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화 최종 전투
도예에게 있어 천우는 항상 저 멀리, 높은 곳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대업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고 그 대업을 이루기 위한 그의 노력과 연구들은 지구 상의 어떤 사람도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도예는 그런 천우를 존경하면서, 동시에 남몰래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기적처럼 천우가 다가왔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것은 그녀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런데 천우가 적들에 의해 큰 위기에 빠졌다. 짧은 순간 도예는 강재훈 일행의 공격을 보며 이대로라면 천우가 죽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녀는 고민했다. 천우를 살릴 방법을… 하지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헌터 러비가 되어 천우를 구해내는 것이었다. 도예는 바로 헌터 러비가 되는 베드에 자신의 몸을 눕혔고, 헌터 러비가 되었다. 그 영향으로 그렇게 소중했던 천우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이는 유산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천우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만 똘똘 뭉친 도예는 방탄복을 입고 얼굴에는 혹시나 있을 적들의 Force Quit 공격을 막기 위해 개발 중이었던 해킹 전파 차단용 방탄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평소 애용하던 검이 들려 있었다. 도예가 헬멧의 투명 실드를 내리며 공격 준비를 하자 재훈도 맞설 준비를 했다. 그때, 핑크레드가 재훈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령관은 어서 심천우나 뒤쫓아 가! 여긴 내게 맡기고!”
“핑크레드! 혼자선 무리예요.”
“말다툼할 시간 없어, 어서!”
핑크레드가 자신의 검을 들어 재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내겐 이 검이 있어! 걱정 말고 가!”
재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우가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 뒤를 도예가 쫓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어딜 가는 거야! 강재훈!”
도예의 검이 재훈을 스칠 무렵 핑크레드의 검이 그 검을 막아내었다.
팅!
날카로운 금속들의 충돌 소리가 나며 핑크레드가 외쳤다.
“니 상대는 나라고! 이 미친 괴물아!”
재훈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고 도예는 핑크레드의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난 듯 자세를 가다듬었다. 순간, 핑크레드는 이 싸움이 쉽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분명 자신이 가진 검은 운석 합성금속으로 만들어진 지구 상의 모든 것을 베어 낼 거라던 검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 도예의 검이 자신의 검과 부딪혔을 때 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도예답군. 그 검이 어디서 난 건진 몰라도 꽤 쓸 만한 건가 본데?”
도예도 놀란 듯 말했다.
“너야말로 어떻게 그런 강한 검을 구한 거지? 대단하군. 내 검을 받아낼 수 있는 검이 있다니 말이야. 그렇지만…”
도예가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재빠르게 날아오며 외쳤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년을 반 토막 내주마!”
휘잉!
도예의 검이 무서운 기세로 핑크레드를 향해 날아왔다. 핑크레드는 옆으로 몸을 피했다.
챙!
도예의 검은 금속제 바닥에 깊게 박혔다. 그녀는 재빨리 바닥에서 검을 뽑아낸 뒤 다시 옆으로 공격을 해왔다.
부웅!
핑크레드는 몸을 숙여 검을 피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머리 위로 스쳐가는 도예의 검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자칫 살짝 스치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뼈도 추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숨 쉴 틈도 없이 도예의 공격이 이어졌다. 정확히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을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너무나 재빠른 공격이었기에 핑크레드는 미처 방어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검을 앞으로 뻗어 도예의 검을 받아내었다.
챙!
도예의 공격을 겨우 막아냈지만, 그 충격으로 핑크레드는 균형을 잃고 허우적대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야 겨우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핑크레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검을 앞으로 휘둘렀다.
부웅!
휘익!
그러자 도예는 여유 있게 공중제비를 돌아 검을 피했다.
헉! 헉! 헉!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핑크레드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예가 그런 그녀를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몇 번의 공격으로 그렇게 헉헉 거리 다니, 검은 꽤 쓸 만한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 같군. 차라리 지금이라도 항복하는 게 어때? 어차피 헌터 러비인 나와 일반인인 너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헛소리 집어치워! 결과는 두고 보면 알겠지! 하압!”
핑크레드가 기합을 넣으며 무서운 기세로 도예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밖에서는 기룡과 러비 체이서들이 천우의 부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부하들은 각종 무기로 공격을 해 왔지만 러비 체이서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민영이 적들을 재빠르게 해치우며 기룡에게 말했다.
“우리도 어서 이 놈들을 해치우고 기지 안으로 들어가서 심천우를 쫓아가야죠!”
“그래! 어서 이 놈들을 다 쓸어버리자고!”
분명 숫자적으로는 천우의 부하들이 우세했지만 상황적으로 보아 곧 전멸을 당할 것 같았다. 그 장면을 기지 안의 작전실로 도망간 천우가 모니터를 통해 보고 있었다. 그는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남아 있는 블라인드 러비들을 다 출동시켜! 저것들을 다 쓸어버리란 말이야!”
부하 한 명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기지에 있는 블라인드 러비들의 인코딩[1]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각주[1] 인코딩: encoding. 정보의 형태를 변화하는 처리 방식.』
천우가 엄청나게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인코딩이고 뭐고 출동시켜! 이러다간 우리가 다 당한단 말이야!”
“하지만 그랬다간 무슨 일이…”
타타타!
천우의 총이 그 부하를 향해 불을 뿜었다.
“이런 멍청한 자식!”
천우는 쓰러진 부하를 향해 침을 뱉으며 직접 컨트롤 장치로 향했다. 그는 급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아직 제작 중인 블라인드 러비들을 강제로 깨우는 명령을 내렸다. 모니터에 경고 메시지가 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블라인드 러비들을 깨웠다. 곧 연구실 쪽에서 누워있던 수많은 블라인드 러비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족히 수백 명은 넘어 보였다. 재훈은 작전실 앞에 서 있었다.
‘분명 이 안에 천우가 있어!’
재훈이 막 작전실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머리 뒤쪽으로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의 움직임이 느껴졌고, 재훈은 반사적으로 옆으로 굴러 몸을 피했다.
퍽!
재훈이 있던 자리에 블라인드 러비의 주먹이 꽂혔다. 재훈은 겨우 몸을 가누며 뒤를 살폈다. 엄청난 수의 블라인드 러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뭐야? 이것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재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복도 쪽으로 달려 나갔다. 기룡과 러비 체이서들은 기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재훈이 뛰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기룡이 그를 보며 외쳤다.
“뭐야? 왜 뛰어 오는 거야?”
“다들 조심해요! 블라인드 러비 떼가 쫓아오고 있어요!”
곧 재훈의 뒤로 엄청난 수의 블라인드 러비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기룡이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아니 저것들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
재훈 일행은 러비가 오는 반대쪽으로 급히 뛰었다. 천우는 작전실에서 이 상황들을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그래! 토끼몰이처럼 몰아라! 내 부하들아!”
천우는 기지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며 통로들의 방화벽을 닫거나 열어서 재훈 일행이 도망가는 방향을 유도하고 있었다. 재훈 일행을 한 곳으로 몰아서 처리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한편 도예와 싸우는 핑크레드의 왼팔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 도예의 검을 피하다가 스쳐 맞은 것이었다. 도예가 검에 묻은 피를 흔들어서 털어내며 말했다.
“베인 곳이 꽤 아프지? 이만 포기해. 결국 너는 지게 되어 있어. 지금 항복한다면 고통 없이 죽게 해 주지.”
핑크레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나 혼자 죽지는 않는다! 예전에 뺨을 때린 앙갚음을 해주마!”
“뭐? 고작 그 이유로 지금 나와 싸우고 있는 거냐?”
“아니, 고작 그 이유만은 아니지. 지금 심천우와 네가 벌인 일들을 좀 봐봐. 전 세계 인류의 멸망을 꿈꾸다니 너흰 미쳤어! 멸망해야 하는 건 바로 너희다!”
핑크레드가 몸을 날려 예리하게 도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파앗!
그러나 도예는 이미 그 공격을 눈치라도 챈 듯 몸을 피하며 위로 점프했다가 아래쪽으로 검을 내려찍으며 외쳤다.
“이제 끝이다!”
퍽!
잠시 정적이 일고 도예의 검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핑크레드의 등을 뚫고 배 쪽으로 관통해 있었다.
“으윽!”
극심한 고통과 함께 핑크레드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슈웃!
도예가 핑크레드의 몸을 관통했던 검을 빼자 더 큰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헉!”
그 충격으로 핑크레드는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도예가 쓰러진 핑크레드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러게 무모하게 덤비지 말라고 했잖아. 잘 가라 핑크 머리!”
도예의 검이 정확히 핑크레드의 심장을 향해 내리 꽂혔다.
휘익!
챙!
순간 핑크레드가 온 힘을 다해 검을 두 손으로 들어 검의 옆면으로 도예의 검을 막아냈다. 그 충격으로 도예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자 그 틈을 놓칠세라 핑크레드가 누운 채로 온 힘을 다해 도예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부웅!
“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도예의 다리가 베어져 나갔다. 핑크레드는 재빨리 몸을 일으킨 후 쓰러진 도예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죽어! 이 괴물아!”
그러나 도예는 검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천만에! 죽는 건 너…”
쨍그랑!
마치 접시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핑크레드의 검은 도예의 검을 두 동강 내면서 그녀의 가슴 쪽으로 깊이 박혀 들어갔다. 분명 도예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아악!”
고통에 찬 도예의 비명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핑크레드는 박혔던 검을 뽑아 다시 도예를 향해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얍! 죽어라!”
퍽!
도예가 죽는 장면을 천우가 CCTV의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였기 때문이었을까? 평소 부하들의 목숨을 파리보다 못하게 생각했던 냉혹한 그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천우는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재훈 일행은 강당으로 도망가 있었고 그 주위를 블라인드 러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천우가 모니터를 보며 외쳤다.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어서!”
강당 구석에 몰려 있던 재훈 일행은 앞에 있는 블라인드 러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디에고가 말했다.
“사령관, 이제 어쩌지?”
재훈은 머리를 굴려 봤지만 좋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싸우죠!”
디에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긴, 이 순간에 무슨 방법이 있겠어? 그냥 죽을힘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지.”
곧 블라인드 러비들이 재훈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장면을 천우가 모니터로 보며 더 힘껏 외쳤다.
“그래! 다 죽여 버려!”
콰앙!
그때 작전실 문이 부서지며 뭔가 큰 물체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천우와 부하들이 깜짝 놀란 가운데 그 물체들은 엄청난 속도로 천우의 부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퍽!
“악!”
“아악!”
천우는 그 물체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물체들은 다름 아닌 블라인드 러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우는 급히 몸을 피하며 옆에서 같이 도망가는 부하에게 외쳤다.
“뭐야! 저것들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아군 식별 코드가 인코딩 되지 않은 건가?”
“그건 아닙니다! 아군 식별 코드는 처음에 인코딩이 끝난…”
퍽!
말을 하던 부하가 블라인드 러비의 주먹을 맞고 그대로 몸이 날아가 버렸다. 천우는 온 힘을 다해 다른 출구 쪽으로 달려갔다. 재훈 일행은 블라인드 러비들과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휘익!
퍽!
“악!”
여기저기서 대원들이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있었다. 재훈은 너클을 낀 주먹을 휘두르며 블라인드 러비들의 얼굴을 노리고 공격했지만 그들은 너클의 공격에도 몸이 멈추지 않았다. 재훈이 일행들에게 외쳤다.
“역시 놈들에겐 해킹 공격이 소용없나 봐요!”
기룡이 말했다.
“그럼 Force Quit도 소용없다는 얘기잖아?”
블라인드 러비들은 계속 몰려 들어오고 있었고 이대로 가다간 놈들에게 당하고 말게 뻔했다. 그때 민영의 눈에 바닥에 있는 덮개가 보였다. 그것은 배수구와 함께 각종 배관들을 점검하는 통로의 덮개였다. 민영이 바닥의 덮개를 열며 재훈에게 외쳤다.
“여기로 들어가요!”
재훈과 기룡은 대원들과 함께 재빨리 배수구 안으로 뛰어 내려갔다. 디에고는 민영과 대균을 쓱 쳐다봤다.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텅!
대원들이 다 내려가자 갑자기 민영이 덮개를 닫아버렸다. 재훈이 깜작 놀라 덮개의 틈으로 외쳤다.
“뭐해요! 안 들어오고!”
디에고가 말했다.
“사령관! 이놈들은 우리가 맡을 테니, 어서 대원들과 함께 빠져나가!”
재훈은 잠시 주춤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점검 통로를 통해 뛰어가던 재훈 일행은 심천우와 부하들이 위쪽으로 급히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재훈은 급히 발길을 멈추고 기룡에게 말했다.
“방금 위에 지나간 거 심천우 아니었어요?”
“맞는 거 같은데?”
그때, 위로 블라인드 러비들이 우르르 몰려서 심천우가 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심천우는 벽에 있는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아 버렸다.
쾅!
“헉! 헉!”
잠시 숨을 돌린 천우는 급히 어디론가 무전을 날렸다.
“블랙 쉐도우! 나 심천우다! 급히 그린란드 기지에 모든 미사일을 날려!”
“예?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잔말 말고 날리라면 날려!”
“알겠습니다!”
무전이 끝나자 심천우는 부하들과 어딘가를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재훈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심천우를 따라 가요! 분명 안전한 곳으로 피할 거예요!”
몇 분 후, 심천우는 부하들과 함께 안전 대피 구역으로 피해 들어갔고 재훈 일행도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하늘에서 수십 발의 미사일이 기지를 향해 날아왔다.
콰쾅콰쾅!
쾅쾅!
엄청난 굉음들과 함께 심천우의 기지는 쑥대밭이 됐다. 그 폭발로 미루어보아 사람이건 블라인드 러비 건 그 누구도 살아있지 못할만한 큰 위력이었다. 천우는 부하들과 안전 구역에 있는 연구실로 들어갔다.
“다 처리됐겠지?”
부하 한 명이 말했다.
“아마 이 공격이면 블라인드 러비들도 다 쓰러졌을 겁니다.”
그때, 연구실 밖에서 누군가 출입구의 비밀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천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야! 이 소리는?”
부하가 모니터에 연구실 앞쪽 CCTV 영상을 비췄다. 연구실 앞에는 재훈 일행이 서있고 재훈이 잠긴 문을 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천우가 그 영상을 보며 외쳤다.
“뭐야! 왜 아직도 강재훈 일당이 살아 있는 거야?”
천우는 옆에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여기 무기는?”
부하가 말했다.
“이 구역에는 무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뭐야?”
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앞에 러비 변환용 베드들이 보였다. 그걸 본 천우가 부하들에게 외쳤다.
“다들 저 베드로 올라가!”
부하들이 당황하며 움직이질 않자, 천우가 소리쳤다.
“뭐해! 당장 움직이지 않고!”
천우는 컨트롤러를 통해 헌터 러비로 변하는 코드를 눌렀다. 그리고 곧 그는 각종 수치를 수동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준비가 끝나자 천우 자신과 부하들은 베드로 올라가 누웠다. 곧 베드들의 뚜껑이 닫히며 변환이 시작되었다. 연구실 밖에서 문을 열려고 애쓰는 재훈에게 기룡이 말했다.
“어쩌려고 그래? 굳게 잠긴 것 같은데.”
“어떻게든 열어야죠! 이 안에 심천우가 있는데!”
그때였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며 날아갔다. 그 충격으로 재훈이 뒤로 넘어져 버렸다. 연구실 안에서 수십 명의 헌터 러비들이 나왔다. 얼핏 보기에도 기존에 봤던 헌터 러비들보다 뭔가 더 강해 보이는 느낌이 풍겨져 나왔다. 그 선두에 천우가 서 있었다. 천우는 잔뜩 핏줄이 튀어나온 험악한 얼굴로 넘어져 있는 재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끝장을 보자! 강재훈! 직접 죽여주마!”
재훈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이때를 기다렸다, 심천우!”
재훈 일행과 천우 일행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재훈과 천우는 서로를 노려보며 느끼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전투가 될 거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