

도시의 사람들은 남, 여 할 것 없이 무기점 밖으로 나와 길을 걷는 그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광채가 그만을 밝게 비추고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심지어, 유피테르가 있는 자리만 진짜 색을 가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더비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음식이 있을까요? 없다면 맛있는 음식점이라도 소개받고 싶은데요.”

“어…. 그러니까 말이죠.”

“아, 아뇨. 저도 잘 몰라서요. 이곳이 처음입니다만….”

“죄, 죄송합니다!”

단순히 맛집을 알려달라는 말에도 사람들은 그의 외모에 홀려있다가 감히 바라보았다는 죄책감이 들어 자리를 피했다. 유피테르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빼어난 외모에는 벗어날 수 없는 기이한 매력이 담겨 있었다.

그는 하루 동안 5 골드 이상을 사용했는데 이는 5인 가족으로 이루어진 평민이 한 달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거금이었다. 아낌없이 돈을 쓰는 모습에 주민들을 수군거리며 여행자의 정체가 여행을 나온 귀족이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추천을 받지 못해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발길이 향했다. 고소한 튀김옷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왜인지 마음에 들었다.

딸랑. 손님이 들어왔다는 걸 알리는 청아한 방울 소리가 펍 안에 울러펴졌다.

유피테르가 간 곳은 ‘용병’들이 자주 찾는 펍이었다. 술김에 취한 사람들끼리 싸움도 자주 벌어지곤 했다. 맥주가 덜 취한다고는 하나 양동이만큼 마시면 안 취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맥주와 함께 안주로 내오는 닭튀김 역시 끝내주는 맛으로 유명했다. 바삭바삭한 튀김옷과 말랑말랑하고 비리지 않은 육질 좋은 살덩이는 그야말로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만큼 환상의 커플이었다.

한 입을 베어 물때 입안에 퍼지는 감칠맛에 한 번 빠지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 맛에 반한 용병 마법사들이 근무를 끝내고 한잔하러 언제든지 모여들었다.

문제는 이렇게 취한 자들의 눈에 ‘귀족’이라고 생각되는 유피테르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귀족’은 대하기도 거북하고 못마땅한 자들이었다. 용병들이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해도 귀족들이 버는 것에 비한다면 극히 미미한 양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물론, 최전방에서 일하는 만큼 ‘위험수당’이 붙었지만,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치고는 그리 높지 않았다.

“캬하. 맛있구만. 맥주 한 잔 마시기도 이렇게 어렵다니, 나 같은 비정규직은 힘들어서 살겠나. 어디 어디의 귀족 씨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여행도 다니고 말이야.”

맥주를 들이키고 있던 한 중년 용병이 펍 안으로 들어온 유피테르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딱히, 유피테르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철모르는 ‘귀족’이 감히 용병들의 터전에 온 것이 문제였다.

눈칫밥으로 살아온 그의 능력은 꽤 대단했다. 유피테르의 얼굴, 머리 스타일, 옷차림 그리고 행동거지를 대충 훑어보고서 그가 귀족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니까.

“주인장, 여기 맥주 한 잔과 닭튀김이라는 것 좀 줄 수 있나? 될 수 있으면 빠르게 먹고 싶은데.”

유피테르는 용병의 도발을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가게 가장 앞편의 바 탑에 앉았다. 앉은 자리가 불편한지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메뉴판을 보던 그는 가장 앞 장에 있던 추천메뉴를 골랐다. 야시장 같은 곳에서 이것저것 사 먹었지만, 아직 배가 고팠다.

지금 그는 평민 여행자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었기에 속이 뻔히 보이는 시비를 무시하고서 주문에만 집중했다.

용병은 보란 듯이 무시하는 유피테르를 보고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이 치솟았다. 평소 귀족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반감이 술기운과 함께 냄비처럼 불타올랐다.

그가 얼마나 더비를 위해서 일해왔는가. 이 펍도 자신이 희생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보다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애썼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이곳에서 다 날려버렸다. 그는 이 도시가 개척될 때부터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저 귀족 놈은 힘들게 일하고 있는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닌가. 아마 돈도 자기가 번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받은 거겠지. 그의 토끼 같은 자식들은 지금 시간에도 어미를 도와서 일을 하고 있건만.

귀족으로 추정되는 여행자를 한 번 아니꼽다고 생각하자,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속도로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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