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화 희망은 없다
블라인드 러비. 지금까지 재훈 일행이 상대해온 러비들과는 차원이 다른 러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천우의 계획에도 없었던 러비였기 때문이었다. 천우에게 있어 자신의 러비를 공격하기 위해 재훈 일행이 벌인 해킹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러비를 업데이트를 하면 재훈 일행도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해서 공격하는 무한 반복적인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천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러비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우선 감각을 더 뛰어나게 만들기 위해 러비의 눈, 코, 귀를 성능이 좋은 센서로 대처하고 뇌는 펩스가 합쳐지지 않은 인공두뇌로 만들었다. 그리고 입을 없애 음식의 섭취를 제한함으로써, 생체 활동을 더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역대 러비들 중에 가장 강한 러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블라인드 러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첫째, 극도로 짧아진 수명이었다. 수분과 염분이 공급되긴 했지만 결국 영양분을 받지 못해 수명이 굉장히 짧았다. 둘째, 인공두뇌를 사용함으로써 해킹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판단 오류로 아군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분명 심각한 단점을 안고 있었지만, 천우는 재훈 일행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런 점들조차 감수하려 했었던 것이었다.
천우의 명령을 받은 블라인드 러비들이 재훈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퍽! 퍽! 퍽!
재훈의 일행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블라인드 러비들에게 당했다. 눈앞에서 본 그들의 힘은 지금까지의 러비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힘을 내고 있었다. 한 대원이 재빠르게 날아온 러비의 주먹을 옆구리에 맞았는데 방탄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 막히며 갈비뼈가 부러지는 충격을 받았다. 재훈은 쓰러지는 대원들을 보며 이렇게 가다가는 전부 당하고 말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 심천우는 이 상황의 결과가 매우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대로 재훈은 이 순간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모처럼 천우를 직접 보게 됐는데 도저히 그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퍽!
“윽!”
어디선가 묵직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훈 일행은 싸우는 도중에 그 소리가 난 곳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러비의 팔이 디에고의 복부를 뚫을 기세로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복부 쪽에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강력한 힘으로 러비들과 싸워왔던 디에고였기에 동료들의 충격은 더 컸다.
“디에고!”
재훈은 한걸음에 디에고에게 달려가 그의 복부에 주먹을 날린 블라인드 러비의 얼굴 쪽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
두두두두두!
블라인드 러비가 그 공격을 받고 헬멧이 파괴되며 뒤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바로 기룡이 소리를 지르며 그 블라인드 러비의 얼굴을 향해 왼손 주먹을 날렸다.
“죽어라! 이 괴물아!”
퍽!
블라인드 러비는 고개가 꺾인 정도로 보아 기룡의 강력한 기계 의수의 공격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어쩌면 블라인드 러비 한 명쯤은 이제 쓰러뜨렸다고 생각할 그 순간, 고개가 꺾였던 블라인드 러비는 자신의 손으로 뒤로 꺾였던 고개를 힘으로 밀어 다시 앞으로 돌려놓았다.
따다닥!
마치 뼈가 부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블라인드 러비의 고개가 돌아왔고,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기룡에게 달려들었다. 블라인드 러비의 팔과 기룡의 기계 팔이 순간적으로 교차되며 서로의 팔을 때렸다.
캉!
알루미늄 배트가 공을 때리는 듯한 큰 소리가 나며 기룡의 의수가 크게 찌그러졌다. 기룡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다음 공격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막아야 할지 방법이 없었다. 블라인드 러비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재훈 일행의 모습은 마치 토끼몰이라도 당하는 듯 너무나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었다. 천우가 뒤에서 그 광경을 흐뭇한 미소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다 끝장내버려! 결말을 짓자고! 하하하!”
재훈은 어쩌면 이 전투가 마지막 전투가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이대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힘겹게 싸우던 기룡의 눈에 가방 옆에 메고 있던 휴고 데일의 검이 보였다. 그때, 옆에서 싸우고 있는 핑크레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특수부대 출신의 그녀가 검도도 수준급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기룡은 검을 핑크레드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어떻게든 이걸로 놈들과 싸워봐!”
핑크레드는 검을 받아 들자마자 칼집에서 꺼내 눈앞에 있던 블라인드 러비의 팔을 베어내었다.
쉬익!
블라인드 러비의 팔은 마치 무처럼 서걱하고 베어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이거 좋은데!”
핑크레드는 방탄을 착용한 블라인드 러비의 팔을 가볍게 베어버리는 그 검이 얼마나 강한지 손끝의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핑크레드는 팔을 잃은 블라인드 러비의 몸을 검으로 관통시켰다. 그러자 무적일 것만 같던 놈이 툭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줄기 희망 같은 핑크레드의 공격에 재훈 일행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걸 눈치챈 천우는 자칫 잘못하면 재훈 일행을 섬멸하는 게 실패할 수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우는 직접 소총을 들고 재훈 일행과 블라인드 러비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 속으로 다가갔다. 그는 핑크레드를 향해 총을 쏘려 했지만 그녀가 블라인드 러비들과 섞여 있는 통에 조준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핑크레드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천우는 과감하게 총을 발사했다.
타타타탕!
그러나 총알의 대부분은 블라인드 러비에게 날아갔다. 핑크레드가 천우가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한 걸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미친 자식, 나를 맞추려고 부하들까지 쏘는 거냐?”
천우는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너희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내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안 그래?”
천우는 다시 핑크레드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타타타타탕!
핑크레드는 총알을 피해 앞에 있던 블라인드 러비 뒤로 숨었다. 총알은 블라인드 러비의 몸에 연속적으로 박히다가 한 발이 핑크레드의 팔에 맞았다.
“아!”
다행히 팔에 있던 방탄에 맞은 거라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그 총격으로 핑크레드는 검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블라인드 러비는 그 틈을 타 핑크레드에게 달려들었다. 재훈이 그 장면을 목격하며 뛰어왔지만 이미 거리가 너무 멀어 막을 도리가 없었다.
휘익!
핑크레드는 블라인드 러비의 주먹을 피하려 재빨리 몸을 뒤로 뺐고 첫 번째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두 번째 주먹은 거짓말처럼 빠른 속도로 그녀의 얼굴로 날아 들어왔다. 더 재빨리 몸을 뒤로 피한 그녀였지만 상대의 스피드가 워낙 빨랐던 탓에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주먹 끝에 얼굴이 걸리고 말았다.
퍽!
“커헉!”
핑크레드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아가더니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쿨럭! 쿨럭!”
민영과 대균도 필사적으로 핑크레드와 일행들을 구하려 놈들과 싸웠지만 점점 그들의 공격에 밀리고 있었다. 재훈은 눈앞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껏 심천우 일당과 싸워 오면서 한 번도 질 거라던가 죽임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세상을 구할 마지막 사람들이 자기들뿐이었기에 만약 이대로 진다면 그것은 인류의 종말을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재훈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블라인드 러비들에게 총을 발사했다.
두두두두두! 그러나 마치 자기가 쏜 총알이 스펀지라도 되는 냥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재훈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란 말인가?’
재훈은 믿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의미 없는 총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천우는 이제 잠시 후면 재훈 일행을 다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그래! 더 압박해! 놈들을 다 죽여 버려라! 하하하! 이제 내 세상이 온 거야!”
그때였다. 블라인드 러비들이 일제히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재훈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자신도 하늘을 쳐다보았다.
슈우웅!
쾅쾅! 쾅!
갑자기 하늘에서 미사일이 날아와 재훈 일행의 주변에 있던 블라인드 러비들을 공격했다. 아무리 강력한 블라인드 러비들이라고는 했지만 그들은 미사일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곧 공격을 받은 그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천우는 깜짝 놀라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수직 이착륙 수송기가 떠 있었다. 그 수송기에서 천우의 일당들을 향해 계속 미사일 공격이 이루어졌다.
슈슈슝!
쾅쾅! 천우는 화를 내며 외쳤다.
“뭐해! 저 수송기를 쏴! 떨어뜨리란 말이야!”
천우의 부하들이 총을 겨누어 수송기에 발사하려 하는 순간, 수송기 밑에 설치된 기관포가 그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투타타타타타탕!
천우의 부하들과 블라인드 러비들이 그 공격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공격으로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자 그 틈을 타고 수송기는 그대로 땅으로 내려왔다. 이윽고 수송기의 뒤쪽 해치가 열리며 안에 있던 승무원들이 재훈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어서!”
재훈 일행은 재빨리 수송기로 뛰어 들어갔다. 천우가 재훈 일행이 수송기로 들어가는 걸 보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바보 새끼들아! 쏴! 쏘라고! 이러다가 놈들을 놓치면 너희들을 다 죽여 버리겠어!”
부하들과 블라인드 러비들은 수송기를 향해 달려갔지만 수송기의 기관포가 계속 그들에게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탕!
앞서 뛰어가던 부하들과 블라인드 러비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천우는 직접 소총을 들고 수송기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곧 재훈 일행을 다 실은 수송기는 그대로 수직으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전속력으로 앞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천우는 수송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계속 총을 쏴댔다.
타타타타탕!
하지만 이미 수송기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야이 강재훈! 죽일 놈아!”
천우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미 수송기를 놓친 후였다.
대원들이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재훈은 수송기의 조종석으로 향했다.
조종석에서 한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재훈에게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
그는 이익선 대원이었다.
재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우여곡절 끝에 이 수송기를 발견했지만 연료를 보급하고 조종법을 익히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다행히 이 근처를 날고 있었고 포트 모건 호와 교신이 되어서 이곳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 근처에 계셨던 거예요?”
“실은 그린란드 쪽에 연구시설에 가면 연료를 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근처를 수색 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외딴곳이 안전하게 연료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이 크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를 발견하게 되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네요.”
한편 수송기 뒤쪽 바닥에 누워있던 핑크레드가 수송기 대원에게 말했다.
“아까 공격 정말 끝내줬어요. 블라인드 러비들이 미사일에 당할 때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니까요?”
옆에 있던 대원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놈들을 이제 미사일로 날려 버리면 상대도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수송기 대원의 표정이 어두웠다. 핑크레드가 그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뭐예요? 표정이 왜 그런 거예요?”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실은, 아까 우리가 쏜 미사일이 마지막 미사일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핑크레드와 동료들의 활기찼던 표정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핑크레드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우리를 구출하는데 다 써 버린 거라니.”
그때 익선의 옆에 있던 승무원이 헤드폰으로 뭔가를 듣더니 재훈에게 말했다.
“이걸, 좀 들어보셔야 하겠는데요.”
“뭡니까?”
“오픈 주파수로 들어오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심천우 같습니다.”
“뭐라고요?”
재훈은 헤드폰을 받아 끼고 내용을 들었다. 헤드폰 안에서는 심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재훈! 지금쯤 도망가면서 이걸 듣고 있겠군. 아깐 잘도 도망가더군. 하지만 너희에게 희망은 없어!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를 내지. 얼마 전에 오경수11이 보낸 위치 신호기를 발견한 적 있지? 자 그럼 본격적인 문제. 오경수11이 남긴 신호기는 총 3개인데, 왜 너희는 4번째 신호기를 갖고 있을까? 아마 그 내용을 보고 그 신호기가 진짜 오경수11이 남긴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미안해서 어쩌나 그건 우리의 함정인데. 그걸 넙죽 받아서 잠수함으로 가지고 들어가다니 멍청한 새끼들, 그건 너희 잠수함의 위치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장치다! 그럼 잘 봐 둬라 강재훈, 너희의 잠수함이 파괴되는 모습을!”
재훈은 깜짝 놀라며 승무원에게 외쳤다.
“포트 모건 호에 통신을 넣어줘요!”
포트 모건 호의 버틀러 함장이 수송기의 통신을 받자 재훈이 소리쳤다.
“함장님! 얼마 전에 발견한 오경수11의 위치 신호기는 함정이에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때, 레이더병이 버틀러 함장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현 3시 방향에 어뢰 4기 발견! 너무 가깝습니다!”
“뭐라고!”
콰콰쾅!
펑펑!
피할 겨를도 없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포트 모건 호는 폭발해 버렸다. 잠시 후, 그 옆을 심천우의 잠수함 블랙 쉐도우가 유유히 스쳐 지나갔다.
“안 돼!”
재훈은 비명을 지르며 비행기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깜짝 놀란 기룡이 조종실로 들어와 재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재훈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포트 모건 호가 놈들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어요!”
“뭐라고?”
곧 수송기 안에는 침울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수송기는 씨 엘리펀트 호에 도착했다. 재훈 일행으로부터 포트 모건 호의 비보를 전해 들은 지은과 나머지 대원들은 허탈감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다들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지금껏 심천우와 싸워 올 수 있었던 건, 포트 모건 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곧 그 소문은 삽시간에 대원들에게 퍼졌고 암울한 기운이 씨 엘리펀트 호를 감싸기 시작했다. 젤리가 재훈을 위로하려 안아주었다. 하지만 본인도 허탈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제 도대체 무슨 무기로 심천우 일당과 싸워야 할지 막막해져 왔다.
“재훈 씨 힘내요, 어떻게든 싸워야죠.”
“…”
재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무기는 소총 같은 것들 뿐이었다. 그걸로 심천우 일당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은도 재훈에게 다가가 말했다.
“재훈아, 우리 일어서자. 사령관인 네가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된다.”
“하지만 어머니, 이제 우린 어쩌죠? 다들 너무 지쳤고 무기도 없어요.”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싸워야 해.”
“하지만,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말이에요?”
“일단 쉬어. 쉬고 다시 생각해보자.”
재훈은 방으로 가서 힘없이 침대에 누웠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재훈은 침대에서 뒤척였다. 극심한 피로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잠이 오지도 않았다. 곧 젤리가 들어와 말했다.
“재훈 씨, 누워 있지만 말고 뭐라도 먹어요. 이러다가 재훈 씨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 다들 재훈 씨가 다음 작전을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대원들에게 힘을 실어 줘야죠.”
재훈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요. 일어나야죠.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을 텐데.”
재훈은 젤리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재훈 앞에 한 대원이 다가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령관님. 이제 우린 어쩝니까? 이제 포트 모건 호 같은 잠수함도, 미사일도 없잖아요. 이제 우린 심천우를 상대할 수 없는 거죠? 다 죽는 거죠?”
“아닙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다음 작전을 기다…”
순간 대원은 권총을 꺼내며 외쳤다.
“다음 작전이라고요? 무기도 없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에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줄 아십니까? 사령관님도 잘 아시잖아요? 우리에겐 이제 희망 따위는 없는 거라고요! 결국 우리는 놈들에게 잡혀 죽던지, 괴물 같은 러비가 되고 말 거라고요!”
탕!
복도에 날카로운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대원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젤리는 눈앞에서 대원이 자살하는 걸 보고 그 충격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재훈은 죽은 대원의 얼굴을 멍하니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