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8화 (28/265)

달의 몰락(5)

* * *

순식간에 수적 열세가 되어버린 에키드나가 마법사단을 훑어보며 말했다. 확실히 70명 정도의 마법사들이 가주를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 정도 수의 마법사들이 한곳에 모이는 일은 적어 더욱 빛났다.

“마족이 상대라면 준비 만전으로 임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1 마법사단 부단장 르노아가 에키드나에게 가슴을 쫙 펴며 대답했다. 그녀는 마법사단과 아르테미스 가문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였다. 그 충성심을 바탕으로 부단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후후. 꽤나 귀여운 사람이네요.”

“그,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마족 주제에 보는 눈이 좀 있네. 내가 인기가 좀 많긴 하지.”

에키드나의 칭찬에 르노아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꼬았다. 그 가주에 그 부단장이라고나 할까. 칭찬의 말에는 누구보다 귀를 기울이는 부분이 분명하게 닮아 있었다. 실제로, 르노아의 외모는 부단장이라고 하기에 꽤 귀여운 편이었다.

높은 경지로 유지하는 외모와 다르게 정말로 동안으로 타고난 것만 같았다.

“부단장님. 가주님께서 앞에 계십니다. 그런 모습은 자제를….”

1 마법사단의 단원이 자제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걸 막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 어때서요. 꽤 마음에 드는걸요. 인기가 있는 건 좋은 일이랍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에키드나였다.

“르노아 부단장. 마족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게.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에서 가장 강하고 무서운 상대라고 생각하게나.”

아르망 단장은 마족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이 고작 한 마리의 마족에게 멸망했기 때문이었다. 아르망은 리투아 제국 출신이 아니었는데도, 양자로 들어와 가문에서 살게 된 특별한 사람이었다.

마왕령 타르타로스는 세아니아 대륙 북쪽 끝에 존재했다. 아르테미스의 영지에서 더욱 북쪽으로 나아가야만 마왕의 영토에 닿을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마족들은 인간처럼 중간계에 살고 있었다.

대륙 전쟁 시기 신에 의해 마계가 파괴되어서 어쩔 수 없이 중간계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북쪽 마왕령 근처에 자그마한 도시 국가 ‘오이네’가 있었는데 마족들의 변심으로 인해서 한순간에 그곳에 살던 인간들은 학살당했다. 어렸던 아르망은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사람이었다.

손짓 한 번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경험은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가끔 악몽으로 그 시절의 꿈을 꾸면 두근거리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족은 마왕령에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마족이 그걸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아르망은 마족을 볼 기회가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만나면 바로 복수를 하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르망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며 매혹적인 마족에게 물었다.

“마족이여. 오이네의 사모아 가문을 기억하고 있는가.”

“오이네…. 조그마한 도시였지요. 아마, 인간들이 살았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걸까요?”

“오이네는 이곳보다 더 춥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도시였지만 이젠 없지. 네놈들이 없애버렸으니까.”

에키드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아르망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저 마족은 오이네 학살과 상관이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마족은 그에게서 이성을 빼앗아갔다.

그녀와 말을 하면 할수록 그날의 참혹했던 상황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공포에 떨며 도망가는 동물들….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마족.

그 모든 걸 뒤로한 채 도망치기만 했던 못난 자신. 그 분노는 강력한 마법이 되어 에키드나에게로 향했다.

아르망 식 석화 마법 ― 돌무덤

거대한 돌덩이들이 아르망 주변에서 생성되고 그대로 하늘로 향했다. 어느 정도 올라간 돌덩이들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에키드나를 향해서 급강하했다. 그야말로 ‘무덤’을 만들 기세였다.

돌덩이 하나하나에 엄청난 마력이 들어있어 쉽게 지배력을 뺏을 수도 없었다. 아르망의 피 끓는 분노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갑자기 마법을 날리다니. 숙녀는 그런 식으로 에스코트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에키드나 식 그림자 마법 ― 춤추는 그림자

에키드나의 그림자가 가느다란 실처럼 뽑혀 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진동하며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분쇄했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아르망. 생각 없이 나서지 마라. 마나 낭비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아르망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던 카르멘이 그를 꾸짖었다. 앞에 나섰던 아르망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대기했다. 가주의 명령 없이 마족과 격돌한 건 잘못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카르멘은 아르망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에게 겁을 먹지 않고 복수를 하려고 하다니. 만족스럽군’

아르망이 용서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에키드나에게 복수하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르망은 에키드나에게 상대가 되지도 않았다. 아르망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복수를 위해 마법을 펼치는데 흡족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지 않았군. 계속 마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않은가.”

조금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뜻이 있으려니 하고 넘어갔다. 카르멘의 생각은 남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무언가의 이득으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 있던 단 한 사람만이 카르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에키드나. 에키드나 리벨리온이라고 해요. 부족한 몸이지만 마족의 공작이란 직위를 담당하고 있답니다. 아버님?”

“아버님이라니?”

“유피테르와 곧 사귀고 결혼하게 될 건데 아버님이라고 불러드려야죠.”

대체 저 마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궁금해할 만큼 에키드나의 생각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모여있던 마법사단 전부가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니.

‘아니, 오히려 저게 강자의 여유인 건가. 역시 마족 꼴도 보기 싫은 행동만 골라서 하는 것도 재능이야.”

아르망은 마족의 행동이 너무나도 불쾌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주의 명령이 가장 중요했다. 분노로 인한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가주라면, 그가 믿고 있는 물병자리의 마도사는 저 마족의 웃는 얼굴을 없앨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가주님.”

“…가주님.”

마법사단은 마음을 굳게 먹고 가주의 명령을 기다렸다. 평소처럼 1 단장 리테리아의 결계가 펼쳐졌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사냥의 시간이었으니까. 비록 그 상대가 인간보다 우월한 마족이라고 해도.

“1 마법사단. 3 마법사단 모두 위치로. 목표는 앞에 있는 에키드나 리벨리온.”

“위치로!”

마법사단에게 무엇보다 익숙한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은 훈련했던 대로 재빠르게 흩어져 마족의 공격을 대비했다.

‘뭔가가 걸려. 대체 뭘까… 그냥 기분 탓인 걸까.’

이동하던 중 르노아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지금은 잡생각을 할 시간이 아니었다. 가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적’처럼 생각하니까.

“1 마법사단 공격.”

르노아 식 마법 ― 마나탄

1 마법사단 부단장 르노아가 수백의 마나탄을 쏘았다. 그 옆에서 대기하던 단원들 역시 부단장을 따랐다. 다양한 마나로 인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마나탄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에키드나 식 그림자 마법 ― 칠흑의 그림자 방패

에키드나 역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눈이 아플 정도의 마나탄을 막기 위해 마법을 펼쳤다. 에키드나의 그림자로부터 방패가 나왔다. 무도회장에서 보여주었던 방패보다 훨씬 크고 여러 개로 되어있었다.

그 방패는 1 마법사단이 사용한 마나탄을 손쉽게 막아냈다. 마나탄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제로 서클이라고 해도 저 정도의 수는 쉽게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을 본 카르멘은 3 마법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르망. 사냥을 시작해라.”

“네 알겠습니다. 3 마법사단 진형을 갖추고 마족을 섬멸해라.”

아르망은 카르멘의 명령에 따랐다. 마법을 쓸 준비를 하며 3 마법사단의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3 마법사단은 숙력된 솜씨로 진형을 펼쳤다. 그건 마치 학의 모습과도 같았다.

아르망 식 석화 마법 ― 메두사의 눈

아르망의 장기 중 하나인 전면에 있는 모든 것들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 이어서 3 마법사단이 각자의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마나탄이 아니라 각자의 장기 마법으로 에키드나에게 대항했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시나요?”

1 마법사단의 마법을 막았던 그림자 방패는 이번에도 뚫리지 않았다. 아르망의 마법으로 돌이 방패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림자는 끝내 돌이 되어주지 않았다. 연달아 도착한 다른 마법들도 가볍게 막으며 비웃었다.

“제길 뭐 저런 게 다 있어.”

누가 말했는지는 몰랐지만, 한 마법사의 말이 그들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웃으며 농담이나 하는 저 마족에게 단 한 번도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이게 마족이란 거구나….”

마족을 처음 겪는 부단장 르노아는 애매한 강함에 치를 떨었다. 차라리 가주처럼 압도적으로 찍어눌렀으면 화조차 나지 않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 가증스러운 마족은 생각부터 달랐다.

르노아가 1을 사용하면 1의 힘으로 받아쳤고, 100을 사용하면 정확히 100만 사용해서 때렸다. 심지어 숫자는 이쪽이 우월한데도 말이다. 저 마족의 끝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음, 당신들을 상대하는 건 재미가 없는걸요. 역시 유피테르 쪽이 짜릿짜릿해서 좋아요.”

카르멘 식 얼음 마법 ― 고독한 왕의 군세

얼음 궁전과 세트가 되는 마법. 고독한 왕의 군세가 펼쳐졌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하늘 위 외로이 있는 궁전이었다. 그 궁전을 지키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왕으로 군림하는 카르멘과 마법사단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마법이 펼쳐져 그 궁전 곳곳에 기사들과 병사 그리고 궁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마법사단의 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가 곧 궁전을 가득 메웠다.

그들이 행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왕을 보필하는 군세와도 같았다.

‘재미있네요. 하지만 여기까지는 계획대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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