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36화 (36/265)
  • 달의 몰락(13)

    * * *

    불과 꽃의 조화 마법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위와 정면에서 나타나는 독수리들을 어떻게든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독수리들은 호위 마법사들이 막기 어려웠다.

    에키드나가 무도회장에서 비슷한 마법을 사용한 것을 봤음에도 대처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자’ 속성의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방어가 약한 부분만 찔러오는 독수리들은 매서웠다.

    또, 조화 마법을 제어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호위들은 동시에 세 방향에서 그것도 핀포인트로 공격당하고 있었다. 제어를 잃으면 미세하게 벌어진 틈을 독수리들은 놓치지 않았다.

    장벽과 조화 마법을 펼치지 않았던 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으로 그걸 격추했지만, 전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위 대상이 너무 어리고 많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들 전부를 완벽하게 지키기에는 호위 마법사들의 수가 너무 적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호위 마법사들은 유페미아 황녀 하나를 지키기 위한 구성에 불과했다.

    어린 마리안느와 리네아, 군 가문의 딸이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리아,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 호위 대상인 유페미아 황녀가 같이 있었다. 이들을 향한 공격까지 막아 줄 여력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서나 늘 볼 수 있는 형태의 독수리였지만 조화 마법의 파괴력은 절대로 무시 못 할 정도였기에.

    그나마 카테리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리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 움직이며 독수리들을 빠르게 얼리고 다녔다. 리테리아가 환영을 이용하여 독수리의 시선을 분산시켰고 그 틈을 노려 단번에 얼어붙게 만든 후, 조각을 내버렸다.

    “놀라운 실력인걸, 리나. 유피테르도 그걸 보면 참 기뻐할 거야?”

    에키드나는 특유의 녹여버릴 듯한 목소리로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녀가 강제로 만들어준 조화 마법은 마법사단 단장들의 목숨도 앗아갈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호위들보다 훨씬 강한 두 개의 마법사단이 단 한 번의 조화 마법에 궤멸당했으니까.

    그곳에는 격이 다른 단장 ‘아르망’과 부단장 ‘르노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족에게 칭찬받아도 하나도 기쁘지 않은데? 그리고 오라버니의 이름을 좀 그만 말해줄래?”

    쏘아붙이는 카테리나의 상태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리해서 마리안느와 유페미아에게로 향하는 독수리들까지 어떻게든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찰나의 시간에 그 모든 것을 전부 얼리지는 못했고, 일부를 보호막을 친 상태에서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동생 마리안느의 생일 파티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귀족의 법에 맞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움직임에 있어서 제한이 클 수밖에 없었다. 늘 주변의 위험에 대비하는 호위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괜찮아요? 카리나 언니?”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카테리나 언니. 그래도 괜찮으세요?”

    그런 카테리나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마리안느와 유페미아가 고마움을 표하며 물었다. 마리안느는 호위 마법사들과 카테리나의 희생으로 큰 상처는 없었다. 유페미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양을 닮은 금발의 머리카락에 먼지가 조금 뒤엉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무사할 수 있지는 않았다.

    “사, 사리아 언니 대체 왜 저를 감싼 거예요.”

    리네아는 사리아를 보며 울먹였다. 치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지만, 이미 터져버린 눈물샘은 마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리아가 입은 상처는 한눈에 보아도 꽤 심각했다. 호위 마법사가 일차로 마법을 막아 주었지만, 그림자에서 나타나는 독수리들까지는 속수무책이었으므로. 아끼는 동생이었던 리네아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몫까지 공격당했던 게 치명적이었다.

    카테리나는 마리안느 일행을 한 번 보고 호위 마법사와 카르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여전히 공방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호위 마법사들이 점점 수세에 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어릿광대의 꿈’의 의한 환영들이 시선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이미 호위 진형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같은 조화 마법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냐고…. 이제 포션도 거의 남은 게 없는데.’

    호위 마법사들은 숨겨왔던 비기들을 모두 사용해버린 상태였다. 유행하고 있는 카드 게임으로 따지자면 자신의 패는 모두 상대에게 보여버렸지만, 상대방의 패는 고작 1개가 오픈되었을 뿐이었다.

    희망이 없다고 느낀 카테리나는 마음을 굳혔다. 여기서 유페미아 일행을 무사히 도망치게 하는 것이 호위 마법사들이 시간을 끌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였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손에 있던 아티팩트는 기회만 있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기회의 순간은 바로 찾아왔다.

    “유피테르의 느낌이 가까운 걸 카르멘. 얼음성 주변에서 그의 마나가 똑똑히 느껴지고 있어.”

    아까부터 계속 마나 감지로 리테리아를 찾던 에키드나가 카르멘에게 경고했다. 이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는 조커(Joker)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의 마나가 가까운 곳에서 느껴졌다. 그녀는 유피테르가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카르멘도 조금씩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은 호위 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쉬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벼드는 그들을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에키드나는 리테리아의 실마리조차 못 잡고 있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는 결코 좋지 못한 신호였다.

    ‘인질을 잡아야 하는가.’

    카르멘은 인질을 잡아서 리테리아를 협박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인질을 잡는 방법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강한 이에게 필요한 방법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계획과 다르게 리테리아를 찾는 게 너무 오래 걸리고 있었다.

    “배신자여 모든 게 네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일단 우리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에키드나와 카르멘의 이야기를 들은 호위 마법사의 대장이 그렇게 소리쳤다. 얼굴에 흐르는 피는 카르멘의 조화 마법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의 팔은 녹지 않는 얼음으로 얼어있었으며 발은 그림자에 속박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주변에서 호위 대형을 유지하던 다른 마법사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다. 공방을 이어나갔다고 하나, 카르멘과 에키드나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도 먹이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그 증거로 카르멘이 입고 있는 가주의 제복은 한 줌의 흙먼지가 침입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목표를 이루었다고?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자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카르멘은 호위 마법사 리더의 말에 조소했다. 그 말이 맞았다. 지금 그들 사이의 격차는 결코 기합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흔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최소한 같은 종(種)이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카르멘은 평범한 인류가 아닌 서드 서클을 바라보는 ‘마도사’였고, 에키드나는 ‘마족’이었다.

    황실의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호위 마법사들이었지만 그들이 넘은 한계는 너무나도 낮았다.

    “그럼 지금 직접 증명해주지. 위대하신 마도사의 앞에서 내 마법이 어디까지 먹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저쪽 세계에서도 꽤 잘 팔릴 거 같으니. 사후 세계에서 보험 하나 들면 좋지 않겠어?”

    명백한 비웃음을 받아친 것은 카테리나에게 아티팩트를 건네주었던 불 마법을 사용하던 마법사였다. 그 역시 심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두 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자네가 보여주는 마지막 발버둥을 잘 보도록 하지.”

    “보고만 있으라고, 아주 놀라게 해줄 테니.”

    카르멘은 남자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서 이렇게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정말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도사와 마족을 죽인 자라는 칭호는 누구도 움츠리게 했으니까.

    아폴론 식 불꽃 마법 ― 생명의 약동

    남자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엄청난 크기의 불꽃을 만들었다. 그 불꽃은 세컨드 서클의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저 순수한 불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거라는 의지가 그 불꽃에서 여실히 느껴졌다.

    그 확실한 의지는 냉철한 카르멘도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생명을 태운 불꽃과도 같았으니. 그곳에 있는 모두가 거대한 불꽃이 완성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그 불꽃이 완성되려는 바로 그 순간. 카테리나는 마법사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타이밍에 맞춰 한 곳을 간절하게 생각하며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그녀와 일행들은 눈 부신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서 마법사가 야심 차게 만들던 불꽃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의 블러핑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호위 대상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그는 승리자처럼 웃었다.

    “유피테르의 동생들이 도망쳐버렸네에. 이제 어떡할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에키드나가 카르멘을 놀렸다. 그 목소리에는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던 그가 일개 마법사에게 한 방 맞은 것이 신기하다는 감정도 담겨있었다.

    “이 정도 블러핑은 예상 범위다. 리테리아는 발견했나?”

    그러나 카르멘은 이 역시 예상 범위 내였다는 듯 행동했다. 물론, 그게 정말로 그의 본심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음, 이제는 대략 알 거 같은걸. 거의 확신할 수 있어.”

    “유피테르가 오고 있으니 한 명씩 처리하는 게 편하다. 그곳으로 가지. 안내해.”

    그렇게 찾고자 하던 결계의 핵심, 리테리아의 위치를 확신하는 에키드나를 보며 카르멘은 리테리아 먼저 상대하자고 제안했다. 잘만 풀린다면 유피테르를 상대하지 않고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니 꽤 합리적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목적은 ‘몰살’이 아닌 ‘탈출’이었으니까.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족 씨.”

    그 두 사람을 제지한 건 환영 상태로 있던 리테리아였다. 부상으로 신음하는 호위 마법사들을 보호하듯 앞으로 나선 그녀는 에키드나를 도발했다. 카르멘보다 에키드나가 더욱 감정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유피테르를 네 입으로 이야기하지 말아 줄래? 아니, 역시 유피테르야. 엄청 인기 있겠지. 하지만 너 같은 늙은이를 유피테르가 좋아할 리 없지.”

    정답이었다. 금방이라도 리테리아의 본체가 있는 곳에 갈 생각이 가득했던 에키드나는 도발에 그대로 넘어왔다. 유피테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리테리아에게 누구보다 집중했다.

    “음, 그가 말하기로는 마족, 네 나이도 셀 수 없을 정도라던데…? 나이로 공격하면 누가 더 슬플까?”

    리테리아의 도발은 점점 거세졌다. 카테리나 일행이 최대한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을 더 끌어줘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