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93화 (93/119)

# 93

93화 아버지의 마음

권수찬. 아버지는 러비를 만들어 낸 심천우, 어머니는 디지털 키스 앱을 만든 신민영. 수찬은 현재 세상을 이렇게 만든 두 장본인을 부모로 둔 외동아들이자, 심천우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심천우를 함부로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었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비밀스러운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수찬의 기억 속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수찬은 아버지를 존경했다. 어머니를 통해 간간히 아버지의 ‘안티 휴먼’ 계획을 들어온 수찬은 아버지의 그 원대한 계획이 인류를 위한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라 믿어 왔다. 그리고 본인 또한 그 아버지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심천우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수찬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과 믿음을 갖고 있었다. 수찬은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강재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심천우도 약속했다. 그 어떤 지원도 다 해주겠노라고.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믿음. 지금 수찬의 머릿속엔 반드시 강재훈을 죽여 아버지에게 신뢰를 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임무를 완수하면 분명 자신은 지금까지 보다 더 떳떳하게 자신이 심천 우의 아들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강한 의지로 똘똘 뭉친 수찬의 눈앞에 강재훈이 있었다.

수찬의 뒤엔 무기를 든 슈퍼바이저들이 서 있었다. 재훈 일행이 자칫 저항을 했다간 그대로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게 뻔한 상황이었다.

수찬이 재훈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강재훈, 어딜 가려고 이렇게 서두르고 있었나?”

재훈은 수찬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때문에 심천우도 어지간히 골치가 아픈 모양이군. 이렇게 자기 아들을 직접 보낸 걸 보니까 말이야.”

수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있다니, 넌 아버지도 없으면서 말이야.”

수찬은 재훈 뒤에 서 있던 강은탁 박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 아니지. 너도 아버지가 있긴 하지. 저 가짜 아버지 말이야.”

갑자기 수찬의 지시를 받은 슈퍼바이저 한 명이 강 박사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재훈이 놀라며 수찬에게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수찬은 얼굴 한가득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널 그냥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 최대한 재미있게 하려면 너의 소중한 사람들이 눈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죽는 걸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널 죽여주는 게 좋겠지?”

재훈이 수찬에게 달려드려 하자 슈퍼바이저가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재훈의 명치를 가격했다. 퍽!

“윽!”

재훈이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 쓰러지자 강 박사가 외쳤다.

“이봐! 그만둬!”

수찬은 강 박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왜? 가짜 아들이지만,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로서 절로 가슴이 아픈가?”

수찬은 이번엔 재훈 일행을 빙 둘러보다가 지은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 당신이군. 일명 ‘예언자’, 강재훈의 친어머니. 그리고 우리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 중에 하나.”

지은이 아무 말 없이 수찬을 노려보자, 옆에 있던 핑크레드가 수찬에게 말했다.

“이봐, 죽이려면 긴말하지 말고 죽여. 영화도 못 봤어? 악당이 말이 많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고.”

수찬이 핑크레드에게 다가가 붕대로 감겨있는 그녀의 상처를 손으로 꾹 눌렀다.

“으윽!”

수찬이 그녀의 상처를 더 세게 누르며 말했다.

“강한 척 하지만, 결국 너도 상처를 건드리면 아파하는 보통 인간일 뿐이야. 알겠나? 지금 네 목숨의 선택권은 내 손안에 있다는 걸 잊지 마!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너부터 죽여주는 수가 있어!”

수찬은 슈퍼바이저들을 시켜 재훈 일행을 한 곳으로 몰아세웠다. 수찬이 헬멧에 달린 캠을 작동시킨 채 무전으로 천우에게 말했다.

“아버지 보십시오! 드디어 강재훈을 잡았습니다!”

“잘했다, 수찬아.”

수찬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재훈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아버지, 똑똑히 보십시오. 강재훈이 죽는 장면을!”

수찬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탕!

잠시 정적이 일고 모두의 시선은 재훈과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눈 수찬에게 돌아갔다. 웃고 있던 수찬의 입 꼬리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찬은 자신의 배를 내려 봤다. 방탄복을 뚫고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서 있었지만, 마치 다리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

털썩!

수찬은 힘없이 제자리에 쓰러졌다.

“이게 어떻게…”

잠시 후, 몇 발의 총성이 더 들려왔다.

탕! 탕! 탕!

자신들을 컨트롤하던 수찬이 쓰러진 후 잠시 멈췄던 슈퍼바이저들이 머리에 총을 맞으며 그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방탄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그들의 머리를 뚫은 건 대전차용 철갑탄이었기에 막아낼 수가 없었다.

멀리서 한 무리의 군인들이 뛰어왔다. 그중 한 사람이 재훈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사령관! 괜찮습니까?”

그는 포트 모건 호의 버틀러 함장이었다. 재훈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어떻게 오신 거예요?”

“앤드루스 기지에 순항 미사일이 떨어지는 걸 보고 근처에 있던 트럭들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재훈은 버틀러 함장을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어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쓰러진 수찬의 무전기에 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찬아! 무슨 일이냐?”

“아버지… 제가 총에 맞았…”

천우의 목소리가 냉정하게 바뀌며 들려왔다.

“실패한 거냐?”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갑자기 수찬의 펩스에 이상한 코드가 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외부에서 조작을 통해 작동 한 프로그램이었다. 순간 수찬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천우가 조종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버지 이게… 무슨 프로그램입니까?”

“아들아, 날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지 않겠니?”

수찬의 펩스에서 작동되는 프로그램은 뭔가 유도하는 좌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버지 혹시 이 프로그램은? 유도 프로그램입니까?”

“맞다. 핵미사일이 날아갈 좌표로 너의 펩스를 목표로 삼았다.”

“아버지…”

“아들, 최후까지 나를 위해 임무를 완수해라. 반드시!”

“어떻게… 제발 살려주세요, 아버지!”

천우는 한층 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아! 나약해지지 마라! 최후까지 나를 위해 행동하는 거다! 그것이 너의 운명임을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할 거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이지 않습니까?”

“혈육?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해두마. 너의 어머니 신민영은 나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 계획적으로 내게 접근해 너를 임신하고 낳았다. 난 너를 낳길 원하지 않았어. 너의 출생 자체는 그저 너의 어머니의 계략이었을 뿐이야. 그리고 사실, 너의 어머니는 내 계획을 이루기 위한 일부분이었을 뿐이지.”

“그 말씀은…”

“너의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애정 같은 거 따윈 없었다. 나에게 가족 같은 건 애당초 한 명도 없었으니까.”

수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버틀러 함장이 포트 모건 호에서 온 무전을 받고 급히 재훈에게 말했다.

“서둘러서 이동해야겠어요. 열기구 레이다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탄도 미사일이 감지됐답니다.”

“예?”

“아마 핵미사일일 거예요.”

“피할 수 있을까요?”

“포트 모건 호에 가서 바로 잠수해버리면 아마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재훈 일행은 서둘러 트럭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재훈이 가슴을 움켜쥐며 엉성하게 달리자 강 박사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부축해 주었다. 그 모습을 쓰러진 수찬이 보고 있었다. 수찬에게 핑크레드가 다가와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내가 뭐랬어. 악당이 너무 말이 많으면 죽는 댔지?”

수찬이 핑크레드를 쓱 쳐다보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머리를 쏴 버렸다.

탕!

심천우의 기지에 있던 모니터에 수찬의 펩스에 입력한 좌표가 사라졌다. 부하 한 명이 천우에게 말했다.

“수찬 대장님이 아마 사망하신 모양입니다.”

천우가 작전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멍청한 자식!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다니!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머저리 같은 놈!”

몹시 화를 내던 천우가 부하에게 물었다.

“탄도 미사일은 제대로 날아가겠나?”

“최초 위치 신호를 예측해서 다시 목표를 수동 조종했습니다. 오차 범위는 5m 내외입니다. 어차피 놈들은 미사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 잘됐군.”

천우는 긴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재훈 일행은 신속하게 포트 모건 호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다 탑승하자 버틀러 함장은 최대한 빨리 잠항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들 긴장하는 가운데 포트 모건 호는 잠항을 한 후 전속력으로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쿠쿵!

한차례의 큰 진동이 느껴지고 소나와 레이더를 보고 있던 대원이 말했다.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 핵탄두가 떨어졌습니다. 진동으로 추정해 475kt 위력의 W88 핵탄두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균이 말했다.

“앤드루스 기지 근방은 쑥대밭이 됐겠군요.”

버틀러 함장이 부하들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 측 피해는 없나?”

계기를 확인한 대원이 대답했다.

“우리 측 피해는 없습니다. 모든 계기 정상입니다!”

재훈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젤리가 재훈에게 안기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재훈은 그런 젤리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젤리 씨.”

재훈 일행은 식당에 모였다. 주연은 따뜻한 야채수프를 끓여 내었다. 재훈이 주연에게서 수프 그릇을 받으며 말했다.

“주연아 무섭진 않았니? 괜찮아?”

“전 괜찮아요. 이젠 저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나 봐요.”

재훈은 그런 주연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핑크레드가 말했다.

“우리 주연이 장하다! 요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용감하기도 한데? 다음에 언니한테 총 쏘는 법도 배우고 그래. 잘 알려 줄 테니까.”

“예, 꼭 배울게요.”

주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지은이 재훈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앤드루스 기지에 주요 시설들이 다 파괴된 이상, 우리 작전에 큰 차질이 있을 거야.”

수프를 한 숟가락 떠먹은 재훈이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꾸 생각하다 보면 대처할 만한 방법들이 있을 거예요.”

원웅이 말했다.

“우선 큰 문제는 펩스 신호 증폭기를 만들 자재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앞으로 러비들을 처리하려면 꼭 필요한데 말이죠.”

재훈이 말했다.

“그 문제도 계속 생각해보도록 해요. 분명 답이 나올 거예요.”

재훈은 샤워 실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재훈의 몸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재훈은 거울을 손으로 한번 쓱 닦고, 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염이 수북이 자라 있었다. 재훈은 자신의 면도기로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핵폭탄이 터진 큰일을 겪은 직 후, 이렇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면도까지 할 여유가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재훈은 말끔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힘내자!”

샤워를 마친 재훈에게 강 박사가 찾아왔다. 그는 재훈의 티셔츠를 들어 올려 명치를 살폈다. 재훈의 명치는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강 박사는 재훈의 명치에 피부 진정 연고를 발라주며 말했다.

“괜찮니?”

“예, 괜찮아요. 아버지.”

강 박사는 계속 연고를 펴 발라주며 말했다.

“더 좋은 약을 발라주고 싶지만,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연고가 이런 것 밖에 없구나.”

재훈은 연고를 발라주는 강 박사의 손을 바라봤다. 그의 손은 거칠고 푸석푸석해 있었다. 재훈이 강 박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아버지. 감사해요.”

강 박사는 재훈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많이 힘들지?”

“아니에요. 다들 고생하고 있는 걸요. 아버지는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 이게 다 니 덕분이다.”

“에이, 뭘요. 죄송해요. 아버지를 번번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해버려서.”

“이런 전쟁 통에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니? 니 탓이 아니다.”

재훈이 잠시 무슨 생각에 빠졌다. 강 박사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아까 수찬이 말한 걸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왜? 가짜 아들이지만,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로서 가슴이 아픈가?’라고 했었어요.”

“아, 그래?”

“제게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놈이 함부로 떠들어 대는 모습을 보니, 한방 때려주고 싶더라고요.”

“결국 핑크레드 양이 한방 먹여 줬지 않니?”

“예. 그걸로 수찬은 끝난 거죠.”

“난 속이 다 시원하더라.”

“심천우는 어땠을까요?”

“응?”

“자기 아들이 죽었을 때, 심천우는 어땠을까요?”

“아마… 놈은 아무렇지 않았을 거다. 워낙 악질인 놈이니까.”

“그랬을까요?”

그때 민영이 나타나 말했다.

“수찬은 천우에게 철저히 버림받았어요.”

재훈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그걸 민영 씨가 어떻게 알아요?”

“아까 수찬이 쓰러졌을 때 무전 날리는 걸 들었거든요. 제 귀가 워낙 밝아서요. 대충 수찬이 지껄이는 걸 들어보니, 수찬의 펩스에 핵탄두 목표 좌표를 설정한 모양이더라고요. 아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구해낼 생각은 안 하고 잔인하게 타깃으로 삼아 버린 거죠.”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자신의 가족에게조차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놈이니까요. 제가 놈에게 잡혀 있어봐서 그 잔혹함을 좀 알거든요.”

재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천우의 기지. 도예가 조심스럽게 천우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와!”

도예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주전자와 찻잔이 들려 있었다. 도예는 찻잔에 차를 따라 천우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

“천일홍 꽃차입니다. 우울한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요.”

“우울?”

도예는 뭔가 잘못됐다는 눈치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드님이 돌아가신 걸로 속이 상해 계실까 봐…”

“내가 우울해 있다고 생각했나?”

천우는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도검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도검을 꺼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쉬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찻잔은 예리하게 둘로 나뉘었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차가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깜짝 놀란 도예에게 천우가 다가갔다. 도예는 고개를 숙이며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천우는 도예의 뒷목을 확 끌어당기며 강하게 키스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떤 데이터의 교환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우는 한 손에 들었던 검을 땅바닥에 던진 후, 도예를 꽉 끌어안은 채 계속 격렬하게 키스를 이어갔다. 잠시 후, 입술을 뗀 천우가 도예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가?”

“예? 뭐가 말입니까?”

“데이터 교환을 목적으로 한 키스가 아닌, 남녀의 감정을 교류하는 키스가 어땠냐 말이야?”

“그, 그게…”

천우는 도예를 침대에 앉히며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있을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는 존재 들이다.”

도예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천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들의 죽음? 우울해? 그럴 이유가 없지. 만약 아들이 필요하다면, 너와 같이 아이를 만들어 낳으면 되지 않겠나?”

천우는 뒤에 서 있던 여성 슈퍼바이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면 저 여자와 아기를 만들면 되겠군! 안 그래?”

도예가 빨개진 얼굴로 천우를 바라보자, 천우는 도예의 턱을 한 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만약 내게 자식이 필요하다면 그때마다 여자를 구해 아이를 만들면 되지. 그러나 그건 단순히 내게 필요한 사람을 또 만들어 내는 의미 그 이상은 아니야!”

천우는 벌벌 떨고 있는 도예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오며 말했다.

“그러니, 내가 그깟 사람 하나 죽었다고 우울해 있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버려! 다시 한번 이런 엉뚱한 짓을 했다간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명심해!”

도예는 턱을 잡힌 채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의 방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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