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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35화 (35/265)
  • 달의 몰락(12)

    * * *

    한 호위 마법사가 카르멘을 비난했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게 자랑을 해놓고서 사용한 것은 고작 퍼스트 서클 급의 마법이었으니. 물론, 퍼스트 서클의 마스터도 이루지 못한 호위 마법사들에게 서드 서클을 바라보는 마도사의 마법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여러 개의 마법 장벽은 마치 부드러운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호위 마법사로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만들었던 특색 있는 보호 마법들은 더는 원래의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얼음 마법의 특징은 닿은 상대를 얼린 후 산산조각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호 계통의 마법에 절대적인 상성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무언가를 파괴하는데 얼음 마법보다 뛰어난 것은 없었다.

    고유 결계를 대비했던 호위 마법사들은 카르멘의 창을 큰 피해 없이 막아내는 데 성공하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명이 전개한 장벽이 한 번의 마법으로 부서진 것을 보고 서클의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면 정말로 위험하다.’

    그들은 황실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호위’라는 목적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자랑했다. 다양한 마법을 펼쳐지는 사람들 중에서 유페미아 황녀의 호위로 선발되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마족과 카르멘이 상대라면 황녀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비겁하다라. 그건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칭찬이다.”

    “후훗, 역시 당신은 마족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니까?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어.”

    카르멘은 황실 마법사들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게 그의 강점이었다. 그 어떠한 말도 선택적으로 수용해 칭찬으로 듣는 능력은 냉정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남의 의견은 적당히 흘려들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 사랑했고 믿었다.

    자기애가 유난히 강해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최악의 단점이었다.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은 늘 생각지도 못한 허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허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가기만 했고.

    그러나 사바트를 통과한 카르멘에게 이런 건 결코 단점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모두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황실의 개들이라. 생각보다 잘 짖는군. 사료를 배불리 먹었나?”

    카르멘의 비웃음에도 호위 마법사들은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1의 목표는 호위 대상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카르멘의 화를 돋우는 건 호위의 일에 불필요한 것이었다.

    “하….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리를 비웃을 자격이 있어? 당신은 배신자일 뿐이라고!”

    그러나 한 젊은 호위 마법사가 그 말에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떨쳐내고 싶었다. 호위 마법사의 특성상 죽음을 늘 염두에 두지만 실제로 상황이 닥쳤을 때의 느낌은 다른 것이니까.

    ‘일단, 황녀님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게 우선이다. 카르멘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황녀님과 그 일행을 안전하게 한다면 최소한 호위로서의 책무는 다할 수 있으니.’

    호위 마법사들의 리더는 선택지를 하나로 줄였다. 이미 상황은 촉박했고, 그들에게 유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카르멘은 자신들을 상대로 장난치는 것 같았다. 마치,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낸 고양이처럼.

    그들은 쥐였다. 그것도 막다른 길에 내몰린 미력한 생쥐.

    ‘조화 마법에 비하면 형편이 없는 수준이군.’

    카르멘은 얼음창의 위력에 만족하지 못했다. 조화 마법의 위력을 본 뒤로 이 정도의 마법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왼손의 아바라치아를 한 번 더 휘둘렀다. 그러자 이전보다 몇 배로 강해진 얼음 창들이 다시 한번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그것을 본 호위들과 카테리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내일의 해를 볼 수 없을 게 분명했기에.

    “서비스는 이번 한 번 뿐인 거야?”

    에키드나는 한눈에 카르멘이 자신의 마법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도 유피테르의 마법을 본 후에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으니까. 그건 생명체라면 가지고 있는 당연한 본능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카르멘에게로 다가가 오른손으로 아바라치아를 잡았다. 그러자 카르멘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의 마나가 움직였다. 심지어, 카르멘까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분명, 그녀가 동료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단 한 번의 행동으로 그녀는 자신이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곳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마리안느와 리네아는 그 위압감에 겁에 질렸다. 엄청나게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유페미아와 사리아가 각각 안아서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떨고 있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던 얼음의 창은 에키드나의 마나를 먹고서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창에서 독수리의 형태로 서서히 변해갔다. 짹짹이가 선한 인상의 참새라면 이 새는 굉장히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쯧.’

    카르멘은 마법의 주도권을 뺏긴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에키드나의 도움으로 새로운 경지를 맛볼 수 있어서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동시에 나사가 빠진 듯 행동하는 저 마족은 역시 자신과는 비교과 되지 않는 존재라고 느꼈다.

    “대체 이 끝이 안 보이는 마나는….”

    카테리나는 창이 독수리로 변해가는 광경을 보고서 경악했다. 천재(天才),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카테리나도 결국에는 인간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마족 앞에서 그녀는 무력했다.

    무시무시한 마나 지배력을 보여주는 에키드나는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애초에 다른 마법이 발동하고 있는 도중 성질을 바꿔 버리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화 마법과 비교하면 그 어떤 것 무감각해지니까. 조심해야지.”

    “알고 있다.”

    에키드나는 카르멘에게 조언했다. 그녀가 가진 마법사로서의 경험은 신과 필적할 정도였으니. 조화 마법은 그 강력한 힘만큼 빠져들기 쉬웠다. 강한 힘이란 늘 그런 식으로 인간들을 유혹했다.

    카르멘은 얼음창에 그렇게 큰 마나를 불어넣지 않았지만, 에키드나의 손에서 전해지는 마나는 그가 사용한 것의 몇십 배 이상이었다. 그렇게 강제로 만들어진 조화 마법은 엄청난 위력을 담고 있었다.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제어를 위해 마법의 출력을 낮추는 편을 택했겠지만, 에키드나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카르멘이 에키드나의 마나에 맞춰서 힘을 끌어올리도록 한 것이다.

    얼음창, 아니 이제는 얼음과 그림자의 독수리로 변한 마법은 날갯짓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생전, 인간과 마족의 조화 마법을 볼 줄이야. 너무 오래 산 건가.”

    리테리아는 조화 마법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환영 상태였던 그녀에게 에키드나와 카르멘의 조화 마법을 저지할 힘은 없었기에. 그녀의 본체가 왔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이곳에 있는 자들이 저 마법에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에키드나 특제 마법 ’어릿광대의 꿈‘은 여러 환영들과 시각 및 기억을 공유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환영들은 물리력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마법은 다른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을 때 큰 효과를 발휘했던 마법이었다.

    “카테리나 님. 제가 신호를 주면 황녀님과 그 일행분들을 모시고 함께 텔레포트 하십시오.”

    호위 마법사 중 한 명이 전방에서 같이 대비하던 카테리나에게 조용히 다가가 포션들과 아티팩트 하나를 건네주었다. 카르멘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행동이었다. 아니, 눈치를 채고 있음에도 봐주는 걸지도 몰랐다.

    그것은 텔레포트가 가능한 아티팩트였다. 그들이 호위하는 대상은 언제나 황실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텔레포트 아티팩트를 지급하였다. 텔레포트 아티팩트가 고가라고 해봤자 리투아 제국의 황제에게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그들은 호위 대상인 황녀, 유페미아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평소 황녀가 그들에게 따듯하게 대해준 것 역시 결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호위 대상을 지킬 수만 있다면 명예도 지킬 수 있고, 남겨진 가족 역시 섭섭하지 않게 대우해줄 것이었다.

    그들은 카테리나에게 아티팩트를 준 행동을 숨기려고 제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다른 호위 마법사와 함께 조화 마법을 영창 하기 시작했다.

    “따스한 태양에서 비롯된 불이여. 지금 항상 곁에 있었던 친구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노라. 원하는 것은 강력한 불의 방패….”

    “…항상 지켜주는 향기로운 꽃의 도움으로 그 불을 거대한 방패로 만들어 적의 마수에서 벗어날 힘을 주소서.”

    조화 마법 ― 타오르는 꽃의 방패

    불의 마법과 꽃의 마법을 사용하는 두 마법사가 조화 마법을 영창했다. 단순히 시동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렸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여러 겹으로 만들었던 보호막보다 더 거대하고 믿음직스러운 방패가 여러 방향으로 나타나 일행들을 지켜주었다.

    “고작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조화 마법인가. 공격할 생각도 하지 않는 거라면 실망인데.”

    카르멘은 호위 마법사와 이야기했던 카테리나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의아해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조화 마법으로 방패를 만드는 건 너무 단순했다.

    자신이 만든 조화 마법을 같은 조화 마법으로 막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괘씸했다. 카테리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관없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리면 자신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게 뻔했다.

    모든 희망을 보란 듯이 부숴버린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마법사인 리테리아가 직접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이 귀찮은 결계는 없어지고, 계획대로 이곳에서 바로 모습을 감추고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가라. 적을 먹어치워.”

    그는 가족들이 상대인데도 봐주는 것 없이 푸른빛에 검은빛이 섞인 독수리들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현실은 잔인할 정도로 냉혹했다. 명령을 받은 독수리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서 호위 마법사들에게로 향했다.

    한 무리는 공중에서 빠르게 낙하하며 불과 꽃의 방패를 얼어붙게 했다. 다른 무리는 호위 마법사들을 둘러싸고 공격했다. 마지막 무리는 사람들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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