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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3화 (3/265)
  • 달의 대공자의 귀환(3)

    * * *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 집사. 세바스찬 아크타이온.

    아르테미스 가문에는 방계라고 표현해도 될 몇몇 산하 귀족 가문이 있었고,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가문이 아크타이온 자작 가문이었다.

    세바스찬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마법사의 자질을 보였다. 이를 눈여겨보았던 아르테미스의 전 가주 리스트가 직접 그를 훈련시킨 후 마법사단에 넣어서 성장시켰다.

    그 이후 그는 세컨드 서클의 실마리를 잡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가 되었지만, 고령을 핑계로 아르테미스 공작가 마법사단 단장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 후에는 가문의 집사로서 대공자 유피테르를 보필하며 지냈다.

    모두가 대공자를 무시하고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경멸했지만, 세바스찬만은 달랐다.

    재능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건 귀족의 정신에도 아르테미스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아르테미스의 공작 가문의 대공자로서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느냐?

    “잊지 마십시오. 노력은 언젠가는 어떠한 형태로든 빛을 발합니다.”

    그는 재능이 넘치는 마법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강조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피테르를 맡게 된 이후 마나 수련뿐만 아니라 신체 수련부터 평범한 귀족이 하지 않는 요리, 설거지, 청소까지 시키며 유피테르를 굴리고 또 굴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대공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노력이 부족했던 것뿐이었으니까. 일정 선을 넘기 위해서는 남들이 노력했다고 인정할 만큼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유피테르는 태어나자마자 심한 병을 앓았고 그 병 때문에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으니까. 즉, 처음부터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와 만난 이후 유피테르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 이 훈련 같지 않은 훈련은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법을 스스로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고된 훈련이 싫어 도망친 적도 있었으나 얼음 화살로 반쯤 얼어붙어 동상들과 함께 전시되거나 마나로 강화한 신체로 먼지 나게 맞은 후로부터는 묵묵히 세바스찬의 말에 따랐다.

    바로 이 세바스찬 아크타이온이 유피테르를 직접 맞이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럼요. 어젯밤 이 노인네의 허리가 욱신거려서 하늘을 바라보니 위대하신 초대 가주님께서 메시지를 주셨더군요. 우리 유피 공자님이 돌아오실 테니 준비를 하라고.”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그만큼 기쁘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었다. 유피테르가 기억하는 세바스찬은 늘 이런 식으로 말했었으니까. 이 말투도 오랜만에 들으니 굉장히 정겨웠다.

    세바스찬 그리고 카테리나만이 아르테미스란 이름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아시스였으니까.

    “아니, 유피라고 좀 하지 마. 이제 더는 아이도 아니고 어엿한 성인이라고. 잘 지냈어 할아범?”

    “노인네는 언제 초대 가주님의 품으로 돌아갈까 늘 고민하면서 산답니다.”

    “아니, 그거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안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유피 공자님.”

    세바스찬은 늘 그런 식으로 도망간다고 말하는 유피테르를 가볍게 무시하고 그를 성문 안으로 안내했다. 유피테르는 정말 오랜만에 세바스찬의 시중을 받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는 잠시 하늘 어딘가를 쳐다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건 마치 통신 마법을 쓰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세바스찬의 안내를 받아 느긋하게 품격 있는 입구를 지나 본성으로 향했다.

    정말로 대공자가 귀환했다는 사실에 턱이 빠질 듯 놀라 있는 젊은 문지기와 자신의 감이 아직은 죽지 않아 즐거워하는 늙은 문지기를 뒤로하고서.

    리투아 제국 북쪽 지방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얼음성 내부로 들어오자 성을 수호하고 있는 마법 결계가 좀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대체 어렸을 때는 이걸 왜 느끼지 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초대 가주가 설치했다고 전해지는 마법 결계는 혹독한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따듯함과 비옥한 토지를 주었다. 동시에 적의 침입을 방어해주는 최후의 보루였다. 다른 제국이나 몬스터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도 이 결계가 박살이 난 적은 없었다.

    이 결계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 가주의 지팡이가 바로 그가 가문에 돌아온 이유였다.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이었으니까.

    “역시 아르테미스는 강하네. 안 그래 할아범?”

    “정말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셨다니 감격스럽습니다. 노인네의 가르침은 조금 도움이 되셨습니까?”

    세바스찬을 안내를 따라 걷고 있는 유피테르는 가문 내 곳곳에 강력한 마나의 기운을 가진 존재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쉽게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마나였지만, 유피테르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의 그는 분명히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으니까.

    “할아범 말이 맞더라고. 노력하다 보면 방법이 보이더라. 게다가 어린 시절에 굴려준 덕분에 이것저것 다 가능해서 꽤 도움이 되었어.”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할 수 있는 것과 못 하는 건 정말로 다르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역시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 할아범도 남들이 질릴만한 노력을 해서 재능을 꽃피웠거든요. 제가 가르친 제자 중에서 노력하지 않는 자는 결국 기억 속에서 잊혀버렸습니다”

    “할아범. 결계에서 내가 돌아온 걸 환영해 주는 것처럼 따듯한 느낌이 들면 이상해진 걸까?”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 겁니다 유피 공자님. 이 결계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져 내려왔으니까요.”

    유피테르와 세바스찬은 어젯밤에도 같이 있었던 것처럼 웃으며 평범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얼음성의 가주를 만나러 가는 길은 유피테르를 추억에 잠기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 성에서 자랐던 시절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집’이란 존재는 특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얻기 위해서 인생을 바치지 않는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집이란 그런 것이었다.

    분명히 얼음으로 만들어졌지만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듯함을 품고 있는 모순을 지닌 벽, 그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있는 빛나는 마법 등. 곳곳에 장식되어있는 초상화와 성의 품격을 올려주는 고가의 장식품들.

    그 무엇 하나도 기억과 크게 달라진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추억도 미화되는 것일까. 유피테르는 거북함과 동시에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 남은 집은 이곳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녀'와의 추억이 잠들어 있는 그곳에 더는 돌아갈 수 없으니.

    유피테르는 대체 어떻게 자신이 오늘 귀환할지를 알고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집사를 내보냈는지가 의문이었다. 집사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세바스찬이 나오는 건…. 마치,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흘러갔으니까.

    두 명의 문지기들은 정말로 그가 대공자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위협도 하고 마창술을 선보이며 싸웠다. 물론, 유피테르가 그들을 가지고 놀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대공자의 증표라 할 것은 딱히 없었기에 뭘 보여줘야 할지 난감했다. 뭔가를 받았던 기억이 있긴 했지만, 그녀와 함께하던 시간 동안에는 이 가문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아마 잃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뭘 보여줘야 대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갑자기 통신 마법이 마나 감지에 걸렸고, 분명 통신을 받았을 선배 문지기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후 선배 문지기는 통신 마법을 사용해서 윗선에 보고하는 척을 했다.

    선배 문지기는 이를 유피테르가 몰랐을 줄 알았겠지만, 지금의 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가주 카르멘처럼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선배 문지기에게 온 최초의 통신을 보낸 사람이 유피테르가 진짜 대공자라고 믿게 한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무언가의 방해만 아니라면 확실히 잡아낼 수 있었는데 말이지.’

    “도착했습니다. 유피 공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착했다고 가주님께 알리겠습니다.”

    유피테르의 생각을 멈춘 건, 그가 그렇게 외치던 가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고 알리는 세바스찬의 목소리였다.

    카르멘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의 현 가주.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유피테르의 아버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엄격함을 남들에게 요구하는 사람.

    하지만 유피테르는 알고 있었다. 카르멘이 그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걸. ‘그녀’와 함께하며 그는 파고들수록 아픈 세계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카르멘은 아르테미스 가문의 혈통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얼음 마법의 최고 권위자였다. 방계의 가문이 얼음 마법의 일부를 사용한다면, 카르멘의 마법은 '얼음' 그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었기에.

    세바스찬이 천재적인 재능을 통해 얼음 마법을 화살의 형태로 구축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마도사 카르멘 아르테미스는 ‘얼음’이라는 속성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냉기를 발산하는 것부터 구축, 조형까지 얼음 마법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그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이 힘으로 그는 절대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절대 영도 마법은 그 어떠한 사나운 불꽃도 순한 아이처럼 잠재운다고 유명했다. 심지어 아폴론 공작 가문 현 가주가 사용하는 고유 마법인 청염도 잠재울 수 있다고 뜬 소문이 들 정도였다.

    아폴론 공작 가문에서 이 소문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아서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다. 누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느냐, 최고의 마법사는 누구인가, 리투아 4대 가문 중 진정한 강자는 누구일까라는 이야기는 순위를 정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그대로 들어맞았기에.

    애초에,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은 리투아 제국의 북쪽 경계선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세금 등의 다른 의무를 면제해주는 대신에, 국방의 의무라는 중요한 임무 하나를 확실하게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제국의 북쪽 너머에는 마족들이 사는 마왕령 타르타로스가 있었고, 주변에는 몬스터로 가득한 죽음의 숲도 있었기에 이곳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찬 게 현실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자는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지닌 자들은 4대 공작 가문 중에서도 늘 수위를 달리는 마법사이고는 했다. 환경과 재능이 환상적으로 만난 결과라고나 할까.

    현 가주도 카르멘도 그랬지만, 전 가주 리스트 아르테미스도 그랬다. 가주뿐만 아니라 가문의 일원이 가진 힘도 비교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엄격한 실력지상주의가 아르테미스 가문의 핵심 가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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