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9화 (9/265)
  • 마리안느 아르테미스의 생일(4)

    * * *

    “수동적이라는 것은 상황을 완전하게 지배하지 못한다면 결국 무의미해진다는 뜻이야.”

    “무의… 미라고 하셨습니까?”

    “응. 마나 지뢰라는 효율적인 마법을 일대일 전투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제로 서클도 사용 가능하다는 범용성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이 문제는 사실 그리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사리아의 대인 전투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경험을 따지기에 적합한 나이도 아니었다. 사리아는 강함에 대한 과도한 열정을 지닌 제로 서클의 아이일 뿐이었으니까.

    마법사 간 벌어지는 전투에 있어 수동적이라는 단어는 최악의 단점으로 풀이되곤 했다. 항상,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떠한 상대와 어떠한 마법으로 싸울지 모르는데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은 무의미했다.

    항상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느냐라는 문제는 최소한 조디악의 일원이 되거나 마도사라는 칭호를 받은 후에야 논해볼 수 있었다. 세컨드 서클과 퍼스트 서클의 차이는 단순히 숫자 1의 차이보다 더 큰 것이기에.

    마법사는 자신보다 강력한 상대와 목숨을 건 전투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지형·지물의 방해로 인해 지뢰 마법 자체를 사용할 수도 없을 경우의 수도 생각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범위를 축소하는 대신, 감지될 확률을 줄이고 위력을 대폭 강화한 아폴론식 마나 지뢰에는 불발이 많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건 개량형이 오히려 정확도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유피테르가 밟아 특제 지뢰가 터졌을 때도 불발한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편안하게 막을 수 있었다.

    ‘이 점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마리안느가 좋아하는 언니이기도 하고.’

    불발의 문제가 사리아의 마나 제어력 부족에서 나타난 현상인지, 아니면 개량한 마법식 자체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마법식을 분해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건 동생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게다가 깊게 파헤치는 건 자라나는 새싹을 밟을 수도 있었다.

    그가 아무리 막 나가려고 마음먹었다고 해도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런 걸 그녀가 좋아할 리 없었으니까.

    “음…. 잘 모르겠습니다. 기존 마법보다 위력도 강하고, 소모되는 마나도 적어 감지도 잘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무적인 것 아닙니까? 실제로 아버님도 자주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리아의 말은 틀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말한 세 가지 특징은 확실한 장점이었다. 그래서 전쟁에서도, 저택의 경비를 위해서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었다. 혹시 모를 암살자나 도둑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문제는 사리아가 어찌 보면 아폴론 가문 전체가 ‘전투’에 있어서는 유연하지만 ‘전술’에 있어 유연하지 못해서 발생한 모순이었다.

    아폴론 가문은 대대로 군인의 가계였다. 황실의 호위를 주로 담당하는 특이한 성질의 가문이었다. 현 가주 역시 수도에서 군사 요직에 임명되어 있었다. 그는 이를 눈에 띄게 자랑스러워했다. 마치, 잘 훈련된 군견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쇠락했다. ‘명령’에 ‘충성’을 다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군인 상이었기에. 의견은 어디까지나 상급자만이 낼 수 있는 ‘특권’이었다.

    따라서 자유로운 의견을 내는 것은 곧 명예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유피테르 님의 말은 항상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는 없다는 뜻이죠?”

    유피테르가 유도하던 답을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은 놀랍게도 병약하다고 느껴졌던 유페미아 황녀였다. 우아하고 연약한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인 줄 알았지만, 4명의 소녀 중 가장 날카로운 분석력을 지닌 것 같았다. 의외였다.

    “맞아. 전투에서 이긴다는 건 곧 상황을 지배한다는 것과 같아. 압도적인 마나의 양과 제어력이 승리의 첫 번째 조건이라면 다른 건 뭘까?”

    이미 가르침의 장으로 변한 분위기에서 유피테르는 소녀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린 소녀들이었지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압도적인 수입니다. 수의 폭력은 쉽게 막아낼 수 없다고 아버님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군인 가문의 후손이었던 사리아는 쉽게 대답했다. 군사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야말로 전쟁의 기본이었으니까. 1000명과 1명이 싸우면 당연히 1000명이 이기지 않겠는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 법칙은 결코 부서질 수 없었다.

    “마지막은 역시 전략이나 전술이겠네요.”

    “맞아, 역시 데메테르 가문의 딸이라고 해야 할까.”

    유피테르가 기대하던 마지막 답을 말한 건 리네아였다. 대지의 마법을 보유한 데메테르 가문은 다른 공작 가문과 비교하면 직관적인 힘이 약했다. 불과 물과 얼음에 비한다면 ‘대지’란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땅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웃어주지 않았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을 토대로 그들은 상대하고 싶지 않은 책사의 가문으로 소문이 날 수 있었다.

    유피테르가 원한 세 개의 대답은 그 특징으로 유명한 황실과 아폴론 그리고 데메테르 가문의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우연일까.

    “봤지 봤지? 리네 언니, 유 오빠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그때 이야기했을 때는 믿지 못했지? 설명도 이해하기 쉬워요! 역시, 유 오빠야. 정말로 조디악 같아요.”

    “마리. 아무리 그래도 조디악 님들께 비교하는 건 실례야. 오빠가 뭔가 특별한 마나와 빼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건 평범한 사람인 사리아를 상대하니까 그런 거야. 그분들은 사는 세계가 다르단다. 알겠니?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마법 맞아요.”

    리네아가 마리안느의 열성적인 말에 태클을 걸었다. 그래도 유피테르가 조금은 멋져 보인다는 건 사실이었다. 공작 가문의 귀족인 것과 다르게 권위 의식도 낮았고,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실종되었다는 것 치고는 귀족의 예법에 맞지 않는 행동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조디악의 일원인 12 마도사와 유피테르를 비교하는 것은 절대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리네아의 아버지이자 데메테르 가문의 가주 이아시온 데메테르 역시 조디악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뛰어난 통찰력과 지도력을 보유하고 계시네요. 유피테르 님. 그리고 리네. 마리는 아직 아이일 뿐이에요. 조디악을 욕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랍니다.”

    유피테르의 칭찬을 하며 유페미아는 작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리네아에게는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었다. 우아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에게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이게 3 황녀인가…. 나쁘지 않아. 그 유리엘라와는 다르게 싹수가 있어 보여.’

    유피테르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1 황녀 유리엘라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유리엘라 드 리투아는 황녀라는 책임이 아닌 특권만을 누리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어렸을 적 유피테르의 생일 파티에 유리엘라가 초대 손님으로 참여했었다. 당시의 오만방자했던 유리엘라의 황녀의 행동은 정말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의 유피테르는 너무나도 무력해,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조디악이라고 하니, 12명 중 한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었는데. 유페미아 그게 사실이야?”

    아직은 생각에 있는 사리아를 잠시 내버려 두고 유피테르가 유페미아에게 물었다. 계승권이 낮더라도 이 정도로 능력 있는 황녀라면 비교적 신뢰도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였다.

    “확실히 천칭의 자리가 공석이라고 아바마마께 들은 기억이 있네요. 조율자가 사라져서 여러모로 상황이 골치 아파졌다고 말이에요.”

    “천칭(Libra)이라…. 균형의 수호자인가. 왠지 나쁘지 않은 울림이네.”

    선대 천칭의 마도사는 비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항상 긴 로브에 미묘한 느낌을 주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성별도, 나이도 전혀 알 수 없는 묘한 사람이었다. 다른 조디악의 일원들도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가끔, 조율자의 로브 속 찰랑거리는 흰색의 긴 머리카락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이었을 뿐이었다.

    마법사는 포기할 수 없는 투쟁인 사바트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강력한 정신력과 뛰어난 마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마법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바트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조디악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즉, 조디악은 세계 최강의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하는 칭호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들도 왜인지 모르게 ‘천칭’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한평생 자신의 말에 응답해주던 마나가 천칭의 앞에서는 수줍은 듯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중재하지 못하는 조디악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늘 천칭의 몫이었다.

    그래서 붙은 이명이 ‘세계의 조율자’ 였다.

    “유피테르 씨. 지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결단을 내렸는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사리아가 유피테르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야. 그럼, 성으로 돌아갈까?”

    유피테르는 오른손을 들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손에 밀도 높은 마나가 모여들더니 수련장 내의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 자체가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마나탄과 마나 지뢰로 인해 생겨났던 연기가 깨끗이 없어졌다. 또, 마나 지뢰로 파였던 지면이 빠르게 복구되었다.

    ‘강제로 보안이 걸려있는 아티팩트를 활성화했어? 역시 유 오빠는… 아니 유피테르 당신은….’

    이 수련장에 설치되어 있던 아티팩트는 다름 아닌 ‘카테리나’의 작품이었다. 보안이 되어있는 특제 마법식을 다른 마법사가 강제로 구동시킨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마나의 성질을 100%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카테리나가 유피테르의 방에 친 결계를 아무나 해제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믿기지 않았다.

    그 후, 유피테르는 마리안느와 나머지 소녀들을 데리고 얼음성으로 돌아갔다. 저녁에 있을 다수의 손님이 참여하는 파티의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리안느는 파티의 주역이었고, 황녀는 이번 파티에서 최고로 높은 손님이었으며, 리네아, 사리아도 무려 공작 영애였다. 그 품위에 맞도록 준비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파티의 주인공은 손님보다 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사리아의 지도 요청과 마리안느의 부탁 그리고 집사장의 허가가 아니었다면, 유피테르는 애초에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주어진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각자가 파티를 준비하는 시간, 태양은 자신의 일을 끝마치고서는 잠자리에 들어갔다. 그러자 칠흑 같은 어둠이 닥쳐왔다. 마치, 검은색 물감을 엎은 도화지처럼.

    그러나 태양이 사라진 외로움을 하얀 초승달이 채워주었다. 태양의 열기와는 다른 따스한 달빛이 얼음성에 쏟아지며 마리안느의 생일을 축복하는 듯했다.

    하늘을 수놓은 셀 수 없는 별들은, 어머니 같은 달의 옆에서 그저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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