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초승달(1)
* * *
물병자리의 마도사 카르멘 아르테미스의 배신과 100년 동안 조용했던 마족의 대대적인 등장. 이 두 개의 거대한 뉴스는 리투아 제국을 넘어 세아니아 대륙 전역을 강타했다.
“아 그러니까. 마족은 소문과는 다르게 엄청 아름다웠다니까요. 이거는 비밀인데…. 아, 저쪽 가서 이야기하시죠. 내일 1면으로 꼭 부탁합니다.”
“얼음성 안은 엄청 좋았어요. 마족이 나타나자 황녀 전하께서 용기 있게 대응하셨습니다. 전 그 모습에 마치 전장의 발키리가 나타난 줄만 알았습니다. 마족의 마법은 정말 무시무시했거든요. 네? 전 뭐 했냐고요? 저도 대항하려고는 했습니다만….”
“글쎄, 파티장에 마족이 축하하러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살다 살다 마족을 볼 리는 없었는데, 나타났다는 거야. 그게 내가 있는 곳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생일 파티에서 간신히 살아나간 몇몇 귀족들은 마족 에키드나가 얼마나 잔인하고 강력했는지에 대해 앞다퉈 인터뷰했다. 또, 얼음성 파티장이 부서진 현장을 목격하고도 살아나온 것을 일종의 훈장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기에.
유명한 제국의 언론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황실 언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작, 후작 가문에 친분이 있는 언론사들은 아르테미스의 비리나 부정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배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귀족들의 세계란 다 그런 법이었으니.
“그런 가짜 뉴스가 나오는 건 저 유페미아 드 리투아가 용서할 수 없어요. 당장 해명 기사를 발행하세요.”
유페미아는 마리안느를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언니 카테리나와 오빠 유피테르가 있었기에 자신도 그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생명의 은인들에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황실 언론은 유페미아의 명령에 따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사화되었다. 그러나 평소부터 아르테미스에게 이를 갈고 있던 오르페우스 후작 가문은 모아왔던 모든 자료를 한 번에 터트려버렸다.
충격, 거짓과 오만함으로 가득 찼던 아르테미스 가문? ― 그 실체를 밝힌다
오르페우스 가문과 은근한 연이 있던 포세이돈 공작 가문 역시 이 행렬에 동참했다. 오만 방자하며 귀족들을 무시하는 카르멘 아르테미스를 가주 포르투나 포세이돈이 치를 떨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오르페우스 후작 가문이 사랑하는 부인의 친가인 점도 충분히 한몫을 하기도 했고.
과거 아르테미스 가문은 압도적인 힘으로 좋지 않은 소문을 뭉개버렸다. 그것이 두려워 불만 있는 자들이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문이 뿌리째 흔들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소문을 수습할 여력이 없었다.
수도에 모이는 하위 귀족들은 물론 일개 평민에 이르기까지 아르테미스의 이야기를 술안주로 삼았다. 제국 어디를 가더라도 아르테미스에 관련된 소문을 모르는 자는 유행을 모르는 사람이라고까지 놀림 받았다.
달의 가문은 일련의 소동에도 음성의 문을 굳게 닫고서 카르멘 아르테미스가 가주 직을 사퇴했다는 단 한 가지의 공식적인 대답만을 내놓았다.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가문들도 공격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갔다.
아르테미스 가문이 묵묵부답으로 계속 시간을 보내자, 평민들 사이에서는 점차 열기가 식어갔다. 오르페우스 후작가와 포세이돈 공작가를 제외하면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다.
소문이란 늘 빨리 퍼지고 동시에 빨리 꺼져버리는 것이었다. 장작이 더 나오지를 않자, 다른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법사 겜블링. 통칭, 마블링
이 시기에는 마블링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 교류전이 열렸다. 리투아 제국의 파르테논 아카데미, 아르메 제국의 델포이 아카데미 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아카데미가 이 교류전에 참여했다.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마블링에 열광했다. 각 아카데미의 명예가 걸려있기에 교류전은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니까. 게다가 겜블링이라는 이름에 맞게 적은 베팅 금액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마블링은 무려,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가 공인한 대회였다. 그만큼 엄청난 세금을 떼가긴 했지만.
얼음성 본성 가주 집무실
이곳에서는 달과 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3명, 한 명의 상냥한 금발을 지닌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집무실은 예전과는 다르게 따뜻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카르멘이 있었던 때와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가문 재건 계획은 지시하신 대로 진행 중이에요 오라버니. 하지만….”
카테리나가 현 상황을 보고했다. 그녀의 우울한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아르테미스의 상황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아르테미스의 검이자 방패였던 4개의 마법사단은 궤멸했다. 1 마법사단 소속 리테리아와 르노아를 제외하면 간부는 전원 사망했고, 단원들도 큰 부상을 입거나 몇 명만 살아 돌아왔다.
아르테미스 마법사단은 황실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 손실은 너무나도 뼈아팠다.
당장, 영지전을 신청받는다면 제대로 대항할 수단도 없었다.
또, 사용인들의 피해도 무지막지했다. ‘달의 몰락’ 사건 중에 죽은 사용인들은 셀 수 없었다. 그나마 생존한 사용인들은 배신자의 가문에서 일한다는 소문을 듣기 싫어 대부분 떠나갔다.
“역시, 돈과 사람이 문제인가? 아르테미스의 주 수입원은 몬스터 숲을 소탕하며 나온 다양한 전리품들이니까.”
유피테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원래 결계석만 가지고서 떠나려고 했지만, 고통받는 카테리나와 마리안느의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를 찾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거라고 결심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상냥함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유 오빠는 신의 저주를 받지 않았는걸. 내가 아는걸. 이 차도 너무 맛있어!”
유피테르의 옆에서 토끼 인형을 껴안고 있던 마리안느가 입을 삐죽였다. 달의 몰락과 함께 퍼졌던 저주받은 대공자의 소문이 퍼져서 화가 난 것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첫째 오빠는 무능하기는커녕 너무나도 빛이 나는 사람이었으니까.
“제대로 해결할 방법은 있니? 유피테르. 원로들도 난리야. 내 권한으로 억누를 수 있는 것도 분명히 한계가 있단다.”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며 그야말로 귀족 부인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 여인이 바로 이들의 어머니인 아리엘 드 리투아였다. 태양을 닮은 반짝이는 금발과 상냥한 금안은 그녀가 황실 출신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가문을 떠나있었던 그녀는 달의 몰락 사건 이후 가문으로 돌아와 실종되었던 아들을 껴안으며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기뻐했다. 마음이 아팠던 자식은 누구보다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으니까.
“해결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데. 어머님. 지금의 전 거의 외부인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단다. 카르멘 그 사람을 막은 건 거의 네가 다했다고 카테리나에게 들었어. 아이들을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카테리나와 마리안느 그리고 유페미아 황녀가 유피테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증언했지만, 가문의 원로들은 돌아온 대공자를 절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 아리엘은 직접 임시 가주의 직위를 맡는다고 선언했고, 유피테르를 중용하고 있었다.
‘내가 가주가 되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습군.’
어린 시절 유피테르에게 잘해준 원로들은 거의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원로들은 유망해 보이는 카테리나를 지원해왔고 유피테르에게는 독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세바스찬의 능력 앞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어머니의 대리자로 거의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힘을 인정하려 들지 않다니. 정말 바보 같군요.”
“마자 마자. 바보 같아! 할아버지, 할머니들.”
카테리나는 가문의 원로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라버니는 아버지 이상으로 가문을 부흥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강인함과 상냥함 모두를 지닌 그야말로 전설로 내려오는 초대 가주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마리안느 역시 원로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산하 귀족들의 이탈도 심각할 정도예요. 그냥 오라버니가 새로운 가주로서 활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썩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카테리나가 말한 대로 위기가 닥치자 아르테미스 가문의 곪은 부분이 전부 터져나가고 있었다.
공작 가문 산하 귀족 가문에서도 꽤 많은 자가 이탈했다. 산하에 있는 다섯 가문 중 자신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떠나갔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배신자의 가문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차피 물갈이를 해야 하긴 했어. 뿌리가 썩은 나무는 절대로 오래 살지 못하니까. 힘으로만 찍어눌렀던 게 지금 와서 나타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오라버니 이건 너무 정도가 심해요. 어떤 업무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어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래, 유피테르. 모두에게 힘든 일이 있었으니 조금은 쉬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유피테르의 강경한 태도에 카테리나와 아리엘이 모두에게 휴식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물었다.
충성심과 의리로 얼음성에 남은 사용인과 귀족들은 지나치게 늘어난 업무량에 불평은커녕 쉬는 시간을 부여받자 바로 곯아떨어질 정도였다. 서로서로 의지하며 위기를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가주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유피테르는 단호했다. 가주가 된다면 다른 아티팩트를 찾으러 떠날 수 없을 게 분명했으니까. 하루빨리 4개의 아티팩트를 전부 모아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또, 지나치게 바쁘게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공작 가문의 가주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문의 모든 시스템이 망가진 지금 그 업무량은 기존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주가 된다면 아르테미스의 정보력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정보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유 오빠가 가주가 되면 난 좋은데에….”
내심 유피테르가 가주가 되기를 기대했던 마리안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라버니라면 충분히 멋진 가주가 될 게 분명했다. 그녀의 오빠는 집사가 읽어주었던 책들 속 영웅과도 같았으니까.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세바스찬입니다. 유피 공자님.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