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82화 (82/119)

# 82

82화 모스 부호

연구실 안에 컴퓨터는 온통 하얀색 LED로 빛나고 있었다. 민영과 윤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민영이 재훈에게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악이 제거된 세상이요? 그 악마 같은 심천우가 악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고요?”

윤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재훈에게 말했다.

“강 형사님, 그게 말이 됩니까? 만약 그게 사실이면 지금껏 심천우가 해온 일들은 다 뭐죠? 저로선 더 이해가 안 되는데요.”

재훈이 민영에게 말했다.

“민영 씨, 제희를 생각해봐요. 제희는 낯선 우리에게 경계심조차 없을 정도로 착한 아이였어요. 대체 왜 심천우가 그런 아이를 키우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이 펩스 컴퓨터에 대입된 완벽한 제어 프로그램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심천우는 왜 러비 같은 걸 만들어서 인류를 제거하려 한 거죠?”

재훈이 홀로그램을 띄우며 말했다.

“여길 보세요. 제희의 펩스에 있던 알고리즘에 이걸 대입해 볼게요.”

재훈은 홀로그램에 ‘사람을 죽이기.’라는 명령어를 만들어 알고리즘에 대입시켰다. 그러자 프로그램은 곧 ‘실행불가. 행동 제약 프로그램 작동.’이라는 메시지를 나타냈다.

그 후에도 재훈은 ‘돈 훔치기.’, ‘마약 투약하기.’등 누가 생각해도 기본적으로 안 될 만한 것들을 입력시켰다. 역시 다 실행 불가라는 같은 메시지가 떴다. 재훈이 말했다.

“이것들을 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심천우는 인류를 멸종시키려고만 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민영이 재훈에게 말했다.

“제가 심천우에게 잡혀 있을 때, 놈은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 버렸어요. 놈에게 사람이란 정말 벌레보다 못한 존재였죠. 그런 놈이 착한 사람을 만들어서 뭘 하려고 했겠어요? 그저 말 잘 듣는 노예로나 만들 생각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정확한 건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우리가 막아야 해요. 사람을 없애려 하는 것도, 사람들을 제어하려 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옳지 않으니까요.”

재훈은 방으로 돌아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얼마 후 노크 소리가 나고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재훈 군, 어제 새로 캔 고구마가 아주 맛이 좋아. 좀 먹어 보라고 가져왔어.”

노인은 재훈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들이 담긴 그릇을 내려놓았다.

“감사해요, 어르신. 막 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재훈은 고구마를 까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와! 진짜 맛있는데요.”

노인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고구마를 먹는 재훈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뭔가 큰 고민이 있는 모양이로구먼.”

재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냥 고민이라기보다, 좀 깊게 생각해 볼 일이 있어서요.”

“깊게 생각해 볼 일이라… 혼자 풀기 어려운 거라면 말해보게. 나도 같이 고민해 줄 테니까.”

“아니에요. 워낙 복잡한 일이라.”

“그래?”

“죄송해요. 다 말씀드리고 싶은데 아직 확실치가 않아서요.”

노인은 재훈에게 고구마를 하나 까 주면서 말했다.

“무슨 일 인진 모르겠지만 모든 일에는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네. 어쩔 땐 한 가지 일을 두고서도 각기 다 다르게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각각의 이유가 달라서라네. 그 걸 이해해야 한다면 적어도 다른 시각을 가져 볼 필요는 있지. 그게 정말 자신이 싫어하는 일이라도 말이야.”

“그렇겠죠?”

노인은 밖으로 나가려다 뭔가 생각난 듯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재훈에게 말했다.

“참, 며칠 전에 이곳 의사들의 도움으로 펩스를 제거했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아주 홀가분 하구만.”

“아, 그러셨어요?”

“그럼 편히 쉬게.”

노인이 나간 후 재훈은 연구실로 향했다. 하얀 LED 불빛들을 보며 재훈은 혼잣말을 했다.

“그래, 어쩌면 이 속에 해답이 있을지도 몰라.”

재훈은 컴퓨터를 이용해 무언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재훈이 민영을 연구실로 부른 후 말했다.

“어제 밤새도록 고민해봤는데 나름대로 일단 가설을 세워 봤어요.”

“밤새 잠도 안 자고 고민하신 거예요? 맙소사. 근데 가설은 뭐예요?”

재훈은 홀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건 지구였다.

재훈이 지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생각한 가설은 ‘심천우는 세상을 구하려 했다.’라는 거예요. 우선 심천우가 러비를 만들고 공격하게 한건 분명 사람들을 없애기 위한 게 맞는 것 같아요.”

“악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면, 도대체 왜 사람들을 죽이려 했을까요?”

“그걸 밝히려면 이것부터 살펴봐야 해요.”

재훈은 지구 그림에 어떤 도표를 띄운 후 말했다.

“이건 세계 각지의 고질적인 문제들이에요. 환경오염, 종교 전쟁 등, 수세기가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죠.”

재훈은 다른 파일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이 컴퓨터에 연결된 펩스 중 자이언트 러비의 펩스에 있던 내용을 분석해서 꺼내 본 거예요.”

“아, 이건 숫자만 있어서 별 거 아닌 줄 알고 놔뒀던 부분이었는데. 뭐 중요한 내용이 있었어요?”

“저도 많이 고민했는데, 좀 틀어서 나열해보니 자이언트 러비가 방문한 곳에 대한 GPS 기록이었어요. 이걸 지도에 대입해 볼게요.”

재훈이 좌표들을 지도에 입력시키자, 몇 군데 지점이 표시되었다.

“아마도 이 자이언트 러비는 중국에서 온 것 같아요. 처음 위치 기록이 상하이 근처로 잡히죠. 그런데 그다음 위치 중 유독 눈에 띄는 곳들이 있어요. 제가 찍어주는 점을 잘 보세요.”

민영이 그 점들을 보며 말했다.

“여긴, 태양 에너지 발전소, 중국 국립 유전 연구소, 대기 오염 측정 센터. 도대체 이곳들을 간 이유가 뭘까요?”

“이상하죠? 악마 같은 심천우가 이렇게 지구 환경과 무공해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니. 이 뿐만이 아니에요.”

재훈이 어떤 사람들의 명단을 띄우며 말했다.

“이 자이언트 러비의 펩스에 기록된 내용 중에 심천우가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명단이 있었어요.”

“납치요?”

“예, 명단을 보니 환경 전문 분석가, 자연 에너지 전문가, 반 유전자 변형 식물 연구원, 종교 연구가 등이 있었어요. 이상하죠? 세계를 멸망케 하려는 심천우가 납치한 인물들이 이런 사람들이란 게.”

“아니, 무슨 환경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최근까지 우리는 각종 환경문제, 전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었죠.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더 많은 문화적 교류가 있었지만, 이런 것들은 계속 고질적인 문제들로 남아 있었죠. 그대로 뒀다간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 심천우는 이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 했던 거 같아요.”

“심천우가 정말 지구를 구하는 일을 하려고 했다고요?”

“예. 단순히 심천우가 나쁜 놈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고, 있는 사실로만 추론해 본 제 생각은 그래요.”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강 형사님 말대로라면 지구를 구할 목적으로 사람들을 죽여 왔다는 건데 왜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썼을까요?”

“세상을 구하려고 했는데, 기존의 인류의 구성 속에서는 문제가 계속 반복되니까,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제일 좋은 방법은 빠른 시간 안에, 그것도 한방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결국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자기가 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윤리나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던 거고요. 그 결과, 사람들을 해킹해서 러비로 만들고, 죽이고, 또 한편에서는 모든 문제에서 제어가 가능한 사람들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민영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강 형사님 말이 맞다면 심천우는 자기 자신이 세상을 구할, 유일하고 절대적 존재라고 믿고 있겠네요.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요.”

“심천우 나름대로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때, 한 남자가 들어와 급히 민영에게 말했다.

“대장, 작전실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무슨 일이에요?”

“구조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구조 신호요?”

작전실에는 정찰을 나갔던 부하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민영이 재훈과 함께 작전실로 들어오자 그 부하는 녹음기를 재생시키며 말했다.

“이걸 들어 보세요. 모스 부호 같아요.”

녹음기에서는 ‘띡띡띡 띠 이익 띠 이익 띠 이익 띡띡띡, 띡띡띡 띠 이익 띠 이익 띠 이익 띡띡띡.’이란 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걸 유심히 듣던 재훈이 말했다.

“이건 모스 부호가 맞아요. SOS라는 구조 신호예요.”

민영이 부하에게 말했다.

“이걸 어디서 녹음해 온 거죠?”

“그린 타운 근처예요. 지나가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녹음기를 바닥에 대고 소리를 녹음했는데 이런 소리가 나더라고요.”

재훈이 놀라며 민영에게 말했다.

“그린 타운 근처라면, 분명 우리가 갔을 때 심천우가 사람들을 폐기 처분하라고 했었잖아요. 어쩌면 그곳 생존자 들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함정일 수도 있고.”

재훈이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일단 가서 확인이라도 해봐야겠어요.”

민영도 신중하게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일단 확인을 해 보는 목적으로 가 보도록 해요.”

재훈과 민영은 부하 4명과 함께 무기와 짐을 챙겼다.

다음 날 저녁, 재훈 일행이 그린 타운 근처에 도착했다. 민영이 부하를 따라 구조 신호가 녹음된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그린 타운 옆에서 중장비 소리가 들려왔다. 재훈 일행은 황급히 몸을 숨긴 채 소리 나는 쪽을 지켜봤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무언가를 나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들의 시신이었다. 시설 안에서 옮겨진 듯한 시신들을 거대한 불도저가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곧 시신들이 높게 쌓인 곳에서 거대한 불길이 솟구쳤다. 방호복을 입은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말했다.

“이것들 펩스는 다 뽑아서 처리했어?”

“예, 다 뽑아서 폐기했습니다.”

“조심해야 해. 절대 외부에 유출되면 안 되니까. 그나저나 실험체 전량 폐기라니, 천우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야?”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그저 시키는 데로만 하는 거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잖아. 전량 폐기라니.”

시신을 소각하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재훈이 민영에게 말했다.

“결국 다 죽이고 마는 모양이네요.”

민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에게 말했다.

“모스 부호가 들린 곳이 정확히 어디라고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따라오세요.”

재훈 일행은 약 2km 정도를 이동했다. 숲이 우거진 곳에 다다르자 앞서가던 부하가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땅에 귀를 대고 소리에 집중했다. 몇 군데를 옮겨 다니며 소리를 듣던 부하가 말했다.

“대장, 여깁니다.”

민영이 그곳으로 달려가 바닥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띡띡띡 띠 이익 띠 이익 띠 이익 띡띡띡…’

감이 멀긴 했지만, 분명 소리가 들려왔다. 민영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근처에 동굴 같은 게 있나 뒤져보세요.”

다들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수색하고 있는데, 재훈이 땅을 밟다가 갑자기 바닥에 조명을 비춰보았다. 민영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요? 뭐 있어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발 자국들이 있어요. 그것도 여러 개에요.”

재훈 일행은 그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그들이 흔적을 따라간 곳엔 한 건물이 있었다. 흔적은 그 건물 지하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민영이 지하 입구에 다다르자 대원들에게 말했다.

“함정일 수 있으니까, 다들 조심하세요. 자, 그럼 들어가죠.”

지하에는 제법 큰 터널이 펼쳐졌다. 재훈이 주변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여긴, 무슨 지하 창고 같은데요.”

다들 경계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어디선가 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훈이 소리가 난 곳으로 총을 겨누며 조명을 비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잔뜩 겁을 먹은 채 구석에 숨어 있었다. 한 사람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쏘지 마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재훈은 조명을 비추며 사람들을 살폈다. 생김새와 옷차림을 보아하니 생존자들 같아 보였다. 민영이 말했다.

“저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생존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재훈이 물었다.

“왜 여기 숨어 계시는 겁니까?”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우린 원래 다른 곳에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이언트 러비들과 도그 러비들이 쳐들어 와서 도망 다니다가 여기로 들어오게 된 겁니다.”

“구조 신호가 들리던데, 혹시 신호 보내신 분은 누구세요?”

생존자들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만 볼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한 꼬마가 말했다.

“제 친구들일지도 몰라요. 아까 저 밑으로 도망갔는데, 어디에 빠진 것 같아요.”

재훈이 말했다.

“그래? 그럼 친구들이 어디에 빠졌는지 안내해 줄래?”

꼬마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재훈 일행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따라오세요.”

재훈이 민영에게 말했다.

“여기 있어요. 제가 한명만 데리고 가 볼 게요.”

재훈은 부하 한 명을 데리고 꼬마를 따라갔다. 한참을 들어가자 재훈의 귀에 모스 부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그 소리는 더 커지고 있었다. 곧이어 바닥에 큰 낭떠러지 같은 공간이 보였다. 부하가 그걸 살피더니 재훈에게 말했다.

“무슨 저수탱크 같은데요?”

재훈이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친구들이 왜 여기로 왔는지 말해줄래?”

“애들이 도그 러비가 무섭다고 더 안쪽으로 가야 한다고 뛰어가고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애들이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발을 멈춰보니 이 곳 바로 앞이었어요. 저만 떨어지지 않은 거예요.”

“그래?”

재훈은 조명을 비춰 저수탱크 바닥을 살폈다. 경사진 땅이 더 깊숙한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재훈이 부하에게 말했다.

“여기 꼬마랑 있어보세요. 제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예, 조심하세요.”

재훈은 조명을 비춘 채, 저수탱크 안으로 내려갔다. 비탈진 탱크로 내려가면 갈수록 구조 신호는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재훈의 조명에 아이 몇 명이 보였다.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재훈이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괜찮니? 아저씨가 구하러 왔어. 안심해! 나쁜 사람 아니야.”

한 아이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친구가 굴러 떨어져서 다쳤어요. 도와주세요.”

재훈이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신호를 보낸 게 너희니?”

“신호요?”

“그래, 모스 부호 말이야. 뭔가를 두드려서 소리를 낸 게 너희가 아니야?”

“어, 그건 저희가 아닌데.”

“너희가 아니야?”

“그 소리를 낸 건 똘똘이예요!”

재훈이 아이가 가까워지자 말했다.

“신호를 보낸 게 똘똘이라고?”

“예. 엄청 똑똑한 개에요. 개가 입에 쇠붙이를 물고 배관을 쳐서 소리를 낸 거예요.”

“그래?”

재훈이 아래로 내려가자 탱크의 끝이 보였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 재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괜찮니?”

“한 애만 떨어질 때 많이 다친 거 같아요. 저희는 괜찮아요.”

“다행이구나.”

재훈은 아이들을 살피다가 어두운 구석에서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개 한 마리를 보았다.

“니가 똘똘이인 모양이구나? 장하다, 니가 아이들을 살렸어.”

재훈은 조명을 개에게 비췄다. 그러자 갑자기 개가 재훈에게 달려들었다. 재훈은 막을 겨를도 없이 넘어지며 개의 공격을 막으려 팔꿈치로 얼굴을 막았다. 그런데 그 개는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핥고 있었다. 재훈이 조명을 개에게 비추자 개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재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개를 향해 외쳤다.

“퍼… 퍼시? 너 퍼시 맞지?”

개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듣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재훈에게 달려들어 여기저기를 핥아댔다. 어느새 재훈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퍼시! 살아 있었어? 너 이 자식. 죽은 줄 알았잖아. 퍼시.”

재훈은 다시는 놓지 않으려는 듯 퍼시를 더 꼭 끌어안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