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8화 (8/265)
  • 마리안느 아르테미스의 생일(3)

    * * *

    유피테르와 4명의 소녀가 인사하며 서로 친목을 다지고 있을 무렵.

    요리들이 전부 준비되었는지 메이드들이 나타나 준비된 다양한 음식들을 순서대로 날라주었다. 소녀들의 취향이나 건강 상태를 고려한 메뉴가 하나둘씩 테이블 위를 채웠다. 유피테르의 존재도 잊지 않았는지 그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도 먹음직스럽게 나왔다.

    “생각보다 잘 나오는걸? 게다가 나도 잊지 않을 줄이야.”

    “그럼요 유 오빠는 소중한 오빠인걸요.”

    “치사해, 마리. 이제 유 오빠는 내게도 오빠인걸?”

    “어머 어머….”

    유피테르와 소녀들은 눈과 코 그리고 입이 행복한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만끽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유페미아와 유피테르의 주도하에 약 30분 동안의 차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유피테르가 가진 차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빛을 발했다. 그가 가진 지식은 유페미아 황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유페미아 황녀는 세아니아 대륙에서 차로 가장 유명한 데메테르 가문에서 휴식을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두 사람이 차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걸 리네아는 그저 멍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유피테르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직접 내려준 차 역시 칭찬 일색이었다. 데메테르 공작가에서 먹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맛에 리네아가 우리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떼를 쓸 정도였다.

    그 후, 유피테르 일행은 사리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수련장을 찾았다. 카테리나가 주로 사용했던 전용 수련장이라 보안과 안전이 확실한 곳이었다. 수련하는 모습을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훔쳐보는 것은 대단히 실례였기 때문에.

    마법식을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법의 약점이 알려지면 곤란했으니까.

    천재라고 칭송받았던 카테리나의 수련장은 미리 허락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할 특제 결계로 방어되고 있었다. 가문의 마법사들이 만든 결계를 넘어 스스로가 친 결계가 이중으로 되어있었다.

    언젠가 사랑스러운 여동생 마리안느가 마법 연습을 하고 싶을 때를 대비해서 카테리나가 직접 출입 권한을 조정해놨던 것이다.

    존경하던 오라버니가 사라진 이후, 카테리나 본인도 수련장에서 마법에 몰두해 많은 것을 깨달았으니까. 사랑하는 동생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짜잔. 이고시 카테리나 언니의 수련장이에요”

    일부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애교와 함께 마리안느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수련장을 소개했다. 그것만으로도 마리안느가 카테리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마리안느와 리네아 그리고 유페미아 황녀는 안전한 곳에서 구경하기로 하고, 유피테르와 사리아는 훈련장 정 가운데에서 몸을 풀었다.

    “사실, 나는 유피테르 오라버니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 있어. 마리.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설마, 그 소문을 말하는 걸까요. 리네아”

    사리아와 유피테르가 몸을 푸는 것을 지켜보던 리네아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유피테르를 오빠라고 부르며 엄청나게 따르는 마리안느에게 말하는 것이니만큼 신중했다. 자칫 잘못하면 좋은 사이를 한순간에 어그러트릴 수 있었으니까.

    소녀들의 모임의 리더 유페미아 역시 모를 리 없었다. 민감한 주제를 끝내는 리네아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나와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응. 나도 들은 적 있어. 하지만 지금의 유 오빠는 다른거얼. 어엄청 강하다구우.”

    뜻밖에도 마리안느는 저주받은 대공자의 소문을 말해도 끄떡없었다. 오히려 오빠를 지켜보면 자랑한 이유를 알게 될 거라며 조용히 시켰다. 리네아와 유페미아는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지만, 마리안느의 말을 따랐다.

    “미안해 마리. 그래도 지금 오빠의 모습을 보면 들어왔던 소문과 다른 건 확실한 거 같아서. 절대로 마나가 없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리네아가 실제로 만난 유피테르에게서는 다른 사람과는 무언가 다른 이질적인 마나가 느껴졌다. 게다가 카리나 언니에게 들었던 ‘경애하는 오라버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도 비슷한 부분 하나 없었다.

    아, 상냥하고 이야기하기 쉽다는 말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아직이십니까? 재촉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공격하셔도 괜찮습니다.”

    강해지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 사리아는 유피테르를 재촉했다. 이미 사리아의 주위에는 밀도 높은 마나가 모여들고 있었다.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도록 집중되어있는 정신을 보여주듯 그녀의 눈은 반짝였다.

    유피테르는 그런 사리아의 모습에 감탄하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퍼스트 서클의 실마리도 잡지 못한 그녀가 이 정도로 정갈한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놀라웠으니까.

    “오빠. 힘내요! 사리아 언니도 화이팅!”

    “유 오빠. 본때를 보여줘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유페테르와 사리아의 뒤에서 리네아와 마리안느가 마치 운동회처럼 두 사람을 열렬히 응원했고, 유페미아가 그 둘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지? 사리아. 그럼 바로 시작할까?”

    유피테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리아가 먼저 선공했다.

    사리아 식 마법 ― 마나탄

    평범한 14살은 할 수 없는 다수의 마나탄이 동시에 유피테르에게 쏘아졌다. 최소 100단위는 되어 보였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마법이지만, 퍼스트 서클을 각성하지 못해 아폴론 가문 특유의 불의 속성을 추가할 수 없는 그녀에게 있어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선택이었다.

    ‘마나탄의 생성 위치를 마음대로 조정하지는 못하는군. 그래도 아폴론 가문 특유의 패기가 느껴져서 좋네.’

    마법사 주위에 마법을 전개하는 건 그야말로 상식이었다. 마법사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법의 제어력이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제어력을 잃은 마법은 폭발하거나 정말 연약한 위력을 보여줘서 마나만 소비하게 했다.

    100단위의 마법탄이 일사불란하게 공격해오는 것은 확실히 장관이었지만, 유피테르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사리아가 직접 부탁한 대련이었기에,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고자 마나 장벽을 펼쳐 모두 막아냈다.

    “생각보다 좋은데? 마나 제어력이 나쁘지 않아.”

    모든 마나탄이 엄청난 속도로 직격했어도 유피테르가 만든 마나 장벽은 금하나 가지 않고 끄떡없었다. 그는 마나 방벽을 해제하고서, 빠르게 사리아에게 다가갔다.

    “유피테르 씨야말로. 하지만….”

    사리아 식 마법 – 마나 지뢰

    유피테르가 사리아와 대치했던 중간지점쯤에 빠르게 도착하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다수의 확실한 마나 반응이 느껴졌다.

    ‘마나 지뢰까지 사용할 줄 아는 건가? 역시 군인의 가문이긴 하군.’

    마나 지뢰. 제로 서클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군대에서 자주 사용되는 마법이었다. 확실한 살상력을 보장해주었고, 전술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뢰가 있는 지점에 발을 딛자, 마나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매캐한 연기가 연무장에 자욱했다. 그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 유피테르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대련을 지켜보던 리네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유페미아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오로지 마리안느만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결과를 지켜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오빠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아버님께서 직접 전수해주신 아폴론식 특제 마법 지뢰입니다.”

    적어도 확실한 한 방을 먹였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사리아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고전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시도는 나쁘지 않았어. 어쩐지 마나 반응이 이상하더니…. 청염의 특제 마법이었구나.”

    연기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유피테르가 대답했다. 꽤 엄청난 폭발이었으나 그의 옷에는 그을음 하나 없었고 발걸음에서는 격이 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어째서…? 이 지뢰는 퍼스트 서클 수준이라도 확실한 효과를 자랑한다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사리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고장이 난 태엽 인형처럼 어째서, 그 마법은. 이라고 계속해서 말할 뿐. 그녀는 움직이지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반칙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미리 설치해 둔 마법도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아폴론식 특제 마나 지뢰는 확실히 위협적이었어. 하지만….”

    모두가 숨을 죽이고 유피테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넋이 나가 있던 사리아마저 유피테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가 제대로 된 이유를 알려준다면 특제 마법의 약점을 아버지께 말씀드려 고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특제라는 이름에도 그 마법이 여전히 마나 지뢰라는 게 최대의 단점이지.”

    “그게 무슨 의미죠?.”

    자랑스러운 자신의 가문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는지 사리아의 목소리는 저절로 날카로워졌다. 확실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기대했지만, 유피테르의 답은 기대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기대한 걸까…. 결국 저주받은 공자일 뿐인 거야 당신은?’

    “그런 게 아니라. 아폴론 가문의 방식을 모욕한 것은 절대로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줄래?”

    유피테르의 말에 사리아는 마지못해 동의하고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마땅한 대답이 아니라면 참을 수 없다는 마음을 그녀의 사나운 마나가 대신해주고 있었다.

    ‘저 정도로 자신감이 있다면 한 번은, 그래 한 번쯤은 믿어봐도 되겠지.’

    사리아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유피테르는 마나 지뢰의 단점에 대해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오해받지 않도록 그는 최대한 자세하고 천천히 말하며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사리아, 네가 자부심을 가질 만큼 마나 지뢰는 강력한 마법임은 틀림없어. 청염이 직접 손을 본 개량형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제로 서클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 마법인데도 말이지. 그러나 몇 가지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그중 하나가 수동적이라는 점이야.”

    “수동적? 확실히 마나 지뢰 마법의 공격 성공률이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게 어째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어서, 빨리 정답을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새끼 새 같았다. 그녀의 사전에서 개량된 마나 지뢰는 최강이라고 실려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느새 안전을 위해 외야에서 구경하고 있던 마리안느, 리네아, 유페미아도 가까이 다가와 유피테르의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피테르가 전투가 아닌 설명을 한다는 느낌이 강해, 위험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유페미아는 대련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처음인지 흥미로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간단한 지도 형식이었고, 상위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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