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배신이라는 이름으로(4)
* * *
단장들은 세 자릿수가 넘는 마나탄을 사용하여 스켈레톤들을 빠르게 청소했다. 스켈레톤이 있었던 지역 자체를 초토화하면서도, 단원들의 고칠 사항을 하나하나 지적해주었다.
지적받은 단원들은 지시를 빠르게 알아듣고 수정했다. 마법사단의 일원이 되려면 얼마나 엘리트이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실력 있고 경험도 충분한 단장들의 지휘는 탁월했다. 1층에서는 언데드 계열 최하위인 노말 스켈레톤이 주로 나타나서 상대하기 편했다. 가끔 워리어와 아쳐들이 나타났지만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량만으로 공격해오는 건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마운 상황이었다. 특별한 전술 없이 들이닥치는 것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잠재워버릴 수 있었기에.
생각해보라.
어디에 마나 지뢰가 깔려있는지도 모르고 달려오는 멍청한 해골들을. 자폭하는 순간 일거리들이 한순간에 줄어드는 마법사들의 행복을.
‘던전이…. 이렇게 쉽다고?’
1층 공략이 거의 마무리 되고 휴식을 취하던 중, 2 단장 마르타 아크타이온은 생각에 잠겼다, 올해로 43세를 맞은 그는 세컨드 서클에 거의 다가간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는 세바스찬과 마찬가지로 아르테미스 산하의 아크타이온 출신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던전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던전은 침입자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던전처럼 단순하게 스켈레톤으로 공격하는 허술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던전에서는 인간을 향한 악의가 다분히 느껴졌다. 악의가 형상을 이룬듯한 수호자를 격퇴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티팩트였다. 던전에서 나온 아티팩트는 그야말로 목숨값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생과 사의 경계.
그곳에서 아티팩트를 원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은 욕심과 생명을 저울에 올려놓고서 춤을 췄다.
생각에 잠겨있던 마르타를 현실로 되돌린 건 4 마법사단 단장 리오였다. 리오는 마르타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더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내밀었다. 평소부터 리오는 맥주를 달고 사는 걸로 유명했다. 술고래라고 불릴 만큼 잘 마시는 그에게 맥주 한잔은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과 같았다.
“마르타 단장. 1층이긴 무사히 돌파했으니 다행이오. 한 잔 마시겠소? 아주 시원하니 갈증이 싹 날아가오.”
“임무 중에 술은 마시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조금 너무 쉬운 것 같습니다만. 걱정을 조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오 단장.”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 아니오? 아직 1층이고, 단원들이 훈련한 대로 잘 따라와 주니 당연하오. 나 역시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래야겠군요.”
괜한 걱정인 걸까.
아까부터 불길한 예감이 마르타의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오랜 마법사단 생활로 인해 만들어진 여섯 번째 감각은 그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던전이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그런 지옥 같은 곳이었다.
꿀맛 같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그들은 2층으로 가는 입구를 찾아냈다. 잠깐 동안의 휴식은 자신감과 집중력을 충전하기에 충분했다. 입구 앞에서 수를 확인한 후, 그들은 2층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고 2층에 들어가자 그들을 반긴 것은 숨 막히는 어둠이었다. 1층의 어둠은 어린아이가 밤을 보며 느끼는 추상적인 공포감이었다면, 2층의 어둠은 호흡조차 멈추게 만드는 죽음의 공포였다.
호흡할 공기를 빼앗긴 것만으로 마법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소름이 끼친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주변에 가득했다.
“라이트를 사용해! 본인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라, 결계 속에 들어와서 숨 쉬어. 그때까지만 참아!”
“호흡을 하지 마라! 기운에 잠식된다! 몇 분, 아니 몇 초라도 좋다. 참고 기다려라! 구하러 갈 테니.”
그나마 숱한 위기를 헤쳐나온 마르타와 리오가 있다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두 단장은 예상외의 상황에서도 판단력을 잃지 않았다. 이상함을 감지하자 빠르게 마나 결계를 쳐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마나 결계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우선 그 기운은 결계 안을 들어올 수 없어 보였다.
리오는 단원들을 한 사람씩 구출해 결계 속으로 데려왔다. 마르타 역시 마나를 방출해 이상한 기운을 최대한 걷어내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단원들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리오처럼 단원들을 구조했다.
방출된 마나로 기운을 깨끗하게 없앨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견딜 수만 있다면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마법이…. 아니 마나 자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결계 안으로 구출되어 들어와 캑캑거리며 숨을 내뱉은 한 마법사가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고?”
단원을 전부 구출해온 4 마법사단 단장 리오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리오가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의아한 표정으로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마르타에게 질문했다.
“마르타 당신도 마법을 사용하는 데 문제없지?”
“마법? 사용할 수 있으니 단원들 구출해온 거지요.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마르타는 방금 마법사가 말한 내용을 듣지 못했는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리오를 쳐다보았다. 리오는 대답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에이엔 너도 마나가 반응하지 않아서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라이트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제 손처럼 움직여주었던 마나가 2층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주변의 반응을 봤을 때, 아마 다들 저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에이엔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두 단장 앞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불확실한 정보를 배제하고 필요한 정보만 정확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위기 상황에서 한 줄기 빛이 되었다.
“큰일이군…. 부단장인 에이엔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라면, 다른 단원들도 거의 못 사용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에이엔의 보고를 들은 마르타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충격적인 내용을 보고한 에이엔은 4 마법사단의 부단장이었다. 즉, 던전 공략을 하는 마법사 중에서는 상위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녀가 사용하지 못한다면 대부분의 단원이 어둠에 삼켜진 것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마법사에게 마나를 빼면 남는 것? 국왕에게 나라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검사가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그를 검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르타는 사실 확인을 위해 2 마법사단의 부단장과 다른 단원들을 불러 얻은 정보와 사실을 교차 확인했다.
몇 명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같았다. 마법을 사용해 대피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마나가 반응을 하지 않아 더 당황했다는 말을 마르타는 허망한 기분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타는 결계 유지로 집중력을 많이 소비해,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가 마법사단 단원이었을 때. 항상 원인을 생각하라고,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항상 말한 선배가 있었다. 바로 같은 가문 출신의 세바스찬이었다.
뛰어난 엘리트였던 세바스찬은 재능도 뛰어났지만,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노력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은 없다는 말을 직접 증명해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마법사들의 꿈인 세컨드 서클에 도달하는 것으로.
이상한 기운은 마나로 밀어낼 수 있었던 처음과는 다르게 결계에도 점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기존 결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결계를 새로 구성해야 했다.
이는 고도의 집중력과 마나를 필요로 하는 일었다. 그 와중에 정신을 잃고 있는 단원을 구출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버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급격히 마나를 소비하여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마르타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왜 단장 두 명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는가?
혹시 마나의 양일까? 두 단장은 확실히 단원에 비하여 압도적인 마나의 양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나의 양이 적은 순서대로 마나 지배력을 잃게 된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자세한 건 단원들이 깨어난 후 확인을 해보아야 할 문제였지만.
마르타에게 한 번 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미안하오, 마르타 단장 나도 결국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소.”
항상 술에 취해있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가 사용하는 철 마법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임무 중 그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마법으로 사건을 해결한 적도 많았다.
마나의 양이라면 세컨드 서클에 도달한 1 단장을 넘어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으니. 마르타보다는 훨씬 많은 마나를 보유한 그가 먼저 지배권을 잃었다면, 방금 전 마나 보유량의 가설도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리오 단장, 당신 역시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당신은 마나량이라면 1 단장을 뛰어넘을 정도가 아니었습니까?”
“그건 맞소만, 마나가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밖에 말할 수 없소. 원인도 전혀 짐작 가지 않소. 난 그렇게 복잡한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 부분은 마르타 단장. 당신을 굳게 믿고 있소.”
리오 단장의 말을 증명하듯, 그가 유지하고 있던 결계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것을 본 마르타는 황급히 결계의 영역을 넓혔다. 순식간에 마나가 없어지려고 해서, 마르타는 품에 있던 마나 포션을 꺼내 빠르게 비웠다.
상급 마나 포션이 몸에 스며들며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늘어난 결계를 유지하느라 마나 소비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지만, 아직 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단원도 많았기에 결계를 해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방패였다.
“미안하오. 마르타 단장. 일단 알프레도와 연락을 해봐야겠소. 최소한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나아 보이니까. 이대로 가면 원인도 알 수 없는 채로 개죽음당할 뿐이오.”
리오 단장은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매번 호탕한 모습으로 적을 분쇄하던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괜찮습니다. 일단은 최대한 버텨볼 테니. 어떻게든 알프레도에게 연락을 해서 지원 병력을….”
그러나 마르타는 결계 유지에 집중하느라 더는 말을 잇지는 못했다. 어둠의 기운이 호시탐탐 결계를 부술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마르타마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결계는 없어지고, 그곳에 있는 모두는 저 알 수 없는 어둠에 삼켜질 것이 뻔했다.
리오는 힘내라는 듯 마르타를 잠깐 쳐다보더니,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지원을 요청할지 깨어난 단원들을 데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