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79화 펩스 콜렉터
동굴 안의 사람들은 펩스 콜렉터란 말을 듣자, 좀 전까지도 기세 등등하던 모습은 사라진 채 잔뜩 겁을 먹은 표정들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가 쳐들어 온 굴속의 쥐들같이 보이기도 했다. 재훈이 노인에게 물었다.
“도대체 펩스 콜렉터가 뭐 길래 이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예요?”
노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략 5개월 전부터 나타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야. 그들은 생존자들을 죽이고 다니는데, 특히 펩스가 있는 생존자들은 죽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펩스를 뽑아 간다고 하더군.”
“죽인 후, 펩스를 꺼내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알 수 없어. 소문에 그들은 미치광이 광신도 집단인데, 그들의 신에게 펩스를 제물로 바친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때였다, 동굴 안에서 전투가 벌어진 듯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탕! 탕! 탕!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대장이라 불리던 사내가 부하들의 등을 떠밀며 외쳤다.
“뭐해? 어서 가서 저 놈들을 막아!”
대장은 재훈 일행들에게 다가오더니 주연의 손을 휙! 낚아채며 끌고 가기 시작했다. 주연은 당황해서 손을 빼려 했지만, 대장이 워낙 강하게 잡아끌어 빼낼 수가 없었다. 주연은 완강히 버티며 소리를 질렀다.
“이 손 놓으세요! 놔달란 말이에요! 가기 싫어!”
재훈이 대장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그는 재훈의 머리에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오면 바로 쏴 버린다!”
“어서 그 여자애를 놔줘!”
“미안해서 어쩌나, 너희는 죽어도 그만이지만, 이 여자애는 나한테 중요해서 말이야.”
주연은 재훈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저 좀 살려 주세요! 이대로 끌려가기 싫단 말이에요! 아저씨!”
하지만 재훈과 노인, 상우, 그 누구도 선뜻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대장은 재훈 일행에게 총을 겨눈 채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그럼, 잘들 있으라고. 곧 펩스 콜렉터가 당신들을 죽일 테지만 말이야.”
그때였다. 대장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툭!
“누구야?”
대장이 뒤를 돌아보자, 방탄복과 헬멧을 쓴 사람이 서 있었다. 그 헬멧에는 ‘PEBS’라는 글자 옆으로 다섯 개씩 사선이 그어진 표식이 여러 개 새겨져 있었다. 순간 대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는 페… 펩스 콜렉터?”
곧 대장의 총이 그를 향해 불을 뿜었다.
두두두두두!
그는 몸을 웅크린 채 총알을 받아내었다. 방탄복 덕분인지 그는 별 충격이 없어 보였다. 펩스 콜렉터가 몸을 툭툭 털며 대장에게 말했다.
“겨우 이 정도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아하니, 생존자들을 겁탈하고 잡아먹고사는 쓰레기들인 것 같군.”
대장은 놀라며 다시 총을 쏘려 했지만, 펩스 콜렉터의 총이 더 빨랐다.
두두두!
“윽!”
대장은 손에 총을 맞고 소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대장에게 펩스 콜렉터가 다가가 그의 모자를 벗긴 후 머리에 씌워져 있던 은박지를 벗겨내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니 펩스는 내가 잘 꺼내 쓰도록 하지. 이쯤에서 죽어줘, 괜히 엄한 생존자들 피해 주지 말고.”
두두두!
펩스 콜렉터의 총이 대장의 몸을 관통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펩스 콜렉터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 자식 펩스를 뽑아내고, 다른 자식들도 확인해서 처리해요!”
“예!”
부하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펩스 콜렉터는 재훈 일행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재훈은 움찔하며 바닥에 있던 소총을 집어 들어 그에게 겨누며 외쳤다.
“멈춰! 이쪽으로 오면 쏘겠어!”
펩스 콜렉터는 들고 있던 총의 총구를 바닥으로 향한 채 재훈에게 말했다.
“방금 내가 총에 맞고도 멀쩡한 걸 보지 못했나? 그 정도 무기로는 나를 저지할 수 없어.”
펩스 콜렉터가 계속 가까이 다가오자 재훈이 총을 정조준하며 외쳤다.
“오지 말라니까!”
순간 펩스 콜렉터가 제자리에 멈추며 말했다.
“당신은 절대 나를 쏠 수 없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그건 말이야…”
잠시 말을 멈춘 펩스 콜렉터가 헬멧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저이기 때문이에요. 강 형사님.”
순간 재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차민영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민영 씨?”
재훈은 총을 내려놓으며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민영은 재훈에게 달려와 푹 안기며 말했다.
“강 형사님! 오랜만이에요.”
재훈은 민영을 안아주며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민영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차차 말씀드릴게요. 일단 저희 아지트로 가요.”
재훈 일행은 민영을 따라 그들의 아지트로 향했다.
민영 일행은 재훈 일행을 전기 자전거에 태운 채 이동하고 있었다. 민영의 뒤에 타고 가던 재훈이 민영에게 말했다.
“전기 자전거를 이용하다니, 들킬 염려는 적어서 좋겠는데, 이걸 충전할 데가 있나 봐요?”
“일단 가보시면 알아요.”
재훈은 기대감과 호기심이 가득 생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어떤 강 근처에 다다르자 민영 일행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큰 다리 밑에 있는 벽 앞에 다다르자, 그 앞을 막고 있던 나무판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큰 하수도의 입구가 드러났다. 민영은 잠긴 철문을 열쇠로 연 후, 일행들과 그 안으로 들어갔다. 민영이 재훈 일행들에게 마스크를 주며 말했다.
“하수도라 냄새가 지독해요. 이걸 쓰시면 좀 견딜만할 거예요.”
일행들은 다시 전기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하수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컴컴한 동굴 같은 하수도 안을, 자전거가 LED 조명을 비추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건 마치 반딧불 때가 몰려서 가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가자, 철문이 나타났다. 민영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작은 구멍으로 밖을 확인한 후 문을 열어주었다.
끼익!
묵직한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자 민영과 재훈 일행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주연이 마스크를 벗고 숨을 크게 들여 마시며 말했다.
“와, 신선한 공기.”
재훈도 숨을 들여 마시며 민영에게 말했다.
“여기 공기는 뭔가 아주 깨끗한 데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민영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공기 순환 시스템 덕분이에요. 여긴 원래 종합 하수처리시설이 있었던 곳이에요. 지상에 있는 태양광 발전기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고 있어요. 운이 좋은 건지, 폐허처럼 변한 시설의 모습 때문인지, 러비들이 태양광 판을 망가뜨리진 않았어요. 덕분에 전기를 쓰고 있죠.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지트 곳곳에 자가 발전기와 에너지 회생 시스템을 설치해 전기를 모으고 있어요.”
재훈은 천장을 둘러보았다. 공기 순환 시스템에 에어컨, 히터, 심지어는 스프링클러도 달려 있었다.
“대단하네요. 여긴 몇 명 정도가 살고 있어요?”
“지금은 102명이 살고 있어요. 이제 강 형사님 일행이 들어왔으니 106명이네요. 일단 따라오세요. 샤워도 하시고, 식사도 하세요. 뭐, 크게 차릴 건 없지만 허기를 달랠 정도는 될 거예요.”
잠시 후, 민영은 재훈 일행에게 옷을 건네주며 말했다.
“새 옷은 아니지만, 잘 빨은 거예요.”
재훈이 옷을 받아 들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샤워실에 들어가면 가위도 있어요, 수염 자르실 거면 자르시고요.”
“예.”
재훈은 샤워를 하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몸을 씻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은 단순히 몸을 씻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고생도 같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식당에 모인 재훈 일행은 말끔해진 서로의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란 모습이었다. 노인이 재훈에게 말했다.
“수염을 자르니까 더 잘생겨진 것 같군. 재훈 군.”
재훈은 조금 남아있는 수염 자국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멋쩍은 듯이 말했다.
“가위로 자른 거라 깔끔하지도 않은데요 뭘.”
“깔끔하지 않으면 어떤가? 잘 생기기만 했는데. 안 그러냐, 주연아?”
“왜… 저를 보면서 그러세요? 할아버지. 민영 언니나 도와야겠다.”
주연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녀석 부끄러워 하기는.”
잠시 후, 민영이 주연과 함께 음식들을 내왔다. 감자와 고구마 등이 차려졌다.
“잘 먹겠습니다!”
상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녀석아 체한다. 천천히 먹어.”
노인은 그러면서도 음식을 먹는 상우와 주연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훈이 민영에게 물었다.
“여기 식물공장처럼 재배시설이 있나 보죠?”
“예. 아껴 먹으면 100명 정도는 먹을 양이 재배되고 있어요.”
재훈 일행은 식사가 끝난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주연이 재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저씨, 아까 동굴에서 나쁜 아저씨한테 잡혔을 때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재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해주기는, 결국 민영이 언니가 널 구해준 거야.”
“아니에요. 민영 언니도 고맙지만 아저씨가 그 나쁜 아저씨랑 맞서지 않았다면 전 큰일 났을지도 몰라요.”
“그래? 어쨌든 다행이다. 그렇지?”
“예. 정말 감사합니다.”
재훈은 잠시 주연의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등에 쭉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재훈은 그 상처를 만져보며 주연에게 말했다.
“아까 탈출하면서 다쳤나 본데, 아프진 않아?”
주연은 황급히 손을 감추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때, 민영이 재훈에게 다가왔다.
“강 형사님,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그러자 주연이 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저 나가 있을게요. 말씀 나누세요.”
밖으로 나가던 주연은 좀 전에 재훈이 잡아 준 자신의 상처 난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런 주연의 모습을 누군가 복도 끝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상우였다. 상우가 주연을 보며 생각했다.
‘아저씨 말고 나는 좋아해 줄 수는 없는 거니?’
상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뒤돌아 가기 시작했다.
민영이 재훈에게 말했다.
“여기 시설에는 몇몇 박사님들이 계세요. 그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거고요.”
“그런데 민영 씨가 펩스 콜렉터라니, 도대체 심천우의 기지에서 어떻게 탈출한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의 펩스를 수집해 오는 이유가 뭐예요?”
민영은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강 형사님이 심천우에게 잡혀 쓰레기장에 버려질 즈음에, 저는 기지 내부의 연구원 한 명과 짜고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요.”
“연구원이요?”
“예. 남윤수라는 연구원 이였죠. 그는 심천우의 기지에서 연구를 하면서 남몰래 놈들의 핵심 프로그램을 빼돌리려 하고 있었어요. 그는 세상을 구하고 싶어 했어요. 다행히 저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프로그램을 빼돌려 탈출할 계획을 세웠던 거죠.”
“그래서 탈출에 성공했겠군요.”
“예. 강 형사님이 그렇게 되고 얼마 후 기회가 생겼고, 윤수 씨와 저는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런데 얼마 뒤 리턴 오메가로 인해 개량되어 만들어진 ‘러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역시, 심천우는 리턴 오메가를 빠르게 분석해 냈군요.”
“그렇죠. 저와 윤수 씨는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이 시설을 발견하게 됐고, 생존자들을 모아 이 아지트를 완성시켰어요. 그리고 심천우에게서 빼돌린 핵심 프로그램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그걸 연구하기 위해서는 양자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그런 컴퓨터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만약 발견한데도 부피가 커서 여기로 옮길 수가 없었던 거죠.”
“그게 펩스를 수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요?”
민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훈에게 말했다.
“그냥 말씀드리는 것보다 직접 보여 드리는 게 좋겠어요. 따라오세요.”
재훈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민영을 따라갔다.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문 앞에 다다르자 민영이 재훈을 한번 쳐다본 후 말했다.
“강 형사님, 제가 왜 펩스 콜렉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이 안에 있어요.”
민영이 문을 열자 안에서는 강한 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이 너무 밝아 재훈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민영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재훈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대한 공간 안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깃줄 같은 큰 덩어리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구조물을 자세히 보던 재훈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민영에게 말했다.
“이… 이건 펩스들을 서로 연결한 건가요?”
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방안에서 재훈을 지켜보던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맞습니다. 펩스를 연결한 겁니다.”
남자는 재훈의 앞에 다다르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재훈 형사님. 저는 남윤수라고 합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재훈은 윤수와 인사를 나눈 뒤 계속 그 거대한 구조물을 보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윤수가 옆에서 말했다.
“283개의 펩스를 연결해서 만든 컴퓨터입니다. 양자 컴퓨터만큼은 아니지만 꽤 고성능을 낼 수 있죠. 그리고 이쪽에는 실험용 펩스를 만들어 각종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그런데 빛이 엄청나게 나오네요?”
“예. 시스템이 작동되는 부분을 다 자동으로 체크할 수가 없어서, 각 연결 부위에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LED를 설치해서 빛이 나는 거예요. 성능은 뛰어나지만 운영방식은 수동인 셈이죠.”
“대단해요. 펩스를 이용한 네트워크 컴퓨터라니. 엄청난 걸 만드셨군요. 그런데 이 컴퓨터로 뭘 개발하고 계시는 거죠?”
윤수가 재훈을 연구소 옆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멍멍멍!”
“놀래라!”
재훈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자세히 보니 개 한 마리가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윤수가 말했다.
“이건 도그 러비입니다. 우리가 생포해왔죠.”
개는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 일반적인 개와는 달라 보였다. 윤수가 개를 보며 말을 이었다.
“러비들의 특징은 강력한 보안 프로그램에 있어요. 그걸 뚫기가 쉽지가 않죠. 디지털 키스 앱으로부터 시작된 보안 프로그램에 리턴 오메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결합되어 정말 뚫기 어려운 프로그램으로 진화했어요. 더 웃긴 건 현재 이 도그 러비의 펩스에서 전파 수신 부를 떼어 냈는데도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거예요.”
연구원 중 한 명이 철창 안에 먹이를 넣어주자, 도그 러비는 냄새를 맡으며 신중하게 먹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혀로 맛을 몇 번 보더니 주변 사람들을 살핀 후 결국 먹이를 먹지 않았다. 윤수가 말했다.
“보세요. 먹이를 주면 그냥 받아먹는 게 아니라, 독이 있는지, 먹을 수 있는 건지 살핍니다. 그리고 주변 상황을 더 살펴본 후 뭔가 아니다 싶으면 먹이에 이상이 없고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아요. 이런 과정이 개의 뇌가 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행동을 하는 겁니다.”
“프로그램으로요? 그게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기존의 뇌는 죽어있고 일종의 인공지능이 이 개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이런 게 가능하다니.”
“어떤 프로그램을 써도 이 도그 러비를 해킹해서 멈추게 한다든지 할 수가 없었죠.”
옆에 있던 민영이 재훈에게 말했다.
“그래서 윤수 씨와 제가 심천우의 기지에서 리턴 오메가를 기본으로 한 컨트롤 프로그램을 빼낸 거예요. 그걸 우리가 만든 컴퓨터에 적용해서 새로운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고요.”
“그래서 뭘 만드신 거예요?”
민영이 팔에 토시 같은 장치를 끼기 시작했다. 주먹 부분에는 거기에 연결된 너클이 장착됐다. 재훈이 그 너클을 보며 말했다.
“어? 이 너클은 제 건데?”
“맞아요. 재훈 씨가 갖고 있던 거죠. 우린 이 장치를 ‘얼음 주먹’이라고 불러요.”
민영이 너클을 낀 주먹으로 철창 안에 도그 러비의 머리 쪽을 살짝 치자, 방금 전까지 사나워 보이던 도그 러비가 순간 얼음이 된 듯 행동을 멈췄다. 재훈이 놀라며 민영에게 물었다.
“정말 멈췄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이제 알겠죠? 왜 이 장치가 얼음 주먹이라고 불리는지. 이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행동을 멈춘 도그 러비를 재훈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