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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34화 (34/265)
  • 달의 몰락(11)

    * * *

    고민하는 듯 보이는 카르멘에게 리테리아는 추가타를 날렸다. 그녀는 유피테르의 전언을 가져온 에이엔 부단장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모르는 정보를 쥐고 있다는 것은 리테리아에게 있어 누구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늙은 암 여우는 아직 건재했다.

    “그 정도로 협박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1 단장. 자네가 무슨 수를 가지고 있던 가장 단순한 힘의 차이는 이길 수 없지.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 결계도 마찬가지야. 결국, 혼자서 마무리를 지을 능력은 없지.”

    그러나 카르멘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계획에 확신을 가진 카르멘에게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애초에 계획 자체도 많은 변수를 예상하며 짠 것이었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해본다면 쉽게 질 수가 없었다.

    유피테르가 오고 있다고는 하나 언제 올지 몰랐다. 그렇다면 ‘그’가 오기 전에 상황을 종료하면 문제가 없었다.

    세컨드 서클 마스터에 가까운 카르멘과 끝을 알 수 없는 마족 에키드나의 연합은 이곳에 있는 전부를 힘으로 압살할 수 있었다.

    “힘이 없으면 대신 머리가 고생하는 거지. 후후. 인간들은 뭔가 잘 못 알고 있던데 말이지.”

    에키드나가 그 말에 긍정했다. 그 말은 마족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말이었다. 동시에 신성 제국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신성 제국은 마족을 계략의 종족이라는 경멸하는 이름으로 부르며, 마족과의 계약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으니까.

    전직 마왕 대리 에키드나는 머리를 쓰지 말고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편안하다고 말했다.

    유피테르라는 존재 하나에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에키드나가 마왕 대리를 맡을 수 있던 이유는 단순했다. 먼저, 마왕이었던 티폰의 아내였다. 게다가 눈에 뻔히 보이는 약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피테르의 ‘청소’ 후 남아 있던 마족들 중 제일 강했다. 그게 마왕 대리가 되는데 필요한 전부였다.

    “한 가지 교훈을 주지. 그렇게 진리에 열변을 토하는 이론파 마법사들도 서클이 절대적이라는 말에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카르멘은 승기가 확실해지자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다.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이 성공할 것 같다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켰다.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갈 수 있다면 서드 서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었다. 이 떨림은 사바트에서 우승해 마도사의 칭호를 받을 때보다 더했다. 아니,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세컨드 서클의 마도사조차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기에.

    “서클의 절대적인 힘이라면, 영창 파괴나 고유 결계인가요? 고유 결계를 말하는 거라면 정말로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은데요.”

    리테리아가 카르멘을 쏘아붙였다. 그 말을 들은 카테리나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카르멘 아르테미스의 절대적인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유 결계가 무엇인지를.

    그러나 카테리나 주위에 있던 일행들은 카르멘의 그 말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일부 노련한 호위 마법사들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는 카테리나처럼 표정이 굳어졌다.

    황실의 호위 마법사들은 호위대상이 대상인 만큼 다양한 사태를 경험한 자들이 많았고, 고유 결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유 결계를 사용할 셈이야. 카르멘?”

    에키드나 역시 고유 결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사용할 거냐는 표정으로 카르멘을 보았다. 이건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카르멘이 가진 고유 결계의 강력함은 알고 있었지만,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모습과는 달랐다.

    “고유 결계가 뭔가요? 유페미아 언니.”

    “그러게. 마리. 고유 결계라는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어.”

    호위 마법사들의 방어 마법이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그 안에서 마리안느와 리네아가 그나마 연장자였던 유페미아에게 물었다. 긴장감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리아 역시 궁금한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마법으로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인류 최강이었던 카르멘의 말이라면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미안해. 고유 결계라는 마법은 들어 본 기억이 없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유페미아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녀가 마리안느와 리네아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아직 그녀가 경험한 세계보다는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많은 나이였다. 고유 결계라는 마법은 유페미아의 사전에는 아직 등재되지 않은 미지의 단어였다.

    궁금증을 풀지 못한 일행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카테리나에게로 옮겨갔다. 고유 결계라는 마법을 들었을 때 보인 표정은 그녀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카르멘 아르테미스, 아니 이제는 카르멘 비제라고 불러야 할 물병자리의 마도사는 그녀와 같은 피가 흐르는 아버지이자 후계자 수업을 해준 장본인이지 않은가?

    “고유 결계는 세컨드 서클 이상만 쓸 수 있는 마법이야. 마법사로서 자신의 이상이 투영된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게 고유 결계야. 아무리 천재라고 칭송받았다 해도 퍼스트 서클에 불과한 나도 아직 눈으로 본 적은 없어. 다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어. 그 효과는….”

    “…자신보다 낮은 서클의 마법사가 전개한 모든 마법 및 마나의 무효화라고 할 수 있지. 좋은 공부가 되었나?”

    카테리나의 말을 끊고서, 자세한 설명을 한 건 의외로 카르멘이었다. 은근히 선생 같은 구석이 있는 그는 남이 모르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걸 좋아했다. 이러한 모습들을 아는 건 가족들뿐이었지만.

    냉철하고 무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는 교육자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미지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유피테르와 카테리나는 이에 익숙해져서 적당히 흘려듣는 법도 터득했지만 말이다.

    카르멘이 귀족들의 가정교사나, 아카데미의 선생과 같은 일은 해본 적은 없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의 후계자 당시 그는 꽤 바쁜 몸이었다. 4대 공작가의 정식 후계자가 해야 할 일은 몸이 여러 개라도 부족한 것이었으니.

    카테리나는 제이스란의 이론에 집착하고 가르치기 좋아하는 성질이 아버지 카르멘에게서 나왔다고 종종 생각했다.

    “고유 결계…. 정말 무서운 마법이네! 그치 마리.”

    “응응, 리네아 언니.”

    마리안느와 리네아가 가졌던 고유 결계가 무엇이냐는 궁금증은 해소되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리테리아가 꽤 시간을 끌어보았지만, 아쉽게도 카르멘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녀 스스로 결판을 낼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는 늦는군요. 대공자.’

    유피테르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이상, 싸움에 있어서 불리한 패는 빨리 없애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저기 있는 아가씨들을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게 해야 했다. 인질이라도 잡힌다면 골치가 아플 게 분명했으니.

    “슬슬 끝을 내자구요. 카르멘. 당신이 좋아하는 계획대로 가려면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에키드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짜 리테리아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서 집중했다. 그녀 역시 할 때는 하는 마족이었으니까. 이 계획이 성공해야 그녀도 목표에 다가갈 수 있었다.

    ‘마도사라고 해봤자 한낱 인간인 주제에 이 정도로 정확한 계획을 세우다니. 역시, 유피테르의 아버지인 건가요.’

    지금까지 모든 상황이 카르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걸 보고 그녀는 감탄했다.

    “그러도록 하지.”

    카르멘 식 얼음 마법 ― 꿰뚫는 얼음의 창

    그의 마나는 엄청난 수의 얼음의 창을 만들어냈다. 카르멘의 능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카테리나 일행의 주변에서 얼음창은 모습을 나타냈다. 하나하나 세기도 힘든 창들은 카테리나 일행의 퇴로마저 완벽하게 막아버린 상태였다.

    그 수를 유지하고 동시에 조절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카르멘에게는 아니었다. 왼손에 있는 아바라치아는 현재 인류가 가진 아티팩트 이상의 물건이었다. 단순히 마법과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 아닌 사용자의 마나 지배력 역시 상승시켜 주었다.

    ‘곤란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거의 없는데.’

    리테리아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초조함은 마법사 간의 싸움에서 분명한 약점이었으나,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평소, 그녀가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계와 환영 마법을 이용해 남들보다 뛰어난 정보를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전투 방식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이겨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 방패 중첩

    “다들 가장 강력한 보호 마법을 펼쳐요!”

    “따스한 불의 포옹!”

    “불타는 마법 장벽!”

    “흩날리는 꽃의 향기!”

    무자비하게 들이닥치는 얼음 창들을 막기 위해 카테리나가 마법을 펼치며 뒤에 있는 호위들에게 소리쳤다. 호위 마법사들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형태의 보호막을 전개했다. 그녀의 명령에 따르는 데 의문은 없었다.

    폭군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는 이미 젊은 유망주 중에서 수위를 달리는 마법사였으니까.

    카테리나가 시동어를 통해 마법을 펼치자 얼음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방패가 여러 겹 쌓였다. 일직 선상의 마법밖에 막을 수 없어 보였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뒤에는 호위 마법사들이 알아서 막아 주겠지.’

    그녀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듯 믿음직한 불과 꽃의 마법이 전개되었다. 철도 녹아버릴 정도로 뜨겁지만, 아군에게는 따스한 불이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또, 꽃의 마법이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아군의 정신을 더욱 맑게 해주었다.

    상대방의 마법의 위력을 예측해서 여러 층으로 방어막을 전개하는 건 가장 기본적이지만 괜찮은 효과를 내는 전술이었다. 하나가 부서지더라도 다른 방어막이 견뎌내는 건 물론이고, 이를 통해 적의 마나와 마법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얼음 창의 관통력은 그들이 상상하던 이상으로 뛰어났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에키드나와 함께 사용했던 조화 마법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위 마법사들이 마법사단만큼 강력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불의 혈족 마법을 사용하는 아폴론 가문의 출신인데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고유 결계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조디악의 일원이 사용하는 마법은 뭔가 다르기는 달랐다. 적어도 그것을 막고 있던 호위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설명하던 고유 결계란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비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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