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0화 (10/265)
  • 마리안느 아르테미스의 생일(5)

    * * *

    사랑받는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 막내의 생일 파티로 인해서 얼음성의 입구는 마차로 가득했다.

    야외에 특별하게 마련된 생일 파티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파티에 참여한 귀족들은 제국에서 제일 추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얼음성을 구경하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초대 가주 나이아드가 직접 고안하고 설치했다는 이 결계는 추운 북부 지방의 냉기를 막아주고 기온을 조절해주고 마법으로부터도 보호해주었다. 아르테미스 영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얼음성은 리투아 제국 북부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세이룬에서 재빠른 말로 반나절 정도 달려가면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하면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텔레포트의 경우 쌍방의 동의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고위 귀족이나 아르테미스 가문과 친분이 있는 자들은 미리 도착해 얼음성 내부에서 머물렀다, 이를 거절당한 다른 귀족들은 세이룬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마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미리 준비된 다과를 즐기며 마리안느 생일 파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야기하기도 하고, 소개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갖기도 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귀족들의 파티에 오는 주목적이기도 했고.

    연회장의 뒤에서는 마리안느, 생일을 맞아 가문으로 돌아왔던 카테리나, 그리고 카테리나의 누나처럼 보이는 어머니와 가주 카르멘 아르테미스가 있었다. 유피테르를 제외한 모두가 그곳에서 긴장한 듯 보이는 마리안느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니 마리? 아직도 걱정이란다. 혼자서 잘할 수 있을지.”

    그녀는 마리안느의 어머니 세레인이었다. 유피테르의 어머니인 아리엘과는 다른 카르멘의 두 번째 부인. 황실 출신의 아리엘은 큰아들의 실종 이후 큰 충격을 받아 황실로 돌아가 있었다.

    가문의 안주인을 비워서는 안 된다는 원로들의 강한 주장으로 카르멘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주인공이 바로 세레인이었다. 세레인은 호들갑을 떨며 그녀의 딸 마리안느의 옷을 마지막으로 점검해주고 있었다.

    다른 세 자식과 다르게 본처의 자식이 아닌 마리안느를 기죽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애초에 마리안느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럼요! 언제라도 나가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마리는 스스로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

    “그럼, 카리나 언니! 나는 언제든 준비 만전이라고요!”

    마리안느는 그런 세레인의 손을 꼭 잡으며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카테리나 역시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도저히 다섯 살로 보이지는 않는 어른스러운 행동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카테리나의 선례가 있었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저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 그게 평범한 게 아니라고요? 아르테미스 가문의 자제분들은 전부 이런 느낌이었는데요?

    이게 가문에서 일하는 메이드, 정원사, 요리사 등 사용인들의 평범한 인식이었다. 유피테르를 제외하면 카테리나, 제이스란, 마리안느 모두가 비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것도 맞았기에 가문의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가문의 어른들은 오히려, 아르테미스의 이름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마리안느를 더욱 칭찬해줄 뿐이었다.

    “알프레도, 파티 관련 준비는 다 했겠지? 예의 그 건도 있으니까 완벽해야 해.”

    딸 마리안느와 아내 세레인을 쳐다보며 카르멘이 집사장 알프레도에게 물었다. 그 눈빛은 사랑하는 딸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차가웠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예, 가주님. 완벽합니다. 어떠한 문제가 나타나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집사장 알프레도가 칼같이 대답했다. 평소, 철두철미한 카르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완벽하지 않다면 시도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지나칠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서.

    “아빠도 참, 저를 너무 못 믿으시는 거 아니에요?”

    알프레도를 다그치는 카르멘의 모습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마리안느가 참견해 알프레드를 차가운 분위기에서 해방해주었다. 세레인은 마리안느가 잡아주었던 손이 비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마리안느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마리안느는 사랑을 많이 받는 만큼 사용인들에게도 상냥하게 대해주는 편이었다. 유피테르가 도착한 당일,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성격에서 만들어진 정보망의 힘이었다.

    “마리안느.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하는 건. 옳지 않다. 좀 더 냉혹해져야 한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르테미스다.”

    카르멘이 마리안느에게 당부했다. 그러나 그 말은 왠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빠. 적을 늘려서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걸요? 모두가 친해지면 좋잖아요. 적을 만든다는 건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제이 오빠가 그랬어요.”

    카르멘도, 마리안느의 말도 나름의 근거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는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의 문제에 가까웠다. 두 사람이 세상을 볼 때, 집중하는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카르멘은 마도사가 되기 위해서 사바트를 겪었고, 제국의 4대 공작으로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었다. 다수의 전쟁도 이끌며 사람이란 존재가 타락해서 나락으로 가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안느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고작 다섯 살이었지만 그녀 역시 방학 때마다 오는 카테리나, 제이스란의 의견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고 그녀의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 보이는 메이드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앞이라 어두운 표현을 자제하고 비교적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영특한 마리안느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잘 소화했다. 실제로, 상냥하게 대해주는 귀여운 그녀의 편이 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살아있는 얼음이라고 불리는 카르멘도 마법적 재능이 있는 게 아니었던 마리안느에게 사랑을 보여주었고, 오라버니의 실종 뒤 마음의 문을 닫았던 카테리나도 마리안느에게는 마음을 열어주었다.

    이 자그마한 기적이 그녀의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가씨, 파티의 개최를 선언하시러 가시죠. 더 지체되면 손님들께 실례입니다.”

    두 사람의 싸움 같지 않은 싸움을 끝낸 건, 알프레도의 말이었다. 손님을 기다리지 않게 하고 시작하는 것이 진정으로 완벽한 준비였기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충언했다.

    카르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마리안느는 그런 그를 보고서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반복하더니 긴장이 풀린 듯, 뒤에 있는 카테리나에게 눈을 찡긋하며 기운차게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기대해주세요!”

    “다녀오렴, 마리. 엄마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말렴.”

    “마리, 무슨 일 있으면 이 언니가 다 해결해줄게. 자신 있게 해 알았지? 오늘은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너의 날이니까.”

    세레인과 카테리나의 응원을 뒤로하고 마리안느는 카르멘의 손을 꼬옥 잡고서 파티의 단상 위로 나아갔다.

    파티장은 아르테미스의 색인 흰색과 얼음성의 상징적인 푸른색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중심에는 마법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초대 아르테미스의 거대한 조각상과 분수가 있었다.

    앞쪽에는 마리안느가 올라갈 살짝 높은 공간이 있었다. 단상의 한편에는 오케스트라가 은은한 분위기에 맞는 곡을 연주하며 즐기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의 막내, 마리안느 아르테미스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확성 마법으로 파티의 주인공 마리안느가 입장하는 것을 알리는 알프레도의 목소리가 파티장에 울렸다.

    서로 이야기하며 하하 호호 안부를 묻던 손님들은 주역의 등장에 모두 단상 위에 집중했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오케스트라 역시 은은한 분위기에서 신나는 분위기의 곡으로 바꿔 연주했다.

    한 명이 등장을 축하하기 위해 손뼉을 쳤고, 이내 그 박수의 물결은 파티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리안느는 단상을 향해 총총 걸어가더니, 정중앙에서 멈췄다. 카르멘은 그런 그녀 뒤에서 조용히 파티장을 쳐다보았다. 몇몇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친한 자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파티에 와있었다.

    생일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축복받을 일이었다.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든 간에.

    그러나 그가 진짜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그놈은 없군…. 마리와 꽤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죽은 줄만 알았던, 아니 차라리 죽는 게 편했을지도 모를 첫 번째 자식 유피테르였다.

    “오늘 저의 다섯 살 생일 파티를 축하해 주려고 오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모두, 준비한 파티를 즐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안느는 자신의 집사와 함께 준비했던 문구를 하나하나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눈으로는 파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여서 그런지 아니면 연습의 결과인지 평상시와 다르게 애교가 없는 말투였다.

    오케스트라 역시, 마리안느의 작고 당당한 목소리가 잘 들리게 연주를 중단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응원했다.

    소녀회의 일원이었던 사리아는 유페미아의 옆에서 그녀를 지키듯 있었고, 유페미아는 마리안느와 눈이 마주치자 화사한 미소와 함께 오른손을 흔들어주었다. 리네아는 같이 온 것처럼 보이는 친오빠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유 오빠…?’

    그러나 없었다. 유피테르는 파티장 안에는 있지 않았다. 왠지 슬픈 느낌이 나서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지만, 참았다. 그녀 역시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짊어진 사람이란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축복받을 행사에서 당사자가 눈물을 흘리면 타오르고 있는 분위기는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는 준비를 도와준 모든 사람과 손님께 면목이 없었다. 유 오빠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 없었다.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파티의 시작을 마리안느가 알리고 나서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되었다. 다과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위해 메이드들이 준비된 음식을 하나둘씩 날랐고, 단상 중앙에는 거대한 4층의 생크림 케이크가 운반되어왔다.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시작을 선언한 후, 케이크를 자르는 것이 전형적인 귀족의 생일 파티 방식이었다. 그 이후 선물 증정식이나, 무도회 등의 행사들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마리안느 님께서 케이크를 자르시겠습니다.”

    알프레드가 다시 한번 확성 마법을 사용했고, 가족들, 손님들의 시선이 마리안느에게 집중되었다. 수많은 시선에 떨릴 만도 하지만, 마리안느는 메이드에게서 커팅용 나이프를 건네받고, 카르멘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케이크를 반으로 잘랐다.

    이웃 나라인 아르메 제국은 촛불을 불기도 했지만, 리투아는 케이크를 자르는 걸 더욱 중요시했다. 아이가 나아갈 길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앤다는 의미였기에.

    제대로 케이크를 자르는 걸 성공하자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안심하고 한마음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생일 축하해 마리. 여기 선물 받으렴.”

    케이크를 자른 후, 선물 증정식을 위해 앉아 있던 마리안느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황제의 대리인 자격을 가지고 있던 유페미아 황녀였다. 점심 식사 때와는 다르게, 실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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