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대공자의 귀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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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은 마치 거대한 벽처럼 보이는 집무실 문을 노크한 후 유피테르가 도착한 것을 가주에게 알렸다.
“가주님. 유피테르 대공자가 도착했습니다.”
유피테르는 집무실의 입구만 보아도 숨이 막혔다. 그곳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절대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던, 감히 자기 발로는 가려고 하지 않았던 금역(禁域)이었으니까.
피를 나눈 아버지임에도 마나를 느끼지조차 못했던 유피테르에게 카르멘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유피테르가 젊을 때의 카르멘을 닮았음에도 말이다.
첫 번째 자식에 대한 기대가 너무 과했던 걸까. 재능을 제대로 잇지 못한 유피테르에게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잠시 후 들어와도 된다는 카르멘의 허락이 떨어졌고, 세바스찬은 자신은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도움을 받았던 그를 뒤로하고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자
ㅡ숨이 막힐 듯한 거대한 마나가 유피테르를 감쌌다.
카르멘 아르테미스가 내뿜고 있는 농후한 마나는 분명 유피테르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마치, 부모님의 원수를 만난 듯한 공격할 마음이 가득하여 있는 마나는 오직 유피테르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마나가 춤을 추던, 노래를 하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재의 그에게 이러한 위협은 무의미한 것과 다름없었기에.
유피테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카르멘이 보는 세상과도 다른 특별한 곳이었으니까.
“환영 인사가 꽤 거치십니다? 아버님. 그래도 오랜만에 가문을 이을 대공자가 돌아왔는데 사랑의 포옹 같은 건 해주지 않으십니까?”
“확실히 달라졌구나. 유피테르.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줄이야.”
“시간이 꽤 많이 흘렀거든요. 옛날처럼 벌벌 떨기에는 많이 늙어 보이시니까 말이죠.”
“그렇게 늙어 보이나. 내가?”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마나와는 다르게 유피테르와 그의 아버지 카르멘의 대화는 평범하게 이어졌다. 그 말 속에는 분명한 가시가 있었지만, 어린 시절 일방적으로 혼을 내고 폭행하던 시절보다는 나았으니까.
옛날이라면 유피테르가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바로 무력 제압을 한 후, ‘교육’을 했겠지만….
지금의 카르멘은 그저 끼고 있던 테가 없는 안경을 벗은 후 눈을 마사지하며 질문했다.
“굳이 돌아왔다면 원하는 게 있겠지?”
“그 자리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얻는 게 없죠. 그렇게 일만 하다 죽고 싶지는 않거든요. 뭐, 약속도 지켜야 하고…. 바쁜 사람이라구요 이제는. 어쩌면 아버지보다도 말이죠.”
이제는 이라는 단어에 유피테르가 겪은 세월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공포와 폭력을 두려워하던 무능력한 아이였다면, 세계 최강 앞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있었으니까.
“카테리나냐?”
“넘겨짚으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게다가 자신에게만 너그러운 점도. 모든 지 아버지의 생각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환상은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요?”
“말버릇 하나 끝내주는구나? 널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키워준 사람이요? 그건 당신이 아니라 유모와 세바스찬이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서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지 않나요?”
아직은 감정의 변화를 전혀 보이지 않는 카르멘을 비웃은 유피테르는 집무실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카르멘이 마시던 차를 잡고서 한 모금 마셨다. 그 차가 꽤나 맛이 없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게 차라니. 이건 차에 대한 모욕인데요? 딱히, 이유는 없고 두고 간 거 하나랑 찾을 거 하나가 있어서 왔습니다. 볼일이 끝나면 바로 사라지죠.”
“리나에게 또 한 번 이상한 생각을 불어넣는다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꿈틀, 안경을 내려놓은 카르멘의 미간이 눈에 띄게 움직였다. 유피테르의 살살 약을 올리는 말투가 기분을 거슬렀던 것일까? 아니면 리나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유피테르가 필요 없는 아픈 손가락이었다면, 카테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카르멘의 기대치 이상을 보여주던 딸이었다. 열을 알려주면 백이 아니라 천 이상을 보여주는 딸은, 카르멘에게 있어 늘 자랑이었다.
또, 재능이 넘치는 딸은 그의 말을 잘 듣고 행동했다. 워낙 영특해서, 그가 직접 말하기 전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해냈기도 했고.
겉으로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 재능이 넘치는 딸을 대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이 부드러워졌다.
딱 한 번 카테리나가 카르멘의 뜻을 거절한 것이 바로 사라진 골칫덩이 유피테르의 가주 계승권을 카테리나에게 넘겨주려고 회의를 열었을 때였다. 호위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는데 파르테논 아카데미에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 멍청이에게 아르테미스 후계자의 칭호는 과분하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생일 파티에서 카테리나는 오빠의 행방을 찾지 못한다면 자신은 그 무엇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선물로 요구했다. 후계자의 자리를 포함한 모든 것의 결정을 미루겠다고 말이다.
이 사랑스러운 딸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말을 먼저 해버린 게 실수였지만, 자신의 허를 찌르는 방법에 내심 놀라기도 했다.
카테리나가 유피테르와 친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종 이후에는 그런 기색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성장한 카테리나의 귀여운 계략에서 가문을 이끌어갈 자질이 보여 기쁘기도 했다.
“리나는 아마…. 아카데미에 있겠죠? 아버지 성격이라면 역시 델포이 아카데미일 테고. 거기서 뭐 알아서 잘 지내겠죠. 그 애의 재능은 눈이 부셔서 정면에서 바라보면 눈이 멀 정도였으니까.”
“네가 돌아오더라도 줄 자리는 없다.”
너는 이곳에서 단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 어떠한 사랑스러운 행동이라도 기대하지 마라. 그런 뜻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설마, 당신에게 그런 걸 기대했으려고? 당신은 그냥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설레는 맘으로 밤잠을 설치면 되는 거라고.”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나에서 느껴지는 명백한 적의. 지금까지 카르멘의 말을 능글능글하게 회피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촤악.
유피테르는 들고 있던 차를 그대로 그의 아버지 카르멘의 얼굴에 뿌렸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차가 카르멘을 적셨다. 지금까지 쌓였던 모든 울분을 마나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으로 유피테르는 보여주었다.
이게, 시작이라고.
“나가!”
이 행동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카르멘은 크게 소리 지르며 유피테르에게 얼음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수의 검을 만들어 보냈다.
카르멘 식(式) 얼음 마법 ― 하늘을 꿰뚫는 백 개의 얼음 검
아르테미스 가문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얼음 검을 개량하여 카르멘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마법. 그 얼음은 날카로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 아니라 닿는 순간 다시는 세상의 공기를 만나지 못하게 꽁꽁 얼어버렸다.
바로 그 마법을 카르멘은 주문 영창도 없이 펼친 것이었다. 영창의 축약어인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세컨드 서클의 마법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그를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보고서도 미동이 없었다.
그리고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유피테르 식(式) 얼음 마법― 하늘을 꿰뚫는 천 개의 얼음 검
유피테르는 그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마법을 그대로 아니, 개량해서 백 개를 천 개로 만들어서 그대로 돌려주었다.
두 개의 마법이 엄청난 기세로 충돌하고 제어력을 잃은 마나가 미친 듯 날뛰었다. 수적으로 밀리는 게 느끼자 카르멘은 마법으로 얼음 검을 더 많이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 피해는 더욱 심했다.
얼음 속성 마법의 충돌로 집무실은 깨지지 않는 얼음으로 얼어붙어 버렸고, 집무실 한편에서 빛을 내던 조디악의 마법사라는 증표도 깨져버렸다. 심지어 아르테미스 가문의 문장기도 얼음 파편에 찢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흠… 생각보다 실력은 나쁘지 않게 되었군. 정말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을 줄이야.”
카르멘은 유피테르가 마법을 쓴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놀라워하지 않았다. 사실상 버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유피테르는 그런 카르멘을 보지 않고, 집무실 뒤편의 서재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은 듯, 눈을 빛냈다.
얼어붙은 서재는 원래의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얼음 조각상처럼 되어있었다. 그 서재 안에는 가문의 역사서나 가주의 명예를 뽐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그리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지만, 유피테르의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세상 모든 일이 당신 생각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시죠? 그 생각, 곧 깨지게 될 거에요. 미리 경고했어요.”
유피테르는 카르멘의 답을 듣지 않고서, 그대로 문을 쾅 닫고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히고 그 뒤에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르멘과 얼음 덩어리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유피 공자님 꽤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으로 변하셨습니다?”
“여행해서 지쳤는데. 방으로 안내 좀 해 줘. 시중 이런 건 필요 없고.”
“알겠습니다.”
세바스찬은 그렇게 두려워하던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나온 유피테르에게 더 묻지 않았다. 집사란 고용인의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는 유피테르가 쉴 수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얼음성의 거대한 크기만큼 유피테르가 쉴 공간까지 향하는 길은 길었다. 두 사람은 꽤 걸었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세바스찬에게 말을 건 사람은 의외로 유피테르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이 유피테르가 원래 살았던 대공자 전용의 휘황찬란한 방이 아니라 손님용으로 마련된 객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내가 썼던 그 방이 아니네? 이 구역은 손님들에게 주어지는 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예전에 사용하시던 대공자 전용 방은 폐기처분 되어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폐기되었다고? 내가 과거에 취급이 그랬어도 가족용 방에서 생활했는데. 역시라고 아르테미스라고 해야 하나.”
“그건….”
면목 없다는 듯, 세바스찬은 유피테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담당 집사로서 모시는 자의 물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은 변명하지 못할 일이었으니까. 설령, 그 주인이 떠났을지라도.
그리고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아니면 고민하는 듯 고개를 돌렸다.
세바스찬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유피테르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흘러버린 시간은 적지 않은 것이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 잠시 먼 곳을 쳐다보던 세바스찬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표정에, 유피테르는 조용히 세바스찬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