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4화 (14/265)
  • 기대와 배신이라는 이름으로(3)

    * * *

    “4층 크기의 던전이라…. 남은 시간이 1시간이면 시간이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소.”

    알프레도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2 마법사단의 단장이었다. 2 단장은 알프레도에게 확실한 정보를 요구했다. 정보가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열쇠나 다름없었기에.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마법사들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공략에 실패한다면, 그건 그 누가 와도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들은 리투아 제국을 넘어 세아니아 대륙 최강의 마법사단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이 갑니다. 이렇게 하죠. 2 마법사단과 우리 4 마법사단이 던전 출현 지점에서 미리 대기합니다. 3 마법사단은 첫째 누님이랑 합심해서 얼음성 경비를 확실하게 해주시오.”

    4 마법사단 단장이 집무실이 울릴 정도의 소리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평소에도 목소리가 큰 것으로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알프레도를 쳐다보는 4 단장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좋습니다.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널리 알린 그 힘을 믿고 4 단장의 방식을 택하겠습니다. 이견이 있으십니까?”

    “나쁘지 않아, 그 말대로 하는 게 좋겠군.”

    알프레도가 상황을 정리하자, 2 마법사단 단장이 괜찮은 전술이라고 말하며 긍정했다. 어찌 보면 자택 대기를 해야 할 3 단장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들은 아르테미스의 깃발 아래 함께 움직이는 선의의 경쟁자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서로의 실력을 저평가하지는 않았다.

    “저는 이만 물러가죠. 그럼 던전은 믿고 맡깁니다. 얼음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길.”

    그 말을 남기고 3 단장은 회의에서 빠졌다. 그곳에 남은 집사장과 나머지 두 단장은 세부적인 전략을 짜기 위해 열띤 토론을 계속하였다. 의견 교환이 몇 번이나 이루어졌고, 단 15분 만에 세부전략을 완성하고 던전으로 출정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회의에 열중한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열띤 토론을 보고 있던 또 하나의 시선이 있었다는 것을.

    “젊었을 때는 던전이 꿈이 가득한 공간인 줄 알았는데, 정작 문을 열어보니 절망만이 나를 반겼지.”

    던전 앞에서 전투태세를 유지하며 사방을 경계하던 2 단장은 긴장한 듯 보이는 자신의 단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렇게 긴장하게 되면 오히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함정에 걸려 죽을 확률이 높았기에.

    그들의 리더이자 선배 마법사로서 이런 곳에서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혹독한 훈련을 돌파한 순간부터 그들 하나하나가 빛나는 신성이었다. 던전 안에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런 태도는 좋지 않았다.

    단 한 순간의 실수가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니까.

    “절망…. 말씀이십니까?”

    “단장님은 마법사단 단장님들 중에서 제일 젊으시잖아요! 제 이상형이라구요!”

    남자 단원은 2 단장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잔뜩 겁을 먹었다. 반면에 여자 단원은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를 읽었는지 적당히 농담으로 받아쳤다.

    갓 훈련을 마친 신입 마법사인 남자 단원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단장이 직접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버틸 수가 없었다. 그걸 본 베테랑 여자 단원은 분위기를 풀어주려 노력했다.

    “누님, 단장님과 나이 차가…. 심지어 단장님은 사모님도 계십니다만? 그거 좋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상님들이 말씀하셨지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은 웃어 주지 않는다고, 잘 알아둬 후배. 인생은 러브 & 피스야.”

    “누님의 말이 이상하다는 건 긴장한 저도 알 수 있을 정도네요. 긴장을 너무 안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누님?”

    남자 단원은 선배의 과도한 모습에 긴장이 풀렸는지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것을 본 여자 단원과 2 단장은 마음이 놓인 듯 안심한 표정으로 후배의 머리를 격렬히 쓰다듬어 주었다.

    “긴장은 다들 풀렸나? 긴장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평상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마법사단의 훈련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자신감을 가지고, 복창해라. 교육받은 대로 행동한다!”

    2 단장은 자신의 단원들을 하나로 모은 뒤 진지한 목소리로 연설했다. 알프레도의 정보와 자신의 감이 곧 던전이 완성된다고 속삭였기에. 긴장을 풀었으니 이제 정신무장을 할 시간이었다.

    “교육받은 대로 행동한다!”

    20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2 단장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복창했다. 평소, 죽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느껴졌던 훈련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들의 눈빛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부수고 나아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깃들었다.

    “던전이 열립니다!”

    맨 앞에서 던전을 조사하던 마법사가 주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확성 마법을 통해, 주변에서 대기하던 모든 마법사에게 똑똑히 들렸다.

    “들어간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2 단장이 몸소 앞장서며 2 마법사단을 독려했고,

    “우리도 간다. 2 마법사단에게 질 수는 없지. 명심해라, 첫째도 목숨, 둘째도 목숨이다.”

    4 단장 역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그 뒤를 따랐다.

    “단장님. 세 번째는요? 이 던전을 공략하면 여자 친구에게 고백할 거예요.”

    “이게. 여자 친구도 없는 게 까불어. 넌 아마 애인 없이 평생 오래도록 살 거야.”

    “너… 진짜? 잘 생기면 다야?”

    “셋째는 큰 부상 없이 귀환하는 거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라 너희들.”

    4 마법사단의 단원은 단장의 호쾌한 성격을 닮았는지 던전에 들어가는 도중에도 장난을 쳤다. 4 단장은 장난치는 단원의 뒤로 접근해서 짝 소리가 나게 등을 때려 응징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모인 마법사단의 밸런스는 미묘했다. 베테랑이라고 불릴만한 단원들이 많았지만, 얼마 전 신입 단원이 충원되며 세대교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입 단원 중에서는 겁을 먹은 자들도 있고, 공을 세워 명예를 얻고 싶어 하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단순히 단련해왔던 마법이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해하는 자들도 있었다. 뭔가를 배웠으면 꼭 써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바로 그 마음이었다.

    50여 명의 인원이 문이 던전의 입구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입구는 거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게다가 왠지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도 흘렀다.

    그러나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짊어진 마법사들이었다. 단장들은 세컨드 서클에 도달했거나 실마리를 잡은 경우가 많았고 단원들 모두 퍼스트 서클을 달성했을 정도로 재능이 넘쳤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무언가 끈적끈적한 느낌이 나서 자연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공기도 답답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산자를 질투하는 죽은 자의 기운이 곳곳에 가득했다.

    “이번 던전의 특성은 언데드다. 모두 빛으로 시야를 밝히고 방어막을 쳐라.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2 단장은 오래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직감으로 던전의 특성을 확신했다. 아직 언데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시체의 썩은 냄새가 그의 본능을 자극했다.

    제로 서클 마법 빛과 방어막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그러자 한밤중 불을 켠 것처럼 환해져서 던전의 구조를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던전의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2 마법사단의 신입 단원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2 단장은 직접 단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힘을 내도록 독려했다.

    ‘언데드 던전은 꽤 어려운 편에 속하지. 단원들에게 큰 경험이 되겠군.’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밖의 몬스터에 비해 매우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언데드는 신성 마법을 쓰는 신관이 없다면 쉽게 토벌할 수 없는 망령들이었다.

    그러나 2 단장은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옥석을 가려 뽑은 단원들을 믿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4 단장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역시, 마법사단은 신뢰할 수 있었다.

    뒤에서 단원들이 서로 잡담하는 내용이 2 단장의 귀에 들어왔다. 생애 첫 던전 공략을 앞둔 단원 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꽤 흥미진진했기에.

    “준비 만전이에요!”

    2 마법사단 소속 선배 마법사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당당하게 자신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고, 얼굴에는 선배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이게 나의 실력이다. 나를 보아라, 좀 더 존경해라, 찬양하라 후배여. 이 모습이 멋지지 않은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분위기를 흐릴 수 있으니 참는 듯했다.

    “뭘, 자랑스럽게 신입을 데리고 자랑하고 있어. 너도 던전은 초행이잖아.”

    자랑스러운 얼굴을 한순간에 어둡게 만든 건, 그녀의 바로 곁에서 주위를 경계하던 또 다른 여자 선배였다. 그녀의 제복에 그려진 표식은 부단장의 것이었다. 부단장은 웃기지 말라며 코웃음을 쳤다.

    “사실 아직 준비 다 안 했어요…. 부단장님 죄숑해요.”

    “누님, 혀까지 깨무시네요. 오늘 이미지가 많이 무너지신 것 아십니까?”

    2 마법사단 부단장의 말에 여자 선배는 울상을 지었다. 신입 남자 후배가 달래보았지만, 이미 꺾인 마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신입과 비교했을 때 베테랑이었을 뿐이었다.

    여자 선배는 많은 전투 경험과 몬스터 토벌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던전 공략 경험이 전혀 없는 게 큰 흠이었다. 부단장이 이 점을 찌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던전은 무단으로 침입한 마법사들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수많은 해골이 사방에서 슬금슬금 나타나며 마법사단을 에워쌌다.

    콰앙ㅡ.

    “언데드가 나타났습니다!”

    경계하기 위해 미리 설치해두었던 마나 지뢰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그것을 신호가 되었는지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마법사 한 명이 확성 마법을 통해 적의 등장을 알렸다.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단원들은 조금이나마 풀어져 있던 태도를 완전히 바꿔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사나운 눈빛은 해골들을 향해 있었고, 마나는 소용돌이치며 던전을 쪼갤 듯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1층이다. 너무 힘을 소모하지마, 이 정도는 제로 서클 마법으로도 충분하다.”

    “마나를 아껴! 거기, 마나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훈련 때 뭘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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