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초승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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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어를 사용하지 않은 게 신기한 거야? 그건 당신도 노오력한다면 사용할 수 있을걸? 생각보다 어려운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알려 줄 생각은 없어.”
“웃기지 마라.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법이다. 노력만으로 가능하다면 재능이라는 단어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겠지.”
시기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재능.
아르테미스의 피를 이은 자들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바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르멘, 카테리나, 제이스란 아르테미스의 존재가 이를 분명하게 증명했다. 초대 가주 나이아드가 보여주었던 힘은 거짓이 아니었고, 이 힘을 물려받은 자들은 누구보다 강했다.
또, 귀족이 평민보다 재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카데미들은 귀족 출신으로 바글바글했다. 몇몇의 평민이 길을 개척해도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세바스찬 아크타이온. 당신이라면 그를 모를 리 없겠지? 그자야말로 노력으로 재능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 중 하나니까.”
유피테르의 말이 맞았다. 세바스찬은 아르테미스의 피를 그다지 물려받지 못한 산하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 아르테미스 직계보다는 재능을 꽃피울 기회가 적었다. 세바스찬은 극한의 노력으로 이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물론,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애초부터 강했던 게 사실이지만.
세바스찬은 본인이 극한으로 노력해서 한계를 뛰어넘었던 기억이 있어, 타인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입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세바스찬과 함께 했던 유피테르 역시 상당히 영향을 받았다.
“세바스찬인가. 그놈도 예외 중의 예외지. 네 놈이 세바스찬의 제자가 된다고 했을 때도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놈은 상식 밖의 놈이었으니까. 상식을 깨부순다는 건 아무나 가능한 게 아니지.”
헤르만은 세바스찬을 인정하기 싫은 듯했으나 가지고 있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세바스찬이 마법사단의 단장으로 있었을 때는 다양한 전투에서 승리해 엄청난 명성을 떨쳤으니까.
세바스찬은 헤르만이 꿈꾸던 가문의 전성시대를 이룩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헤르만은 오만했고 권력에 목매는 은퇴한 노인이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멍청했다면 가문 내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암투가 벌어지는 원로원의 의장을 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하게 힘만 내세우는 바보는 다음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으니까.
오늘 유피테르를 공격한 건 정보 부족에서 나온 실수였다. 가문이 흔들리며 원로원 역시 예전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원로원장을 맡고 있었기에 지금 이 시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했지만, 암살에 최적화된 자신의 방식이라면 애송이 하나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약간의 방심이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가문의 후계자에게 이를 드러낸 것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더구나 가주 대리였던 아리엘은 누구보다 대공자를 신임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르테미스 3대 세력 중 하나의 최고라고 해도 가주만큼은 아니었다.
정작 유피테르는 여전히 여유롭게 헤르만을 대하고 있었다.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헤르만으로서는 예상도 할 수 없었다.
“한물간 어르신이 힘 좀 쓰셨으니 몸에 무리가 갔을 테지? 일단 이것을 마시면서 들어.”
그 말에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헤르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로라고 불릴 만큼 나이가 든 것은 사실이었다. 또, 유피테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전에는 어떠한 행동도 보일 수 없었다.
후계자를 살해하려고 했다는 중죄를 지은 건 자신이었으니까. 패배한 개는 선택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유피테르는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서 집무실 한 편에 있던 찻잔을 이용해서 차를 우려냈다. 홍차의 그윽한 향이 집무실을 서서히 퍼져나갔다. 유피테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향과 적당한 산미를 담은 데메테르의 특산품이었다.
“헤르만. 당신과 원로원이 나를 몰아내려고 작당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
직접 내린 홍차를 헤르만에게 따라주며 유피테르는 편안하게 말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발언이었지만, 헤르만은 조용히 들었다. 그의 경험이 지금은 아직 반응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니까.
동시에 유피테르의 폭탄 발언이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속삭였다.
“그렇게 내가 싫다면 이 가문을 잠시 떠나있지. 그럼 만족하겠어?”
“대체 네놈은 무슨 생각인 거냐.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가문을 안정시킬 생각을 하지도 않고….”
폭탄 발언에 헤르만은 홍차를 뿜을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헤르만은 유피테르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어 놀라움을 넘어, 무서웠다. 이해할 수 없는 경지는 자연스레 공포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이걸로도 만족 못 해? 생각보다 욕심쟁이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가문은 가장 큰 위기 상황인데 대공자가 이끌지 않고 도망치겠다? 애송아.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가주 자리를 맡을 수도 있을 텐데? 애초에 아리엘 님은 널 의지하고 계시니까.”
헤르만은 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의 말대로 현 가주 대리인 아리엘은 카테리나보다는 오랜만에 돌아온 유피테르에게 크게 의존하는 편이었다. 카테리나가 보는 시야보다 유피테르의 시야가 훨씬 넓었고 획기적이었으니까.
실종 기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과거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카르멘의 판단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유피테르의 선택은 대부분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델포이로 간다고. 그동안 어머니를 도와서 가문을 안정시켜. 원로원을 잡고 있는 당신이라면 가능하지? 그게 내 협상 카드다.”
유피테르는 담담히 말했다. 마족을 조사하러 가는 걸 헤르만은 알 리가 없었다. 바로 방금 전에 나온 이야기였으니까. 아직 마리안느라는 큰 산을 넘어야만 했지만, 그의 마음은 결정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며 여동생 리나의 소원도 함께 들어줄 수 있다면 단기 교수로 부임하는 건 절대로 나쁜 게 아니었다. 아카데미가 궁금하기도 했고, 마족이 무엇을 꾸미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정말로 가주가 될 생각은 없는 것이냐?”
“왜? 이제 와서 내 힘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헤르만은 입맛을 다셨다. 대공자가 준 차는 너무나도 달았지만, 그의 속은 너무나도 쓰렸다. 사실, 대공자가 직접 보여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모습을 볼 때 마족을 압도했다는 말이 사실일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대공자에게 카테리나의 재능은 빛이 바랬다. 진한 아쉬움을 어떻게든 숨기고자 늙은 원로원장은 말을 돌렸다.
“델포이로 간다라. 애송아. 네가 갈 수는 있냐 그곳에?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군. 갈 필요가 있나? 네놈이 무언가 한 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그걸로는 부족할 텐데?”
“이유까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델포이로 가서 마법사단 유망주들을 선점해올 수도 있다고.”
“그건 그렇군…. 게다가 마블링 기간도 겹치는군. 생각보다 좋은 인재들이 모이겠어.”
“델포이 출신의 유망한 마법사라면 리테리아도 키울 맛이 제대로 나겠지.”
헤르만은 대공자의 카드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먼저, 가문에 필요한 유망한 인재들을 데려오는 데 델포이 아카데미만 한 곳이 없다는 것은 반론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현재 1 마법사단 단장과 부단장을 제외하면 간부는 전멸했고, 단원도 몰라볼 정도로 수가 줄었다. 아리엘의 힘으로 부른 황실의 마법사들이 언제까지나 그들을 보호해줄 수 없었다. 이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문을 지키지 못하는 귀족 가문은 없었으니까.
지금 달의 가문에 필요한 건 무력이었다. 다른 가문이 도전해오는 걸 박살을 내고 몬스터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강한 힘.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아카데미 교류전인 마블링의 시기가 다가오는 것도 꽤 매력적으로 들렸다. 지금까지 마블링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마법사들은 대륙을 진동시키는 강자가 되었으니까. 기사 왕국 시에라 출신의 기사들도 특별히 참여했기에 그야말로 초소형 대륙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하나 정도 부탁할 게 있는데. 메두사의 연락 방법을 알고 있나? 어머니도 아직 모르시는 것 같던데.”
“가주만 따른다는 정보 부대를 움직이는 방법을 원로원장인 내게 묻는 거냐? 그건 나도 모른다. 가문이 아닌 가주를 위해 창설되었고 움직이는 부대니까.”
유피테르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반응의 헤르만을 보고 아쉬워했다. 물론, 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협상을 하고 있어도 원로원장은 적의 적일 뿐이었다. 안심하고 등 뒤를 맡기다가는 언제라도 독을 음식에 탈 인물이었으니.
“더 필요한 건 서류로 작성해서 요청하지. 이만 나가봐. 생각할 게 좀 있으니.”
“이 차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 있나? 다시 한번 마시고 싶구나.”
“그거 아마 신성 마법으로 기른 찻잎을 적당한 방법으로 우리면 똑같은 맛이 날걸?”
“말해주기 싫다는 것이냐. 쯧. 알았다.”
명백한 축객령에도 헤르만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삼키며 방을 나갔다. 대공자에게 약점을 더 들킬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곳에 더 있다가는 불안정한 마나 때문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기도 했고.
“아니, 진짠데…?”
유피테르는 떠나는 헤르만을 보고 황당해했다. 그가 말한 정보는 거짓 하나 섞여 있지 않았다. ‘그녀’가 신성 마법을 식물에 전해주면 더 깊은 맛이 난다고 알려주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그대로 해보자 그 차는 천상의 맛을 보여주었다.
원로원장을 내보낸 유피테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정보가 아직도 부족했다. 가주 직속 정보 부대 ‘메두사’는 그를 가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연락을 한 것도 아니었다.
메두사는 황실 부대만큼 엄청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만 있다면 ‘그녀’가 말한 나머지 3개의 아티팩트를 찾는 일도 쉬워질 게 분명했다.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그녀’도 한 가지의 아티팩트밖에 몰랐다. 물론, 그에게도 숨겨진 패들이 몇 개 있었으나 함부로 이동시킬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나머지를 찾는 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