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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1화 (11/265)
  • 마리안느 아르테미스의 생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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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페미아는 진심을 담아 마리안느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유페미아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커다란 선물상자를 마리안느의 앞에 내려놓았다. 황실의 문장이 자수 되어있는 포장지만 보더라도 선물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물이 무엇인지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지만, 결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은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마리안느는 확신했다. 황실의 이름은 어린 그녀가 알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리투아 제국의 현 황제 로티우스 드 리투아는 카테리나의 생일에 마나를 증폭할 수 있는 반지형 아티팩트를 하사했다. 이 정도의 아티팩트는 천년에 한 번 나올 정도로 대단한 거라고 카테리나는 그저 놀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작년 생일에 마리안느는 저주 마법에 대응할 수 있는 목걸이형 아티팩트를 선물로 받았었다. 저주 무효화란 특성 자체가 희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담당 집사도 집사장도 놀랐었다. 게다가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귀엽고 좋은 것만 보면서 자라나라는 친필 편지가 선물에 동봉되어있었다.

    마리안느는 소녀회의 리더이자, 늘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언니인 유페미아의 선물에 너무나도 기뻤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마리를 너무 독점하고 있으면 사리아나, 리네에게 불평을 들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유페미아 언니, 고마워요! 제가 열심히 준비한 파티 마음껏 즐겨주세요!”

    유페미아는 마리안느의 귀여운 대답을 듣고서는 우아하게 웃었다. 아끼는 동생의 생일은 언니로서도 기쁜 법이었다. 그러나 참여한 손님이 꽤 많아 혼자서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인사 후에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유페미아가 혼자가 되자 여러 귀족이 곁을 가득 채웠다. 마치,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리투아 제국의 황제는 신분에 의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자식들을 모두 사랑하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유페미아는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을 다니느라 황성에 자주 있지 못했지만, 황제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황제와 연결될 단단한 고리를 만들기 위해 유페미아에게 호감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왕 줄을 설 거면, 최고의 줄을 타는 게 당연히 제일 나은 선택이기 때문에.

    ‘미아 언니 너무 힘들겠다아. 아, 언니 조금 화났나?’

    사라져가는 유페미아의 뒷모습은 화가 났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아마, 이익만을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일 거라고 마리안느는 생각했다. 그녀는 황녀라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필요한 권력 투쟁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다음으로 마리안느에게 축하와 선물을 주기 위해 다가온 건 리네아와 한 소년이었다. 마리안느가 파티의 시작을 선언할 때 보았던 리네아와 티격태격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마리안느의 눈길을 끈 것은 두 사람의 녹음을 닮은 머리와 눈동자였다. 쌍녹의 신체적 특징이 데메테르 가문의 특징이었던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리네아의 오빠인 것이 분명했다.

    마리안느가 좋아하는 언니인 리네아는 동생이 없어서 늘 서러웠다고 말해주었으니까.

    그러나 두 사람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리네아가 붙임성 있는 향기로운 꽃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의외로 소년에게는 야생에서 강하게 자란 소나무의 느낌이 났다.

    “안녕, 마리? 생일 축하해, 이게 내가 준비한 선물이야.”

    “리네 언니가 주는 거라면 어떤 선물이라도 기쁘게 받죠! 당연한 거죠! 히히.”

    리네아는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마리안느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직접 선물을 건네주고 살포시 포옹해주었다.

    그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며 야성미 넘치는 소년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마지못해서 한다는 표정으로 마리안느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 와중에서도 선물은 조심스럽게 들고 가서 마리안느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서는 뒤를 돌아, 리네아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르테미스 공녀 씨, 이름이 뭐였더라. 마, 마… 마가렛트? 아닌데. 음…. 아. 마리안느!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이건 선물이야. 지금 네게 꼭 필요할 거야. 이제 된 거지? 리네아. 다시는 나한테 이런 일 부탁하지 말라고. 진짜 힘드니까.”

    “리프 오라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구요. 하. 진짜. 하나뿐인 동생의 친구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말이 되나욧! 실망이에욧!”

    리네아는 같이 온 오라버니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리프라고 불리는 소년은 억울하다는 듯, 양손을 위로 올려 흔들며 리네아에게 항변했다.

    “아니, 이런 건 진짜 어색한데 어떡하라고! 애초에 나는 안 와도 되는 자리였던 거 아니야? 그냥 아카데미에서 있는 게 편하다고. 내가 이런 꼬마 아가씨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아?”

    리프는 항상 툴툴거리면서도 언제나 리네아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리네아가 가장 좋아하는 오빠가 리프였다.

    리프 데메테르. 올해로 19살이 된 그는 가문의 마법인 대지 속성의 마법을 활용하는 데 꽤 유능했다. 퍼스트 서클을 각성하는 데 성공하여, 후계자인 형을 도와 가문의 이런저런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고작 둘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뇌 파인 형을 보좌하는데 큰 만족감을 얻고 있었다. 무력이 다소 부족한 형을 도와 이번 세대에서도 가문이 영광스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메테르 남매가 다녀간 후에는, 사리아가 가문 특유의 제복을 입고서 마리안느를 찾아왔다. 드레스 차림을 기대했던 마리안느는 예년처럼 차려입은 사리아를 보고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리아 언니의 드레스 차림도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파티장에 기사 제복이라니. 너무하잖아요,”

    “아폴론 가문의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이 옷을 입어야 하는 숙명인걸. 유페미아의 생일에도 이 옷으로 참여했는데, 아무도 제지하지도 않았고 말이야. 걱정하지마, 나는 이 옷으로도 만족해.”

    “그건… 그렇지만. 드레스 차림을 정말로 보고 싶었는걸요! 사리아 언니는 드레스도 정말 잘 어울릴 거 같았는데. 힝.”

    “맞아. 파티장을 꾸민 거나, 음식들 신경 많이 썼더라. 마리, 너다움이 확실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사리아는 가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당연하며,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또, 마리안느가 공들여 준비한 파티장에 대해 칭찬해주며, 그녀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마리안느도 아폴론 가문의 이야기는 자주 들었기에 수긍했지만, 어린아이였기에 역시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섰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녀의 마음은 계속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쵸 그쵸, 며칠 동안 고민해서 선택한 디자인이거든요. 귀족다움과 저 다운 이미지 사이에서 엄청나게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사리아가 사용한 회심의 소재 돌리기가 성공했는지, 마리안느는 드레스라는 소재에서 벗어나, 준비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세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마리안느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사리아는 더 가까이 다가가 궁금했던 것을 귓속말로 물었다.

    “유피테르 씨는 오시지 않았어? 아까부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시던데. 아까 분명히 처음부터 참여하실 거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가족들과 아직 사이가 좋지 않은 거야?”

    “유 오빠… 말이지.”

    사리아가 조심스럽게 모습이 보이지 않는 유피테르의 참여 여부를 묻자, 마리안느는 축 처진 강아지처럼 명랑하던 기운을 잃고는 사리아에게 칭얼거렸다.

    “미안,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니?”

    “나도 잘 모르겠어 언니. 분명히 와야 하는 게 맞는데. 아빠 때문일까? 사실은 아직도 가족들을 용서할 수 없는 걸까? 그래서 내 생일에는 오고 싶지 않은 걸까?”

    “하지만, 유피테르 씨가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는데…. 기운 내, 마리. 꼭 오실 거라고 믿자. 잠깐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잖니.”

    사리아는 마리안느를 다독이고서 소녀회의 다른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리네아와 리프가 티격태격하고 있고, 유페미아가 조용히 웃고 있는 그곳으로.

    그 이후로도 몇십 분 동안 아르테미스 가문에 잘 보이고 싶은 귀족들에 의한 선물 공세가 계속되었다. 평상시에는 그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성 때문에 이야기를 걸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저주받은 대공자의 소문으로 인해, 잠시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었지만, 조디악의 일원인 마도사 카르멘, 델포이 아카데미에서도 압도적인 힘을 증명한 희대의 천재 카테리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학문계의 신성 제이스란의 이름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뛰어난 세 명에 이어, 넷째인 마리안느 역시 ‘황녀’의 친우에 포함되어 유명세를 치렀다, 유페미아가 실권이 없다고 해도, 그녀는 분명 황실의 일원이었으니까. 마리안느가 유페미아가 아끼는 동생이라는 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황실의 인정을 받는 순간 명예는 물론이고, 실질적인 이익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으니까.

    황도의 한 평민이 하는 음식점을 2 황자가 마음에 들어 했는데, 황제가 직접 훈장을 내리자 귀족 사이에서도 명물이 될 정도로 순식간에 유명세를 치렀던 일이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음식점은 여러 곳에 분점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또, 마리안느는 대륙 최고의 귀여움을 지녔다고 너무나도 유명했다. 그녀를 만나본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양 갈래로 묶은 은색 머리는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나, 마리안느에게는 찰떡같이 어울렸다.

    이런 가문과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애초에 참가 자격이 되지 않는 평민이거나, 기회를 잡을 줄 모르는 바보천치뿐이었다.

    한창, 파티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려고 하는 무렵, 카르멘은 선물을 받는 마리안느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남들이 보았다면, 그 표정 역시 무섭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가족이 보기에 그것은 확실하게 애정 어린 눈빛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파티장 내에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마나로 계속 확인했다. 그런 카르멘에게, 파티의 총 책임자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집사장 알프레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가까운 지역에 던전… 이 발생했습니다. 가주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마법사단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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