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대공자의 귀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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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술은 마나를 창에 담아 싸우는 무기술로, 일격필살의 묘리를 담은 찌르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창술은 사자형 몬스터를 한 방에 잡았다는 헤라클레스 가문의 네메아 창술이었다. 사실, 모든 무기술 이름에 네메아가 붙었기에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 파괴력만은 진짜였다.
애초에 퍼스트 클래스 경지에 있는 마법사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 몰릴지 모르기 때문에 유용하지도 않았고, 굳이 무기가 없어도 막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 퍼스트 서클의 카테리나는 저런 마창술을 사용하는 제로 서클들이 한 성 가득 달려오더라도 손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무력화할 수 있었다. 서클의 차이는 곧 넘어설 수 없는 간격이니까.
퍼스트 서클에 도달하지 못한 제로 서클들은 이렇게 무기에 마나를 담아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국가 간의 전쟁에 참여하는 일반 병사들이 주로 사용할 정도로 꽤 유용하기도 했다.
빠르게 익힐 수 있고, 단체로 움직일 때 그 위력이 더해지기에.
“와, 빠른데? 피하기가 쉽지 않네. 박수라도 쳐줘야 할까.”
마창술이 제로 서클의 발악이라고 불리더라도 숙련된 병사들의 공격은 빠르고 기묘했다. 문지기들이 내지르는 마나가 담긴 창들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유피테르를 압박했다.
그러나 유피테르의 실력이 몇 수 위인 걸 증명하는 것처럼, 그는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창을 쉽게 피했다. 몸을 뒤덮고 있던 로브가 거추장스럽지도 않은지, 연신 여유로운 몸짓으로 문지기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솔직히. 수준 차이가 너무 나서 재미가 없는걸.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없고 말이야. 아 그래.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이 이름이라면 가주를 만날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
몇 분 동안 술래잡기 같은 싸움이 이어져도 유피테르의 얼굴에서는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는 주변이 진동할 정도의 마나 오라를 끌어 올렸을 뿐 단 한 번도 문지기들의 공격에 반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방법으로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듯했다.
“…지금 유피테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 문지기 중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이는 문지기가 힘이 들었는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소년에게 물었다. 유피테르를 잡기를 포기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유피테르라는 이름이 그만큼 중요한 것일까.
“그래, 유피테르라고 말했어. 새벽녘에 일하는 데 방해하고 싶지도 않다고. 빨리 가주나 불러오라고, 아니면 담당자나 책임자를 불러. 그 정도는 불러야 이야기가 될 거 같으니.”
“감히 유피테르 공자님의 이름을 팔려고 하더니 죽고 싶….”
로브를 가다듬으며 대답하는 유피테르에게 젊은 문지기가 화를 내려는 찰나, 나이가 많은 쪽의 문지기가 그 행동을 저지했다.
나이를 괜히 먹은 것은 아닌 듯, 대공자 이름이 나왔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잠깐 행동 멈추고 대기하도록 해라. 당신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유피테르 공자님의 이야기를 가져왔다면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그분의 소식을 가지고 오셨다면 오히려 예의를 차려야 하는 건 저희니까요.”
“하지만 선배님 이 사람도 거짓말이나 하는 사기꾼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기를 치려고 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분께 가장 필요한 소식이니까 그냥 지나칠 순 없어. 지금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 건가?”
선배 문지기의 차가운 명령에 젊은 문지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대공자 유피테르의 이야기로 사기를 쳐서 한몫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었기에 그의 분노는 지당했다. 사기꾼에 지치고 고생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문지기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선배 문지기는 선임이라는 신분을 통해 젊은 문지기에 제재를 가하고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가문에서 문지기로 근무했던 그의 경험이 속삭였다. 이번에는 적어도 무의미한 것 같지는 않다고.
유피테르는 끌어올렸던 마나를 해제하고서는, 문지기들의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 가문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고민이 많았던가. 유피테르에게 그 정도 기다림은 일도 아니었다.
문지기 두 명의 의견 충돌이 끝난 듯 보이자 유피테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선배 문지기에게 물었다.
“드디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거야?”
“그렇습니다만. 유피테르 공자님의 어떠한 이야기를 가져오신 것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유피테르의 어떠한 이야기를 가져왔냐라. 그건 정말 흥미로운 주제인데. 내가 바로 ‘그’ 유피테르야. 들어가서 전해. 저주받은 달의 아이, 유피테르 아르테미스가 공작가로 돌아왔다고.”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제국 아니 대륙 최악의 천재(天災). 퍼스트 서클은커녕 제로 서클이라고 칭하기도 아까운 실패자. 동시에 100년에 한 번 나올 재능을 지녔다고 일컬어지는 여동생 때문에 공작 가문 내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은 달의 대공자.
그는 16살에 파르테논 아카데미로 향하던 도중 완전히 사라져버려 6년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의 동생,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는 공석이 되어버린 후계자 위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오라버니 유피테르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요구했다. 정말 당돌한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재능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었다.
그녀는 오라버니의 생사가 확실하게 확인된 후에 모든 걸 결정하겠다는 말을 가주에게 생일 선물로 약속받았다. 그러나 공을 들여서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수색을 포기 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피테르 본인이 나타나서 뜬금없이‘귀환’을 선언한 것이다.
쨍그랑.
달의 대공자의 깜짝 귀환 선언에 선배 문지기는 당황해서 단단히 쥐고 있던 창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떨어진 무기를 주울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멍하니 유피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만했다. 6년 만에 가문의 진정한 첫 번째 후계자가 직접 돌아온 것이었기에.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던 대공자가, 임시 후계자 카테리나 아르테미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그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제 발로 찾아온 것인데 그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아직 그가 정말로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르테미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달을 담은 은발과 은색 눈동자라면 내가 가문의 대공자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머리까지 두르고 있던 로브를 천천히 내리며 유피테르가 선배 문지기에게 물었다.
마침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유피테르의 은색 머리칼을 눈부시게 비췄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수려한 은색 머리카락은 물이 오른 미모를 더욱 강조했다.
“분명, 은색의 머리칼과 은안이 아르테미스 공작 가문 혈통의 증거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리투아 제국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당신이 대공자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문지기는 외모라는 단순한 증거로는 확신하지 못하겠는지 유피테르에게 정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하는 문지기의 행동이 맘에 들은 듯, 유피테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긴 하지. 이 얼음 같은 시린 은발과 은안이 아르테미스의 증거이긴 하지만 마법으로도 충분히 조작할 수 있는걸. 음. 옳은 말이야. 문지기로서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있지.”
달빛을 연상케 하는 시린 은발의 아르테미스, 숲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녹발의 데메테르,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청발의 포세이돈, 타오르는 불꽃 같은 적발의 아폴론.
리투아 제국을 지탱하는 4개의 공작 가문은 모두 특별한 머리카락 색과 그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알아보기도 기억하기도 편했다.
황실의 토파즈 같은 금발을 포함해, 이 머리색과 눈동자의 색은 가문의 일원이라는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극히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말이다.
비슷한 머리색을 한 사람들도 적진 않았지만, 각 공작가와 황실 구성원의 머리카락은 더욱 선명하고 뚜렷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색과 눈동자의 색이 같은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변신 마법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위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귀족 사칭을 하는 것은 법률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특히, 최고위 귀족을 사칭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목숨을 내놓아서 무엇인가 굉장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자신의 목숨을 쉽게 내놓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감히 황실의 자손임을 속이려고 한 경우 극형에 처했고, 다른 공작 가문들도 비슷한 처벌을 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더욱 줄어들었다.
“이해해주셔 감사합니다. 혹시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있으십니까? 또, 이 사항은 제 선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문 내로 연락을 바로 넣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음…. 뭐가 있으려나.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말은 진짜 어렵네. 솔직히 오랜만에 온 거니까 쉽게 믿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그래도 그냥 다 박살을 내버리면서 가문 안으로 들어가긴 좀 그렇잖아?”
유피테르는 미소 지으면서 말했지만, 그 말에는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내용이 들어있었다. 젊은 문지기는 대공자라고 주장하는 유피테르의 존재감에 움찔거렸으며, 선배 문지기도 긴장해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의 모습을 볼 때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가주 카르멘의 모습이 살짝 보인 것 같아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아까 전 선배에게 한 소리를 들은 후배 문지기는 살짝 얼어붙은 표정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문지기의 업무를 잊지 않고 있었다. 선배 문지기가 연락을 위해서 자리를 이탈하자 유피테르를 집중적으로 경계했던 것이다.
두려운 건 두려운 거지만, 할 일을 한다는 마인드라고나 할까.
덕분에 선배 문지기는 전투의 흔적이 남지 않은 곳으로 이동해 통신 마법을 사용해서 가문에 유피테르의 귀환 사실을 보고할 수 있었다.
유피테르는 선배 문지기가 통신 마법을 통해 내부의 높은 사람과 연락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문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크게 변한 건 없나? 그럼 곧 연락을 받은 집사가 나오겠고, 그다음은….’
그가 기억하기로 문지기 선에서 처리하기 힘든 일이 있을 경우에는 마법사단이 아닌 집사에게로 연결되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의 집사들은 대부분 은퇴한 뛰어난 마법사들이었으니까. 마법사가 집사가 된다는 건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보아온 유피테르는 이미 적응해버렸다.
집사는 유피테르나 카테리나 등 가문의 아이들을 담당하는 집사와 가문 내의 모든 일을 통솔하는 집사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 하나하나가 마법사단 단장급이었다. 호위를 최소한으로 해도 안전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마법사단은 시급한 상황이 아니면 가문 내부의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가문을 지키는 자들이었지, 가문을 흔드는 자들이 아니니까 말이다.
“호오, 설마 했지만, 정말로 유피테르 공자님이시군요? 이 노인네가 죽기 전에 다시 그 얼굴을 뵐 줄은 몰랐습니다만? 게다가 그 기세는 노력을 거듭하신 것 같군요? 마나라니.”
“나도 놀랐어. 세바스. 당신이 나올 줄이야.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