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81화 (81/119)

# 81

81화 심천우의 유토피아

재훈과 민영은 한동안 제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심천우와 닮은 구석은 없어 보였다. 재훈이 제희에게 물었다.

“제희야, 아버지 성함이 정말 심천우가 맞아?”

“예. 왜요? 우리 아버지를 아세요?”

“글쎄…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과 같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만나보세요. 아버지도 반가워하실 거예요.”

재훈은 당황하며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해. 사실 지금 만나기가 좀 내키지 않아.”

“뭐,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으신 건가 봐요.”

“그렇다고 해두자.”

민영이 제희에게 말했다.

“제희야, 혹시 이 시설을 살짝 둘러볼만한 방법이 있을까? 무척 궁금해서 그래.”

“언니도 저만큼 호기심이 많으신가 봐요. 음, 방법이라…”

한참을 생각하던 제희가 말했다.

“아, 좋은 방법이 있어요! 천장으로 가면 이 곳 전체가 아주 잘 보이는 곳이 있어요. 위쪽 통로로 올라가면 돼요. 옛날 인부들이 다녔던 건설용 통로인데, 지금은 아무도 다니지 않아요.”

재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가 잠깐 올라가 봐도 될까?”

“그러세요. 그 통로는 여기서도 올라갈 수 있어요.”

잠시 후, 재훈과 민영은 작업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는 움직이기 편한 크기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곳은 사다리도 설치되어 있어 이동이 비교적 수월했다. 재훈과 민영은 통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간 끝에 시설의 천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길은 끝나고 그물 형태로 이루어진 바닥으로 된 통로가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돔 형태의 시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재훈이 말했다.

“제희가 말한 곳이 여기군요.”

민영이 같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타운의 섹션이 잘 나눠져 있네요.”

재훈은 망원 카메라를 꺼내 아래쪽을 찍었다.

“도대체 심천우는 이런 시설을 만들어서 뭘 하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아래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민영이 재훈에게 물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제희 말이에요. 처음 본 우리한테 경계심도 없고, 이것저것 다 알려주고 말이에요.”

“이상하긴 하죠. 근데 우릴 속이려거나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그래도 뭔가 이상하긴 해요.”

재훈이 계속 아래쪽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저길 봐요. 작지만 강이 있어요. 분명 펌프로 돌리는 가짜 강이겠지만, 나름 자연환경과 비슷하게 꾸미려고 꽤 노력한 흔적들이 보여요. 분명 생존 실험을 하는 타운 같은데…”

한참을 시설을 둘러본 재훈과 민영은 다시 제희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제희가 문 근처에서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재훈이 제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희야, 왜 그러니?”

제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다급한 목소리로 재훈에게 말했다.

“다시 천장으로 올라가세요! 빨리!”

재훈과 민영은 영문을 모른 채 다시 천장의 통로로 올라갔다. 그리고 제희도 끌어올렸다. 잠시 후, 남자 두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재훈은 숨을 죽이며 천창에 있는 틈으로 아래를 지켜봤다. 한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한 남자는 분명 심천우였다. 천우가 남자에게 말했다.

“그래, 제희가 아지트로 삼고 있다는 게 여기가 맞나?”

“예, 좀 전에 같이 잘 노는 아이에게 확인했습니다.”

“제희, 꽤 똘똘한 아이였는데 말이야. 언제부터 밖에 나갔었다고?”

“아마 두어 달 가량 전부터 들락거렸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멀리 나가지는 못했을 테고… 어쨌든 애가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도 못했었다니, 이게 말이나 돼?”

“죄송합니다. CCTV나 감시 장치에 걸린 적이 없어서요.”

“뭔가 빈틈이 있었던 거야. 도대체 여기 실험체들은 왜 다 이따위인 거야? 아까 말한 대로 제희를 포함해서 내가 집어주는 명단의 놈들은 다 폐기 처리시켜!”

“예! 조치하겠습니다.”

천우가 남자와 나가는 걸 확인한 재훈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간 모양이네.”

재훈이 고개를 돌리자 제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를 낮춰 울고 있었다.

“제희야…”

“아저씨, 저를 폐기 처분한다니 아버지가 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재훈은 제희를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내가 설명해줄게. 니가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재훈은 제희에게 심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고, 제희에게서 왜 심천우를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듣게 됐다. 제희의 얘기를 들은 민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모두가 심천우를 아버지라고 부른단 말이야?”

“예. 저희는 대부분 러비들에게 쫓기던 사람들이에요. 그걸 아버지가 구해주셨고 이곳에 살게도 해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예요. 또, 아버진 우리가 러비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도록 펩스를 머리에 심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제가 밖에 나갈 때 가끔 도그 러비나, 버드 러비를 만나도 절 절대로 공격하지 않았어요.”

재훈이 제희의 뒷목을 살펴보자 작은 수술 흉터가 보였다.

“수술 자국이 있어요. 분명 펩스에 러비가 공격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넣은 거예요.”

제희가 재훈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버진 이제 와서 왜 저를 죽이려고 하시는 걸까요?”

“글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네가 밖에 나갔던 게 원인이지 않을까 싶어.”

민영이 뭔가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제희야, 우리랑 같이 갈래? 아무래도 이제 넌 여기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제희는 놀라며 말했다.

“여길 나가요? 정말 오빠랑 언니랑 같이 살아도 돼요?”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희가 답했다.

“좋아요. 어차피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됐고, 저를 죽이려고 까지 하시니 여기 있어서 좋을 게 없죠. 여긴 어차피 진짜 가족도 아니고 부모님은 모두 밖에서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래, 그럼 여기에서 어떻게 나갈지 생각해 보자.”

제희는 재훈과 민영을 다시 세탁 수레에 몸을 숨기게 했다. 그리고 주변을 조심하며 하수도로 통하는 통로 쪽으로 향해 갔다. 통로에 다다르자 제희는 뒤돌아보며 잠시 망설였다. 민영이 물었다.

“왜?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영 마음에 내키지 않니?”

“그런 게 아니라 친구들한테 작별 인사를 못해서요.”

“미안하구나.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

“예, 저도 알아요. 가요.”

재훈은 민영과 제희를 앞에 걷게 하고 주변을 살피며 뒤따라갔다.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여기입니다! 도그 러비들이 아이의 냄새를 맡고 이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뭐야? 거기는 뭔데!”

“아마, 예전 통로인 것 같습니다!”

“뭐해! 빨리 쫓아가지 않고! 도그 러비부터 풀어!”

“예!”

이윽고 뒤에서 도그 러비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훈이 민영과 제희에게 외쳤다.

“빨리 나가!”

민영과 제희는 황급히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그 러비들은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재훈이 소총을 장전하고 뒤를 돌아 발사했다.

두두두두두!

통로 안에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뒤쪽에서 놀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총소리는! 다들 서둘러 확인해!”

“예!”

두두두두두!

재훈의 사격으로 도그 러비들은 다 쓰러졌다. 재훈은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로가 좁아 빨리 걸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밖으로 나가자 민영은 제희에게 말했다.

“좀만 가면 우리가 타고 온 전기 자전거가 있어. 더 힘을 내 뛰어!”

“예! 언니.”

민영과 제희는 힘껏 뛰었다. 재훈도 통로를 나와 그녀들을 뒤따라 달려갔다.

몇십 미터를 갔을 때쯤이었다.

“아!”

갑자기 제희가 가슴을 움켜잡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재훈과 민영이 쓰러진 제희에게 달려갔다.

“으윽!”

제희가 고통스러워하자 재훈이 물었다.

“제희야!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아, 가슴이… 가슴이 아파요.”

“가슴이?”

민영이 놀란 표정으로 재훈에게 물었다.

“제희가 왜 이러죠?”

순간 재훈은 예전에 서 순경이 납치됐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서 순경을 데리고 탈출하려 했을 때 납치된 방에서 나가려 하자, 그녀는 심장마비를 일으켰었다. 그때 범인이 말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여자들의 펩스는 밖으로 나가는 순간, 발작을 일으켜 심장마비로 죽도록 개조되어 있어.’

그 말이 떠오르자 재훈은 제희를 보며 민영에게 말했다.

“제희는 여길 못 벗어나요.”

“예? 왜요?”

“제희의 펩스에 여길 벗어나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고요!”

“뭐라고요?”

뒤에서는 사람들이 뛰어 오고 있었다.

“거기 웬 놈들이야!”

민영은 당황하며 재훈에게 말했다.

“이제 어떡해요?”

재훈은 순간 고민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희를 데리고 갈 방법이 없었다. 몇 초 뒤면 쫓아오던 남자들에게 포위당하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재훈은 제희를 번쩍 안아 들고뛰기 시작했다. 민영도 같이 뛰었다. 그러나 제희가 너무 크게 발작을 하는 바람에 재훈은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남자들이 재훈 일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민영이 총을 들어 같이 대응 사격을 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재훈이 민영에게 외쳤다.

“얼음 주먹 가져왔어요?”

“가방에 있어요!”

재훈은 민영의 가방에서 너클 장치를 꺼내 제희의 머리에 갖다 댔다. 곧 제희의 발작이 멈췄다. 재훈이 민영에게 외쳤다.

“일단 된 거 같아요! 다시 뛰어요!”

재훈은 제희를 둘러업고 민영과 함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숨겨놨던 전기 자전거를 탄 재훈과 민영은 전 속력으로 도망쳤다.

두두두두두!

두두두!

쫓아오던 남자들이 총을 쏴댔지만, 이내 재훈과 민영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제길! 놓쳤잖아!”

한참을 달리던 민영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자전거를 멈췄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재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제희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났다. 깜짝 놀란 민영이 LED조명을 재훈 쪽으로 비추었다. 재훈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강 형사님! 총에 맞으신 거예요?”

재훈은 깜짝 놀라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그러나 아픈 곳이 없었다.

“설마?”

재훈은 안고 있던 제희의 몸을 살폈다. 제희의 등 쪽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재훈은 제희를 흔들며 말했다.

“안 돼, 제희야, 정신 차려봐! 제희야!”

그러나 제희는 이미 숨을 멈춘 지 오래였다.

민영이 제희가 죽은 걸 확인한 후 재훈에게 말했다.

“이미, 죽었어요.”

“안 돼…”

재훈은 제희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

“미안해, 제희야, 정말 미안해.”

재훈과 민영은 기지로 돌아왔다. 제희의 시신을 의무실로 옮긴 재훈은 맥없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노인이 재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재훈 군. 다들 걱정했어.”

재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으로 덮인 제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린 타운의 심천우는 재훈 일행을 쫓아갔던 부하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웬 두 놈이 아이와 함께 도주하고 있었습니다.”

“두 놈?”

“예,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놈들은 추격하던 도그 러비를 사살 후 전기 자전거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 제희라는 아이는 죽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희가 죽어? 정확한 근거라도 있나?”

“어차피 이 곳을 벗어나면 심장마비가 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데다가, 추격 현장에 다량의 혈흔이 있어 샘플을 채취해 확인해보니, 제희의 DNA와 일치했습니다.”

“그래? 그럼 죽었을 가능성이 크겠군. 문제는 그 시신, 특히 제희의 펩스가 밖으로 유출이 됐다는 거다.”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궁금하군. 어떤 놈들이었는지.”

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부하에게 말했다.

“내가 전에 말했던 데이터는 분석해 놨나?”

“예! 그런데 그 결과가 좀 좋진 않습니다.”

“좋지 않아? 왜?”

“이번 제희의 경우처럼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실험체들이 종종 있었고, 특히 타운 안에서 서로 간에 작은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폭력 사태? 대체 뭐 때문에 싸웠다는 거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게 공급했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파가 갈려 서로 잘 맞는 부류끼리 보이지 않는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천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았어. 더 자세히 분석해서 보고하도록 해!”

“예!”

부하가 물러가자 천우는 타운 안을 빙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역시 보통의 인간은 제한을 걸어도 안 되는 것인가.”

민영의 아지트. 시간이 지나고 재훈이 좀 안정되어 갈 무렵 민영이 다가와 말했다.

“강 형사님, 기분은 좀 괜찮아요?

“예, 괜찮아요.”

“같이 보셔야 할 게 있어요.”

“그래요? 알겠어요.”

재훈은 민영을 따라 연구실로 갔다. 연구실로 들어서자 그 안은 온통 보라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펩스로 이루어진 거대한 컴퓨터에 달린 LED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재훈이 민영에게 물었다.

“또 오류가 난 거예요?”

“이번엔 달라요. 이걸 보세요.”

민영은 홀로그램을 띄워 재훈에게 보여주었다.

“제희의 펩스를 여기에 연결해봤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보라색이 뜬 거죠. 그런데 저길 보세요. 제희의 펩스가 연결된 쪽에 LED를요.”

재훈이 그쪽을 유심히 관찰하자 제희의 펩스가 연결된 쪽에 LED 중 몇 개가 흰색을 띠고 있었다. 윤수가 재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상하죠? 제희의 펩스는 일부분이 정상 작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분석을 해봤거든요.”

윤수가 웨어러블 장갑을 낀 채 홀로그램을 헤집더니 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펼치며 말했다.

“이건 일종의 사고방식을 제어하는 프로그램 같아요.”

재훈이 놀라며 말했다.

“사고방식 제어요?”

“예. 예를 들어 음식을 더 먹고 싶어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게끔 제어하는 거죠.”

민영이 말했다.

“도대체 이 제어를 왜 한 걸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그런 사고방식 제어를 한 사람들을 타운 안에 가둬놓은 채 무슨 실험을 한 건지.”

재훈이 뭔가 고민을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눈을 번뜩 뜨며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 씨, 제희의 펩스를 도그 러비의 펩스에 대조해서, 도그 러비가 제희의 펩스를 공격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봐주세요.”

“알았어요.”

잠시 후, 윤수가 재훈에게 말했다.

“놀랍군요. 재훈 씨 말 대로예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제희가 그랬어요. 밖에서 도그 러비나 버드 러비를 만나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었다고.”

민영이 물었다.

“어린아이에게 펩스를 심고, 러비가 공격하지 않게 하고, 도대체 무슨 실험을 한 걸까요?”

재훈은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로그램에 새 창을 띄운 후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 띄워져 있던 펩스의 내용들을 이리저리 섞었다. 재훈의 손이 빨라지다가 이내 멈춰 섰다. 재훈이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펩스로 이루어진 컴퓨터를 쳐다보다가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 씨, 지금 제가 제희의 펩스를 활성화시켰어요. 이 프로그램을 전체 컴퓨터에 대입해 주세요.”

“지금요? 하지만 지금 이 컴퓨터는 물리적 오류 상태예요. 아시잖아요. 이 상태에선 뭘 해도 안돼요. 외부에서 강제로 리셋해야 해요.”

“아니에요. 리셋하지 마시고 그냥 대입해 주세요.”

윤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재훈이 만진 프로그램을 오류가 난 상태의 펩스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입했다. 그러자 곧 오류로 인해 보라색을 뗬던 컴퓨터의 LED 불빛들이 흰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윤수와 민영은 깜짝 놀라며 재훈을 쳐다봤다. 윤수가 재훈에게 말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재훈이 마치 못 맞췄던 퍼즐을 드디어 맞췄다는 표정으로 윤수와 민영에게 말했다.

“이거예요. 심천우가 만들고 있었던 게.”

민영이 놀라며 물었다.

“이게 대체 뭐예요?”

“심천우는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했던 거예요. 악함이 완벽하게 제거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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