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113화 (113/119)

# 113

113화 신 위의 신

오경수11이 남긴 4번째 위치 신호기에는 지난번 기지에서 발견한 백업 하드의 내용과는 또 다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요 내용은 C-21 구역에서 발견된 아이들에 관한 내용과 심천우가 어디로 도망가고 있는지 그 장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심천우가 향하고 있는 곳은 그린란드였다. 내용을 검토해 본 재훈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버틀러 함장에게 씨 엘리펀트 호로 갈 것을 명령했다. 재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지은이 다가와 말했다.

“무슨 일이니?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

재훈은 지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어쩌면 이번 공격이 정말 마지막이 될지 몰라요. 그래서 최종 점검을 하려고요.”

“그래? 계획은 있고?”

“그게, 사실 계획은 뚜렷하게 없어요. 단지 이쯤에서 심천우도 뭔가 최후의 공격을 해올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계획을 방해하는 우리가 아직 이렇게 건재하니까 분명 그쪽도 애가 타고 있을 거예요.”

“그래. 마지막 공격이라…”

지은은 걱정이 되는 동시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심천우가 어떤 공격을 해올지는 몰랐지만 어쩌면 곧 심천우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훈은 정욱, 원웅, 성규, 젤리, 강 박사, 지은과 함께 오경수11이 남긴 마지막 자료를 분석하는데 집중했다.

며칠 후, 포트 모건 호는 씨 엘리펀트 호와 합류했다. 기룡이 도킹 구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여어, 다들 고생이 많았어요.”

“선배도 고생이 많으셨죠?”

기룡은 힘없어 보이는 재훈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우리 사령관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야?”

“아니에요. 우선 포트 모건 호에 물자 좀 보충해 주세요.”

“어, 알았어.”

기룡은 더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원들은 포트 모건 호에 물자를 채우기 시작했고 재훈은 주요 대원들을 회의실로 모았다. 뭔가 근심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한 재훈이 대원들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상대의 연구원에게 심천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첩보를 전해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번 전투는 마지막 전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전투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핑크레드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서 쳐들어가서 심천우를 박살 내자고!”

재훈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살 내는 것 좋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인원을 좀 나눠야 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먼저 호명하는 사람들은 포트 모건 호에 탑승하고 나머지 인원은 씨 엘리펀트 호에 남습니다.”

재훈은 태블릿 PC에 써놓은 명단을 읽기 시작했다.

“포트 모건 호에 탑승할 인원을 먼저 부르겠습니다. 우선 저와 마크 버틀러 함장, 핑크레드, 정기룡, 권정욱, 러비 체이서인 디에고 무어, 차민영, 김대균, 그리고…”

재훈은 나머지 군인들을 몇십 명 호명했다.

“자 이번에 호명한 사람들은 씨 엘리펀트 호에 남습니다. 박지은, 강은탁, 안젤리, 임원웅, 박성규, 손주연, 한상우, 퍼시, 그리고…”

재훈은 나머지 대원들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이 다 끝나자 젤리가 재훈에게 화난 듯이 말했다.

“아니 재훈 씨! 나는 왜 빼는 거예요? 나도 같이 가겠어요!”

“젤리 씨, 이제 홀몸도 아니잖아요. 같이 가는 건 절대로 안돼요.”

“그래도 갈 거예요!”

재훈은 젤리의 어깨를 잡으며 기룡에게 회의실에서 데리고 나가라는 눈빛을 보냈다. 젤리는 기룡에게 이끌려 나가며 계속 아쉬움에 소리쳤다.

“아니, 이건 안돼요! 재훈 씨! 재훈 씨!”

지은이 재훈에게 말했다.

“이렇게 인원을 나누는 이유가 뭐니?”

“일단 작전의 효율성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싸워보려고 해요.”

“혹시 실패할 때를 생각하는 건 아니고?”

“어머니…”

재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절대 실패하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남은 사람들을 잘 부탁해요.”

지은은 금세 눈물이 핑 돌 뻔했지만 지금껏 잘 싸워온 재훈이기에 그를 믿기로 했다.

“그래, 알았다. 그럼 준비를 잘하도록 해.”

“예, 어머니.”

강 박사가 재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 작전, 꼭 성공하길 빈다.”

“예, 아버지.”

원웅이 말했다.

“빨리 끝내고 돌아오십시오. 맛있는 유기농 커피를 끓여 놓고 기다릴 테니.”

“알았어요, 그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요.”

재훈은 성규와 주연, 상우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희들은 남아서 어른들 잘 도와주도록 해. 너희가 우리 미래의 희망이라는 거 잊지 말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재훈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전투를 준비했다.

한편 심천우는 새로 옮긴 기지의 작전실에서 뭔가를 보고 받고 있었다. 부하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천우가 한 부하에게 말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준비는 문제없습니다. 다만…”

“다만 뭐?”

“정말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다른 부하들이 그 부하의 발언에 깜작 놀란 가운데 천우는 굉장히 화가 난 표정으로 그 부하에게 말했다.

“이렇게 까지 안 해서 그동안 강재훈 일당이 살아남을 수 이었던 거다. 놈들은 생각보다 끈질기고 강하지. 이 방법이 과하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 놈들이 없어져야만 우리 계획도 완성되는 거야!”

다른 부하들은 곧 천우가 그 부하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 밖으로 천우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천우가 그 부하에게 말했다.

“너의 걱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 곧 알게 될 거야. 재미있는 구경이나 할 준비 하라고!”

“예. 천우님.”

그 부하는 천우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을 안심했지만 뭔가 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천우의 연구실에 복면을 쓴 낯선 자가 침입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 그는 CCTV를 평상시 빈 상태로 반복 재생시켜 놓고, 경보 장치가 작동되지 않도록 한 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연구실 안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커다란 수족관이 있었고 커다란 고래가 힘없는 눈빛으로 물속에 떠 있었다.

침입한 자는 수족관 벽에 폭탄을 설치하면서 고래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천우님의 계획은 너를 연구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지.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계획에도 없던 거다. 천우님은 강재훈 일당을 잡는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폭주를 하고 계신다고. 이쯤에서 연구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정말 세상은 걷잡을 수 없게 돼. 이러다가는 천우님과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오는 게 아니라 다 멸망하고 말 거야. 너한테 악감정은 없어. 큰 고래야, 불쌍하지만 너를 죽여야만 천우님을 멈추게 할 수 있어.”

그는 수족관 벽에 폭탄을 더 붙이고 있었다.

덜컹!

갑자기 연구실 문이 열리며 조명이 켜졌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멈춰! 넌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리를 친 건 천우였다. 그의 뒤로 총을 든 부하들이 수십 명 서 있었다. 천우는 폭탄을 붙이던 남자에게 다가가 복면을 벗겼다. 그는 일전에 정말 이렇게까지 하셔야겠냐며 반문했던 부하였다. 천우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오호라, 니가 정말 내 계획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부하는 벌벌 떨면서도 용기를 내어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천우님! 저는 천우님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최근 연구는 계획에도 없던 것이고, 이 결과로 분명 저희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부디 이 연구를 멈춰 주십시오!”

“우리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뭐 아예 틀릴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난 이 연구를 멈추지 않을 거야! 내가 말했지 않는가? 강재훈 일당이 제거돼야 우리 계획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천우님! 너무 위험한 연구입니다!”

“위험하다? 위험한 건 지금 너의 그 발언이겠지.”

천우는 칼을 꺼낸 후 남자에게 달려가 그의 몸에 꽂아 버렸다.

“윽!”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후 쓰러졌다. 천우가 칼에 묻은 피를 죽은 남자의 복면으로 닦은 후 그걸 다시 죽은 남자에게 툭 던지며 말했다.

“이 쓰레기 좀 치우지 그래.”

부하들이 죽은 남자를 치우고 잠시 후, 대장으로 보이는 부하가 다가와 말했다.

“다 처리했습니다.”

“자네도 지금 이 연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나?”

“예? 아닙니다. 천우님이 하시는 일은 다 옳은 일입니다!”

“핵심 연구원이었던 오경수2도, 11도, 어리석은 행동으로 최후를 맞이했지. 지금 여기서 죽은 놈도 어리석긴 매 한 가지고. 물론 그들이 없어도 연구는 계속할 수 있어.”

천우는 수조관 속에 고래를 바라보며 부하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인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던 걸 이 고래를 연구함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어. 저 거대한 몸집을 봐. 경이롭지 않나? 저 거대한 생명체에 비하면 인간은 작고 나약하기 만한 존재지. 그 나약한 존재들은 말이야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주변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망쳐왔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어.”

“연구는 다 천우님 덕분에 가능했던 겁니다.”

“내 덕분에? 하하, 아부 떨지 말라고. 우리 계획의 핵심은 이 고래다. 앞으로 이 고래를 지키는데 경비를 강화하도록 해! 모든 계획이 끝날 때까지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천우는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몇 주후. 포트 모건 호는 그린란드로 향하고 있었다. 재훈이 정욱에게 물었다.

“도대체 심천우는 왜 펩스도 없는 아이들을 키워 온 걸까요? 오경수11도 그 이유는 다 모르는 것 같던데. 이해가 안 돼요.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들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망치고 있어서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거라면서 다시 펩스도 없는 인간들을 키울 생각을 하다니.”

“어쩌면 그거겠죠. 처음부터 완벽하게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교육시키겠다. 뭐 그런 거 아닐까요?”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컨트롤하려 했던 건지 그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어요. 오경수11이 남긴 자료를 봐도 대체 이해가 되질 않아요. 결국 결론은 잘만 학습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과연 그게 학습만으로 되는 걸까요?”

“글쎄요. 뭔가 더 있겠죠. 심천우만의 방법이.”

“사실 저도 걱정은 돼요.”

“걱정이요?”

“예. 만약 우리가 심천우를 이기고 세상을 구한다면 그 후엔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재훈은 한층 더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지구를 되살리고 인류가 다시 번창해지면 심천우의 말대로 인류가 또 세상을 오염시켜서 스스로를 자멸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이에요.”

“에이, 그땐 달라지겠죠.”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건…”

정욱은 계속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뚜렷한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훈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심천우는 미친놈이 맞지만 적어도 그의 말대로 인류가 세상을 망쳐온 건 사실이죠.”

이윽고 그린란드의 목표 지점에 다다르자 버틀러 함장이 재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목표지점 접근했습니다. 육상 타격 팀은 준비하시죠.”

“예. 알겠습니다.”

버틀러 함장은 단단히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심천우를 발견한다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바로 무전을 날리십시오. 최대한 후방 공격을 할 테니까.”

“알았어요.”

재훈은 전투 준비와 함께 러비 체이서들을 깨울 것을 명령했다.

그린란드. 얼굴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을 헤쳐 가며 재훈 일행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기룡이 재훈의 옆으로 따라가며 말했다.

“이런 내 티타늄 의수도 얼어버릴 지경이네.”

“긴장되세요?”

“긴장? 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핑크레드가 말했다.

“제발 이번엔 말이야, 심천우가 꼭 나타났으면 좋겠어. 맨날 슈퍼바이저들이나 남기고 말이야. 무슨 인형극도 아니고.”

그때였다, 눈앞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뭔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재훈이 재빨리 망원경으로 보자, 설상차 한 대와 러비들이었다. 재훈이 외쳤다.

“공격 준비! 헌터 러비들 인 것 같으니 다들 대비하세요!”

디에고가 달려가며 말했다.

“이번엔 저 헌터 러비들을 몽땅 멈추게 해 주겠어!”

긴장감이 잔뜩 도는 가운데 재훈이 러비 체이서들에게 외쳤다.

“가까이 오면 바로 Force Quit를 작동시켜 버려요!”

러비 체이서들은 해킹 준비를 서둘렀다.

적들이 가까워질 무렵 세 명의 러비 체이서들이 앞으로 달려가 제자리에 섰다.

“한방에 다 멈추게 해 버리자고요!”

민영이 외친 가운데 재훈이 기회를 보고 있었다.

“10m만 더, 더, 더, 지금이에요! Force Quit 전개!”

재훈의 외침과 함께 러비 체이서 들의 가방에서 한층 더 강화된 근거리 해킹 전파가 송신됐다. 적 러비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다가 제자리에 쓰러지면서 멈춰 섰다. 그 장면을 보던 핑크레드가 기뻐하며 말했다.

“거봐! 이 새끼들 헌터 러비라고 해도 아무것도 아니네!”

휙!

퍽!

갑자기 달려든 적 러비의 주먹을 핑크레드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통에 맞아 쓰러졌다.

“윽! 뭐… 뭐야?”

놀랍게도 적 러비들은 다시 일어났다. 디에고와 민영, 대균은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자신들의 장비를 점검했다. 하지만 장비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재훈이 외쳤다.

“어떻게 된 거예요?”

민영이 당황하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장비는 이상이 없는데?”

적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재훈 일행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타타타탕!

재훈 일행은 최대한 대응을 했지만 적들이 멈출 거란 예상을 벗어나서인지 혼란 속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디에고에게 한 녀석이 달려들었다. 놈은 재빠르게 연타로 주먹을 날렸지만 디에고도 만만치 않은 솜씨로 놈의 공격을 받아냈다. 순간 틈이 보이자 디에고가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날렸다.

퍽!

디에고의 주먹은 정확히 놈의 헬멧을 가격했고 놈은 헬멧이 벗겨지며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놈의 맨 얼굴을 본 디에고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게 뭐야?”

재훈 일행은 디에고의 외침을 듣고 일제히 헬멧이 벗겨진 놈의 얼굴을 쳐다봤다. 놀랍게도 놈의 얼굴에는 눈, 코, 입, 귀가 없었다. 대신 눈의 자리에는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가, 코에는 냄새 감지 센서가, 귀에는 소리를 탐지하는 센서가 달려 있었고 입은 아예 존재하지를 않았다.

“다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총을 든 다른 러비들이 재훈 일행을 빙 둘러싸고, 그 사이로 한 남자가 미소를 지은 채 앞으로 나왔다. 재훈이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심천우?”

그러자 핑크레드가 말했다.

“뭐야, 뻔해 또 가짜일 거라고!”

그러자 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를 어쩌나 이번엔 진짜 나인데.”

재훈은 그를 찬찬히 다시 살폈다. 분명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짜 심천우였다.

“직접 나타나다니 무슨 일이지?”

재훈의 호기로운 행동에 심천우가 연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재훈 일당의 진짜 마지막 모습을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안 그래? 하하하!”

“우리가 마지막이라고? 웃기지 마!”

천우는 아까 디에고에게 맞아 무릎을 꿇고 있는 러비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 러비는 ‘블라인드 러비’라고 해. 내가 만든 러비 중에 최고의 역작이지.”

핑크레드가 말했다.

“역작? 그 구역질 나는 눈코 입도 없는 괴물이?”

“구역질이라. 내 작품에 너무 한 거 아닌가? 곧 이들의 손에 죽을 놈들이 말이야.”

재훈이 천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들의 손에 우리가 죽을지는 해봐야 알지.”

“오, 대단한 자신감이군 그래. 하지만 말이야, 너희는 이들을 이길 수 없어.”

“너야말로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군.”

“이 들이 아까 너희의 해킹 전파를 받고도 안 멈췄지? 왜 그런지 아나? 이들은 펩스가 없어. 아예 프로그래밍된 인공두뇌만을 가지고 있지.”

“인공두뇌? 지금의 기술로는 그런 건 불가능해!”

“불가능이라, 뭐 너희 수준에서는 신 조차 이런 걸 만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천우는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난 이걸 만들어 냈으니 신 위의 신이겠군. 그럼 신으로서 명령하지, 다들 죽어!”

천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디에고에게 맞았던 녀석과 함께 모든 블라인드 러비들이 재훈 일행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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