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48화 (48/265)
  • 떠오르는 초승달(8)

    * * *

    유피테르가 기억하기로 그건 아르테미스 가문의 문장이었다. 그는 그 목걸이를 본 적이 있었다. 정말로 싫어했던 아버지 카르멘이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그것은 가주에게만 허용되는 신분을 증명하는 목걸이로 황실에서 직접 만들고, 4개의 공작 가문에만 내려준 특별한 하사품이었다.

    “맞아요, 가주만 착용할 수 있는 목걸이에요.”

    카테리나가 천천히 다가오며 의문에 대답했다. 유피테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었을 뿐 아직 가주가 되지는 못했다. 자신에게 펜던트를 선물해준 이유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카테리나는 다시 그걸 빼앗아갔다.

    연속으로 이어진 알 수 없는 행동에 유피테르는 당황하며 모두를 쳐다보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 아리엘도, 목걸이를 주었던 마리안느도. 심지어 빼앗아간 카테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묘한 상황에 유피테르는 어이가 없었다. 단체로 자신을 놀리기에는 과거와 상황이 달랐기에.

    “놀랐어요?”

    “당연히 놀랐지. 선물을 줬다가 뺏는 건 진짜 화나는 거 알지? 게다가 그게 믿고 있었던 여동생이 한 거라면 더욱.”

    “에헤헤. 그럼, 성공이네요! 오라버니.”

    “…?”

    유피테르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얼굴에 물음표만을 띄웠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그런 멍한 표정마저 화보로 만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주의 증표를 주었다가 뺏은 이유, 그게 중요했다.

    카테리나의 다음 행동에 유피테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카테리나는 찡긋하고 윙크한 후, 유피테르에게 천천히 다가가 펜던트를 직접 걸어주었다. 그 손길에는 조심스러움과 고마움이 가득했다.

    어찌 되었든 생명의 위기에서 구해준 보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친애하는 오라버니가 없었다면 이 목걸이를 직접 걸어주는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과 함께 차가운 무덤 속에 있었을 테니까.

    “이게, 내가. 으으응. 우리 가족이 준비한 선물이에요. 오라버니.”

    “나한테 가주의 목걸이를 줘도 되는 거야? 어머님이 가주 대행이시고 나는 아직 후계자에 불과한데? 게다가…. 이거 그 사람이 가지고 가지 않았어?”

    유피테르의 의문은 당연했다. 가주의 목걸이는 그야말로 ‘가주’만 착용할 수 있는 액세서리였으니까. 단순한 액세서리라고 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힘이 어마무시했지만 말이다. 가주의 목걸이는 다양한 효과를 지닌 아티팩트였다.

    가주의 목걸이는 먼저 혈통을 확실하게 선별했고, 다음으로 스스로 자격을 판단할 수 있는 에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주와 같은 해로운 마법에 어느 정도 내성을 부여했다. 만약, 자격이 없는 자가 목걸이를 착용하려고 한다면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이가 떠나기 전에 버려두고 갔단다. 이제 이런 물건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사실 네가 가주나 다름없지 않니?”

    아리엘은 아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녀도 가주 다행을 하며 계속해서 펜던트를 찾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약혼했을 때 받은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을 발견했다. 꽤 괜찮은 효과를 지닌 아티팩트를 가지고 가지 않은 건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유피테르에게 목걸이를 전해줄 수 있어서 기뻤다. 어차피 유피테르가 볼 일을 다 보고 돌아온다면 그가 가문을 이끌어나갈 것이니까. 그래서 목걸이의 주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이거 그냥 착용하면 끝인 건가요? 생각보다 무겁지도 않고 좋네요.”

    “모든 건 목걸이가 판단할 거란다. 유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단다. 펜던트를 잡고서 마나를 불어 넣어보렴.”

    “어머니까지. 그 이름으로 부르시네요?”

    아리엘은 어느새 그녀의 뒤로 이동한 마리안느를 데리고 유피테르에게로 다가왔다. 떠나기 전날, 세바스찬이 유피테르를 놀리던 것을 우연히 보게 된 아리엘은 그 이후로 자신의 첫째 아들을 유피라고 부르며 흐름에 동참했다.

    어찌나 집요하게 놀리던지 유피테르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유피라고 부르는 걸 그만해 달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그냥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어디로 도망쳐도 ‘어머니’의 특권으로 따라다니는 아리엘을 ‘아들’이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유피테르는 망설이지 않았다. 카테리나가 걸어준 목걸이를 잡고서 마나를 천천히 불어넣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잠들어 있었기에 다시 깨우는 과정이 필요했으니까. 그의 마나에 반응하는지 아티팩트가 부르르하고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펜던트가 깨어나자 유피테르의 주변이 환한 빛에 둘러싸였다. 그 광경이 신성하게 느껴져, 대공자를 지켜보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가주를 인정하는 의식을 직접 보는 건 모두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가주로 인정받는 상황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가주 선정 의식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니까. 카르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아직 ‘후계자’의 지위에 머물러있는 유피테르가 과연 목걸이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라는 문제는 당연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유…. 어서…. 기다렸….”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한 빛 속으로 납치된 유피테르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느꼈다.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확실치 않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점차 가까워지는 목소리와 함께 유령 같은 형체가 점점 또렷해졌다.

    눈이 아플 정도의 빛 속에서 형체가 보인다는 말은 유피테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세계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제이스란이라면 이 기이한 현상에 흥미를 느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형상이 점차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자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 빛이 내뿜는 존재감은 절대로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빛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누구야? 이런 무의미한 짓은 그만두지 그래? 가주로서의 인정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내보내 줘. 나는 할 일이 많다고.”

    유피테르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빛덩이에 소리쳤다.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게 분명한데도 너무나 느리게 다가와서 답답했고 왠지 머릿속도 안개가 낀 듯 어지러웠다.

    ‘그녀’와 함께 지낸 이후로부터 세계에 관해서 모르는 일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예외였다. 머릿속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아니, 정리되는 것을 억지로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아티팩트가 정신계 마법은 분명히 막아줄 텐데…. 적의는 없으니 기다려볼까.’

    그래도 그는 ‘그녀’가 준 아티팩트와 자신의 마나를 굳게 믿고 있었다.

    잠시 후, 두 명의 소녀가 그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온통 백색으로 물든 소녀와 흑색으로 물든 소녀. 완전히 대비되는 두 소녀에게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백색과 흑색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너”

    “너는, 나?”

    “그래서 너희들은 누구지? 미아니?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유피테르는 대화를 하기 위해 일단 아무 말이나 던져보았다.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얼음성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으니까.

    상황 파악이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적을 늘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었다. 스스로의 실력에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피테르의 질문에 그녀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일정 거리까지 다가온 후에는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유피테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직까지도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곳에서 나갈 해결책이 저 두 명의 소녀에게 있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음…. 나갈 방법을 전혀 모르겠는데. 걱정 끼치지 않으려면 빨리 나가야 하는데. 어떡할까. … 어?’

    유피테르는 고민을 거듭하다, 흑백 소녀들의 눈동자가 자신의 움직임을 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는 분명히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충분히 섬뜩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라면 공포심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천천히 소녀들에게 다가갔다. 만약,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다가가면 그들은 그만큼 뒤로 물러설 것이었다.

    “어라, 안, 움직이네?”

    그러나 유피테르의 생각과는 다르게 두 명의 소녀들은 움직이지 않고, 유피테르를 지켜볼 뿐이었다. 예상이 빗나가기는 했지만, 이는 즐거운 오류였다. 그는 마음을 굳히고 더욱 거리를 좁혀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걸음을 떼어도 소녀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제 유피테르와 소녀들의 거리는 서로의 눈동자가 가장 예쁘게 보일 거리였다. 가깝지는 않지만 멀다고도 느끼지 않을 적당함에 유피테르는 스스로 만족했다.

    그 순간, 소녀들이 또 질문을 던졌다.

    “아픈 기억과 즐거운 추억, 당신은 어떤 대답을….”

    “…선택할 거야?”

    또 한 번 미궁에 빠질 만한 질문이 들이닥쳤다. 그래도 첫 번째에 비한다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어서 유피테르는 일단 안심했다. 영문도 모르는 낯선 외국어 속에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흑과 백의 소녀들은 분명히 사람이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관해서 묻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과 평생 간직하고 싶은 것들 둘 중 무엇을 선택하라는 질문은 흔해 빠진 질문이었지만 수많은 논쟁을 낳은 질문이었다. 그 누구도 정답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검은색으로 가득 칠해진 과거를 받아들이고 다채로운 색으로 극복하느냐, 검은색의 과거를 부정하고 다른 색인 것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느냐?

    그야말로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같은 물음이었다. 자신의 삶은 자기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니까. 그 누구도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건 아이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유피테르에게 이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유피테르는 ‘그녀’와 같이 공부하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와의 기억은 추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강이라고 칭송받는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의 대공자이면서도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그야말로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기억들.

    둘 중 무엇을 고르겠냐는 질문 앞에서 유피테르는 고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 대답? 색으로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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