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3화 (23/265)
  • 기대와 배신이라는 이름으로(12)

    * * *

    마르타가 리치에게 들은 것은 유피테르가 특별한 마법을 쓴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제국과 아르테미스가 숨겨왔던 원죄에 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어째서 아르테미스의 피를 이은 자들은 천재들이 많은가? 마르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는 혈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주변의 혹독한 환경과 영재 교육으로 강해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리치에게 들은 진실은 아니었다. 아르테미스는 절대로 존경받아서는 안 되는 가문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칭송받아서는 안 되었다.

    “아르테미스 아니, 달의 가문의 핏줄들을 괴물같이 강하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마르타 단장?”

    “글쎄요. 감도 안 잡힙니다만? 그저 혈족 마법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잊혀진 시대에 존재했던 통일 제국 황족의 피가 현재의 혈족 마법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잊혀진 시대라…. 멸망하지 않을 것 같던 태양의 미노스 제국도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유물인가.”

    “그래요. 미노스라는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륙을 통일한 미노스가 금기를 어겨 대륙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역사서에 쓰여 있었습니다.”

    잊혀진 시대. 두 번의 대륙 전쟁 이전 시대를 현재의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인간, 마족, 드래곤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참여한 전쟁은 찬란했던 문명을 모두 부숴버렸다. 그 전쟁의 시발점을 만든 게 바로 태양의 제국이라고 불렸던 미노스였다.

    당시의 기록들도 거의 불타 없어져서 정확히 어떤 금기를 여겼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대리자인 드래곤들이 잘못을 한 인류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인류도 검과 마법 등의 수단으로 버텼지만, 마나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상황에서 마족과 다른 종족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전쟁은 점점 심해졌다. 신에게 반기를 든 마족들은 이때다 싶어 인간을 도와 신과 드래곤에게 맞섰다. 이 전쟁은 창조신이 직접 강림해 끝내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금기라…. 틀린 말은 아니지. 역시 미래의 마법사들과 이야기하는 건 흥미롭구나.”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게 왜 달의 가문과 이어지는 거죠.”

    마르타는 아르테미스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가주 카르멘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마법사단의 단장이 되면서 그 점을 확실하게 느꼈다.

    “아르테미스를 마족들은 광기에 찌든 달의 가문이라고 부르지. 그 이유는….”

    리치는 꽤나 흥분한 듯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과거 생각에 감정이 격해졌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신중하게 표현을 골랐다.

    “신과 마족 모두를 배반한 한 황족이 바로 달 가문의 조상이기 때문이지.”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더 자세히 듣고 싶어진 마르타가 재촉했지만, 리치는 더 이상 말해줄 생각은 없다는 듯 그저 웃을 뿐이었다. 던전 수호자와의 계약을 통해 마르타는 리치의 부하나 다름이 없게 되어 더는 물어볼 수 없었지만, 아르테미스와 리투아 제국의 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2차전을 할 준비는 됐어? 마르타 전 2 마법사단 단장.”

    리치와의 대화를 돌이켜보던 마르타를 깨운 건 유피테르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였다.

    유피테르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었다. 상황은 완벽히 그가 짠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계산했다면 거짓말이었지만, 큼직큼직한 흐름은 그가 예상한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 이름은 리치와 계약하며 버렸습니다. 그보다 대공자 당신은 아르테미스의 원죄에 대해서 알고 있으십니까?”

    마르타는 대답이 아니라 아르테미스의 원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나 드레인에 취했던 1차전 때보다 냉정해졌는지 연극 조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는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던 가문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리치에게 듣지 못한 진실을 대공자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유피테르는 마르타와 더는 이야기할 마음이 없었다. 조금 전 1차전에서 그가 보였던 진심은 ‘시나리오’ 상 필요로 했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짜놓은 시나리오 안에서 마르타의 배역은 줄이 그어져 사라질 차례였다.

    조연은 그만 무대 밖으로 퇴장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주연들의 열연이 펼쳐져야 하니까.

    “흥미 없는데? 이 이상은 시간 낭비야. 잘 가 마르타 멀리까지 인사하러 나가지는 않을게.”

    유피테르 식 반(反) 마법 ― 붕괴

    작별인사 같은 유피테르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기 중의 마나가 사라졌다. 다른 어떠한 표현으로 그 상황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 던전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마나가 단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는 던전의 에너지원이었다. 마르타는 던전 수호자와 계약하며 던전이 죽은 침입자의 마나를 섭취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던전도 사람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였다.

    그럼 마나가 없어진 던전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답이 마르타의 눈에 똑똑히 새겨지고 있었다.

    ‘결계가, 아니 마나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 다?’

    마르타는 당황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무엇인지 모를 현상에 대한, 인간의 본능에 새겨진 공포. 그 공포가 마르타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일찍이 불이 없었던 인간이 밤과 어둠을 무서워했던 이유는 그곳이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큰 적이었다.

    인간이 던전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던전 공략을 도전하던 사람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던전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 그 아무도 올바른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던전의 발생 이유를 알았다면 그곳은 아티팩트 생성소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초보 마법사에게 경험을 심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었다.

    인간은 예로부터 적응의 동물이었다. 마나를 연구하여 고대의 마법의 체계를 만들었고, 전쟁으로 그 모든 것이 유실되자 새로운 마법 체계를 만들었다.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내었다.

    이 가공할 적응력이 마족과 몬스터 그리고 이종족보다 연약한 인간이 대륙의 일인자로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마르타는 그 누구도, 설령 조디악의 일원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지금 발생하는 현상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옥 결계가 없어진 건 문제도 아니었다. 이 던전 상에 풍부하던 마나가 없어졌고, 던전이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었다.

    ‘던전이 죽어가는 몬스터처럼 울고 있다?’

    던전 수호자의 계약자였던 마르타는 지진이라도 난 듯 던전이 강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리치가 마나 드레인을 이용해서 마나를 빼앗아 올 때와는 달랐다. 마르타 본인이 당해보았기에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마법은 에키드나도 무서워했던 거니까 그냥 편안하게 죽어도 돼. 너도 죽었다고 에이엔에게 안부 전해줄게.”

    혼란스러워하는 마르타에게 유피테르는 한 마디를 툭 던져놓고는 유유히 떠났다. 마나가 없었음에도 유피테르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에키드나 리벨리온. 마왕 대리였던 그녀가 유피테르를 그렇게나 무서워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 몸의 던전이 사라지다니? 계약자여 무슨 일인지 말을 해보게.”

    던전 자체가 소멸하는 것을 깨달은 리치가 마르타의 앞으로 텔레포트 해왔다. 리치는 기다리던 유피테르가 마르타를 손쉽게 제거하고 자신의 방 앞까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강력한 도전자와 싸워보는 게 리치의 소원이었으니까.

    유피테르의 도착이 생각보다 늦어져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던전의 모든 마나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고 그 이유를 묻기 위해 절망하고 있는 마르타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는 대체 무슨 괴물인 건가 리치여. 던전 자체를 소멸시키는 마법이라니. 당신이 알려준 마나 드레인과는 비교가 되질 않아.”

    마르타는 절망 속에서 나타난 리치를 향해 허탈하게 물었다. 리치와의 계약을 통해 던전에 매인 몸이었기에, 이 던전이 전부 소멸할 때쯤이면 그 역시 사라질 운명이었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것이 마법사의 계약이었다.

    “이 몸이 알고 있는 내용은 거의 다 전했다고 생각한다만. 자네보다 오랫동안 살았기에 알고 있는 것들과 에키드나 님이 알려주신 것 정도일세.”

    리치는 뼈다귀밖에 없는 몸으로, 주저앉아버린 마르타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던전의 수호자였던 리치 역시 소멸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화는 사신 디스의 품으로 가기 전 마지막 대화였다.

    리치가 생각하기에 마지막 계약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에키드나? 그분은 또 누구시지.”

    마르타는 처음 듣는 이름이 나와 누군지 물었다. 리치는 어차피 마지막 대화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여기서 나눈 대화는 그 누구에게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기에.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마족이시자 동시에 누구보다 마왕에 가까우신 분. 그분이 인정한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와 싸워 세계의 이치에 더 가까이 닿고 싶었다만 아쉽게 되었군.”

    “나야말로 인생의 마지막을 해골과 함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그나마 가문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인가?”

    “이 몸을 단순한 리치라 생각하지 말고 던전 수호자라고 생각하면 영광이지 않은가? 자네는 마법사로서 귀중한 경험을 하는 것이니.”

    “맞는 말이라서. 부정을 못 하는 게 슬프군.”

    마르타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 아니 수호자와 몬스터가 되어버린 그들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잠깐 생각을 하던 리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해골이어서 남은 알 수 없었지만.

    “자네가 그렇게 소중히 했던 동료들을 배신하니까 이런 결말을 맞게 되는 거일세. 안 그런가?”

    “아니, 리치여.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되는지 아나.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 인생이었군. 대공자가 그렇게 강해져서 돌아올 줄이야.”

    그것이 던전 수호자와 계약자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대화를 끝으로 던전과 함께 사라졌기에.

    그 이후, 마르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테리나 아르테미스의 추억

    * * *

    내가 아르테미스 공작 영애라는 고귀한 신분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오라버니는 이미 차별로 가득한 생활에서 고통받고 계셨다. 리투아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달의 가문의 정식 후계자인데도 말이다.

    냉혹하다 못해 잔인한 아버지께는 무시당했고, 어머니는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셨다.

    오라버니는 태어나서부터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유는 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신관도 몰랐다. 마나를 사용은커녕 마나를 느끼지조차 못했다. 재능이 없는 사람조차 느낄 수 있는 마나를 말이다.

    공작 가문의 첫 번째 자식이었기 때문에 유명한 신관들을 불러 오라버니가 무슨 병에 걸려서 저렇게 된 건지 진찰받았다. 하지만 어떤 신관들도 병은 아니라고 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회복 마법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에는 적이 많았다. 혹시나 적대하는 가문들이 저주 마법을 건 것은 아닌가도 진찰받았다. 그러나 대륙에서 유명한 어떤 신관이 와도 마나 자체가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어떠한 방법을 써도 오라버니는 이 세계에서 혼자셨다. 그 누구도 오라버니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님은 오라버니를 포기하셨다. 마나가 없는 몸으로는 가문을 이끌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카테리나. 넌 바보스러운 유피테르에 비해 분명히 빛날 수 있는 원석이다.”

    그리고 오라버니가 아닌 내게 기대를 하기 시작하셨다.

    오라버니의 상처를 아는 내게 ‘재능’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이 재능의 반만이라도 오라버니에게 주고 싶었지만, 그럴 방법은 전혀 없었다.

    내가 가진 마법의 재능은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셨고, 가문의 원로들과 마법사단도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드디어 가문의 급에 맞는 후계자가 탄생했다고.

    오라버니는 분명히 힘든 상황이신데도 웃으며 나를 축하해주셨다. 이때 결심했다. 가문의 후계자가 되고 많은 업적을 쌓아서 오라버니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자고. 카테리나 아르테미스에게는 재능도 명분도 충분했다.

    가문에서 오라버니의 편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마법사단 단장 세바스찬 아크타이온. 그는 오라버니와의 대화 후 단장직을 은퇴하고 직계 담당 집사로 변신했다. 세바스찬이 오라버니를 담당하게 된 건 놀랍게도 명령이 아닌 본인이 원해서였다고 들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세바스찬을 존경하던 한 하녀가 오라버니를 모욕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다 눈물이 날뻔했다.

    어느 가문도 가문의 정식 후계자인 대공자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힘을 당시에도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했으니, 가만두지는 않을 거다.

    하녀들과 집사들은 눈에 보이는 데에서는 오라버니에게 평범한 귀족처럼 대했지만, 뒤를 돌면 험담을 했다. 가문에서 일하는 메이드들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제로 서클이었는데, 오라버니는 그런 자들보다도 못하다고 여겨졌으니까.

    오라버니는 편의상 제로 서클으로 판정되었지만 정말로 0에 한없이 가까웠다. 이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재능있는 어린아이였을 뿐이었으니까. 가문을 바꿀 힘이 모자랐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유일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했지만, 사용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사용인들은 누구를 모시고 있냐에 따라서 과시할 수 있는 힘이 달랐다.

    예를 들어, 대공자를 모시고 있다면 다른 시종들보다 어깨를 펴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리투아 제국은 성별에 상관없이 첫째가 가문을 잇는 것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만약, 여성 후계자라면 그에 맞는 데릴사위를 데려와 문제를 해결했다.

    제국은 이런 점에서는 굉장히 자유로웠다.

    수업에 지쳐 가끔 방으로 찾아가면 오라버니는 달콤한 차를 타주었다. 오라버니가 직접 타주는 차는 담당 집사의 차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살짝 미소짓고는 비밀이라고 말하며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리나가 더 크면 차를 타는 법을 알려줄게. 지금 이런 건 네게 필요 없는 거니까.”

    나는 오라버니의 그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고 느꼈다.

    이렇게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 왜 그런 심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대체 마법이란 뭐길래 오라버니를 아프게 하는 걸까. 어린 마음에 오라버니를 제발 구해달라고 창조신께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마저 오라버니의 편이 아닌 듯했다.

    화가 났다. 오라버니가 잘못한 것은 하나 없는 데 어째서 계속 고통받아야 해? 어차피 내게 오라버니의 자리를 대체할 기대를 하고 있다면, 강해져서 오라버니를 혼자 두지 않고 지켜주면 되는 거였다.

    간단한 문제였다. 아버님처럼 세컨드 서클의 경지를 이룩한 마도사가 된다면 아르테미스 가문 내에서 아무도 오라버니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더 열심히 마법을 수련했다. 그 와중에도 오라버니가 받는 차별은 나날이 심해졌다. 오라버니도 나름대로 세바스찬과 열심히 노력했지만, 0을 1로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라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오라버니가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10살이 되고서 드디어 퍼스트 서클을 각성할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직계 자손은 아버님과 같은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퍼스트 서클에 각성한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다들 놀라워했다.

    그렇게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는 대륙에 이름이 널리 퍼진 천재(天才)가 될 수 있었다.

    처음 생각한 것과는 달리, 퍼스트 서클을 각성하자 오히려 오라버니와 거리가 더 멀어졌다. 아버님은 오라버니가 받아야 할 가주 교육을 내게 시키기 시작했다. 솔직히, 가주 교육은 힘들었다. 한 가문을 이끌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아버님은 생각한 것보다 폭력적이고 잔인하셨다.

    안 그래도 쉴 틈 없는 시간표에 가주 수업까지 추가되자, 너무나도 바빠서 몸이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고작해야 10살이었던 어린 몸은 결국, 탈이 나버렸다.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후에도 신관이 회복 마법을 걸어주지 않으면 다시 쓰러질 정도로 쇠약해졌다.

    뛰어난 마나의 재능이 있던 것과는 별개로 그 시간표는 어린아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가장 걱정해준 건, 아버님도 어머님도 아닌 오라버니였다. 가족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도 오라버니는 몰래 내 방에 와서 차를 타 놓고 돌아가곤 했다. 잠에서 깬 후 마시는 차는 늘 식지 않고 따듯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차를 따듯하게 유지한 건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 몫까지 오라버니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내가 쓰러진 후, 시간표는 모두 멈추었고 몸의 회복을 중점적으로 여기도록 신관에게 추천받아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마 그 시기가 내 삶에서 가장 오랫동안 쉬었던 시간일 것이다.

    몇 달 동안 푹 쉬자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무리를 시키지 말자는 어머님의 의견에 따라서 시간표가 대대적으로 변화되었다. 꼭 필요한 것 위주로 공부하게 되었고. 자유로운 시간도 갖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행복한 자유시간 대부분은 오라버니와 보내려고 노력했다.

    자유시간에 가끔, 아버님이 내려준 과제를 은근슬쩍 오라버니에게 물어봤는데 그 대답은 내 예상을 한없이 뛰어넘는 것이었다.

    “오라버니. 만약 산하 가문이나 원로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어떤 방법으로 제압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산하 가문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반란을 제압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냐는 질문을 오라버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버님은 평소에 강한 힘을 유지해 그럴 일이 없게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셨다. 이런 상황에서 반란이 발생했다면 주동자를 색출해서 본보기로 처단하라고 하셨다. 나 역시 아버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했었다.

    “반란이 일어난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애초에 전쟁은 명분이 중요하단다. 가문에 있는 일반인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으면 반란은 곧 힘을 잃게 돼있어.”

    그러나 오라버니는 완전히 아르테미스 가문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반란이 일어난다면 주동자를 죽이는 게 아닌 주동자가 아닌 다른 일반인들을 이쪽 편으로 만드는 게 가장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부드러움이 결국 강함을 제압한다고 말했다.

    오라버니의 그 말은 아버님의 교육을 받아온 당시의 내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라버니가 일반적인 귀족과는 다른 굉장히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오라버니는 대륙과 제국의 역사, 다른 가문에 관해 물어보더라도 막힘 없이 대답했다.

    “오라버니. 헤라클레스 가문에 뭐로 유명한지 알아?”

    “마창술? 그 가문은 육체파로 유명하지. 좀 특이한 방법으로 마나를 사용하고 있다고들 할걸.”

    “그러면 리투아 제국 8대 황제와 업적은?”

    “팔렌 드 리투아. 업적은 딱히 없고, 제국의 수도를 옮기려다 돌아가셨을걸.”

    아버님은 대외적으로는 제로 서클이라고 알려진 오라버니를 파르테논 아카데미 보내려고 하셨다. 아카데미 중 최고의 기관은 델포이 아카데미이었지만 마나가 없는 오라버니는 입학시험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파르테논 아카데미는 귀족들만 있는 곳이었고, 어찌 되었든 공작 가문의 자제 그것도 대공자라면 무시당할 일은 없는 곳이었다. 오라버니 역시 아카데미를 가는 것을 좋게 보고 있었다. 반강제로 가문 안에 갇혀 있는 생활이 싫증이 났기에.

    오라버니는 파르테논 아카데미로 가는 길에 실종되어버렸다. 호위 병력이 많지 않았던 것은 둘째치고 오라버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가문으로 돌아온 호위들에게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마치, 마족에게 홀린 것처럼.

    기억 조작 아티팩트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후 방문한 신관들은 호위들이 기억 조작을 당한 건 아니라고 증명해주었다.

    처음에는 아버님을 의심했지만,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그 정도로 무언가를 투자할 사람이 아니셨다. 오라버니를 실종을 위장하려고 사용하는 돈을 더 아까워하실 분이었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오라버니의 행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세바스찬의 도움일 받아 오라버니의 행방에 관한 현상금을 걸었다.

    아버님은 오라버니의 실종을 기회로 후계자의 자리를 나에게 넘겨주려고 하셨다. 오라버니가 실종되어버린 것도 마음이 아프고 믿기지 않았는데, 돌아올 자리마저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라버니의 방을 없애지 못하도록 결계로 봉인하고, 황제 폐하마저 참여한 생일 파티에서 오라버니가 돌아올 때까지, 아니 적어도 행방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후계자의 자리를 받지 않는 것을 생일 선물로 요청했다.

    아버님은 반대하려고 했으나, 황제 폐하께서 남매간의 우애가 보기 좋다고 하시며 내 치기 어린 발언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셨다. 이미 생일 선물로 엄청난 아티팩트를 받아서 너무나도 감사했는데 소원을 들어주셔서 행복했다.

    유피테르 오라버니의 실종 이후, 어머니는 가문을 떠나서 요양하시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님은 두 번째 부인을 들이셨다. 세레인으로 백작 가문의 딸이었다. 꽤 이쁜 사람인 건 분명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천사의 얼굴을 가진 그녀는 악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도움이 될 사람에게는 웃어주었지만, 가치가 없는 자들에게는 누구보다 냉혹했다. 그야말로 아르테미스의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아버님과 세레인 사이에서 막내동생 마리안느가 태어났다. 마리안느는 너무 귀여운 아이여서, 잘해줄 수밖에 없었다. 세레인이 싫다고 해도 어린아이에게는 죄가 없지 않은가.

    그 이후 제이스란도 파르테논 아카데미에서 연구하고 싶다고 떠났고, 나도 델포이 아카데미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보냈다.

    마리안느의 생일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얼음성으로 돌아온 나는 오라버니가 가문으로 귀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오라버니가 아닐까 봐. 만나기가 두려웠다.

    마리가 오라버니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두려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기억 속의 오라버니가 아니어서 실망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두려웠다.

    마리는 오라버니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신의 저주를 받은 아이라고 불렸던 그 오라버니가 마법을 사용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재 오라버니는 생일 파티에 참여하지 않았다. 마리안느에게 물어보아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 싫어진 걸까? 아니면 역시 가문을 용서할 수 없는 걸까?

    만나고 싶어요.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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